< -- 200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레오니다스 잠수 모함 함장실 주방은 생각 예외로 아담하고 깔끔했다.
은은한 주황색 조명 아래 떡갈나무로 만든 식탁과 의자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뭐야? 꼭 집에 온 것 같아."
스탠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설화가 쿡 찔렀다.
"왜? 집이 그립냐?"
"응. 집 나온지 벌써 한달째인데, 다시 돌아가기는 커녕 더 멀어지고 있잖아."
"짜식... 걱정하지마. 곧 돌아갈 거야."
설화는 스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
그러고보니 그 들에게는 이런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일지 몰라도 초에게는 매우 씁쓸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설화가 휙 쳐다보았다.
아니라 다를까 초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이런....'
설화는 자신의 행동이 약간 경솔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렇게 양쪽의 눈치를 봐야 하는지 답답했다.
차라리 섭섭하기는 하겠지만 스탠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일단 여기 앉으시죠. 함장님은 업무가 끝나는대로 곧 나오실 겁니다."
"예."
카터가 조용히 주방을 빠져 나가자 모두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마치 서로 모르는 사람 들이 모여 앉아있는 분위기였다.
"흠흠. 모두 좀 푹 쉬었어?"
결국 초가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고자 했다.
"뭐, 난 좀이 쑤시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아."
사무엘이 말하자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침대가 푹신푹신해서 금방 잠들었어요. 조금 더 잤으면 좋았을건데...."
"어쩌겠어. 우리가 신세지는건데 불평 불만을 늘어놓을 수는 없잖아."
"쳇! 누가 그걸 몰라요? 말이 그냥 그렇다는 거지...."
소피아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휙 돌리자 설화가 입 모양으로 '저 쪼그만한 걸 콱!' 했다.
"그나저나 이 잠수 모함은 생긴것 만큼이나 이름도 거창한데요?"
불쑥 소라가 끼어들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뭐가 거창한데?"
"이 잠수 모함 이름이 '레오니다스'라 잖아요."
"그래서?"
설화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스탠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입을 열었다.
"레오니다스라면.... 스파르타왕을 말하는 건가?"
"맞았어. 어떻게 알았지?"
"그냥. 나도 너처럼 인터넷 돌아 다니는걸 좋아하거든. 역사에도 좀 관심이 있고 말이야."
스탠과 소라가 은근히 대화가 통하자 초는 꽤 관심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야, 사실 쟤 인터넷 레쉬피 뒤져서 음식 만드는게 취미야."
"진짜?"
설화가 조용히 속닥거리자 초가 깜짝 놀랐다.
"응. 저번에 건강식이라면서 갈색 음료를 만들어 주더라고. 그게 한국 음식이라던데... 이름이 뭐였더라?"
"한국 갈색 음료라면...."
"아, 맞다! 미스가르야. 미스가르."
"미스가르?"
초가 당황하며 잠깐 생각하다가 이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 언니. 미숫가루 말하는 거야?"
"아, 그거였나? 아무튼 발음이 좀 어려운 거였어."
"좋은거 해줬네. 그거 곡물을 가루로 빻아서 만든 거라 되게 배도 부르고 좋아."
"음.... 아무튼 저 놈 취미도 유별난다니까."
"그래...."
설화는 그런뜻으로 말하는게 아니었는데, 또 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젠장. 앞으로 입을 다물던가 해야지 원.'
결국 뜨끔한 설화가 혼자 자책하는 사이, 스탠과 소라의 대화는 흥미진진하게 계속되었다.
"레오니다스라면 클레오메네스 1세의 이복동생이지. 클레오메네스 1세의 딸 고르고를 아내로 삼아 형 클레오메네스가 죽은 뒤에 왕위에 올랐어."
소라가 자신의 지식을 유감없이 뽐내자, 사무엘은 지루한 표정으로 귀를 후볐고 소피아는 자신의 손톱을 쳐다보며 딴 짓을 했다.
아무래도 그 들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한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스탠만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하지만 레오니다스가 아테네 정복을 실패한 자신의 형 클레오메네스를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켰던건 별로 좋지 못한 평이 따르더군."
"그렇더라도 '테르모필레 협곡'을 정예 군사 300명만 가지고 목숨을 걸고 지켰던건 추앙 받을 일이지. 그 당시 그리스를 침략했던 페르시아군은 100만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당시 페르시아군의 숫자는 너무 부풀려졌어."
"뭐? 그게 사실이야?"
"응. 그때 당시 페르시아군은 30만명이었어. 물론 그 숫자도 대군이긴 했지. 그 당시 전세계 인구가 1억명쯤 추산됐고, 페르시아인이 3천500만명이었으니까...."
"잠깐. 3천 500만명이라면 우리 생존자들 수랑 똑같은데?"
초가 손뼉을 치자 모두가 깜짝 놀라며 입을 벌렸다.
"그렇다면 이 잠수 모함 이름이 조금 이상한데요."
소라가 짐짓 인상을 쓰며 작은 한숨을 내쉬자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레오니다스가 페르시아 군사 들을 막았잖아요. 대개 이런 명칭을 붙일 때에는 그 나의 역사적인 위인을 붙이는데, 미국에서 만든 잠수 모함을 왜 굳이 고대 왕의 이름을 붙였냐는 거에요."
"그건 제가 설명하죠."
"....!!"
모두가 깜짝 놀라 일어섰다.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중년 여성이 주방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레오니다스 함장 클리카네 레일리 함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