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41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저기.... 이거 괜한 참견일 수 있는데....."
브리튼은 복도를 거닐다가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뭔데 그래?"
"스탠에게 언제 밝히실 겁니까?"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건 당신이 잘 알텐데."
예선은 의외로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브리튼 교수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설화님마저 안 계신 마당에 그 사실을 소장님 아니면 누가 밝힐 수 있습니까?"
"정 답답하면 댁이 가서 밝히지 그래?"
"소장님....."
브리튼 교수가 무슨 말을 할려는 찰나 예선이 걸음을 멈추고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설화 언니가 없는 틈을 타서 이제부터 애미 노릇이나 하라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무슨 뜻인데?"
브리튼 교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스탠은 안정이 필요합니다. 그건 누구보다 소장님이 제일 잘 알고 있으시죠. 제 말은 스탠이 앞으로 신중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부모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앞으로 조언을 많이 듣기 위해서 말이죠."
"브리튼.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무척 고전적이야."
"예. 그래서 그 말썽 3인방이 제 말을 제대로 듣는 날이 없었겠죠."
"브리튼. 정말 샌님처럼 굴지마. 스탠은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있어. 그런 애한테 내가 어느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엄마라고 밝히는게 뭐가 좋을까?"
"....."
브리튼이 아무런 대답을 안하자 예선이 거 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스탠은 혼란을 겪으면서 의심할 틈이 없어. 게다가 스탠은 앞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내가 그 걸림돌이 되게 할 수는 없다고."
"소장님은 누군가를 걸리적 거리게 하실 분이 아닙니다."
"그래. 인정해줘서 고맙네. 하지만 이건 엄마로서 내린 내 결정이니까 이해해줘."
"....."
예선이 한번 씨익 웃고 난 후 먼저 걸어가자, 브리튼 교수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뒤따랐다.
5일 뒤.
말썽 3인방과 스탠은 떠날 채비를 마치고 제너럴 컴퍼니 건물 앞에 서있었다.
그 들 앞에는 다우 회장을 비롯해 예선과 브리튼 교수 등, 많은 사람 들이 배웅을 해주었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만일 하나를 대비해서 저희 기동팀이 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구. 뭐 나 혼자서 뉴저지에 있는 놈 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을테니까."
-퍽!
"악!"
사무엘이 자신의 주먹을 내보이며 우쭐거리자, 예선이 그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누가 네 힘자랑 하라고 거기로 보낸줄 아냐? 만일 하나 사고라도 쳐봐. 너네 넷다 연동 책임 물어서 다 죽을줄 알아."
"젠장. 골치 아프군."
사무엘이 뒷통수를 긁적이자, 다우 회장이 빙긋 웃었다.
"뉴저지 외곽 감염자 들은 좀 위험하긴 하지만, 여러분 들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대신 위성통신장비는 잘 챙겨두세요. 만일을 대비해서 저희가 기동대를 파견할 수 있도록요."
"그건 걱정 마슈. 우리가 그렇게 쉬운 놈들은 아니니."
사무엘이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치며 자신만만해 했다.
"자아, 이제 출발하자고!"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장갑차에 탑승했지만 스탠은 예선 앞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왜 그래?"
"저기.... 고마워요."
"뭐?"
예선이 깜짝 놀라자 스탠은 희미하게 웃었다.
"우리 엄마 대신에 날 보살펴 준거요."
"....."
스탠이 차에 오르자 예선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뉴욕은 그 옛날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높이 솟은 건물 들은 온통 넝쿨과 거미줄로 가득했고, 택시로 북적였던 거리는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제너럴 컴퍼니 본사 건물 주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으아.... 뭔 도시가 이렇게 우중충 하지?"
"원래 그럴 수도 있어. 우리가 뉴욕을 제대로 본적은 없었으니까."
소라와 소피아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장갑차는 맨허튼 외곽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내리셔야 합니다."
장갑차 운전병이 밖에서 문을 열어주자, 3인방과 스탠이 차례대로 내렸다.
"후아! 이게 얼마만의 자유냐!"
사무엘이 기지개를 피며 좋아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맨허튼 외곽은 5미터나 되는 높은 콘크리트 담장이 만리장성처럼 이어져 있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초소에는 삼엄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4초소대 소대장 개리 클린트 소령입니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의 남자가 악수를 청하며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소라가 모두를 대신해 그의 손을 잡았다.
"듣자하니 회장님께서 외곽으로 나가는걸 허락하셨다던데...."
"예. 저희가 제대로 된 실전 같은 훈련이 필요해서요."
"그러시군요. 사실 저는 유럽에서 온 생존자 분들이 어떤 분들이신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희가 여러분을 도와드리는게 어떨까 싶은데...."
"아뇨. 배려는 감사하지만 저희는 이미 계획이 있어서 그러실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소라가 단호히 거절했지만, 개리 소령은 고개를 저었다.
"저 담벼락을 밖은 지옥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젊으니까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걱정도 팔자네. 우리가 그렇게 쉽게 뒤질것 같수?"
"뭐 정 그러시다면...."
어깨를 으쓱거리는 개리 소령을 사무엘이 씨익 웃으며 지나쳤다.
일행이 정문 앞으로 다가서자 단단한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 철문은 두께만 해도 1미터입니다. 근 20년간 한번도 뚫린적이 없죠."
개리 소령은 뿌듯한 얼굴로 설명하며 초소를 올려다 보았다.
"어이! 문 열어!"
"옙!"
-쿠구구궁!
초소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자, 거대한 철문이 덜컹거리며 미닫이 문처럼 열리기 시작했다.
"자아, 여기서 500m 앞은 말 그대로 감염자 들의 소굴입니다. 부디 무사 귀환 하시길 빌겠습니다."
"후후.... 좀 이 쑤셨는데 정말 잘됐어."
사무엘이 목을 좌우로 꺾으면서 앞으로 나가자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쿠구구궁
그러자 철문이 서서히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소피아가 못마땅한 표정을 했다.
"참. 나가라고 등 떠미는 거야? 뭐야?"
"어찌보면 여기가 국경선이나 다름없잖아. 철통같이 지켜야지."
스탠이 나지막히 말하자 소피아가 두 눈썹을 까닥였다.
사실 그 둘이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아서 생소한 탓이었다.
"좋아. 이제 실전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자! 우리는 자신 있어도 걱정하는 사람 들이 많으니까, 단 한명도 다치지 말고 복귀해야 해."
리더겪인 소라가 진지하게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