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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32화 (32/250)

#32

우연히 만난 이연의 붕대로 응급 처치를 한 재경은 추적 때문에 일반 병원에 갈 수가 없어, 간신히 아는 사람—의사 면허 소지자는 아니었다.—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았다.

재경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초능력 변이종으로 추정되는 일명 ‘보너스 변이종’이 이 연구소와 관련 있는 건 물론이고, 뿐만 아니라…….

“여기가…… 변이종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까지 실험을 하는 곳이라고요.”

“예상으로는.”

변이종은 동물이 아니다. 지구의 생물이 아니니 생물로 취급되지 않았다.

지구에 대뜸 나타난 불청객은 죽여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것을 넘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실험으로 변이종에 대한 결과를 얻고 그에 대해 분석하는 일은 그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일환이었다. 괴물에게 보장해 줘야 할 권리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그럼 지금 재경 씨가 가려는 곳은…….”

“응.”

진중한 낯의 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변이종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야.”

“예?”

잘 가다가 삐끗했다.

“사람들이 갇힌 곳이 아니고요?”

“사람? 사람은 뭐, 알아서 하겠지.”

“의식을 잃고 갇혀 있었다면서요?”

“괜찮아. 사람은 잘 안 죽어.”

이 인간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연이 흰 눈으로 바라봐도 재경은 태연하게 제 주장을 관철했다.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이런 데에서 오지랖 발휘하는 거 아니야. 법이 통하는 곳이 아니라고.”

“아니, 그래도 알았는데 그냥 넘기는 것도 그렇잖아요. 야, 빨리 뭐라고 해 줘.”

나라의 영웅 무궁화 5단이 근엄하게 대답했다.

“나도 큰 관심은 없다.”

자랑이었다. 협조성이라고는 코딱지만큼도 보이지 않는 사회의 반항아 둘을 등진 이연이 한숨을 푹푹 쉬며 컴퓨터 쪽으로 다가가 고글을 집어 들었다.

“혜강아, 다 됐어?”

- 기본적인 건 가능해. 시간이 조금 더 있으면 다 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 되면 한 번 더 연결해 줄게.”

컴퓨터에게서 고글을 떼어 내 착용하자 혜강이 연구소 지도를 띄웠다. 방의 설명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기본적인 건물 구조만 보여 주는 맵이었다.

오로지 도형으로만 이루어진 지도인데도 개미굴처럼 복잡한 구조는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보기만 해도 눈이 핑핑 돌았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이연이 혀를 차며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거대한 연구소의 초입 부분. 여길 다 뒤지려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다.

공조자가 필요했다.

“재경 씨.”

“응?”

“변이종 탈출을 도와드릴 테니, 사람 구하는 것도 도와주세요.”

이연이 택한 방법은 무시할 수 없는 협상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아주 좋은 기회니까 놓치면 후회할걸요.”

재경은 변이종에 미쳐 있었을 뿐 바보는 아니었다. 협상은 빠르게 타결되었다.

“사람이 들어갔던 연구실은 여기서 꽤 멀어. 그런데 너희, 싸움 잘해?”

“네?”

갑작스러운 질문의 의도는 곧 알 수 있었다. 하얀 복도 너머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 두엇과 마주친 것이다.

“넌 누……”

문장을 끝내기도 전에 산오가 철 마스크로 입을 막아 버렸지만.

핏발 선 눈으로 뭐라 웅웅대는 연구원들의 몸을 바닥에 묶은 산오는 가볍게 남자들을 뛰어넘었다. 그 뒤를 뭉치가 우아하게 따라 뛰었다. 이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재경을 바라보았다.

“저쪽이 잘해요.”

“그러네…….”

압도적인 힘 차이에 재경이 얼떨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연 역시 성큼성큼 남자들을 지나가려는데, 묶인 연구원 중 하나가 몸부림을 치며 이연에게 달려들었다. 거센 몸짓이 이연의 발목을 머리로 들이받으려는 그 순간.

지잉.

붉은 레이저가 연구원 정수리 바로 앞의 바닥을 그었다. 새하얀 복도 바닥에 생긴 까만 선에서 연기가 났다. 레이저에 스친 머리카락 끝이 부서져 잔해가 흩날렸다.

핫핑크색 막대를 쥔 이연이 가볍게 손목을 틀었다.

“이거 진짜 레이저거든요. 맞으면 위험하니까 가만히 계세요.”

“와, 그건 뭐야?”

이연이 막대를 빙글빙글 돌리며 웃었다.

“뭉치 장난감이에요.”

그 이후로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빈 복도를 한참 걷다가, 연구소 사람이 나타나면 산오가 제압했다. 쉴 틈 없이 걷는 사이 혜강이 고글 너머에서 상황 브리핑을 했다. 기술 관련 설명은 전혀 못 알아들었고, 이연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말은 다음과 같았다.

- 건물 시스템 장악은 끝났는데, 연구 시스템은 아직 못 했어. 보안을 몇 겹으로 해 놓은 건지도 모르겠네.

“얼마나 더 연결해 둬야 해?”

- 30분은 걸리지.

끝없이 꺾이는 복도는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야.”

이연은 재경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연구실 입구는 주변의 벽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찌나 정교한지 문 이음매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재경 씨는 보통 어떻게 들어갔어요?”

“나야 권한 있는 사람 드나들 때 같이 껴서 들어갔지.”

이연은 텅 빈 복도를 돌아보았다. 이 넓은 곳에서는 우연히 출입 권한자를 마주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만난다 하더라도 순순히 협조를 받기 힘들 것이다.

뭐, 상관은 없었다.

“비켜.”

대부분의 건물 재료에는 광물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산오가 손을 뻗자, 문이 있었던 벽 전체가 뚫렸다. 그에게는 출입 권한이고 뭐고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넌 능력이 뭐길래 이런 게 되는 거야?”

재경의 감탄에 산오는 시선만 흘끗 주고는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연구원의 몸이 바닥에서 튀어나온 철 밧줄에 구속되는 것이 얼핏 보였다. 이연이 따라 들어가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희 집 애가 싸가지가 바가지라서요. 이해 좀 부탁드릴게요.”

일행이 전부 들어오자 벽은 다시 메꿔져 들어오기 전과 똑같은 상태가 되었다. 섬세한 후처리였다.

도착한 일행은 바닥에서 튀어나온 인간들을 보고 혼비백산한 연구원들을 신속하게 제압해 버려두고, 자연스럽게 조사를 시작했다.

- 어. 저기 컴퓨터 있다.

연구실의 중앙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 위에 모니터 여러 대가 있었다. 요즘은 모니터 두세 개는 다는 게 기본인가 보다. 한달음에 달려간 이연이 컴퓨터와 고글을 다시 연결했다.

테이블 너머에는 유리벽으로 밀폐된 조그마한 관찰실이 있었다. 사람이 앉을 만한 의자와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전선들.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니었다.

“난 다른 데 보고 있을게.”

- 오케이.

연구실은 연구의 핵심인 듯한 인간을 상대로 하는 곳답게 꽤 많은 자료가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이 모두 검은 칠이 된 채로 이미 폐기된 자료들만 잔뜩이었다. 점점 구석으로 옮겨 가며 서랍장을 열어 보던 이연이 멈칫했다. 영롱한 빛을 내는 오색의 보석들이 예쁘게 대열을 맞추어 보관되어 있었다.

‘보석 장사라도 하나?’

평범한 보석인 것 같은데. 이연은 그중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

주변을 슬그머니 살핀 이연이 슬쩍 주머니에 두어 개 챙겨 넣었다.

서랍장에는 그 외 별것이 없었다. 지금은 비어 있었지만, 이전에도 비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치를 챘다면 곤란한데.

이연이 혀를 차며 서랍장을 뒤적거리다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무렇게나 휘적댔을 뿐인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서랍장 옆의 벽이 열리며 또 다른 책장이 드러났다.

“봤냐?”

의기양양하게 산오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저 멀리서 자료를 보는 데에 정신이 팔려 돌아보지도 않았다. 뚱하게 서 있기만 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제법 열심이었다. 시무룩해진 이연이 얌전히 책장을 뒤적거렸다.

숨겨진 책장에는 더 적나라한 문서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빽빽한 종이 더미는 깨알만큼 작은 글자들로 가득 차 있었고, 활자의 바다 속에서 이연은 눈에 띄는 단어를 건져 냈다. 변이종.

이연이 그 옆의 서류를 몽땅 꺼냈다. 교육을 진행한 각 변이종들의 보고서였다. 긴귀제비, 무리불새, 뿔다람쥐, 바다박쥐……. 수많은 보고서 속에는 이연이 아는 변이종도 모르는 변이종도 있었지만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7급에서 9급 사이의 하급 변이종이었다.

몇십 장은 되는 것 같은 보고서를 쭉 넘기다가 걸리는 단어가 있어 멈췄다. 이연의 시선이 빠르게 좌우로 왕복했다.

「매칭 실패. 재실험 요망.」

매칭? 무슨 매칭을 말하는 거지? 나머지 책장을 뒤적이다 노란색 서류꽂이를 발견했다. 두께가 꽤 되는 서류 묶음을 잡아 빼자 구겨진 종이들이 부스스 떨어졌다.

그건 어떤 목록이었다. 옅은 색의 눈동자에 종이 위의 검은 글자가 선명하게 비쳤다.

“기력 추출 일지…….”

앞선 보고서와는 달랐다. 그건 초능력자를 상대로 한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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