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36화 (36/250)

#36

산오는 처음에는 이연을 대강 부축해서 데려가려고 했으나, 이연이 움직일 때마다 피가 흐르는 꼴이 신경 쓰였는지 아예 안아 들었다. 달랑 들린 마른 몸은 산오의 덩치와 직접적으로 비교되어 평소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갑자기 훅 가까워진 거리에 어색하게 꿈지럭거리던 이연이 아무 말이나 중얼거렸다.

“야……. 뭐 이렇게 곱게 들어 주고 그래.”

“입 다물어.”

퉁명스레 말하면서도 몸을 지탱한 팔은 흔들림 없이 그를 받치고 있었다. 그 간극에 이상하게 마음이 조여들었다.

“왜 몸을 그따위로 굴리는 거지?”

“우리 엄마랑 비슷한 말을 하네.”

“개소리 집어치워.”

심기가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내던 산오가 짜증스레 이연의 몸을 훑었다. 체력을 몽땅 뽑힌 몸이 기운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진짜 짜증 나게 구는군.”

“……왜 화를 내냐?”

무모하게 군 거야 인정하는 바지만, 당장 박사가 도망갈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 별수 없었다. 포탈 타고 그대로 사라지면 다시 잡는 건 요원했다.

이 정도 외상을 대가로 위치 추적기를 붙인 거면 영 손해도 아니고. 요즘 병원 기술이 얼마나 기똥찬데……. 시무룩한 이연의 대꾸에 산오는 인상만 푹푹 썼다.

“됐어.”

별로 된 것 같지도 않은 얼굴로 그런 말 해봤자 설득력이 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 형, 괜찮아? 튼튼하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몸부터 갖다 박는 거야?

혜강이 걱정하며 욕인지 뭔지 모를 잔소리를 했다.

“급한데 어떡해……. 아! 제산오, 내 고글 챙겨 왔어?”

“맡겨 놨나?”

“야, 그거 절대 버리면 안 돼. 내 몸값보다 비싼 거라고…….”

이연의 궁상맞은 중얼거림에 눈을 한번 찌푸린 산오가 대충 손을 휘저었다. 곧 천장에서 이연의 고글이 튀어나왔다.

“와! 고마……워.”

연결된 상태에서 그냥 끊어 온 건지 연결잭이 박살 나 있는 것을 발견한 이연의 안색이 급격하게 흐려졌다. 아니, 외상 처리하자마자 또 다른 외상이……. 지금 느껴지는 현기증이 외상 출혈로 나는 건지 통장 출혈로 나는 건지 모르겠다.

변이종 보관실에 다시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보관실 내부는 아직도 뭉치가 팔팔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요란한 광경 한가운데로 제산오가 입장했다.

그가 온 이상 모든 곳이 평화와 함께했다. 손 하나 까딱이지 않고 경호원들을 단숨에 제압하자 뭉치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뛰어왔다.

산오에게 안겨 있는 이연에게 닿기 위해 연신 점프하던 뭉치가 자신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산오의 꼿꼿한 자세에 꼬리를 축 늘어트렸다. 이연이 머쓱하게 달랬다.

“어, 뭉치야. 형이 아파서 산오가 도와주고 있는 거야.”

“형?”

산오의 삐딱한 물음에 이연이 투덜댔다.

“원래 나보다 작으면 다 동생이야.”

“연장자 많아서 좋겠군.”

“야, 나 평균 키거든.”

“퍽이나.”

투닥대던 두 사람의 곁으로 뒤늦게 재경이 다가왔다.

“아, 재경 씨. 작업은 끝났어요?”

“어! 고마워.”

다행히 하려던 처치가 잘 끝난 모양이었다. 고개를 조금 빼서 보니 얌전해진 변이종들이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연 씨, 내가 계속 고민해 봤는데 그, 뭉치 말이야.”

과연, 변이종 오타쿠에게는 잠시나마 같이 다니던 일행의 배때지가 찢기든 말든 변이종이 가장 먼저 보이는 모양이다. 자세히 보니 재경은 몸만 그들에게 향해 있을 뿐 시선은 뭉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종 모른다고 했지? 아까 전투하는 걸 잠깐 봤는데, 털이 부분적으로 파랗게 변했거든? 그렇게 생각하면 의심 가는 종이 하나 있어. 크기가 좀 작긴 한데, 돌연변이도 있을 수 있으니까. 이연 씨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고위 변이종 중에……”

“걔 맞아요.”

“어?”

심드렁한 단답에도 재경은 그럼 제가 생각한 게 맞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는 뭉치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 했지만 경계하며 으르렁거리는 바람에 감히 만지지 못했다.

“재경 씨는 안 다쳤어요?”

“어어! 괜찮아.”

애둘러 나는 다쳤다는 뜻을 표명해도 재경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무플보다는 악플이라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이연이 쓸쓸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악플러의 품에 파고들었다. 산오가 웬 지랄이냐는 눈빛으로 꼬나보았지만 다행히 환자를 던져 버리지는 않았다.

“변이종들은 어때요?”

“얼추 된 것 같아.”

“얼추?”

“기력 잔여물을 완벽하게 빼내지는 못해서, 추가적으로 더 처리를 해 줘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변이종들은 제가 전부 데려가겠다고, 재경이 선언했다. 그런 말을 하며 재경은 이연의 눈치를 살폈다. 초능력 관리청에 변이종을 데려가야 한다고 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는 듯했다.

“뭐, 그러세요.”

“정말?”

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사태는 초능력 변이종 몇 마리를 더 잡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은 여기서 모은 보고서를 희수에게 전하는 게 급선무였다.

심지어 재경의 노력 덕에 다시 평범한 하급 변이종이 되었으니 연구소에 데려가 봤자 큰 수확도 없을 거고, 일반인에게 큰 해를 끼칠 일도 없을 것이다. 해를 끼치면…… 재경이 알아서 연락하겠지. 초능력자가 죽이러 오는 것보단 그게 더 나을 테니까. 이연이 명함을 건넸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시고요.”

“응. 고마워. 너흰 이제 가는 거야?”

“음……. 하나만 더 하고요.”

이연이 연구실을 한번 훑어보았다.

“혜강아. 준비됐지?”

- 맡겨만 둬.

경쾌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하나, 둘, 셋. 정확히 3초 후에 연구소 전원이 나가며 모든 시스템이 다운되었다.

불법 연구소는 아주 깔끔하게 영업을 종료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역시 24시 지하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이 동네는 응급실이 너무 멀어.”

아니? 집에 가는 길이 아니었다…….

“피가 좀 멎은 것 같은데, 자고 일어나서 가도 되지 않을까?”

맹한 말에 산오가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잘못 말했나 보다. 찔끔한 이연이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침묵이 흘렀다.

어두운 지하 속을 거침없이 헤치며 나아가는 광경을 보던 이연이 문득 중얼거렸다.

“김철재 씨 말이야.”

“…….”

“인류 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하더라.”

조용한 목소리는 모래로 만들어진 것처럼 버석했다. 탈색이라도 한 것 같은 옅은 색 머리카락이 이동하는 바람에 따라 가볍게 휘날렸다. 그 모습에 흘끗 시선을 준 산오가 다시 앞을 보았다.

“왜 그런 사람들의 레퍼토리는 늘 비슷할까?”

“멍청하니까.”

“공부도 많이 했으면서.”

“그거랑 멍청한 건 다른 문제야.”

아주 단호한 목소리였다. 이연이 투덜댔다.

“너한테 안 멍청한 사람이 있긴 하겠냐.”

그 말에 서늘한 눈이 이연을 향했다. 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이연의 심장이 순간 크게 뛰었다.

“넌…… 벌레 같다.”

“…….”

적당한 반응을 찾지 못한 이연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산오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괜찮아.”

“……뭐가?”

“벌레여도.”

이게 지금…… 제산오식 위로인 건가? 맥락상 멍청하다는 것보다 벌레 같다는 게 더 나은 표현인 거겠지? 욕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이 제일 헷갈렸다.

혼란에 빠진 이연이 대답을 못 하고 있는 사이, 드물게도 산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부모님.”

“…….”

“지금 어디 있어?”

이전 대화랑 전혀 이어지지 않는 물음이었다. 이연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으나, 산오는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맥박이 조금 가라앉았을 즈음, 평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돌아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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