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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62화 (62/250)

#62

인간의 체내에는 ‘기력’이라는 힘이 존재한다. 체력이나 근력처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기력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리로 어떤 변이를 일으키게 되고, 그중 일부가 그것을 외부에 방출할 수 있게 된다.

그게 초능력이었다.

기력은 일종의 지문 같은 파장을 가지고 있고, 한 사람당 하나의 파장을 가진다. 즉, 개인이 다양한 초능력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타인이 자신의 기력을 사용하여 남의 초능력을 쓰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기력은 모든 사람에게 있지만, 모든 종류의 기력이 초능력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초능력 등급 심사는 외부 방출 기력을 측정하는 것이었고, 외부에 방출할 수 없는 기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 팔찌는 착용자의 기력을 팔찌에 담긴 초능력의 기력 파장에 최대한 가깝도록 억지로 맞춰서 강제로 방출해. 초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이어도 자신의 기력을 사용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그런 게 가능해요?”

“부작용이 엄청나. 일단 팔찌 자체에 들어 있는 기력도 대단치 않은데 기력 파장을 완벽하게 맞출 수가 없으니 초능력 출력은 기준에서 한참 미달이고, 낭비되는 기력은 어마어마하지. 평범한 1단 수준에도 못 미쳐.”

대체적으로, 초능력은 가지고 있기만 해도 무궁화 1단을 받았다. 초능력자가 비초능력자보다 기력량이 많다는 것도 정설이긴 했지만, 팔찌로는 인간의 몸에 기본적으로 들어 있는 최소한의 기력 효율도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티는 나지. 0인 거랑 0.3인 거랑은 다르니까. 일반인들이 혹할 만해.”

“출력이야 허접하다고 해도, 기술 혁신이긴 하네요…….”

다양한 초능력도 원하는 대로 골라서 쓸 수 있고. 이연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D.S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일반인한테 기력이 쓸모없다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생체 에너지야. 그런 걸 아무렇게나 무지막지하게 뽑아 쓰면 어떻게 되겠어?”

아. 그제야 이연은 수아의 동생이 왜 쓰러졌는지 알 것 같았다.

“한두 번이야 괜찮아도 쓰면 쓸수록 기력이 쪽쪽 빨려서 쇠약해져. 여기 담긴 기력이 얼마 안 되는 걸 보니 주인도 이미 위험해.”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맡긴 거예요.”

이연이 수아의 의뢰 내용을 설명했다. D.S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단순 쇠약이랑 기력 기진 상태가 비슷하니까 몸에 별 이상이 없다고 나오지.”

기력 기진은 아주 가끔, 자신의 힘을 잘 모르는 초능력자가 한계까지 초능력을 뽑아 썼을 때 나오는 현상이었다. 기력을 강제로 뽑힌 클럽 연구소의 피해자들 역시 기력 기진 상태였다. 의사들도 설마 일반인이 기력 기진 현상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터였다.

“혹시 의뢰인을 여기로 부를 테니까, 방금 한 설명 다시 해 주실 수 있어요? 전문가가 말해 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D.S의 승낙에 이연이 바로 수아에게 연락했다. 곧 수아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연 씨!”

“아, 사장님. 오셨어요?”

공방과 어울리지 않는 하늘하늘한 차림새의 여성이 뛰어들어 오자, 팔찌를 툭툭 건드리던 D.S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어, 덕선 언니?”

“……한수아?”

“둘이 아는 사이예요?”

그게 더 놀랍다. 이연이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까칠하고 공방에 콕 박혀 지내는 D.S와 가게를 운영하는 수아는 얼핏 봤을 때 공통점을 찾기 힘들었다.

“네, 집안끼리 친분이 있어서…….”

“집안이요?”

D.S의 집안은 최희원의 자손. 초호시에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집안과 친분이 있다면 수아의 집안도 보통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병원 특실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갈 때부터 범상치 않은 건 알았지만…….

“집을 나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공방을 차린 건 처음 알았어요.”

“그쪽에서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으니까.”

간단한 안부는 그걸로 끝났다. D.S는 이연과 산오에게 했던 이야기를 수아에게 조금 더 친절한 버전으로 들려주었고, 이야기를 다 들은 수아의 얼굴이 난감하게 굳어졌다.

“그럼, 기력을 다 써서 수빈이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가요? ……앞으로도요?”

“아뇨.”

대답을 한 것은 이연이었다.

“원인이 기력 기진이라면, 그리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일어나요.”

기력은 생체 에너지였다. 인간의 체력처럼, 푹 쉬면 다시 차올랐다. 수빈의 경우 평범하게 소진한 게 아니니 조금 오래 걸릴 수는 있겠지만, 저렇게 극진히 쉬고 있으니 일어나는 것 자체는 시간문제였다.

단호한 말투에 수아는 조금 의아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안도한 얼굴이 한층 풀어졌다.

지이잉, 지이잉…….

“네. ……어, 말해.”

그때, 이연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수신자를 보고 냉큼 받은 이연이 통화하기 위해 공방 밖으로 잠깐 나갔다.

“혹시 네 동생한테 팔찌를 어디서 얻었는지에 대한 말은 못 들었어?”

이연이 있든 없든 D.S는 조사를 계속했다. 팔찌에는 엔지니어의 인장이 없었다. 구린 구석이 있으니 일부러 찍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엔지니어라고 할 수도 없는 애송이가 만들었거나.

팔찌를 뜯어보면서 느낀 거지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미친놈이었다. 같은 기술자로서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어서요…….”

내내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산오가 물었다.

“팔찌에 어떤 기력이 얼마나 담겼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어떤 기력이 담겼는지는 써 보기 전엔 몰라.”

같은 초능력이라고 할지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기력 파장이 달랐다. 수많은 초능력의 파장을 일일이 대조하는 건 초능력 관리청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 권한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얼마나 담겼는지는 여기, 이 보석 있지?”

D.S의 손이 팔찌 중앙에 장식된 푸른 보석을 톡톡 두드렸다.

“이게 핵이야. 금 조금 간 거 보여? 저장된 초능력을 쓸 때마다 내구력이 떨어져서, 아마 전부 사용하면 산산조각 날 거야.”

“저건.”

산오가 턱짓으로 가리킨 것은 이연이 같이 맡긴 보석들이었다. D.S가 고개를 저었다.

“팔찌 몸체가 아주 정교한 출력 기계야. 핵만 따로 떨어져 있는 걸로는 쓸 수 없어.”

명랑한 목소리가 떨어진 것은 그쯤이었다.

“팔찌, 어디서 돌았는지 알았대요.”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공방으로 들어서는 이연에게 모였다. 통화가 끝난 휴대폰을 톡톡 두드린 이연이 빙긋 웃었다.

“혜강이가 드디어 찾아냈어요.”

며칠 내내 조사했지만 혜강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정보량이 너무 많다는 게 난점이었다. 팔찌는 너무 대중적인 물품이었고, 수빈의 팔찌는 모양이 조금 독특하긴 하지만 아주 희귀한 디자인은 아니었다.

이대로는 진전이 없었다. 그가 관점을 바꾼 것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수빈 누나 SNS 팔로워를 중심으로 싹 뒤졌대요.”

분명히 수빈에게 팔찌를 주려고 접근한 사람이 있을 거고, 그건 그녀의 인맥 네트워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녀의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의 또 아는 사람……. SNS의 편리한 점이 그런 거였다. 거미줄 같은 관계를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

요즘 같은 세상에 커뮤니티를 전혀 하지 않는 20대는 이연이나 산오 정도였다. 뒤집어 말하면 그 정도 빼고는 전부 한다는 소리다.

“최근 상류층이 여는 파티에서 젊은 친구들을 상대로 은밀하게 팔찌를 파는 사람이 드나드나 봐요. 파티광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것 같아요. 인기도 많고…….”

“무슨 부작용이 있는지는 모르는 거고?”

D.S의 물음에 이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알면 살 리가 없죠. 자기 생명 귀한 줄은 알 거 아니에요.”

순진한 애들을 상대로 장사한다는 점이 더 질이 나빴다. 더 많은 피해자가 나기 전에 잡아야 했다.

“혹시 그 파티라는 곳에 저희도 갈 수 있을까요?”

수빈이 갈 수 있는 파티면 수아도 자격은 충분할 터였다.

“어디인데요?”

“팔찌가 유통된 걸로 추정되는 파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대요.”

이연이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고, 분위기가 자유로운 곳.”

“흠.”

수아가 팔짱을 끼고 손에 턱을 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그럼 오늘 열리는 곳 중에서는 여기가 가장 유력하겠네요.”

그녀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유려한 금박으로 쓰인 모바일 초대장에는 너무 꼬부라져 있어 읽기 힘든 글자와 함께 창립 축하 파티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얘가 이런 사업도 냈어?”

“이번에 도전한다더라고요. 투자를 어마어마하게 받았다고 하던데, 공을 많이 들인 모양이에요.”

D.S와 수아가 하는 대화를 들으니 그녀가 원래 상류 사회 출신이었다는 것이 실감이 됐다. 친근한 동네 주민들인 줄 알았더니 도처에 재벌들이 널려 있었다.

아니, 잠깐만. 제산오도 자수성가잖아. 설마 여기서 가난뱅이는 나 혼자? 이연은 소소한 충격에 빠졌다.

“여기 대표는 고작 30대고, 유학 생활을 오래 해서 외국 문화에 익숙해요. 파티도 밤에서 새벽까지고……. 개방적인 분위기가 강할 거예요. 봐요, 드레스 코드도 1990년대 초 미국이에요.”

“1990년대 초 미국?”

“그냥 위대한 개츠비 같은 거 입고 오겠죠, 뭐.”

범상히 대답한 수아가 음, 하고 난감한 기색을 띠었다. 이연과 산오를 번갈아 바라보는 시선이 다소 머쓱했다.

“사실 조금 문제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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