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아니, 상처가 엄청나잖아.”
“병원에 데려가야겠는데……. 꼬마야, 혹시 부모님 번호 있니?”
“으, 흑……. 으앙…….”
정연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도 모르고 얼굴을 온통 구겨 가며 눈물을 주룩주룩 떨어트렸다. 그토록 요란하게 울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전달받은 부모님이 달려왔다.
“정연아!”
부모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옷도, 얼굴도 엉망이고, 변이종을 만나면 절대로 나서지 말라는 선생님 말도 어겼고, 제 의도를 증명해 줄 고양이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렇잖아도 하얀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말썽쟁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아닌데, 나 정말 착하게 굴고 싶었는데…….
“죄, 죄송……”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더듬대는 문장이 끝맺어지기도 전에, 따뜻한 손바닥이 성마르게 정연의 뺨을 쥐었다.
“다쳤다며! 어딜 다쳤어? 많이 아프니? 빨리 병원 가자.”
그간 아버지에게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빠르고 초조한 어조였다. 정연이 듣기에는 충분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눈을 굴리며 불안하게 부모님의 얼굴을 살폈다. 다시, 다시 사과할까? 화를 푸실까? ……다시 돌려보내실까? 하지만 고양이가…….
그때, 겁에 질린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의아하게 그녀를 돌아보는 아버지를 밀어 낸 어머니는 정연에게로 손을 뻗었다. 정연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따뜻한 품 속에 감싸였다.
“괜찮아.”
“…….”
“괜찮아, 정연아.”
정연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정확히 뭐가, 어떻게 괜찮다는 건지 몰랐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정말로 괜찮은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는 힘을 풀고 품에 기댔다. 순식간에 눈과 코, 뺨이 다시 빨개졌다.
“……흑…….”
“놀랐구나, 괜찮아. 우리가 왔잖니.”
정연은 다시 펑펑 울었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처럼 한참을 울었는데도 부모님은 재촉하지 않고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계속 토닥여 주었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며, 부모님은 정연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들었다. 정연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부모님은 힘에 부칠 것 같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그 대화는 아주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정연도 겁먹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래도 그런 순간에 그런 마음을 저절로 먹게 되는 건 쉽지 않은데. 정연이는 정말 착한 아이구나.”
아버지가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행동의 선악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정연은 쑥스러운 얼굴로 가만히 손길을 받았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그런 식의 ‘사고’를 쳤다. 엄마 잃은 어린아이와 함께 있어 주느라 귀가를 늦게 하기, 강아지를 괴롭히는 무리 말리다가 밀쳐져서 타박상 입기, 할머니에게 길을 알려 드리다가 같이 길 잃기…….
그러나 부모님은 정연을 돌려보내야겠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말썽쟁이라는 말도, 귀찮거나 번거롭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사랑한다고 했다.
함께 산 지 반 년쯤 되었을 때, 정연은 엄마와 아빠라는 호칭을 입에 처음 담았다. 부모님은 놀라고 기뻐하며 정연을 껴안았다. 그 품이 울음으로 약간 떨리는 것을 정연은 기민하게 알아챘다.
정말로 꿈같은 일이었다. 마음속이 따뜻해지는 감각이 매일매일 찾아왔다. 소년은 다정한 부모님에게 점점 익숙해졌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입양한 지 일 년 후, 우연히 정연의 초능력이 발현되었다. 그가 가장 먼저 알린 것은 당연히 부모님이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부모님은 마치 제 일처럼 기뻐했다. 아버지는 정연이 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초호시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들뜬 어조였다.
“헌터가 되면 초능력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잖니. 그건 참 의미 있는 일이란다.”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다시 덧붙였다.
“우리 정연이는 사람 돕는 걸 좋아하니까 말이야.”
그 목소리에는 짓궂은 기색이 섞여 있었으나, 타박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정연도 알았다.
정연뿐만이 아니라 부모님 역시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늘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봉사 활동이나 사회 환원도 자주 하러 다녔다.
그런 자리에 정연을 데려갈 때도 있었다. 부모님이 권하는 봉사 활동은 힘들 때도 있었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부모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듣는 것이 좋았다. 제가 좋아하는 부모님을 남들도 좋아해 주는 건 아주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었다.
같아지고 싶었다. 닮고 싶었다. 자랑스러워하는 웃음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정연은 진로를 정했다.
“헌터가 되고 싶어요.”
“정연이는 정말로 착하구나.”
사실 그 다짐은 부모님만을 위한 거였지만, 착한 아이라고 칭찬받는 게 좋아 정연은 말을 삼켰다. 제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따라 아버지에게 달라붙어 뺨을 비볐다. 넓고 따뜻하고, 평생 그가 함께할 수 있는 품이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금세 초등학교를 졸업한 정연은 중학교에 진학했다. 근방에서 명문으로 유명한 사립 학교였다.
정갈하게 껴입어야 하는 교복은 낯설고 불편했으나, 부모님은 교복을 입은 정연을 보고 사진을 찍어서 평생 간직하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셋은 진짜로 모여서 사진을 찍었고, 그걸 담은 액자는 거실장의 가장 가운데에 놓였다. 그래서 정연은 교복을 입는 것도 좋아졌다.
중학교 생활은 초등학교와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했다. 그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지만, 친구는 잘 사귀지 못했다. 어디선가 입양아라는 소문이 난 탓이었다.
하지만 정연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건 전혀 나쁜 게 아니었다. 입양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정연은 자신을 버린,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에게 조금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부모님뿐이었다. 정연이 오늘은 뭘 했다고 저녁 시간에 조잘조잘 떠들면, 부모님은 재미있었겠다며 웃어 주었다. 정연이 좋아하는 것을 묻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도 말해 주었다. 정연은 아버지는 초록색과 바다와 커피를, 어머니는 보라색과 오렌지와 푹신한 담요를, 두 사람 모두가 숫자 7과 여행과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 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다.
정연은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2년이나 되었는데도 현실이 벅차서, 그는 종종 자다 중간에 깨서 불을 켜고 제 방을 살폈다. 넓은 방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잠들곤 했다.
어느 날, 집에 손님이 왔다. 아버지의 동생으로, 정연에게는 삼촌이 된다고 했다.
“네가 형의 새로운 아들이구나. 아주 똘똘하게 생겼네.”
정연은 초면에도 다정하게 말해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삼촌이 단번에 좋아졌다.
삼촌은 잠깐 휴가를 받아 쉬는 김에 형의 집에 놀러 왔다고 했다. 그는 일로 바쁜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는 정연과 놀아 주었다.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영화도 같이 보고, 숙제도 봐 주었다.
같이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삼촌은 정연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대단한 능력이야.”
놀라움을 숨기지 않는 눈에 괜히 으쓱해졌다. 정연은 자랑하는 것처럼 이것저것 만들어 보였다. 곧 널따란 식탁에 새하얀 그릇과 머그 컵이 가득 채워졌다.
“이 능력으로 뭘 하고 싶니?”
“헌터가 돼서 사람들을 도울 거예요.”
단번에 튀어나오는 대답에 삼촌이 흠, 하고 생각하듯 턱을 쓸었다.
“헌터는 스무 살이 넘어야 할 수 있잖아. 아직 육 년이나 남았는데.”
“그건 그래요……. 그래도 기다려야죠.”
“혹시 헌터 말고 사람들 돕는 건 관심 없고? 요즘은 방법이 많거든.”
삼촌의 말에 정연은 고민했다. 꼭 헌터가 아니어도, 정연이 사람들을 돕는다면 부모님은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다.
부모님이 기쁘면 저도 행복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요?”
반짝이는 검은 눈에 남자의 얼굴이 가득 비쳤다. 삼촌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삼촌이 말하길, 어떤 아이를 도와주는 데에 정연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 돌보기. 그건 정연이 좋아하는 봉사 활동 중 하나였다. 틀림없이 좋은 일일 터다. 정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은 부모님께도 대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정연의 도움을 본격적으로 받기 위해 방학 내내 자신의 연구소로 데려가 제가 돌봐 주겠다고 했다.
“캠프 같은 거야. 여름 캠프.”
그렇게 말하며 찡긋 웃는 삼촌의 얼굴은 꾸러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