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92화 (91/250)

#92

“넌 말투가 왜 그래?”

그런 걸 물은 날은 정연이 간식을 가득 가져온 날이었다.

정연은 산오가 맛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차린 후로 온갖 간식들을 실어 날랐다. 산오가 우물우물 씹어 넘기며 너도 먹으라고 밀면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로 사양했다. 실제로 산오가 먹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배가 부른 기분이긴 했으니 거짓말도 아니었다.

초코 크림이 가득 들어 있는 과자를 입에 묻히지도 않고 먹던 산오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말투가 뭐.”

“뭐 했다, 뭐 했다, 이렇게 말하잖아.”

정연이 듣기에 그 말투는 다소 부자연스러웠다. 소설을 서술할 때나 쓸 법한 어조였다.

“여기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해.”

“그래?”

정연이 만난 연구원들이나 삼촌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본 적 없었기 때문에, 이해는 잘 안 됐다. 그러나 산오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네가 이상한 거다.”

“아닌데,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말하던데…….”

분명히 제가 맞는데 하도 딱 잘라서 말하니 잘못 알고 있는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느닷없이 들어온 가스라이팅에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산오가 중얼거렸다.

“네 말투도 나쁘지 않다.”

“……고마워?”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정연은 금세 잊어버리고 산오에게 이 과자가 더 맛있다며 열변을 토했다. 고양이 모양의 마스코트가 그려져 있는 커다란 과자 봉투에는 안에 마스코트가 인쇄된 코팅 카드가 들어 있었다. 뒤적대다가 카드를 찾아낸 정연이 산오에게 건네주었다.

“귀엽지.”

“너도 먹어.”

산오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받으며 말했다. 과자 부스러기가 손에 잔뜩 묻었다.

“난 배불러.”

“넌 늘 배가 불러 있군.”

“소식가거든.”

사실 정연은 또래보다 많이 먹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산오가 먹는 걸 보는 게 더 좋았다. 정연이 아니면 이런 과자를 갖다 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잘 먹는데, 좀 가져다주지. 정연은 연구원 형 누나들과 삼촌을 향해 몰래 투덜거렸다.

조금 더 친해지게 되면서, 정연은 산오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산오는 몇 년 전에 여기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도심 공원을 떠돌던 소년을 본 남자가 간단한 검사를 하면 밥을 주겠다고 했고, 검사를 하고 나서는 혹시 저를 따라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너에게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주겠다고 했다.

“능력? 초능력?”

“몰라.”

정확히 무슨 능력인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린 말의 정체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산오는 꼬치꼬치 캐묻는 대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중요한 건 당장의 밥과 잠자리를 준다는 제안이었으므로.

“초능력이면 좋겠다.”

정연이 눈을 반짝였다.

“난 꿈이 헌터거든. 같이 헌터 해서 변이종 때려잡으면 신날 것 같아.”

“넌 맨날 나한테 질 텐데.”

“야, 능력 쓴 세월이 다른데!”

심술궂은 말에 정연이 지지 않고 받아쳤다. 노는 거야 산오의 운동 신경이 조금, 아주 조금 저보다 좋다고 해도 초능력은 달랐다. 산오는 아직 초능력도 없는 일반인이고, 저는 무려 이 방 안을 가득 채울 초능력이 있지 않은가. 경험이 다른데. 이 분야에서만은 제가 산오에게 질 리가 없었다.

“나 고등학교도 초호시로 간다고 했어. 너 초호시 어딘지 알아?”

“어딘데.”

“거기에 적공이라고, 변이종들 튀어나오는 엄청 커다란 구멍 있거든. 그래서 초능력자들이 많이 살아. 미성년자가 초능력 발현하면 초능력 학교도 들어갈 수 있대!”

“거기에 가겠다고?”

“아마도 거기 가게 되지 않을까?”

종알대는 정연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산오는 잠깐 고민한 후 물었다.

“그럼 여긴 다신 오지 않는 건가?”

“엥? 아니?”

정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산오가 여기 있는데 왜 오지 않겠는가.

“방학 때마다 올게.”

“방학은 언젠데.”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이렇게 일 년에 두 번 있어.”

산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더럽게 적군.”

“……그냥 너 나가고 싶을 때 나가는 건 안 되나?”

정연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산오는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삼촌은 연구소 내부도 산오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정연은 늘 산오를 같은 방 안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런 판인데 아예 나가 버리는 건 정연이 생각하기에도 안 될 것 같긴 했다…….

“그럼 여기서 계속 사는 거야?”

연구소는 넓긴 했지만, 평생 여기서만 살면 답답할 것 같았다. 정연이 저희가 있는 방을 둘러보며 묻자, 산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능력을 얻으면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솔직히 그 말에는 전혀 관심 없었고 믿지도 않았지만, 순순히 말을 따랐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부모 없이 거리에 서 있었던 산오는 어린아이가 혼자 떠돌며 사는 것이 고달프다는 사실을 똑똑히 체득했던 것이다.

사실 요즘은 이렇게 갇혀서 사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는 했다. 평화롭긴 했지만, 재미는 없었다. 산오의 짧은 생은 재미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보호자 없이는 뭘 할 수가 없으니까.”

“너도 부모님이 없어?”

정연이 놀라서 물었다. 산오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차려 보니 혼자였다.”

“나도 없었어!”

이건 엄청난 공통점이었다. 저도 모르게 신이 난 정연의 말소리가 빨라졌다.

“그래서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지금 부모님이 날 입양해 주셨어. 이거 진짜 드문 일이거든. 다들 놀랐어. 그리고 지금 부모님이 너무 잘 대해 주셔. 다들 부모님이 나 괴롭히지 않냐고 물어보거든? 진짜, 영화가 애들 다 망쳐 놨어.”

“네 부모를 좋아하나 보군.”

정연이 환하게 웃었다. 행복이 온 이목구비에 조롱조롱 달려 있었다.

“응. 아빠랑 엄마 너무 좋아.”

얼마 후에 부모님이 여기 오기로 해서 곧 만날 수 있다는 즐거운 수다를 산오는 묵묵히 들어 주었다.

정연은 평소에 그들이 경쟁하던 것처럼 부모님을 자랑했지만, 사실 이건 경쟁을 할 수 없는 문제였다. 원래의 산오였다면 의미 없는 과시에 시끄럽다며 그의 말을 끊어 버렸을 테다. 하지만 들떠서 설명하는 정연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산오는 그것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너도 보면 금방 좋아할걸. 우리 엄마 아빠는 모두가 좋아하거든.”

거기까지 말한 정연은 멈칫했다. 연구에 대해 말하지 말래서 산오에 대한 이야기는 전화로도 하지 못했다. 그럼 부모님이 오셔도 산오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건가?

친구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그런데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삼촌이 말하지 말라고 해서…….”

금세 시무룩해진 정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산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중에 나비가 돼서 나가면 상관없겠지.”

“그러네!”

정연은 기운을 되찾았다. 환해진 얼굴은 다시 부모 자랑으로 돌아갔고, 산오는 한동안 재잘대는 목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그래서, 여기 와서는 뭘 했는데?”

한바탕 제 얘기를 쏟아 낸 후에야 정연은 화제를 돌렸다. 산오는 잠깐 생각했다. 여기 와서 한 거라.

“치료를 받았다.”

‘치료’라는 건 아프긴 했지만 그 외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굶지 않게 해 주는 곳이다. 여기가 어디고 뭐 하는 곳인지는 그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가질 수는 없었다. 산오는 치료가 싫었다. 그건 평범한 상처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아픔을 선사했다.

그러니 그걸 진행하는 연구원들도 당연히 싫었다. 심지어 그들은 정연처럼 순수하게 입을 열지 않았다. 연구원이 건네는 말은 아주 조그만 정보라도 얻으려는 탐문에 가까웠다. 철저하게 계획적인 대화.

그래서 그들이 하는 잡담에 거의 대답하지 않았다. 곧 산오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거는 사람은 없어졌다. 그의 곁에 쭉 자리한 정적은 익숙한 존재였다. 거기에 불만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한참 후, 수다스러운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산오는 제가 사실은 좀 심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연이 있으니 괜찮았다.

“아, 삼촌한테 들었어. 잘되고 있어?”

“뭐…….”

치료를 하는 사람들은 산오에게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 정확히 뭘 하는지도,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도. 그저 저들끼리 심각한 얼굴을 맞대고는 차트와 모니터를 보며 낮게 소곤거리기만 했다.

초능력, 기력, 발현……. 그런 어려운 단어들을 산오는 잘 몰랐다. 그저 멀뚱히 침대에 누워 아픈 팔을 문지를 뿐이다.

“빨리 나비 됐으면 좋겠다.”

“……별로일 것 같긴 한데.”

산오는 창밖에서 가끔 나비를 발견할 때가 있었다. 조그맣고 얇은 날개를 팔랑이는 것들은 손가락으로 힘을 주기만 해도 가볍게 짓눌릴 것 같았다.

고작 그런 거나 되려고 이렇게 아픈 것을 버티고 있다니. 대단해 보이는 초능력도 아니고……. 그동안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산오의 투덜거림에 정연이 눈을 크게 떴다.

“너, 나비가 진짜 나비 말하는 게 아닌 건 알고 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