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131화 (130/250)

#131

손길은 단숨에 거칠어졌다. 부산한 소음에 산오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런 것을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이연은 침대 구석구석을 미친 듯이 쓸었다. 고글이 못 잡는 걸 수도 있으니까, 혹시 모르니까……. 조금 전까지의 신중한 손짓은 온데간데없었다.

“한발 늦었군.”

산오가 사형 선고라도 내리는 것처럼 툭 던졌다. 그제야 이연이 움직임을 멈추고 산오를 바라보았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느리게 움직였다.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이 시간에, 미래가 다른 곳에 가 있을 수도 있나요?”

아이가 돌아다니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이연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D.S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 미래는 자기 한 시간 전에 미리 침대에 들어가서 책을 읽다 자. 나랑 같이 있을 때는 자기 전에 어딜, 어딘가에 다니거나 하지는…….

이연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빈 시트만 더듬었다. 탈출한 세미가 진씨 본가에 들어와 있다는 것까지 확인해 놓고 상황이 그대로이길 바라다니,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연이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 ……아니, 아냐.

그때, 넋이 나간 듯한 목소리가 바로 돌아왔다. 짝,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작게 들렸다. 누나, 괜찮아요? 하고 묻는 혜강의 목소리도 아주 작게 새어 나왔다. 괜찮아, 하고 답한 D.S는 곧이어 속사포라도 쏘는 것처럼 빠르게 사실을 읊었다.

- 미래가 183번째 콜을 한 건 오후 7시 38분이야.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상황을 설명했다.

- 그리고 13분 동안 이야기를 하다 끊었지. 자기 전에 양치를 해야 하니 조금 이따 오겠다고 하고 방을 나갔어. 카메라는 1분 있다가 자동으로 꺼졌고.

그와 동시에 방 안의 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두리번대자 책상 앞에 연분홍색 토끼 인형이 예쁘게 앉혀져 있는 게 보였다.

- 지난 1시간 14분 동안 미래가 방에 있었는지 물어봐.

“……네?”

말을 알아듣지 못한 이연이 맹하게 되물었다. 물어보다니, 누구에게?

- 아까 내 설명을 뭘로 들은 거야?

D.S가 혀를 찼다.

- FT-7은 로봇이라니까.

그녀는 FT 시리즈에 인공지능을 부여했다.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인공지능은 버전이 올라갈수록 정교하게 발전되어 갔고, FT-7이 가장 최신이었다.

“그럼…….”

이연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중얼거리자, D.S는 정신 차리라는 듯 조금 전에 했던 말만 반복했다.

- 그럼 내가 만든 건데, 그게 카메라만 달려 있겠어?

아무리 그래도 보통 베이비캠을 인공지능 로봇으로 만들 생각은 안 하지……. 황당했지만 오히려 이 비현실적인 정보가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이연은 곧장 책상 앞으로 가서 섰다.

“저기…… FT-7? 맞나요?”

어색한 목소리로 뱉은 인사에 인형에 붙어 있던 까맣고 반질한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FT-7. 호명에 따라 수면 모드에서 일상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기계음이 조금 섞여 있긴 하지만 미래 또래의 명랑한 여자아이 목소리였다. 자기소개를 해야 하나? 이연이 그런 고민을 잠깐 하는데, D.S가 정답을 알려 주었다.

- 미래 친구라고 해.

“미래 친구예요.”

지시대로 답하자 FT-7는 별안간 몸을 일으켰다.

“헉, 뭐야.”

뼈대도 없을 것 같은 솜 인형이 제힘으로 일어서는 모습은 묘하게 공포 영화 같았다. 흠칫한 이연이 슬쩍 물러서 산오의 곁으로 붙자, 산오는 한심하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이연을 피해 서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미래 친구님. 잘 부탁드립니다.]

커다란 머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FT-7의 귀는 축 늘어져서 펄럭였다. 머리 무게를 가누지 못할 것 같은데도 용케 움직이는 인형을 경계하듯 바라보던 이연이 물었다.

“혹시 지난 1시간 14분 동안, 미래가 방에 있었나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 지난 시간 동안 미래의 행동을 분석합니다….]

삐리릭 하는 소리가 작게 울리는가 싶더니 곧 다시 FT-7의 머리가 반짝 들렸다.

[분석 완료. 미래는 오후 7시 51분에 양치를 하러 나가, 오후 7시 53분에 돌아왔습니다. 양치 시간이 조금 짧으니 교육이 필요합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덧붙이는 것도 기다릴 여유가 없어 이연이 초조하게 재촉했다.

“그래서, 다시 나간 건 언제인데요?”

[미래는 오후 8시 21분에 다시 방을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나간 지는 40분도 넘은 셈이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는데. 괜찮을까? 이 집은 별채조차도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단순하게 뒤지는 데에도 한참은 걸릴 게 분명했다.

그런 걱정을 말소한 것은 D.S의 침착한 목소리였다.

- 괜찮아. 무사해.

“네?”

- 미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FT-7은 즉시 일상 모드로 변하게 되어 있어.

하지만 FT-7은 이연이 말을 걸기 전까지만 해도 수면 모드였다. 어쩐지 D.S가 중간부터 갑자기 여유가 조금 생겼다 했더니, FT-7 생각이 나서 그런 듯했다.

그렇다면 미래는 아직 무사하다.

“하아아…….”

이연이 긴 한숨과 함께 산오의 팔에 이마를 기댔다. 방금은 정말 심장이 철렁했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그런 말들을 연신 중얼거린 이연은 불쑥 다시 고개를 들어 FT-7을 바라보았다.

“칠칠 씨. 혹시 미래가 어디 갔는지도 아세요?”

- 뭔 칠?

“7호잖아요. 그럼 칠칠이 맞잖아.”

- 내 기깔나는 발명품에다 대고 그런 촌스러운 이름을 붙인다고?

“그놈의 칠칠이…….”

이연은 기겁하는 D.S와 이기죽거리는 산오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 넘기며 FT-7의 말만 기다렸다. 잠깐 침묵하던 FT-7에게서 곧 대답이 튀어나왔다.

[칠칠. 그건 제 별명인가요?]

“그런 셈이죠.”

[새로운 호칭을 입력하였습니다.]

- 야! 내 발명품한테 뭘 입력시키는 거야?

D.S의 항의는 안타깝게도 통신기를 사용하는 산오와 이연에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손쉽게 개명에 성공한 이연은 칠칠을 닦달했다.

“그래서, 미래 어디 있는지 아시냐니까요.”

[그런 정보는 모릅니다.]

“그래요?”

알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됐다. 입맛을 다신 이연이 D.S에게 물었다.

“렌더링은 어디까지 됐어요?”

- 98%. 혜강이가 지금 마무리 작업 중이야.

그 정도면 주변을 좀 뒤지다 보면 금방 구역 정보가 전송될 것이다. 가자. 이연이 산오를 툭툭 치고는 가볍게 몸을 돌렸다. 방문을 향해 한 발짝 떼는 순간, 명랑한 기계음이 예상치 못한 소리를 내뱉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당신이요?”

우뚝 멈춘 이연이 뒤를 돌아봤다. 떨떠름한 물음이었으나 그 기색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칠칠이 씩씩하게 책상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인형에게는 꽤 높은 높이였을 텐데, 비틀거리는 것도 없었다.

[미래는 저를 끌어안고 잠을 잡니다.]

반질반질한 인형의 눈은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당연하다. 칠칠은 인간과 비슷하게 말했지만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잘 시간에 제가 있어 줘야 합니다.]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말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인형을 노려보던 이연이 으, 하고 신음하며 분홍색 토끼의 뒷덜미를 잡아들었다.

“그렇게 말하면 제가 거절할 수가 없잖아요…….”

“짐 늘리는 데에는 선수군.”

한심하다는 산오의 구박도 이제 익숙했다. 그 점이 더 슬프지만……. 이연은 꿋꿋하게 인형을 놓지 않았다. 두 사람과 솜뭉치 하나는 곧 방을 나섰다.

기다란 별채 복도는 여전히 어두웠다. 산오와 이연은 미래의 방에서 가까운 문부터 하나씩 열어 보기 시작했다. 욕실, 공부방, 서재, 창고……. 전부 평범한 인테리어에, 구조 역시 단순한 편이었다. 어린아이가 숨어 있을 만한 공간은 없었다.

“칠칠 씨. 미래가 평소에 어디 있길 좋아했는지도 몰라요?”

허탕을 다섯 번쯤 친 이연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D.S에게 전해진 영상을 보면 미래가 칠칠에게 잡다한 이야기를 하는 건 확실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힌트라도 있으면…….

[미래는 엄마와 함께 있는 걸 좋아했습니다.]

“…….”

감동적인데 현실적인 도움은 안 됐다. 이연이 떨떠름하게 칠칠을 내려다보았지만 로봇에게 그런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칠칠은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내뱉었다.

[엄마의 공방을 딱 한 번 가봤는데,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자세히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엄마가 자신을 데려가면 거기서 살 거라고 했습니다. 엄청나게 기대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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