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16. 영웅의 재료
“오늘 오후 4시경, 산오 님께서 긴급 임무 호출을 받으셨습니다. 김종찬이 산오 님을 보좌하기 위해 함께 갔고요.”
창문 밖의 주변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고급 세단은 전에 타 본 것과 같은 기종이었다. 돈 냄새가 나는 가죽 시트는 부드럽고 푹신했지만 그런 촉감을 즐길 겨를은 없었다. 조수석에 앉은 이연은 종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임무 내용은 제2급 변이종 두무기 처치입니다.”
“두무기면, 그 벌레같이 생긴 애요?”
이름 정도는 들어 봤다. 거대종이었던 것 같은데……. 이연의 의문을 해소하듯 종희가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네. 머리가 두 개 달린 거대한 거머리처럼 생긴 몸통에 길고 두꺼운 촉수가 무수히 달려 있는 형태입니다. 그걸 이용해서 생명체를 잡아먹고요.”
“……먹는군요.”
이연이 저도 모르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변이종은 지구상의 생물을 섭취하지 않아도 사는 괴물들이었으므로 죽였으면 죽였지, 먹는 경우는 잘 없었다. 지능이 높은데 성격이 나쁘기까지 하다는 의미였다.
“두무기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인근 동네에서는 오래전부터 존재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는데, 변이종이라는 개념이 생소할 때라 괴담처럼 받아들여진 모양이더군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있으니 거긴 절대 들어가지 마라,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그게 변이종이라는 사실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최초 신고자도 출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헌터였습니다. 다행히 출현 장소가 도심부가 아닌지라, 초관청에서는 자리 이동 없이 그 자리에서 처치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인근에 동네가 있다면서요?”
“그 동네와 두무기가 있는 장소는 꽤 떨어져 있으니 괜찮습니다. 조사를 해 보니 괴담은 약 20여 년 전부터 마을 내에서 돌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오랜 기간 동안 동네가 무사했으니 두무기가 이동해서 공격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겠군요.”
“네. 그래도 여차하면 동네 주민 전원을 피신시킬 준비도 마쳤습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라 동네라곤 거기 하나뿐이고, 인구수도 이백여 명 정도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작은 동네들은 폐쇄적이라 안의 소식이 바깥으로 잘 퍼지질 않는다. 그래서 초능력관리청에서 존재를 몰랐겠지.
무속 신앙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나라이니 그런 괴담 한두 개쯤 있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지형이 험하고 외딴 지역이라면 이따금 일어나는 불행한 실종과 결부시키기도 쉬웠을 것이다. 그게 진짜로 두무기에게 당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다만 두무기는 2급 변이종이다 보니, 최종 목표가 처치라면 장기 임무로 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급 헌터의 장기 임무는 하급 헌터처럼 만만하지 않다. 그들이 주로 상대하는 중상급 변이종들은 출퇴근과 숙면을 챙기며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안일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필요하다면 몇 날 며칠은 물론이고 몇 달이 걸리더라도 노숙하면서 그 자리에서 버텨야 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 피해가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게다가 두무기 같은 최상급 변이종은 개개인에게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초능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어중이떠중이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장기 임무를 주로 하는 상급 헌터들은 5인 이상의 팀을 짜서 움직이곤 했다. 팀원 전원이 헌터 랭커인 경우도 흔했다. 이연도 그런 임무로 유명한 헌터 팀의 이름 서너 개 정도는 댈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팀도 많았다.
오히려 산오나 혜성처럼 혼자서 활동하는 헌터가 훨씬 드문 경우였다. 그나마도 혜성은 일회성 팀의 구성원이 되어 임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산오는 전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단독으로 임무를 맡았고, 단독으로 해결했다.
“산오 님은 이런 장기 임무를 잘 하지 않으시는 터라, 저희도 수락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산오 님께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은 변이종과 전투할 때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아무도 몰랐고, 아무리 괴물 같아 보여도 산오 역시 사람이었다. 초능력을 마구 난사해 기력이 바닥나면 휴식이 필요한 사람.
그래서 산오는 아주 긴급한 상황, 주로 상급 변이종이 도시 내에 등장하거나 변이종의 공격으로 인명 피해가 당장 대량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주로 투입되었다. 그나마도 대부분 임시방편 목적의 단기 임무였고, 산오가 일차적으로 처치를 해 놓으면 다른 헌터들이 추가 투입되어 상황을 안정시키는 식이었다.
“그런데 왜 했을까요?”
긴급 임무 알림은 기본적으로 조건이 되는 모든 상급 헌터들에게 뿌려진다. 산오 역시 잘 하지 않는 종류의 임무라고 해도 무궁화 5단의 최상급 헌터이니 알림을 받긴 받았을 것이다. 단기 임무를 자주 맡는 특성상 산오는 거의 대부분의 긴급 임무 호출 대상에 속했다.
물론 2급 변이종에 인간을 먹는다는 난폭한 특성까지 가지고 있으니 호출 대상 헌터의 수도 평소보다 엄청나게 적긴 할 터였다. 그래도 최소한 열 팀 정도는 알림이 갔을 텐데, 모두가 한마음으로 하루도 안 되어 거부했을 리는 없었다.
즉, 산오가 이 임무를 맡은 것은 완벽하게 자발적으로 선점한 거라는 이야기였다.
“정이연 씨.”
그러나 종희는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신호에 걸린 틈을 타 이연을 흘끗 바라보았다.
“왜 여기에 지원하셨습니까?”
“네?”
“정이연 씨는 산오 님과 함께 있는 것이 싫어 내쫓지 않았습니까.”
“……걔가 그렇게 말해요?”
“아뇨. 하지만 해고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으셨으니까요.”
“…….”
사유지에서 새벽 내내 날뛴 산오는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질 무렵에야 그 땅을 벗어났다. 철책 바깥으로 걸어 나오는 산오를 맞이한 것은 반듯하게 준비를 마친 종찬과 종희였다. 종찬이 산오가 있는 방향의 뒷좌석 문을 열었다. 산오가 그 차를 타든 말든 두 사람은 늘 문을 열어 두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최근의 산오는 그 질문에 필요 없다는 대답만 계속 했다. 그리고는 휙 등을 돌리고 땅 아래로 스며들어 가 버렸다.
그가 돌아가는 곳은 두 비서 모두 알고 있었다. 산오가 그런 식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비서들은 비어 있는 뒷좌석 문을 다시 닫고, 운전석과 조수석을 채워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 루틴이었는데.
‘아무 데나.’
산오는 망설임 없이 차에 탔다. 순간 종찬과 종희의 눈빛이 마주쳤으나,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각자 착석해 바로 출발했다.
‘식사부터 하시죠. 한식 괜찮으십니까?’
‘말한 건 어떻게 됐나.’
‘네?’
시트에 등을 깊게 묻은 산오의 목소리가 건조했다. 두 사람은 이 음성을 아주 오랜만에 들었다.
‘정이연이 뭘 하고 다녔냐고.’
정이연을 찾아내기 전의 제산오였다.
종희는 저도 모르게 백미러로 산오를 살폈다. 매끈한 얼굴은 평소와 비슷한 것 같았지만, 묘하게 예민하고 서늘했다. 그게 아니어도 그가 현재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는 건 방금 몇 번이나 뒤집어엎고 나온 사유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종찬과 종희 둘 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산오가 그들에게 연락을 한 시간은 늦은 새벽이었다. 지금은 이른 아침이었고. 고작 두세 시간, 그것도 사람들이 활동하지 않는 시간대에 이연의 지난 자취를 분석해 행동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사실을 산오도 모르지 않을 터였다.
‘정이연 씨의 최근 방문지 정도만 알아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자세한 정보를…….’
‘됐어.’
산오가 눈을 감았다. 느릿하게 내리깔리는 눈꺼풀이 옅은 피로를 담고 있었다.
‘목록 넘기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해.’
그는 그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비서 역시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이연에 대한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산오는 그 후로 같은 화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절 떠보신 거예요?”
찔리는 바가 있는 이연이 웅얼거리듯 투덜대자, 종희가 죄송하다며 곧장 사과했다. 너무 정중한 태도에 화낼 마음도 홀연히 사라졌다.
“저희는 산오 님의 사적인 관계까지는 간섭할 입장이 아닙니다.”
“그런 것치고는 전화를 너무 많이 하시던데요.”
종희는 그 말을 은근슬쩍 못 들은 척했다.
“하지만 정이연 씨가 절 따라나선 부분부터는 공적 임무와 겹치니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종희가 다시 물었다.
“저희가 정이연 씨와 산오 님을 만나는 데에 도움을 드리는 것이 산오 님에게 좋은 일일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건…….”
불현듯 마지막으로 본 산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하염없이 노려보다가 휙 등을 돌린 장면이 아직도 생생했다. 이연의 말끝이 급격히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