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 (201)화 (201/250)

#201

막 컴퓨터를 켜던 혜강이 반응해 주었다.

“뭐가?”

“제산오가…… 너무 순순히 따라 나가지 않았어?”

심각한 얼굴은 불신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이상해. 저렇게 얌전한 놈이 아닌데. 남을 움직이게 하면 움직이게 했지, 지가 움직일 인간이 아니잖아.”

“형은 정말 산오 형에 대한 이미지가 확고하구나.”

“진 국장님이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빠르게 일어선다고? 약점이라도 잡혔나? 헉! 혹시 실수로 사람을……?”

“형, 정신 차려.”

“아니, 진짜 이상하잖아!”

급기야 이연이 버럭 소리쳤다. 몇 달 동안 산오와 같이 다녔던 이연의 직감이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혜강은 시큰둥하게 차단했다.

“정 이상하면 이따 물어보든지. 쓸데없는 걱정 그만하고 정연이나 하나 하자. 슬슬 마감일이야.”

“어, 제산오 있을 때 안 하고?”

“형 혼자서도 충분한 거 다 알거든. 이제까지 날 속여서 비효율적으로 일한 대가를 치러야겠어.”

“…….”

그 건에 대해서 이연은 언제나 할 말이 없었다.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건 금방이었다.

오늘 할 임무는 아파트 단지 쓰레기장을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에 구멍을 내는 8급 변이종 뿔다람쥐를 잡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뿔다람쥐는 이마에 뿔이 달린 아기 팔뚝만 한 크기의 날다람쥐같이 생겼는데, 대개 온순한 성격이나 호기심이 많고 제 보금자리를 화려하게 꾸미려는 습성이 있었다. 게다가 이마에 달린 뿔이 꽤 날카로워 자칫 일반인이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다치기 딱 좋았다. 그 위험성 때문에 9급에서 한 등급 올라간 8급 판정을 받았다.

아마 쓰레기통에 구멍을 낸 건 보금자리를 꾸밀 만한 장식물을 찾기 위한 행위일 터였다. 왜 굳이 쓰레기장이라는 장소를 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도착했어?

호수에서 싸우다 액정이 깨진 고글은 여전히 그 상태였던 관계로—D.S에게 가져가서 잔소리 들을 생각을 하니까 앞길이 벌써 막막했다.— 이연은 평소처럼 고글을 착용하는 대신 이마에 올려 썼다. 혜강과의 통신 기능만 쓰기 위함이었다.

“어, 그런데…….”

혜강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게 고글을 매만지며 위치를 조정한 이연이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위용의 문주는 관리를 어찌나 잘해 놓았는지 석재에서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것 같았다.

뿔다람쥐를 목격했다고 보고된 아파트 단지는 엄청나게 넓은 대단지 아파트였다. 아파트 건물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1,000세대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문제는 단지 내 쓰레기장도 그만큼 많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여길 언제 다 뒤져?”

이연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혜강이 왜 산오 없을 때 하려고 했는지 알겠다. 아닌 척해도 깔끔 떠는 제산오가 절대 안 할 내용이었으니까…….

- 쓰레기장을 뒤지는 건 아니니까 안심해. 목격 정보를 조합하면 뿔다람쥐 보금자리가 있을 만한 구역을 대충 특정 가능하거든.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무리 무던한 이연이어도 대낮부터 쓰레기통을 뒤적거리고 싶진 않았다.

“빨리 해치우자. 어딘데?”

- 정문에 들어가서 왼쪽으로 꺾은 다음에 쭉 걸어.

혜강의 지시를 따라가다 보니 조경을 심은 산책로가 나왔다. 입주민 전용 시설인데도 동네 공원처럼 넓고 나무가 빽빽하게 심겨 있었다.

“여기 미로 공원 같은 거야?”

- 돈이 많은 아파트라 그런지 힘을 좀 준 것 같긴 하더라. 덕분에 길 찾기가 어려워서 입주민이 이용을 잘 안 하는 구역도 많대.

가지런히 심긴 회양목은 무려 이연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높이였다. 거기에 중간중간 화단 구역에 심긴 나무들까지 더해 다소 정글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고급 아파트라 관리가 잘되어서 그런지 야생 정글보다는 예술의 영역에 가까운 것 같긴 했지만…….

“이거 위에서 한번 보는 게 낫겠지?”

- 응. 대략적으로 먼저 봐 봐.

원래라면 혜강이 부근의 지도를 렌더링해서 줬겠지만, 고글이 고장 난 탓에 전송 기능 역시 먹통이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었으므로 이연은 군소리 않고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실로 오랜만에 쥐어 보는 펜이었다. 이연이 거침없이 끄적이자 하얀 종이에 개발새발인 선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금세 그림을 완성한 이연은 팔을 최대한 뒤집어 종이를 제 등에 갖다 댔다. 곧 새하얀 모래와 함께 뾰족한 모양의…… 무언가가 종이에서 튀어나왔다.

추상예술적 기하학 도형처럼 생긴 무언가는 얇은 판 같은 형태였는데,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두 조각으로 되어 있었다. 슬쩍 흔들리는 모양이 생각보다 유연하게 보이는 판때기들은 이연의 날개뼈 위에 돋아나듯 붙었다.

- 그 날개는 오랜만에 보네.

공원의 CCTV를 통해 이연을 보고 있던 혜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난 몇 년간의 임무를 통해 등에 두 짝의 넓적한 것이 붙기만 하면 그건 날개라는 이연의 주장에 훌륭하게 세뇌된 혜강은 놀라지도 않았다.

이연은 테스트라도 하는 것처럼 두어 번 날개를 펄럭이고는 훌쩍 날아올랐다. 길이가 다른 날개는 균형이 조금 맞지 않았지만, 비행하는 폼이 제법 안정적이었다.

공원 위를 몇 번인가 선회하자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공원은 세 개 정도로 구역이 나뉘어 있었는데, 벤치와 운동 기구, 간단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서쪽 구역과 언덕과 놀이터가 있는 동쪽 구역, 그리고 조금 전까지 이연이 초입에 있었던 정글 같은 남쪽 구역이었다.

“서쪽은 아닐 것 같고, 동쪽이나 남쪽?”

- 아마 동쪽도 아닐 거야. 애들 노는 데에 뿔다람쥐 둥지가 있으면 어머님들이 기겁을 했을걸.

“그것도 그렇네.”

이연은 남쪽 구역 중 가장 울창하게 나무가 든 곳으로 착지했다. 발이 땅에 닿는 것과 동시에 새하얀 날개가 물거품처럼 부서져 사라졌다.

- 어……. 형, 방금 뭐 보였는데.

“응? 어디?”

혜강은 공원 전체의 CCTV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상태였다. 곧이어 침착한 브리핑이 귓가로 꽂혔다.

- 뿔다람쥐 맞는 것 같아. 빠른 속도는 아닌데 계속 이동 중이야. 7번, 7번이면……. 거기서 오른쪽으로.

“알았어.”

이연이 달리기 시작했다. 타닥.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힘차게 땅을 박찼다.

- 계속 달리다가 옆에 붉은 열매 달린 나무 보이면 오른쪽 회양목 울타리 넘어. 그 길로 쭉 달려서 다시 오른쪽.

이연은 말 잘 듣는 로봇처럼 혜강의 말대로 나무들을 펄쩍펄쩍 뛰어넘어 길을 달렸다. 역동적인 동작에 나뭇잎이 날려 옷에 달라붙었다. 드물게 공원을 거닐던 주민 한둘이 정신없이 뜀박질하는 이연을 발견하였으나,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지 시선을 흘끗 주다 말았다.

계속해서 달려도 시야에서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지만, 이연은 혜강에게 잘 가고 있는 건지 되묻지도, 주변을 확인하기 위해 멈춰 서지도 않았다. 혜강은 한 번도 이연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 적이 없었다.

- 거기서 왼쪽으로.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 옆에 봐 봐.

그리고.

- 보이지?

막 코너를 돌아 나오자 저 멀리 둥그런 짐승이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이연이 씨익 웃었다.

“어.”

뿔다람쥐는 발견하기만 하면 잡는 건 쉬웠다. 멋모르고 휘두르는 뿔에 다칠 위험이 있을 뿐, 기본적으로 최하급 변이종이었으니 공격력은 형편없었으므로. 달려들어 밧줄을 둘둘 감아 포박하는 데에 약 10분 정도 걸렸다. 꽁꽁 묶인 뿔다람쥐는 조금 낑낑거리다가 곧 얌전해졌다.

“근데 이상한 냄새 나.”

- 그렇겠지. 그 뿔이 작살낸 쓰레기통이 몇 갠데.

으윽. 이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뿔다람쥐를 쥔 손을 몸에서 떨어트렸다. 뭔지도 모를 악취들은 섞이면서 배로 강해졌다.

- 좀만 참아. 초수대에 연락 넣었으니까 금방 올 거야.

혜강이 통신 너머에서 태평하게 다독였다. 방독면이라도 써야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이연은 투덜거리며 공원 출구 쪽으로 향했다.

- 우리 이렇게 임무 하는 건 엄청 오랜만이네.

“그런가?”

그러고 보니 혜강과 단둘이 임무 한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최근 이연의 곁에는 산오가 쭉 붙어 있었으니까.

- 다음에는 조금 더 어려운 걸로 신청할까? 산오 형도 있고, 형 능력도 있으니까. 그래 봤자 하급 임무긴 하겠지만.

“마음대로 해. 난 상관없어.”

정부 연계로 받는 분기 임무 목록 선정은 전적으로 혜강의 소관이었다. 혜강은 가장 빠르고 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임무를 골라내는 데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뭘 고르든 간에 혜강은 이연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가져올 것이다. 믿음으로 이루어진 대답에 혜강이 들뜬 목소리로 주절거렸다.

- 재미있겠다. 형 능력 활용도가 훨씬 높아져서 더 그럴 것 같아.

“그래?”

- 응. 그림 실체화일 때에도 재미있었지만, 이건 뭔가 레벨 업해서 새로운 스킬을 얻은 느낌?

혜강다운 표현이다. 이연이 푸스스 따라 웃었다.

- 근데 이제 오퍼레이터 같은 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응?”

- 그렇잖아. 아마 형이 혼자서 판단해서 행동하는 게 내가 일일이 말로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일걸.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시무룩했다. 조금 당황한 이연이 손까지 내저으며 부정했다.

“왜 그렇게 말해? 이건 어차피 기록상으로는 2단이라 마음껏 쓰지도 못해. 그리고 나도 네가 도와주는 게 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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