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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맞고 튀었는데 공작님이 집착한다-3화 (3/135)

3.

무역으로 벼락부자가 된 레트랑 백작가의 안주인 틸다 레트랑이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가문의 장남 라튼을 귀족 명문가의 여식과 결혼시키는 것. 그래서 제국을 넘어 대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가문이 되는 것!

돈이 생겼으니 이제 명예에도 욕심이 생겼다. 아니지. 이왕 여자가 돈도 많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러나 라튼이 결혼하겠다며 데리고 온 여자는 잡화점에서 일하는 아이가 아니던가?

“어디서 뭘 하고 살았는지도 모를 천박한 여자가 내 아들을 꾀어냈나 보구나!”

틸다 레트랑은 이빨을 으드득 깨물었다.

자기 말이라면 끔뻑 죽을 아들이건만, 벌써 며칠째 허락해달라며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으니. 도무지 체면이 서질 않아 한탄스러웠다.

그녀는 흥신소에 시아라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물론 아들 몰래 벌인 일이었다.

“몰락한 에벨 백작 가문이라….”

그녀는 오늘 아침 비밀리에 받은 우편을 읽어 내려가며, 한쪽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몇 시간 뒤 틸다가 찾아간 곳은 마을에 있는 찻집이었다.

“이쪽에 앉으시지요.”

그녀가 안내를 받고 들어온 여자를 향해 말했다.

“감사합니다.”

“레이디 시아라의 모친 에벨 부인 맞으시겠죠?”

“그렇습니다만. 저를 어쩐 일로….”

해골처럼 삐쩍 말라 볼품없는 에벨 부인의 몰골에 틸다는 옅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잔뜩 웅크린 어깨. 게다가 눈도 못 마주치고 초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꼴이란. 누가 저 여자를 한때 잘나가던 귀부인이라고 생각할까.

‘도대체 요새 누가 저런 촌스러운 드레스를 입는지.’

틸다가 부채를 펼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가렸다.

“저는 레트랑 백작 가문의 안주인 틸다 레트랑입니다. 얼마 전 제 장남 라튼이 시아라 양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을 하더군요.”

그 말에 에벨 부인 역시 눈이 동그래졌다.

“… 배, 백작 가문의 아드님과 제 딸애가 결혼한단 말인가요?”

“아직 제가 허락하진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죠. 다만 결혼이 성사되면 에벨 가문 역시 다시 살아날 방도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가문은 돈이 좀 많거든요.”

에벨 부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불현듯 그녀의 머릿속에 과거의 영광이 스쳐 지나갔다. 귀족으로서 마땅한 대우를 받으며 하인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말 한마디면 충분했던. 이 굴욕적인 수도 생활과 모든 것이 대비되는, 그런 영광이.

“… 그… 그 결혼을 부디 허락해주세요!”

“뭐, 저희야 에벨가가 워낙 유서 깊었던 가문이니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겠죠. 다만 시아라 양이 가져올 넉넉한 지참금이 필요할 텐데 말이죠….”

“제가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 부디 승낙을….”

“천만 드랑. 일단은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요.”

“… 예…?”

에벨 부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천만 드랑.

시아라가 잡화점에서 일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내리 일만 한다고 해도 받는 돈은 십만 드랑에 불과했다.

그런데 천만 드랑이라니.

그 돈이라면 예전에 살던 대저택을 다시 사들이고도 남는 돈이었다.

“그, 그게…. 그런 큰돈을 구하기가….”

그녀의 눈에 허망과 침울함이 가득 들어찼다. 틸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부인. 혹시, 이건 어떠신지요?”

틸다는 부러 뜸을 들였다.

애가 타는 에벨 부인의 목울대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그 돈을 빌려드리지요. 천만 드랑 정도야 에벨 가문이 다시 장성하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액수 아니겠습니까.”

“정… 말이신가요?”

틸다의 제안은 솔깃했으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남편이었던 에벨 백작 역시 가문을 살리겠다며 여기저기서 빚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 탓에 결국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 제안은 거절하는 편이 옳았다.

에벨 부인이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의사를 전하려던 그때, 틸다가 난데없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흐윽, 부인. 사실 제가 부인께 얼마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게 무슨….”

“에벨 가문의 몰락 소식을 들었을 때 발 벗고 나서서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제 가문 역시 그때는 힘이 없었기에…. 용서하십시오.”

이내 틸다의 뺨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괘, 괜찮습니다. 그게 부인 탓이 아니니까요.”

“시아라 양이 어찌나 예쁘던지, 꼭 며느리로 삼고 싶더군요. 마음 같아서야 이런 지참금 따위도 안 받으면 그만이지만. 그게 도리어 부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아닙니다! 그리하는 것이 귀족의 이치에 맞는 일이겠지요. 부인의 마음 다 이해합니다.”

“그러면 이 거래는 어찌…. 아, 물론 못 들은 셈 치셔도 괜찮습니다.”

틸다가 가녀린 어깨를 떨구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그러나 그 순간조차 그녀의 간교한 시선은 에벨 부인에게 향해있었다.

“… 우리 딸 애를…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레트랑 가문은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했답니다.”

그녀가 눈꼬리를 접으며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레트랑 부인.”

“뭘요. 좋은 가문끼리 이렇게 돕고 사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틸다는 뒤로 물러서 있던 비서에게 고갯짓했다. 그러자 그가 서류를 들고 가까이 왔다.

“서류는 미리 준비해 두었으니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에벨 부인은 떨리는 손으로 제 이름을 적었다.

안네마리 에벨.

너무 오랜만인 그 이름에 입꼬리에 미묘하게 경련이 일었다.

‘이제 이걸로 우리 가문도 다시 살아나는 거야.’

설핏 딸아이를 팔아넘기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시아라와 레트랑의 장남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것은 오히려 축복인 일이다. 그간 고생만 하며 살아온 시아라를 위한 최고의 선택인 것이다.

그녀는 모처럼 밝아진 얼굴로 찻집을 나섰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상쾌한 공기란 말인가. 발걸음이 가벼웠고 다시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에벨 부인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

식탁 위에 – 볼일 보고 곧 돌아올게. – 라는 쪽지 한 장 덩그러니 남겨 두고 엄마가 사라진 지 벌써 일주일.

그사이 수도는 말츠강에 떠오른 여자의 시체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 소문의 정체가 엄마였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 후로 이틀 뒤였고, 그녀가 도박으로 거액의 빚을 졌다는 것 또한 머지않아 알게 됐다.

그것도 라튼 레트랑. 그의 가문에서.

엄마의 죽음이라던가 도박 빚이라던가. 어느 하나도 현실성이 없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엄마가 죽었다고? 나를 두고 그렇게 가버릴 리 없잖아. 게다가 도박이라니. 엄마는….

나는 양손을 꾹 말아쥐었다. 분명 뭔가가 잘못됐다.

그러나 레트랑 부인이 엄마의 이름이 적힌 차용증을 내 앞으로 내밀었을 땐,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네 모친이 그렇게 되어 유감이구나. 그렇게 멍청한 여자인 줄 알았다면 나도 돈을 빌려줄 리 없었을 텐데. 그러니 날 너무 원망하지 말렴.”

레트랑 부인은 나를 위로하듯 말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도가 비아냥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말씀 감사합니다만, 엄마가…. 왜 그렇게 큰돈을 빌리셨을까요?”

“글쎄? 항간에 떠도는 것처럼 도박이라도 해서 그 망한 가문을 살려보고 싶었나 보지.”

“…….”

“그리 궁금하면 죽은 네 모친에게 물어보렴. 혹시 아니? 하늘에서 답이라도 알려줄지.”

라튼의 새빨간 머리와 눈동자는 제 엄마를 닮았구나.

붉은 장미 같은 레트랑 부인의 미소는 내게 가시였다. 그 날카로운 가시에 깊게 찔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얘야. 우리 가문이 보여 준 신뢰를 저버린 것은 네 어미란다. 그럼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네가 되어야 하지 않겠니?”

여유롭게 차 한 모금을 마신 그녀가 우아하게 찻잔을 내려놨다. 그녀의 얼굴엔 조롱으로 점쳐진 미소가 가득했다.

“빈털터리에다 고아라니. 딱해라. 혹시 아니, 내가 자비롭게 이자 정도는 없애줄지.”

“… 빚은 꼭 갚겠습니다.”

“어디 그뿐이겠니.”

그 말을 끝으로 레트랑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누구처럼 내 아들의 앞길을 막는 어미가 되고 싶지는 않단다.”

나는 그녀가 나간 뒤로도 한참이나 멍하니 찻집에 앉아있었다.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도무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라튼. 그냥 그가 보고 싶었다. 그의 위로 한마디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도 이미 소식을 전해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가 필요했다. 라튼은 이제 유일한 내 편이니까.

차오르는 슬픔을 겨우 갈무리하고 찻집을 나섰다.

‘잡화점에 가 있으면 라튼이 날 찾아올지도 몰라.’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나 내가 우연히 고개를 돌렸을 때, 레스토랑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남자는 라튼. 그였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에게, 다정히 웃으며 스테이크를 썰어주는 라튼 레트랑. 그가 확실했다.

*

나는 그대로 멈춰 양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애써 참았던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어느새 멈출 새도 없이 쏟아졌다.

“…… 라… 튼…?”

유리창 너머의 인기척을 알아차린 건지 그 역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황한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던 걸까. 라튼의 붉은 눈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순간 나는 무작정 달렸다. 뒤에서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우리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너무 무서워서 그럴 수가 없었다.

“시아라! 기다려!”

그러나 나보다 손가락 두 뼘이나 더 큰 라튼이 나를 따라잡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기다리랬잖아.”

그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내 손을 잡았다.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내가 널 기다리겠어.”

“그러니까 그게…. 다 오해야! 우리 엄마가, 내가 선을 보면 네 어머니가 빚진 걸 다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하셔서….”

“… 뭐… 라고?”

“진짜야. 난 그냥 우리 엄마 말 듣고, 오늘 딱 한 번 만난 거야!”

“라튼….”

참담한 심정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 이게 한두 번이야? 한 달 전에도, 그 전에도…. 이 여자 저 여자 나 몰래 만나면서도 핑계만 댔잖아.”

“그, 그건…! 이제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잖아. 왜 자꾸 지나간 걸 끄집어내? 이, 이번에는 진짜로 엄마 말 듣고 나온 거야. 괜히 일 키우지 말고, 제발 화 풀어. 응?”

허탈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 놔줘. 먼저 갈게.”

“시아라! 다 너를 위한 거잖아!”

“… 날 위해? 지금 이게 정말로 날 위한 거야?”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 네가 나 아니면 그 돈을 갚을 수나 있을 것 같아?”

“뭐?”

“우리 엄마가 다 너를 생각해서….”

“… 그놈의 우리 엄마, 우리 엄마!”

나는 시장 한복판에서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우리를 향한 여러 시선이 느껴졌지만 좀처럼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제발 한마디라도 그 빌어먹을 단어를 빼고 말할 수는 없겠어? 난 레트랑 가문의 도움 같은 거 필요 없어. 그딴 거 없어도 알아서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나는 라튼이 붙들고 있는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돌아섰다.

“… 천만 드랑을…! 그 큰돈을 네가 대체 무슨 수로 갚을 건데!”

누가 내 발바닥에 접착제라도 발라놓은 걸까. 울음을 참고 있는 듯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내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그래서 저 여자를 만난 거란 말이야…. 그러면 우리 엄마가…. 아니, 아니. 아무튼, 그뿐이야. 다 너를 위해 그런 거야, 시아라. 너와 결혼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 와아.”

마지막까지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는 라튼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본인의 살신성인에 내가 감동했다고 생각한 걸까? 다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니까 이제 풀어. 엄마한테 다시 한 번 부탁드려 보자. 우리 엄마는 내 부탁은 꼭 들어주시니까….”

“…… 놔.”

“응…?”

“놓으라고 이 새끼야.”

드물게 내 입에서 나온 욕지거리에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시아라, 너 지금 그게 무슨….”

짝-!

그의 뺨이 반쯤 돌아갔다.

“나한테 사과 먼저 했어야지 이 나쁜 새끼야. 그리고 뭐? 결혼? 우리가 그런 식으로 결혼하면 내가 너한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할 줄 알았니? 평생 그렇게 마마보이로 살아, 이 나쁜 놈아. 이제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마.”

라튼은 멀어지는 나를 더는 붙잡지 않았다.

메스꺼운 속을 부여잡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엄마가 발견됐다는 말츠강이었다.

강변에 서 있으니 안 그래도 찬 바람이 더욱 소름 끼쳤다.

“이렇게 차가운데…. 왜….”

대체 왜. 왜 그랬어. 도대체 왜 그랬어! 그깟 돈이 뭐라고…!

라튼을 보고 이미 한바탕 울어서일까. 아니면 말츠강의 고요 탓이었을까. 일순 마음이 가라앉았다.

문득 나를 둘러싼 모든 감정에 초연해졌다. 또한, 내 존재 자체가 부질없게 느껴졌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얼음장 같은 물에 발을 담갔다.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원피스가 젖어 들어가고 몸이 무거워졌다. 물이 가슴만치 차올랐을 땐 이미 차가운 물에 어느 정도 적응한 뒤였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꽤 나른한 기분이었다.

‘이것도 썩 나쁘진 않네.’

안녕, 세상아.

나한테 더럽게 나빴던 세상아.

진짜 안녕….

그대로 내 몸이 가라앉으려던 찰나.

고요한 대기를 뚫고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자! 삼 개월마다 돌아오는 제국 로또! 추첨까지 딱 30분 남았습니다! 서둘러 구매하세요. 역대급 당첨금이 걸린 로또! 이번 행운은 당신 겁니다!”

…….

아…. 짜증 나.

로또라니.

이건 또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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