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예카틸리나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자신의 발등 위로 포도알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보내는 여인의 모습에 모두가 한탄했다.
“저는…… 화마로 가족을 전부 잃고 이렇게 제 얼굴까지…….”
그러더니 더는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여러분이 그런 눈으로 보지 않으셔도… 징그럽다는 거…….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하, 하나도 징그럽지 않소.”
“저도 한때는 행복했답니다. 보잘것없는 집안이지만 부모님께 사랑도 듬뿍 받고. … 제 동생들도 모두 명랑했어요. 작은 집에서도 여섯 가족이 오순도순 즐겁게 웃으면서 살았죠……. 저도 분명… 그럴 때가 있었는데…….”
모두가 침묵하며 예카틸리나의 말에 경청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족들이 전부 자고 있던 도중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그 도둑은 물건을 훔쳐가는 것도 모자라 집에 불까지 질렀지요.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던 저는 당장 밖으로 나갔고, 겨우 살아남았어요. 이렇게 혼자서…….”
“저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전부……. 흐윽…….”
“세, 세상에. 그럼 가족들을 구하다가 당신 얼굴이 그리되었다는 말이오?”
“…… 네. 결국엔 아무도 구하지 못했지만요.”
“범인은… 범인은 잡은 거요?”
예카틸리나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저는 사실 죽어 마땅해요. 그치만 이런 제 얼굴도 고쳐줄 수 있다는 의사가 있었어요. 겨우 희망의 끈을 하나 잡았나 싶었지만, 돈이 마땅치 않아서…….”
사람들은 깊은 탄식을 흘렸다. 예카틸리나가 흐느껴 울자 따라 우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녀를 시궁창에 빠뜨린 도둑을 욕하고, 도둑을 잡지 못한 치안대의 무능함을 욕하고.
자신이 돈을 받는 대신 예카틸리나가 돈을 받도록 힘써주겠다고 약속하는 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군중의 뜨거운 호응에, 예카틸리나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흐으윽.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돈을 받아서 꼭 치료했으면 좋겠구려. 마음이 이렇게 예뻐서야, 원.”
“아…… 말씀만이라도 너무 감사해요.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 흐으윽…….”
이번 사연만큼은 카산드라 역시 수긍했다.
“아무래도 예카틸리나 양의 사연이 가장 와 닿는군요. 그렇지 않나요?”
그러자 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저 여자가 제일 불쌍하군.”
“맞소!”
“나 원. 빌어먹을 도둑놈 하나 때문에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평생 저 얼굴로 살아야 한다니…….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던가!”
“그럼 제가 여러분의 의견을 종합해서 집주인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하시고 모두 돌아가심이 어떠실까요?”
카산드라의 제안에 모두가 그러자며 긍정하려던 찰나,
“놀고들 있군.”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메아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꽂혔다. 그는, 전 로또 당첨자 막시무스 칼리오였다.
막시무스의 한마디와 함께 조용했던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
“듣자 하니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어.”
구석에 가만히 앉아있던 막시무스 칼리오가 천천히 일어났다. 술에 취한 그의 얇은 하체가 비틀거렸다.
“우습긴 뭐가 우스워? 저 여자 얼굴이 안 보여?”
“다들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나는 3년 전 육천 드랑에 당첨됐던 사람이오.”
그 말에 대중이 술렁거렸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익숙하지. 이 집주인처럼, 어딘가에 숨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았고, 사람들이 돌아가기만 기다렸어!”
사람들은 불신의 눈으로 막시무스를 응시했다. 술에 절어 온몸에서 나는 냄새, 찢어져 남루한 옷차림새. 삶의 의욕이라고는 하나 없는 표정까지. 하루아침에 인생이 뒤바뀐 자의 용모라기에는 의구심이 남아서였으랴.
그러나 그러한 시선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막시무스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때도 있었지. 저 여자처럼 그럴듯한 말로 사람을 선동시키던 앞잡이가.”
막시무스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카산드라 리첸스가 서 있었다. 당황한 카산드라가 흠칫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 앞잡이라뇨! 말씀이 심하시군요. 저는 그저 이 집주인인 제 친구를 돕고자 이렇게 여러분 앞에 나선 것이지요.”
“친구? 웃기지도 않는군. 당신이 여기 주인과 일말의 친분도 없다는데 내 손모가지를 걸지. 내 머리를 베어가도 좋겠군. 친분은커녕 일면식도 없을 테니.”
“뭐, 뭐라고요?”
씩씩거리는 여자의 귓등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막시무스는 꿰뚫어 보는 시선으로 카산드라를 비웃었다.
“친구라면 다짜고짜 몰려든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선동할 것이 아니라, 치안대에 신고부터 했어야지.”
“이 술주정뱅이가 뭘 안다고 큰소리야!”
“모르긴. 내가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 이 꼴이 되었는데!”
초점 없던 막시무스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번득거렸다. 문득 떠오른 과거에 분노가 치밀었기 때문이랴.
자기를 찾아와 제발 한 번만 도와달라던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가 사기꾼이었으며, 그중 한 남자가 그를 도박의 늪으로 이끌었다. 처음 몇 번은 돈을 계속 따기만 했다. 그것이 도박꾼들의 공작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막시무스는 가진 돈을 하염없이 도박판에 쏟아부었다. 그가 가진 돈을 탕진하기까지 채 2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의 곁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등신같이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긴.’
막시무스가 혀를 쯧 차며 술 한 모금을 더 마셨다. 그의 눈동자가 이번에는 예카틸리나에게 향했다.
“가족을 잃었다던 저 여자의 사연은 퍽 안타깝더군. 그런데 그게 뭐. 왜 당첨자가 운 좋게 거머쥔 돈으로 당신을 치료해야 하지?”
예카틸리나는 가녀린 어깨를 움츠렸다.
“마… 맞아요. 전 그 돈을 받을 자격도 없는 걸요…….”
바닥으로 주저앉은 그녀가 또다시 닭똥 같은 눈물을 떨궜다.
그 애처로운 모습을 마냥 두고 보기가 힘들다는 듯, 한 남자가 막시무스에게 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오늘 당신도 돈이라도 한 푼 챙겨 볼 요량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니오?”
“아, 물론 원래는 그러려고 했지.”
막시무스는 술을 병째 들이켰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어. 당첨자라던 그 여자의 얼굴이 보고 싶군. 당신들도 궁금하지 않소? 오늘 마주한 얼굴이, 몇 년 뒤에도 오늘과 같을지.”
“그,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이오.”
막시무스는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 시아라의 집 대문을 연달아 두드리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암만 집 문을 두들겨보아야 안 나오겠지. 집에 없을 테니! 숨어서 이 광경을 전부 지켜보고 있다면 아마…….”
허공을 구르던 막시무스의 시선이 펠릭스의 집 2층 창가에 닿았다. 먹잇감을 찾는 한 마리 늑대처럼 기민했다. 그 순간 그는, 커튼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목격했다. 막시무스는 비틀린 입꼬리를 슬그머니 끌어 올렸다.
“모르지 또. 아직 집 안에 숨어있을지도. 흐음……. 이런 꼴을 보았으니 곧 이곳을 떠나 도망가려나.”
“뭐, 뭐야? 도, 도망치면 안 되지!”
“안 돼! 이게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공황에 빠진 군중이 다시금 시아라의 집 대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참을성이 없는 몇몇은 담벼락을 넘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들 중 하나가 담을 넘어 정원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어서들 들어오시게!”
그자는 사람들을 위해 대문을 열어주고, 현관문 옆 커다란 창문에 달라붙어 집 내부를 살폈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잠긴 창문을 열려고 애썼다. 또 어떤 이들은 발코니에 놓인 삽과 연장을 들고 집 외벽을 어슬렁거렸다. 여차하면 부술 기세로.
정도를 모르는 사람들의 행동은 점점 괴팍해져만 갔다.
*
펠릭스의 방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경악했다.
“…… 저 사람들…… 제정신이 아니야! 집을 다 때려 부술 생각인가 봐!”
하다 하다 연장까지 챙겨 든 사람들을 보자 펠릭스가 벌떡 일어났다.
“펠릭스?”
“누나는 무조건 여기에 있어. 나오지 말고. 알겠지?”
“설마 저기에 가려고?”
“계속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쫓아내야지. 저렇게 날뛰는데.”
“뭐? 안 돼!”
다급한 내가 양손으로 펠릭스의 손을 붙잡았다.
“절대, 절대로 나오지 마.”
“아니, 너도 못 가. 위험해. 한두 명도 아니고 저렇게 사람이 많은데 도대체 무슨 수로 쫓아낸다는 거야!”
그러나 내 호소에도, 펠릭스는 담담하게 맞받아쳤다.
“내가 저번에 말했지? 우리 아빠. 사냥꾼이었어. 나는 사냥꾼 아들이고. 누나를 위해서 저런 놈들 잡는 거, 하나도 안 무서워.”
“… 정 그러면, 갈 거면 같이 가. 내 집이잖아. 나도 갈래.”
“그게 또 무슨 소리야.”
“하나보다는 둘이 낫겠지. 같이 가면 되겠네.”
“하아……. 이렇게 몸이 떨리는 데 가긴 어딜 간다고. 누나, 지금 내가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물기 어린 펠릭스의 갈색 눈동자가 슬퍼 보였다.
“누나가 이렇게 공포에 떨고 있는 거. 나는 그게 더 무서워.”
“뭐……?”
“내가 누나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그게 정말로 무서워.”
“그게 무슨……! 니가 나한테 해준 게 왜 없어!”
“…….”
펠릭스가 내 손을 당겨 나를 끌어안았다.
“누나가 엄마 병원비를 대신 내줬을 때. 나는 누나를 위해서 뭐든 하겠다고 결심했었어. 비록 내가 모자란 겁쟁이라 매번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러니까 오늘은 한 번만 나를 믿어줘. 알겠지?”
펠릭스는 창가에 기대있던 나를 일으켜 일층 그의 엄마 방으로 데려갔다. 그 방은 골목의 반대편에 있어서 바깥의 상황을 살필 수 없었다.
“밖에 나오지 말고 여기에만 있기.”
나를 유모의 침대에 앉히고, 펠릭스가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했지만…….
‘어떻게 가만히 있어!’
나는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이걸로 때려? … 그랬다가 카시안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들이 전부 목격하기라도 하면…….
잽싸게 유모의 방을 뒤졌다.
‘쓸만한 거. 제발 쓸만한 거 하나만 나와라.’
그리고 그때,
펑-!
바깥에서 커다란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
갑작스러운 총성에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확인하려던 그 순간, 사람들을 선동하던 여자가 나를 보며 외쳤다. 아주 큰 목소리로,
“저 여자예요! 샛노란 금발 머리에 푸른 눈동자! 저 여자가 제 친구……, 이 집주인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