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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프롤로그
일 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영국 날씨는 지금쯤 되면 적응이 될 만도 하려만, 스네이프는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름방학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머글 출신이나 마법사 혈통임에도 설명이 필요한-예를 들어 해리 포터- 아이들을 위해 호그와트에서는 아이들을 마법세계로 이끌어줄 사람을 보냈다. 평소라면 해그리드가 가야 하겠지만, 그는 자신이 시킨 일이 있으므로 다른 교수가 대신 가 달라는 덤블도어의 부탁에 호그와트에서 제일 젊은 교수인 스네이프가 대타로 나서게 되었다. 안 그래도 올해 해리 포터가 입학한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또 다른 일이 늘어나게 되자 스네이프의 기분은 바닥을 찍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스네이프는 안 그래도 굳어있는 인상을 더욱 굳히며 지팡이로 방수마법을 쓰려 하다가, 머글들의 세계에 나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근처에 있는 머글 집에서 소환마법으로 우산을 잠시 빌렸다. 우산을 쓰고 난 후에야 이것이나 저것이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똑같다는 것을 깨닫고 어쩐지 기분이 더욱 나빠져 우산을 돌려놓을까 고민했지만, 이미 갖고 있는 우산을 또 다시 마법을 써서 돌려놓기에는 머글 세계에서 너무 많은 마법을 쓰는 것 같아 돌려놓기를 포기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입학하게 될 신입생은 도시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 스네이프는 조금씩 길을 헤매가며 신입생의 집을 찾았다. 근처에 보이는 집들의 수준으로 보아 꽤나 유서 깊고 돈 많은 집안의 자제인 듯 했지만 비 때문에 춥고 질척질척한 상태인 스네이프에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한참을 헤매다 크림색이 섞인 옅은 노랑빛의 저택 앞에 멈춰선 스네이프는 대문 옆에 우아한 글씨로 '퀸' 이라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시죠?"
초인종 안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네이프는 빗속을 헤매느라 거칠어진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호그와트에서 왔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비가 우산을 투둑투둑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택 앞에서 가만히 서 있던 스네이프는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대문이 열리자 살짝 문을 밀고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온갖 꽃이 피어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지난 스네이프는 새하얀 현관을 두드렸다.
똑똑- 하는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지고 곧 이어 문이 열렸다. 단발보다는 조금 짧은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깔끔하게 넘겨 정리한 헤어 스타일의 남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추우신데 찾아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퀸 저택의 집사, 세바스찬 유안입니다."
집사의 이름이 무엇이던 스네이프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서 일을 끝내고 돌아가 따뜻한 벽난로 앞 푹신한 소파에 앉아 새로 들여온 마법약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뿐이던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우산을 현관 옆에 세워두고 집사 세바스찬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저택 안은 안주인의 취향대로 꾸며놓았는지 밝고 정갈한 느낌이었다. 엄숙한 느낌의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그림들과 최근 들어 산 것인지 현대적 느낌이 강한 그림들의 묘한 조화가 저택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금방 꺾어온 듯한 싱싱한 꽃이 꽂힌 화병들이 창가에 조르륵 놓여있는 것을 바라보던 스네이프는 하얀 문을 두드리는 세바스찬의 노크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가씨, 호그와트에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안에서 대답은 없었지만 세바스찬은 하얀 문의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마치 빨간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어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가씨, 손님이 오셨을 때는 아무리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잠시 내려두는 겁니다."
"알겠어. 알겠다고."
아이는 투덜거리며 얼굴을 들었다. 첫눈 같은 새하얀 피부, 붉은 머리색과 똑같은 색의 약간 아치형의 눈썹, 그 밑에 자리하고 있는 아몬드 모양의 다정한 녹색 눈.
스네이프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혀와 경악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나 그리던 그 얼굴이 그의 앞에 있자 말문이 막혀버렸던 스네이프는 이것이 환상인가 꿈인가 싶어 두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눈을 감는 순간 이대로 '그녀'의 모습을 놓칠까 싶어 후회했지만 눈을 뜬 후에도 여전히 그의 앞에 존재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스네이프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굳어버린 목소리를 억지로 끄집어냈다.
"……릴리?"
아이는 스네이프가 사랑한 죽은 릴리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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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 드립니다! 로맨스는 불의 잔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