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2화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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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돌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마법사의 돌-(1)

릴리의 이름을 부르며 답지 않게 어딘가 빠져 보이는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던 스네이프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릴리가 살아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릴리가 죽었을리가 없다고 부정하며 몇날 며칠을 꿈과 현실 사이를 헤메며 혹시 살아있지는 않을까. 이 모든 것이 꿈은 아닐까. 장난은 아닐까. 현실을 부정하며 릴리를 떠나보냈던 것이 11년 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네이프는 저기 앉아있는 아이가 릴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되었다. 한번 트여버린 상상과 가정은 너무나 달콤해서 좀처럼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저기……."

스네이프가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 아이는 그런 그의 시선이 어색한 듯이 그를 불렀다. 아이의 부름에 생각에서 벗어난 스네이프가 오랜 시간 비를 맞아 거칠어진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스네이프는 아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려고 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며 찻잔이 놓인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까……. 호그와트에서 오셨다고요?"

"그래."

"이 편지의 내용이 정말이란 말이에요?"

아이는 십몇 년 동안 보아 눈에 박힐 대로 박혀버린 호그와트 입학 편지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도저히 믿지 못하는 듯한 아이의 표정에 스네이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조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설마 세바스찬과 함께 장난치려는 건 아니죠? 제 생일은 아직 세 달이나 남았다고요."

아이는 이제 집사인 세바스찬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장난이라 생각하는 거지?"

"상식적으로 멀린이니 마법이니……. 말도 안 되는 것들이잖아요."

"장난이 아니다. 너는 마녀야."

아이의 이름을 문장 끝에 붙이려던 스네이프는 그제야 아이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름이 뭐냐."

"릴리……."

스네이프의 얼굴에서 일순 동요가 스쳐 지나갔다. 릴리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그녀의 이름을 내뱉으니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혀버렸던 그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억지로 처박아 두려고 했던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희망을 깨부숴주듯, 아이가 마저 말을 이었다.

"릴리아나 메이 퀸이에요. 릴리라고 부르셔도 좋아요."

아이의 풀 네임을 듣고 나자 힘이 탁 풀려버린 스네이프는 허망한 듯 웃었다. 무엇을 기대하고 물었던 것인지 스스로가 우스웠다.

"당신은요?"

"호그와트의 교수 세베루스 스네이프다. 마법의 약 수업을 맡고 있지……. 퀸."

스네이프는 여타의 학생들에게 대하는 목소리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릴리가 아니라면 릴리와 똑같이 생긴 아이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릴리라는 애칭으로 불러도 된다는 릴리아나의 제안을 무시한 스네이프는 찻잔에 손도 대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가지."

"네? 어디로요?"

"다이애건 앨리. 입학 물품을 살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다."

"잠시 만요. 저는 가겠다고 한 적 없어요."

릴리아나의 당돌한 대답에 스네이프는 잠시 말이 없어졌다.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다 다시 자리에 앉은 스네이프가 물었다.

"그래서. 가지 않겠다는 거냐?"

"제가 마녀라고 세베루스가 그러셨지만."

"스네이프 교수라고 불러라."

"저는 제가 마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베루스. 뭔가 실수가 있었거나……. 아니면 정말 세베루스와 세바스찬이 장난치는 건 아닌가요?"

아이가 릴리와 똑같은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에 한가득 의심을 품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눈에서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떼지 못하던 스네이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분명 이상한 일이 있었을 거다. 그리고 애초에 마녀가 아니었다면 호그와트 입학 편지가 가지 않았겠지. 그리고 스네이프 교수라고 불러라."

"음, 그러고 보니……. 아무리 높은 그네 위에서 떨어져 내려도 다치지 않았어요. 마치 하늘을 잠시 날았다 내려온 것처럼. 그리고 제 손 안에 꽃이 떨어지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꽃잎이 움직였고요. 이것도 마녀의 능력인가요? 세베루스도 저와 같은 능력이 있나요?"

릴리아나의 말에 스네이프는 할 말을 잃고 묘한 눈으로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릴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어릴 적 릴리가 구현했던 능력을 가졌으며 심지어 이름까지 비슷하다. 스네이프는 검은 셔츠 밑으로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세베루스……교수님?"

뒤늦게 스네이프가 교수님을 붙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 건지 릴리아나가 황급히 교수님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그는 릴리아나가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지적하지 못하고 묘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아무튼 호그와트는 마법적 재능을 가진 어린 마법사와 마녀를 데려다 가르치는 곳이다. 질문이 끝났으면 이제 가도록 하지."

릴리아나의 반짝이는 눈으로 보아 이미 마음을 거의 굳힌 것 같았지만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마법 한번만 보여주시면 안 돼요? 진짜 마법을 보여주시면 호그와트가 있다고 믿을게요."

"그럼 지금까지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냐?"

그렇게 설명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것 같은 릴리아나의 모습은 애초에 어머니가 마녀인 스네이프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금은요. 그러니까 마법 보여주시면 안 돼요?"

릴리의 얼굴을 한 아이가 그가 사랑했던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을 빛내며 말하는 것을 보니 거절의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스네이프는 지팡이를 꺼내 가볍게 휘둘렀다.

"우와!"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서 릴리아나의 머리 위로만 내리는 새하얀 눈에 그녀는 다정해 보이는 녹색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이제 갈 거냐."

스네이프가 조금 지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갈게요. 입학 용품들을 사러 다이거낼리에 간다고 하셨죠?"

"다이거낼리가 아니라 다이애건 앨리다."

"돈은 얼마나 챙기면 되요? 몇 파운드나 가져가야 하지? 1000파운드?"

잠시 고민하던 릴리아나가 입학 용품을 사기에는 상당히 높은 금액을 부르자 스네이프는 마법세계의 순수혈통 마냥 금전감각이 없어 보이는 릴리아나에게 그 돈의 반을 가져가도 남는다는 충고를 해주었다.

***

원래 입고 있던 새하얀 원피스 위에 하늘색 가디건을 걸친 릴리아나는 스네이프를 따라 길을 나섰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어요? 세베루스 교수님?"

"순간 이동으로."

스네이프는 고쳐도 고쳐도 세베루스라고 부르는 릴리아나의 말을 고쳐주기를 포기하고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럼 다이애건 앨리까지는 어떻게 가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지팡이를 들고 손을 위로 올렸다.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싶어 스네이프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릴리아나는 귀청이 터질 것 같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진한 보랏빛의 3층 버스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갈 데 없는 마법사를 긴급 수송하는 구조 버스를 타시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그저 지팡이를 쑥 내밀고 올라타기만 하세요. 원하시는 곳으로 태워다 드립니다. 전 오늘 여러분을 모실 스탠 션파이크 차장 입니……히익!"

차장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차장이 말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릴리아나는 갑자기 차장이 이상한 소리와 함께 말을 멈추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스, 스, 스네이프 교수님? 저희 버스엔 무슨 일로……."

"호그와트의 일이다, 션파이크. 리키 콜드런으로. 가격은?"

"11시클입니다! 하……하지만 코코아를 마시면 14시클을 내야하고 물과 칫솔까지 필요하면 15시클을 내야 하……지만 교수님은 11시클에 코코아까지 드리겠습니다!"

스탠은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듯 황급하게 말하고 버스 안으로 피신하듯 들어갔다. 먼저 타라는 스네이프의 말에 버스에 올라탄 릴리아나는 빈 좌석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운전석 바로 뒤에 있는 두개의 빈자리에 앉았다. 스네이프는 황금빛 동전을 던지듯 스탠에게 넘겨주고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스네이프의 눈치를 보며 코코아 두 잔을 들고 그의 뒤를 따라온 스탠이 릴리아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구조 버스는 처음이야?"

"이 버스가 구조 버스에요?"

"그래. 갈 데 없는 마법사를 긴급 수송하는 구조 버스지. 이름이 뭐야?"

"릴리아나 퀸."

"퀸? 여왕님이야?"

스탠은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며 킬킬거렸다. 많이 들어오던 농담이였기에 릴리아나는 아무런 대꾸 없이 코코아를 받았다. 그녀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스탠은 스네이프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도 코코아를 건네준 뒤 운전사 옆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았다.

"출발하세요. 어니."

스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쾅 하는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며 구조버스가 빠르게 출발하는 바람에,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던 릴리아나는 코코아를 새하얀 원피스에 엎질렀다.

"저런. 괜찮아?"

스탠은 늘 보아왔던 일인 듯 사무적인 어투로 물었다. 뜨거운 코코아를 쏟아 기분이 나빠졌던 릴리아나의 기분이 스탠의 말투 덕분에 더욱더 나빠졌다.

"여기서 무언가를 마신다는 것은 정말 멍청한 생각이지. 퀸."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자 갈색으로 축축하게 물들어가던 릴리아나의 옷이 갓 빤 것처럼 새하얗고 보송보송 해졌다. 두 번째로 보는 마법에 릴리아나는 옷에 코코아를 흘려 기분이 나빠졌던 것도 잊고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세상을 구한 영웅을 보는 것 같은 존경심이 담긴 릴리아나의 표정에 스네이프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이분은 우리의 운전사, 어니 프랭이셔. 어니, 이 애는 릴리아나 퀸이래요. 퀸! 여왕님!"

스탠의 농담을 피해 스네이프를 따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던 릴리아나는 도로와 사람들과 건물들을 모두 무시하고 달리는 구조 버스에 어안이 벙벙해져 어니와 스탠이 그녀의 성을 듣고 낄낄거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물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죠?"

"머글들이란 그렇지!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해.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니까!"

"머글?"

처음 들어보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어보자 스탠은 조금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머글 출신이야 여왕님?"

"머글 출신이라니요?"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부모님이나 피가 섞인 친척들 중에서 마법사가 없는데 마법적 재능이 발현된 마법사들을 머글 출신 마법사라고 부르지. 그래서 교수님과 같이 리키 콜드런에 가고 있던 거구나!"

"8월인데도 호그와트에선 입학생을 데리고 다이애건 앨리에 가는거냐?"

어니도 운전을 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게요. 분명 입학 신청은 어제까지 였을텐데……. 아참, 그거 들었어요 어니? 올해 해리 포터가 호그와트에 입학을 한다지 뭐에요! 해리포터가 벌써 11살이라니! 해리 포터가 그 사람을 물리친……."

"……시끄럽다."

창밖을 보고 있던 스네이프가 불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작고 조용한 말투였지만 스탠은 겁먹은 표정으로 그의 눈치를 보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몸을 틀어버렸다. 릴리아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스네이프와 스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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