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4화 (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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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돌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마법사의 돌-(3)

망토가게에서 나온 스네이프와 릴리아나는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교수님."

"뭐냐."

"잡종이 뭐에요?"

"……뭐?"

릴리아나의 물음에 스네이프가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무시무시한 표정에 움찔한 릴리아나는 아이들이 스네이프를 무서워 한다는 말킨부인의 말을 그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누가 네게 그런 말을 하더냐?"

"아까 망토 가게에서 만난 백금발 남자 아이가……."

스네이프가 불쾌한 것이 묻은 것 마냥 얼굴을 찌푸렸다.

"아주 나쁜 말이다. 머글 태생을 나쁘게 부르는 말이지."

"……머글 태생인 게 무슨 차이가 있나요?"

그녀의 물음에 스네이프가 주저했다. 그의 공허해 보이는 까만 눈동자가 릴리아나를 훑었다. 그의 얼굴에서 오래전의 추억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지만,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릴리아나는 자신이 보았던 것이 착각이라 결론을 내렸다.

"아니, 아무 차이도 없다."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다행이다."

내심 걱정을 하고 있던 릴리아나가 긴장을 풀고 말했다.

"그러면 왜 그 아이는 저를 잡종이라 부른 거예요? 아무 차이도 없다면서요."

"……그건……."

잠시 망설이던 스네이프는 몇 번 입을 벙긋거리다 목소리를 꺼냈다.

"멍청해서 그런다. 그 아이는 머글 태생이던 순수 혈통이던 혼혈이던 다 같은 마법사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거다."

스네이프의 말에 릴리아나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 덕분인지 굳어있던 스네이프의 얼굴이 조금 허물어졌다.

"그럼 또 다시 잡종이란 말을 들으면 한대 때려도 되나요?"

그녀의 당돌한 물음에 스네이프는 아무말 없었지만 그것이 마치 무언의 허락인 것 같아 릴리아나가 조금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듣는 사람마저 기분 좋아지는 웃음소리였다. 어느새 '플러리쉬와 블러트'라는 서점에 도착한 릴리아나는 가게 안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책들에 두 눈을 반짝였다.

큰 가죽으로 장정된 책에서부터 책 표지가 실크로 만들어진 우표 크기만 한 책, 이상한 기호들로 가득 찬 책과, 안에 아무것도 없는 책까지 선반들이 온통 책으로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릴리아나는 홀린 듯이 책장 앞으로 달려갔다. 뒤에서 스네이프가 한숨을 쉬며 점원에게 호그와트 1학년의 책을 달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긴 했지만, 그녀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수많은 책들을 바라보던 릴리아나는 '불사조'라는 책을 발견하고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 책을 꺼냈다. 불사조라니. 그녀는 표지에 그려진 불사조가 하늘을 훨훨 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계산대 앞에 있는 스네이프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다.

"세베루스 교수님! 불사조라는 게 진짜 있어요?"

"그래. 호그와트의 교장 선생님이신 덤블도어 교수님도 갖고 계시지."

스네이프는 작지만 어디서든 잘 들리는 능력의 목소리로 대답했고, 대답을 들은 릴리아나는 작은 환호성과 함께 책에 코를 박을 기세로 '불사조'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 정신이 팔린 릴리아나의 모습에 스네이프는 잠시 그녀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듯 했지만, 서점에 걸려 있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그녀를 불렀다.

"퀸. 그 책 다 읽고 갈 거냐."

"잠시 만요!"

스네이프의 부름에 재빨리 책장을 넘기며 모든 내용을 흡수할 듯이 읽던 릴리아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책을 내려놓았다.

"이제 교과서를 사요."

"이미 샀다."

"네? 돈은 어쩌고요?"

"아까 지갑을 준 건 까먹은거냐."

스네이프의 말에 릴리아나의 얼굴이 창피함으로 달아올랐다. 그는 그런 릴리아나의 얼굴을 못본 척 하며 물었다.

"그럼 더 살 책은 없는 거냐."

"네, 없는 것 같아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서점을 둘러보던 릴리아나가 대답했다.

"책도 샀고 교복도 샀고 보호 장갑과 냄비, 망원경과 놋쇠 저울……. 다 산 것 같으니 이제 지팡이를 사러 가지."

지팡이라는 말에 릴리아나의 얼굴에서 아쉬운 표정은 사라지고 설렘이 가득한 표정이 떠올랐다. 도착한 가게는 생각보다 비좁고 초라했다. 문에 쓰여진 '올리밴더스: 기원전 382년부터 좋은 요술지팡이를 만들어 온 장인' 이라는 황금빛 글자가 벗겨지고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가게 깊숙이 어딘가에 있는 종이 딸랑거렸다. 자그마한 가게 안에는 엉성한 의자 하나만 덜렁 놓여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기에 의자에 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우 엄격한 도서실에 들어온 것 같은 서먹서먹한 느낌에 릴리아나는 괜히 가게 안을 둘러보며 천장까지 쌓여 있는 수천 개의 가느다란 상자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이유에선지 목덜미가 따끔따끔 아팠다. 이 안에 있는 먼지와 정적이 어떤 신비한 마법으로 따끔거리게 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시오."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릴리아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상했다는 듯이 전혀 놀라 보이지 않는 스네이프는 어둠 속에서 두개의 달이 빛나고 있는 듯 한 엷은 빛깔의 둥그런 눈을 가진 노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스네이프의 인사에 릴리아나도 그를 따라 어색하게 인사했다.

"오, 오오."

릴리아나의 얼굴을 살펴보던 노인이 놀라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그래.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 아이와 똑 닮았구나. 백합보다는 장미가 더 잘 어울리는 아이였지……. 혹시 어제 여기 온 포터 군의 친척인가?"

"포터요?"

처음 들어보는 성에 릴리아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자 뒤에 서 있던 스네이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포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아아, 그랬었군……. 참 신기하단 말이지……. 뭐, 세상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세 명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 아이가 요술지팡이를 사러 처음 여기 온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버드나무로 만들어져서 한 번 휘두르면 휙 하고 소리 나는 26센티미터짜리 지팡이였지. 마법에 쓰기에는 아주 좋은 지팡이였다."

올리밴더 씨가 릴리아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릴리아나는 전혀 깜빡이지 않는 그의 은백색 맑은 눈이 어쩐지 소름 끼쳤다.

"저 뒤에 있는 호그와트의 젊은 교수의 지팡이는 흑단목으로 만들어 진 28센티미터짜리란다……. 사실 지팡이가 마법사를 선택하는 법이지. 우리 가게에서 네 지팡이도 찾을 수 있을게다."

올리밴더 씨가 릴리아나와 코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릴리아나는 그의 눈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자 그럼……. 이름이?"

"릴리아나 퀸이에요."

"퀸 양. 어디 좀 보자."

올리밴더 씨는 주머니에서 은빛 점들이 표시되어 있는 기다란 줄자를 꺼냈다.

"어느 쪽에 지팡이를 쥘 거지?"

"전 오른손잡이에요."

"팔을 쭉 뻗어보렴. 그렇지."

그는 릴리아나의 어깨에서부터 손가락까지의 길이를 잰 뒤, 손목에서부터 팔꿈치까지, 어깨에서 마룻바닥까지, 무릎에서 겨드랑이까지 그리고 머리 둘레를 쟀다. 그는 길이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올리밴더 지팡이 중심엔 모두 강력한 마법의 물질이 들어있지. 우리 지팡이엔 유니콘 털과, 불사조 꼬리 깃털이 사용되고 용의 심장이 담겨 있다네. 올리밴더 요술지팡이는 똑같은 게 하나도 없네. 유니콘이나 용이나 불사조 같은 것이 서로 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지. 그래서 우리 지팡이는 다른 마법사가 만든 지팡이보다 활씬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단다."

말을 마친 올리밴더 씨가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그럼 이제 퀸 양에게 맞는 지팡이를 한 번 찾아볼까?"

올리밴더 씨는 선반 주위를 날아다니며 상자들을 꺼낸 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의자위에 그 상자들을 올려놓은 뒤 제일 위에 있는 상자를 열었다.

"단풍나무와 용의 심장이야. 23센티미터에 부드럽지만 카리스마있지. 한번 휘둘러보게."

릴리아나가 지팡이를 받아들고 멍청한 기분을 느끼며 약간 휘둘러보려고 하자마자 올리밴더 씨가 지팡이를 손에서 홱 채갔다.

"그럼 이건? 벚나무에 불사조 깃털. 27센티미터에 우아한 맛이 있지."

또다시 그녀는 휘둘러보려고 했지만 지팡이를 들어올리기도 전에 올리밴더 씨는 지팡이를 얼른 가져갔다.

"아니, 아니. 여기 물푸레나무와 용의 심장, 26센티미터. 잘 휘지. 한번 해봐."

릴리아나는 몇 번이고 계속 시도했다. 하지만 올리밴더 씨가 휘두르기도 전에 뺏어가자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건지 전혀 의도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한 번씩 휘둘러 본 지팡이들이 약해빠진 의자 위에 점점 더 높이 쌓이고 있었지만 올리밴더 씨는 선반에서 새로운 지팡이를 더 많이 꺼내 올수록 점점 더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음……. 어제에 이어 또 다른 까다로운 손님이로군. 안 그런가? 하지만 걱정 말게. 여기 어딘가에서 꼭 들어맞는 걸 찾게 될 테니까……. 음……. 혹시 그러면 말이야. 좀 별난 것은 어떨까? 오래 전에 만들어 졌지만 맞는 마법사를 찾지 못해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 지팡이들도 있으니 말이야."

올리밴더 씨는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창밖은 어느새 해가 지고 있고 있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늦어졌다는 생각에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아니다."

릴리아나가 스네이프에게 사과하는 동안 올리밴더 씨는 지팡이를 찾은 것인지 상자를 품에 안고 천천히 걸어나왔다.

"자, 장미목에 유니콘의 털. 24센티미터. 나긋나긋하면서도 강한 아이지."

올리밴더 씨는 적어도 이십년 전에는 만들어진 것 같은 상자를 열었다. 열자마자 풍겨오는 묵직한 장미향이 나는 지팡이를 잡은 릴리아나는 손가락에서 갑자기 온기를 느꼈다. 지팡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먼지투성이의 공기를 가르며 휙 휘두르자 지팡이 끝에서 새하얀 눈이 머리 위에서 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브라보! 좋았어! 그런데 말이야……. 정말 신기하군……."

그는 릴리아나의 지팡이를 상자에 다시 집어넣어 갈색 포장지로 싸며 연신 "신기해……신기하군……."을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그런데 뭐가 신기하다는 거죠?"

올리밴더 씨는 스네이프와 릴리아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난 내가 만든 지팡이들은 모두 기억하네, 퀸 양. 하나하나 모두. 자네의 지팡이에 쓰인 유니콘의 꼬리털은 북유럽에 살고있는 슬레이프니르처럼 빠른 유니콘의 것인데, 그 유니콘의 꼬리털을 사용하여 만든 지팡이는 딱 네 개 있지. 바로 자네 옆에 있는 교수가 그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네."

릴리아나는 놀란 눈으로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 역시 처음 안 사실인지 조금은 놀란 기색이었다.

"신기하단 말이지……."

올리밴더 씨는 묘한 눈길로 스네이프와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기분이 이상해진 릴리아나는 재빨리 지팡이 값으로 황금 갈레온 아홉 개를 냈고, 올리밴더 씨는 그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가게를 나선 릴리아나가 말했다.

"신기하네요. 그렇죠? 세베루스 교수님과 제 지팡이 심이 같은 재료라니."

스네이프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릴리아나는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자 이내 포기하고 명랑하게 되물었다.

"그런데요 교수님, 불사조도 다이애건 앨리에서 구할 수 있어요?"

"불사조?"

스네이프는 뜻밖의 질문에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되물었다.

"불사조는 왜?"

"편지에 학생들은 부엉이나 고양이, 혹은 두꺼비를 가져와도 괜찮다고 써져 있던걸요? 불사조도 새니까 구할 수 있을까요?"

한 번도 불사조를 구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스네이프는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글쎄……. 불사조란 것이 워낙 희귀한 생물이다 보니 다이애건 앨리에서는 취급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까 지나가다가 신비한 동물 가게라는 가게를 봤는데 그곳에도 없을까요?"

스네이프의 말에 불사조를 갖고 싶던 릴리아나의 마음은 더욱더 강해진 것 같았다.

"신비한 동물 가게라고는 하지만 불사조 같이 희귀한 동물을 취급 안한다. 애초에 불사조를 취급할 수 있는 가게라면 다이애건 앨리에 있지 않겠지. 그냥 부엉이는 어떠냐."

"하지만 전 불사조가 갖고 싶은걸요. 불사조는 늙으면 불에 타올랐다가 재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아무리 무거운 것이라도 나를 수 있고 또 불사조의 눈물은 어떤 상처도 치유하는 능력이 있고……."

불사조의 존재에 대해 방금 안 주제에 간절한 눈빛으로 불사조 찬양을 하는 릴리아나를 바라보던 스네이프는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이 불사조를 가지고 계시니 한 번 물어봐 주겠다."

"와! 정말요?"

릴리아나는 정말 기쁜 듯이 활짝 웃었다.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던 스네이프가 몸을 홱 하고 돌려버리며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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