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13화 (1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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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방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비밀의 방-(2)

"늦었다!!"

호그와트로 가는 날이 되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본 릴리아나가 잠이 번쩍 깨는 것을 느끼며 소리를 질렀다.

"세바스찬!! 세바스찬 우리 늦었어!! 지금 당장 가야 해!"

누군가 찬물을 머리에 부은 것 처럼 정신이 번쩍 깼다. 함께 늦잠을 자버린 세바스찬은 평소 입고 다니던 몸에 딱 맞는 정장도 포기하고, 잠옷으로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부스스한 머리로 허둥거렸다. 릴리아나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녀의 트렁크와 닉스를 자동차에 실은 세바스찬이 소리쳤다.

"아가씨!"

"가고 있어!"

옅은 분홍빛 원피스의 지퍼를 올리며 릴리아나가 달렸다. 차에 타고 나서야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한 릴리아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킹스 크로스까지 제 시간에 갈 수 있을까?"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릴리아나는 애써 정리해놓았던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했다. 어젯밤에 호그와트로 가기 마지막 날이라고 세바스찬이랑 둘이서 밤늦게까지 간식을 먹으며 영화를 본 것이 잘못이었다. 세바스찬이 말릴 때 들을걸! 릴리아나가 후회했지만 시간은 지나버린 후였다.

초조한 듯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오늘따라 도로가 정체되자, 릴리아나가 결국 신경질을 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멀린이 도운 것인지, 릴리아나는 11시 10분 전에 킹스 크로스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9와 4분의 3번 승강장으로 뛰어가던 릴리아나는 흘끗 본 시계가 11시 1분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고 더욱 속도를 올렸다가, 개찰구 앞에서 벽을 쾅쾅 치고 있는 해리와 론을 발견하고 외쳤다.

"해리! 론! 빨리 들어가!"

"릴리!"

"왜 안 들어가! 1분밖에 안 남았다고!"

"개찰구가 열리지 않아!"

"뭐?"

릴리아나가 당황하여 개찰구를 만져보았다. 딱딱한 벽만이 만져지자 릴리아나는 시계를 보며 벽을 쾅쾅 두드렸다.

10초……. 9초…….

해리까지 가세하여 손수레를 다시 한 번 힘껏 밀었지만 그 금속은 여전히 딱딱했다.

3초……. 2초……. 1초…….

"가 버렸어."

론이 어리벙벙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기차가 떠났어. 엄마와 아빠가 우리에게로 다시 오시지 않으면 어떡하지? 너희들 머글 돈 있니?"

"있기야 한데……. 그걸로 뭐 어떻게 하게?"

"그러게……."

론도 딱히 생각해둔 방법은 없었는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차가운 개찰구에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아무 소리도 안 나. 이제 어떻게 하지? 엄마와 아빠가 언제쯤 돌아 오실지도 모르는데."

론이 절박하게 말했다.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건 헤드위그와 닉스가 계속해서 찍찍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좋겠어. 사람들이 자꾸 우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

"해리! 자동차!"

론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게 어떻다고?"

"우린 그 차를 타고 호그와트로 날아갈 수 있을 거야!"

"저기 미안한데 얘들아."

릴리아나가 끼어들었다.

"일단 날아다니는 차를 탄다는 것 자체가 안전을 위협한다고 생각해.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호그와트에서 우리가 오질 않았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까지 어디서 기다려! 또 호그와트에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오지 않았다는 걸 못 알아차릴 수도 있어!"

"부엉이를 보내는 건 어때?"

"릴리, 부엉이가 호그와트에 도착하는 건 오늘 저녁 늦게일걸?"

해리도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는 론의 의견에 솔깃했는지 론의 편을 들었다. 릴리아나가 한숨을 쉬었다. 세바스찬이 릴리아나의 어깨를 감싸며 앞으로 나섰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저택에서 머물다 가셔도 됩니다. 부엉이를 보낸 다음 호그와트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 머무시는 건 어떤가요?"

세바스찬의 말에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 어때? 우리 집으로 올래?"

그녀의 말에 해리와 론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대화를 나누었다. 한참 끝에 결론이 났는지 해리가 말했다.

"그럼 실례할게."

부엉이를 보내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를 타지 못했음을 알리고, 릴리아나의 집에서 잠시 머무는 것으로 결정이 나자 킹스 크로스역에서 릴리아나가 타고 온 차 뒤에 숨어 헤드위그를 날려 보낸 해리가 차에 올라탔다.

"차 좋은데?"

론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문을 만졌다.

"난 머글들의 차가 다 포드 앵글리아처럼 생긴 줄 알았지."

"릴리 너 부잣집 아가씨였구나……."

해리는 버논 이모부가 보아도 놀랄만한 수준의 차에 새삼 릴리아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라고 부르는 집사가 있으면 말 다한 거지."

론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차는 도시를 벗어나 한참동안 달린 후에야 저택에 도착했다. 해리와 론은 크림색이 섞인 옅은 노란빛의 아름다운 저택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진짜 여왕님이셨네."

"서 있지 말고 들어와. 짐들은 빼 놓는 게 좋을까? 호그와트에서 데리러 온다면 집 안에 들여놓는 게 좋겠지?"

릴리아나의 말에 해리와 론은 차에서 짐들을 내렸다. 세바스찬이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하얀 대문을 열자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온 해리와 론은 정원에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아름다운 정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이 정원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릴리아나는 하얀 현관을 열었다.

"어서 들어오지 않고 뭐해."

"가고 있어!"

허둥거리며 짐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온 해리와 론은 가방을 현관 구석에 놓은 뒤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벌써 점심때가 거의 다 지나가 버렸네. 배고프지 않아? 뭐 먹을래?"

릴리아나가 해리와 론을 주방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밝은 회색 톤이 주를 이루고 간간히 파스텔 색의 소품으로 포인트를 준 주방으로 들어온 릴리아나가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난 딱히 아무거나 상관없는데……."

"나도……."

"그럼 스파게티 먹자. 나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

"좋아."

릴리아나의 말이 끝나자 어느새 몸에 딱 맞는 정장으로 갈아입은 세바스찬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럼 우린 거실로 나가 있자."

해리와 론은 릴리아나를 따라 편안한 분위기의 응접실에서 TV도 보다가("이거 정말 신기한걸? 사진도 아닌데 말하면서 움직이잖아!" 론이 말했다) 세바스찬이 만든 스파게티를 먹은 뒤, 릴리아나는 서재에서 책을 가져와 읽었고 해리와 론은 마법사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

"체크 메이트!"

론이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쭉 뻗었다. 해리가 불만스러운 듯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불공평한 경기였어."

"무슨 소리야. 매우 공평한 경기였다고."

"넌 덤블도어 교수님께 체스로 40점 받았잖아."

해리의 말이 쑥스러웠는지 론의 귀가 빨개졌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던 것인지 올라가는 입 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며 론이 대답했다.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어."

저녁이 되자 세바스찬은 아가씨의 친구들께 만찬을 대접하겠다며 냉장고를 열었다. 하지만 그날은 릴리아나가 학교로 돌아가는 날인지라 냉장고 속에 재료들은 거의 없었고, 결국 해리와 릴리아나가 부족한 재료를 사오고 론이 세바스찬을 돕기로 결정했다.

"아가씨, 그러면 스테이크용 고기와 양상추 그리고 감자와 닭 안심을 사와주세요. 아, 오렌지와 딸기도 좀 사오시고 남는 돈으로는 드시고 싶으신 거 사 드시고요."

"천천히 말해 세바스찬. 다 못 외웠어. 고기랑 양상추랑 또 뭐?"

세바스찬이 다시 천천히 말해주자 릴리아나는 종이에 재료들을 메모했다.

"알겠어, 갔다 올게!"

"다녀오세요, 아가씨."

외투를 껴 입은 후, 집을 나선 해리와 릴리아나는 숲 속에 난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15분 정도 걷자 작은 마트가 나타났다. 릴리아나가 입을 열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마트가 여기뿐이거든. 더 큰 마트로 나가려면 차를 타고 가야 해."

"그렇구나."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트 앞에 있는 카트를 끌고 안으로 들어온 릴리아나는 빠른 속도로 양상추와 감자를 넣은 뒤 육류코너로 향했다.

"릴리!"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이게 얼마만이냐. 한 1년만인 것 같은데."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언제나 똑같지. 그러고 보니 릴리 넌 학교에 들어갔겠구나. 어디로 갔니?"

"르 카나아 여자 사립학교로 갔어요."

"세상에 거길? 하긴 릴리는 똑똑하고 예쁘니까."

릴리아나가 수줍은 듯이 웃었다.

"그래서 뭘 줄까?"

"스테이크용 고기하고 닭 안심 주세요."

"몇 명이서 먹을 거니?"

"넷이요."

"넉넉하게 다섯이서 먹을 양을 넣어줄게. 오랜만에 릴리를 봤으니까."

"와, 정말요?"

릴리아나는 많이 주겠다는 말에 싱글벙글 하더니 고기를 받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카트에 고기를 넣고 과일 코너로 온 릴리아나가 해리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저번에 프랑스 친구들이 어느 학교를 갔냐고 물었는데 당황해서 이튼 칼리지라고 했거든. 이번에는 준비를 해 놨지."

해리는 이튼 칼리지라는 말에 킬킬거렸다. 오렌지와 딸기까지 담고 남은 돈으로 다함께 나눠먹을 초콜릿을 산 릴리아나와 해리가 마트를 나왔다.

"어? 비 온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갑작스레 쏟아져 금세 축축하게 옷을 적셨다. 마트에서 나온 지 5분정도 지난지라 우산을 사러 가기에도 그랬고 그대로 가기에도 그런 상황에 릴리아나가 난처한 듯이 손으로 머리를 가리자 해리가 입고 있던 두들리의 낡은 셔츠를 벗더니 우산처럼 릴리아나와 자신의 머리 위로 올렸다.

"미안하지만 네가 짐을 들어줘. 이 상태로 집까지 뛰어가자. 우리 둘이 셔츠를 쓰기엔 작을 테니까 내 허리에 팔을 감아 릴리."

"괜찮아? 안에 반팔만 입고 있는데……. 안 추워?"

"난 추위를 잘 안타거든. 알다시피 벽장 밑에서 11년간 살아오다보면 저절로 추위는 안타게 돼."

"해리 신고는……."

"999번 인거 알아. 이제 가자."

릴리아나는 장바구니를 한쪽 팔에 넣고 다른 한쪽 팔은 해리의 허리를 둘렀다.

"준비 됐어?"

"응!"

"뛰자!"

해리와 릴리아나가 뛰기 시작했다. 발이 땅에 닿을 때 마다 빗물이 튀기는 소리가 났다. 장바구니가 계속해서 릴리아나의 허벅지를 쳤다.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어쩐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릴리아나가 웃기 시작하자 해리도 그녀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숲길에서 두 아이가 해맑게 터트리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에 젖은 흙 향기와 풀 향기가 올라와 코끝을 간질였다. 숨이 막혀 더 이상 뛰지 못할 정도가 되자 어느새 저택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서로를 마주본 둘은 숨을 헐떡이며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의 웃음소리를 싸늘한 목소리가 끊어버렸다.

"포터, 퀸."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해리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그러자 어둠속에 있어 잘 보이지 않던 스네이프가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환한 달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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