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 / 0142 ----------------------------------------------
비밀의 방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비밀의 방-(3)
해리와 릴리아나가 서로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것을 바라보던 스네이프가 뒤틀린 미소를 지으며 빈정거리듯 말했다.
"호그와트에 가는 열차를 놓쳐 꽤나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연애놀음이라니. 생각보다 많이……태평하구나."
달빛 아래로 나온 스네이프의 공허한 까만 두 눈이 해리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릴리아나의 손과 릴리아나의 어깨를 거의 껴안듯이 있는 해리의 팔을 훑어보았다. 릴리아나는 화들짝 놀라며 해리의 허리에서 손을 뗐다.
"그런 거 아니에요 교수님."
"위즐리는 어디 있냐."
릴리아나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한 스네이프가 물었다.
"저희 집에서 세바스찬을 도와주고 있어요."
"그럼 빨리 호그와트로 돌아가자."
스네이프가 까만 망토를 박쥐처럼 펄럭이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릴리아나가 재빨리 스네이프를 뒤따라가며 물었다.
"저기 교수님, 지금 세바스찬이 저녁을 만들고 있는데 같이 드시고 가시는 건 어떠세요?"
스네이프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세바스찬이 열심히 만든 건데 저희가 지금 가버리면 세바스찬이 많이 실망할 거예요. 세바스찬은 저에게 부모님 같은, 친오빠 같은 사람인데 세바스찬이 실망하는걸 보고 싶지 않아요."
릴리아나가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을 애처롭게 뜨며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스네이프가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실례하지."
스네이프의 말에 릴리아나가 활짝 웃으며 대문을 열었다. 뒤따라오던 해리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터덜거리며 따라왔지만 릴리아나는 친구의 표정이 보이지도 않는지 현관을 열고 외쳤다.
"세바스찬! 나왔어! 또 누가 왔는지 알아? 세베루스 교수님이야!"
주방에서 론이 사레가 들렸는지 쿨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세바스찬이 "괜찮습니까, 론 군?" 이라는 말과 함께 등을 치는 소리가 들려오자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의 눈치를 보았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은 듯 했다.
"아가씨 오셨어요? 그리고 스네이프 교수님, 퀸 저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고 있던 하늘색 앞치마를 벗으며 정중하게 세바스찬이 인사를 하자 스네이프가 대강 인사를 받아주며 안으로 들어왔다.
"세바스찬 여기. 다 사왔어. 젠 아저씨가 오랜만에 봤다고 고기 많이 주셨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다 같이 나눠먹으려고 초콜릿을 사왔어."
"잘하셨어요, 아가씨. 금방 음식을 만들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알겠어."
현관에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던 해리는 더듬거리며 론을 도우러 가야겠다 말하고 주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여기로 오세요, 교수님."
릴리아나가 스네이프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일 년 전 왔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 응접실을 둘러보던 스네이프가 소파에 앉았다. 릴리아나가 입을 열었다.
"방학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래."
"뭘 하고 지내셨는데요?"
"마법약 실험, 독서, 수업 준비."
"따분했겠네요."
"그다지."
"저는 방학동안에 프랑스랑 독일에 갔다 왔어요. 편지로 보냈었죠?"
"그래. 이제 혀는 좀 괜찮나."
스네이프는 자신이 한 말에 놀란 것인지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번엔 릴리아나가 아니라 그가 혀를 깨문 것인지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녀는 이상함을 눈치 채지 못하고 말했다.
"네, 괜찮아요. 혀를 너무 세게 깨물면 일주일은 아프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어요. 독일로 갈 때까지도 좀 아팠는데 다음날 괜찮아 진거에요. 그런데 그때가 세바스찬이 취해서 저를 업고 뛰어다녔던 날이라 혀가 나으니 팔이 아파졌어요."
릴리아나는 쉬지 않고 방학동안 있었던 일을 재잘거렸다. 스네이프는 묵묵히 릴리아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씩 짧은 대답을 해주었다.
"아가씨, 교수님, 식사하세요."
그때 세바스찬이 응접실의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응 알겠어. 교수님 가요."
스네이프를 이끌고 주방으로 온 릴리아나는 눈앞에 차려진 만찬에 헤실헤실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스네이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앉기 위해 다투던 해리와 론은 결국 릴리아나의 옆자리와 세바스찬의 옆자리에 앉는 걸로 결정이 난 듯 했다.
세바스찬은 담백한 빵과 구운 아스파라거스, 버터를 발라 구운 감자와 샐러드, 선홍빛이 아직 남아있게 구운 스테이크와 달콤한 양념을 한 닭고기구이와 과일들을 내 놓았다. 매우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었지만 해리와 론은 스네이프의 눈치를 보면서 깨작거리고 있었다. 먹고 싶은 것을 접시에 덜어 먹던 릴리아나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계속해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
"세바스찬 나 갈게."
"크리스마스 때 봐요. 편지도 꼭 하시고요."
"응. 여자도 좀 만나고. 세바스찬 나이가 벌써 서른이잖아."
"아직도 이릅니다."
릴리아나는 세바스찬의 품에 안겨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당부와 인사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스네이프가 헛기침을 했다.
"이제 진짜 갈게 세바스찬. 몸조심해."
"아가씨도요."
세바스찬은 대문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스네이프가 그와 어울리지 않는 분홍색 빗을 꺼냈다.
"잡아라."
"이게……뭔데요?"
"포트키. 이제 작동할거다."
앙증맞은 머글들의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빗을 보고 터져 나올 뻔한 웃음을 참은 릴리아나가 빗을 잡았다.
"좋아. 그럼 셋, 둘, 하나……."
갑자기 몸의 중심이 앞으로 확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릴리아나의 어깨가 해리와 론과 계속해서 부딪혔다. 그들은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분홍색 빗과 집게손가락이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릴리아나의 발이 땅에 닿았다. 론이 비틀거리면서 해리를 밀쳐버리는 바람에 해리는 그만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릴리아나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호그스미드 기차역에 도착해 있었다.
"따라와라."
호그와트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그들 사이에는 정적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침내 호그와트가 보였다. 호그와트 안으로 들어오자 스네이프가 다른 학생들의 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짐들은 여기 나두고 바로 기숙사로 올라가라."
스네이프의 말이 끝나자마자 해리와 론은 릴리아나를 데리고 후다닥 기숙사로 올라갔다.
핑크빛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는 뚱뚱한 여인 초상화 앞에 와서야 걸음을 멈춘 해리와 론이 헐떡거렸다.
"암호?"
그들이 다가가자 초상화의 여인이 말했다.
"어……."
그들은 그리핀도르의 반장을 아직 만나지 못했으므로, 새 학년의 암호를 몰라 우물댔다. 바로 그때 뒤에서 급히 서두르는 발소리가 나더니 헤르미온느가 나타났다.
"해리! 론! 릴리!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문이……. 누가 그러는데 너희들이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거야."
"우린 쫓겨나지 않았어."
"그렇지? 그런 거지?"
헤르미온느의 안색이 밝아졌다.
"새 암호가 뭐야?"
"'칠면조'. 그런데 너희들은 지금까지 뭐하다가 이제 나타난 거니?"
"말하자면 길어."
해리는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며 헤르미온느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세상에, 그래서 지금까지 릴리의 집에 있다가 온 거였구나!"
"배고프다. 혹시 먹을 거 있니?"
론이 대화에 끼어들며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부모님이 싸주신 달지 않은 과자들이 있어. 그런데 저녁 먹고 왔다면서 왜?"
"스네이프."
론이 툴툴거렸다.
"스네이프랑 한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어."
"세상에……."
헤르미온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다음날, 연회장에서 릴리아나가 막 바게트를 뜯어 입에 넣으려고 하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 급히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백 마리의 부엉이가 잇따라 들어와 홀을 빙빙 돌며 재잘거리는 사람들에게 편지와 소포들을 떨어뜨렸고 잠시 후, 커다란 회색빛의 무언가가 헤르미온느의 우유 단지 안으로 툭 떨어지면서 그들 모두에게 우유와 깃털을 튀겼다.
"에롤!"
론이 흠뻑 젖은 부엉이의 발을 잡아끌었다. 에롤은 푹 젖은 편지를 부리에 물고 다리를 공중으로 쳐든 채 의식을 잃고 테이블 위로 쿵 떨어졌다.
"이런……."
론은 숨이 막혔다.
"괜찮아, 아직 살아있어."
헤르미온느가 손가락 끝으로 에롤을 부드럽게 살피며 말했다. 론은 에롤을 한번 쿡 찌르더니 배달 온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엄마한테서 왔어. 호그와트에는 잘 도착했냐고 왔네. 제대로 들어왔는지 들어오지 못했는지 확인하지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써져 있어."
론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맥고나걸 교수가 그리핀도르 테이블을 따라 걸어오며 학과 수업 시간표를 나눠 주고 있었다. 시간표를 받아 든 릴리아나는 약초학 수업을 후플푸프와 함께 듣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그리고 릴리아나는 함께 성을 나와 채소밭을 가로질러 신비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온실로 향했다. 온실로 가자 이미 아이들이 바깥에 서서 스프라우트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그 무리 속에 끼어들자마자 스프라우트 교수가 질데로이 록허트와 함께 잔디밭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스프라우트 교수는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에 여기저기 기운 모자를 눌러 쓴 땅딸막한 작은 마녀였다. 그녀의 옷에는 언제나 흙이 묻어 있었다. 반면 질데로이 록허트는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청록색 망토를 입고 있었으며, 조금도 삐뚤어지지 않고 똑바로 씌워진 금테가 둘러진 모자 밑으로 아름다운 금발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 안녕하세요 여러분!"
그가 모여 있는 학생들에게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스프라우트 교수와 지금 막 약초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하지만 내가 스프라우트 교수보다 약초학을 더 많이 안다고 지레짐작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난 그저 여행 중에 특이한 식물들 몇 가지를 우연히 접했을 뿐이니까요……."
"저 이를 한대 쳐버리면 소원이 없겠네."
릴리아나가 금방이라도 아침을 게워낼 것 같은 표정으로 이를 번쩍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록허트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릴리아나의 말을 들은 해리와 론이 킬킬거렸지만 헤르미온느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
"사망일 파티?"
목이 달랑거리는 닉의 사망일 파티에 가겠다고 약속한 해리가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헤르미온느가 너무나 가 보고 싶었다는 듯 말했다.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 그런 파티에 가 본 사람은 분명 많지 않을 거야……. 아주 재미있을 거야!"
"사람들은 왜 죽은 날을 축하하고 싶어 하는 거지?"
론이 마법의 약 숙제를 하다가 심술이 나서 말했다.
"아주 침울할 것 같은데 말이야……."
할로윈이 되자, 해리는 사망일 파티에 가겠다고 성급하게 약속한 것을 후회하는 듯 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신나는 할로윈 연회에 참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연회장은 예전처럼 살아 있는 박쥐들로 장식되었고, 해그리드의 거대한 호박으로는 세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초롱이 만들어졌으며, 소문에 의하면 덤블도어 교수가 할로윈 연회를 위해 춤추는 해골 흥행단을 예약해 두었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이 얘기를 듣자 릴리아나 역시 사망일 파티에 가기로 약속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약속은 약속이야. 네가 사망일 파티에 가겠다고 했잖아."
헤르미온느가 거만하게 해리에게 상기시켰다. 그래서 7시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그리고 릴리아나는 유혹이라도 하는 듯이 황금 접시와 촛불들로 번쩍이고 사람들로 꽉 찬 연회장을 지나 지하 감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목이 달랑달랑한 닉의 파티 장으로 가는 통로에도 역시 촛불이 주르르 늘어서 있었지만, 그 느낌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여기에 있는 초는 길고 가느다랗고 새까맸는데, 하나같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타고 있어서 생기 있는 그들의 얼굴조차 희미하고 유령 같은 으스스한 빛을 띠게 했다. 또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추위를 잘 타는 릴리아나는 덜덜 떨며 망토를 몸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