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25화 (2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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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카반의 죄수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아즈카반의 죄수(5)

눈물을 닦아주던 스네이프의 손가락이 굳었다. 그 신호가 안겨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릴리아나는 재빨리 스네이프의 허리를 껴안아 스네이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리! 릴리!"

멀리서 누군가가 릴리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스네이프가 당황하여 그녀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릴리아나는 더욱더 깍지를 끼며 스네이프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디 있어 릴리!"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져왔다. 스네이프는 초조한 듯이 릴리아나를 바라보다가 혹시라도 넘어져 다칠 것을 염려한 것인지, 그녀의 등을 손으로 받치며 근처에 있는 빈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릴리!"

스네이프가 교실의 문을 닫고 벽에 기대어 선 순간 목소리의 주인공이 복도를 지나갔다. 목소리가 다시 멀어질 때까지 창밖을 쳐다보고 있던 스네이프가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착 달라붙어 있는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거냐."

하지만 릴리아나는 대답대신 계속해서 훌쩍거리고만 있었다. 스네이프는 인내심 있게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스네이프의 검은 옷을 축축하게 적시고 나서야 릴리아나가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보가트가……건물이……엄마 아빠가……에릭 아저씨가……폭발이……."

릴리아나의 말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스네이프는 그녀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인지 그녀에게 물었다.

"보가트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건물로 변한 거냐?"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네이프가 한숨을 쉬었다.

"무서워서……. 무서워서……."

"……알겠다."

스네이프가 어색하게 손을 들어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는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것인지 그의 손길은 남이 하는 것을 따라하듯 한없이 어색했다. 스네이프의 손길에 더욱 서러운 것인지 그녀는 이제 엉엉 우는소리를 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릴리아나가 더 심하게 울자 그는 당황하여 토닥이던 손을 멈췄다. 하지만 릴리아나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제 그만 울어라. 내가 루핀 교수에게 한마디 해 놓겠다."

스네이프가 달래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릴리아나는 여전히 그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한숨을 쉬더니 잠시 망설이듯 입을 몇 번 벙긋거리다 큰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릴리아나."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의 이름을 부르자 놀랐던 것인지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놀란 토끼 눈을 하며 스네이프를 올려다보았다.

"그만 울어라."

그의 말에 릴리아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코를 훌쩍거렸다.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의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슬픈 기억 대신 재밌었던, 즐거웠던 기억을 생각해 봐라."

릴리아나는 눈물이 맺혀있는 속눈썹을 깜빡이며 스네이프의 공허한 터널 같은 검은 눈을 바라보았다.

"어……."

릴리아나는 코를 훌쩍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2학년 때 론이 말포이에게 주문을 쏴서 민달팽이를 토하게 만들었어요."

스네이프도 말포이가 민달팽이를 자신의 옷에 토했던 기억이 나는지 눈썹이 잠시 꿈틀했다.

"세바스찬이 술에 취해서 저를 업고 뛰어다니기도 했고……."

릴리아나가 더듬거리며 말을 했다.

"해리가 해그리드가 만든 케이크를 먹고 이가 딱 달라붙기도 했고……. 교수님이 록허트 이를 부러뜨리기도 했고……."

어느새 눈물이 가득했던 릴리아나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녀가 스네이프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또……. 또……."

릴리아나가 키득거렸다.

"네빌이 교수님의 모습을 한 보가트에게 드레스를 입히고……."

"……뭐야?"

스네이프가 목소리를 조금 높이며 말했다.

"정말 잘 어울렸어요, 세비나 교수님."

릴리아나가 간간히 코를 훌쩍이며 키득거리자 스네이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롱바텀이 나한테……. 그러니까 내 모습을 한 보가트에게 무슨 드레스를 입혔느냐."

스네이프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사람 하나를 죽일 것 같았지만 릴리아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답했다.

"음……. 위에 박제된 대머리수리가 달린 길쭉한 모자를 쓰고 초록색 긴 드레스를 입고 여우털 목도리도 했어요. 아, 커다란 빨간색 가방도 드셨고요."

"……그래?"

스네이프의 낮은 목소리에는 네빌을 괴롭혀 주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담겨 있었지만 릴리아나는 눈치 채지 못하고 여전히 키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또……. 또……."

릴리아나는 한참동안 즐거웠던 추억, 재미있던 추억들을 이야기 했다. 스네이프의 얼굴이 점점 미묘하게 일그러져갔다.

"음……. 이제 없는 것 같아요."

어느새 릴리아나의 눈물을 말라 있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벅벅 닦은 릴리아나가 생긋 웃었다.

"고마워요, 세베루스 교수님. 교수님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스네이프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릴리아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말을 하다 보니 저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세바스찬도 있고……. 해리랑 론이랑 헤르미온느랑……."

"그래."

"교수님도요."

스네이프가 침묵했다.

"저녁 연회 시간인데 오랫동안 붙잡아둬서 죄송해요."

"아니다."

"이제 가볼게요."

릴리아나가 까치발을 들어 스네이프의 까쓸한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Merci beaucoup, professeur(고마워요, 교수님)."

그런 다음 릴리아나는 스네이프를 껴안고 있던 깍지를 푸르고 교실에서 나비처럼 사라졌다. 스네이프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가만히 서 있다가 천천히 손을 올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릴리아나가 입을 맞춘 자리를 쓸었다. 그의 얼굴이 괴로운 듯이 일그러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사람같이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

첫 퀴디치 경기 날이 되었다. 릴리아나는 아침을 먹으며 들리는 엄청난 바람소리와 빗소리에 걱정스러운 듯 해리를 바라보았다. 릴리아나가 막 토스트를 먹으려고 할 때,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 선수들이 나타나 해리의 곁에 앉았다.

"힘든 경기가 되겠어."

우드가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말했다.

"걱정 좀 그만 해, 올리버."

앨리샤가 위로하며 말했다.

"이까짓 비에 힘들어할 우리가 아니야."

하지만 이까짓 비가 아니었다. 평상시처럼 전교 학생이 모두 시합을 보러 나올 정도로 퀴디치의 인기는 대단했지만, 사납게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우산마저 날아가 버리자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퀴디치 경기장을 향해 잔디밭을 달려야 했다.

"이런 날씨라면 경기를 다른 날로 미뤄야 하지 않아?"

릴리아나가 소리를 치며 말했지만 천둥소리와 바람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게!"

론 역시 소리를 치며 대답해 주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진홍색 망토를 입은 그리핀도르 선수들과 카나리아빛 노란색 망토를 입은 후플푸프 선수들이 맞은편에 섰다. 후치 부인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선수들은 모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5분정도 지나자 추위를 잘 타는 릴리아나는 계속해서 몸을 떨며 기침을 해댔다. 해리는 블러저의 공격으로 빗자루에서 두 번이나 떨어질 뻔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관중석에서 보고 있는 학생들마저 푹 젖어갈 때 쯤 릴리아나는 추위에 떨다 지친 듯이 헤르미온느에게 몸을 기댔다. 번개가 처음으로 번쩍 하자 후치 부인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우리도 가보자."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들은 관중석을 내려가 푹 젖어버린 그리핀도르 선수들에게로 다가갔다.

"난 이것 때문에 도무지 스니치를 찾을 수가 없어."

해리가 안경을 흔들면서 투덜거렸다. 그의 말에 헤르미온느가 밝게 웃으며 달려갔다.

"좋은 생각이 있어, 해리! 네 안경 좀 줘 봐 얼른!"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안경을 건네주자 팀 선수들이 모두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임페르비우스!"

헤르미온느가 요술지팡이로 안경을 가볍게 친 다음 해리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자! 이제 방수 안경이 됐어!"

우드는 꼭 그녀에게 입이라도 맞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똑똑해!"

론과 헤르미온느, 릴리아나가 다시 관중석으로 올라가려고 몸을 틀자 뒤에서 우드가 헤르미온느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헤르미온느의 주문이 효과가 있었는지 해리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날아다니며 스니치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갈라진 번개가 번쩍하더니 뒤이어 천둥이 또 한 번 쳤다. 릴리아나는 으슬으슬한 몸을 팔로 감싸며 기침을 했다. 또 다시 번개가 번쩍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싹한 정적이 흘렀다. 바람은 어느 때보다도 세찼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소리를 꺼 버렸던지 아니면 갑자기 귀머거리라도 된 것 같았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릴리아나의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와 내장을 도려내고 있는 것 같았다.

또 다시 귓가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가씨!"

지금보다 조금 어린 듯한 세바스찬의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릴리아나!"

또 다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펑, 펑, 펑, 펑!

정신을 멍하게 하고 어찔어찔하게 하는 하얀 안개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릴리아나의 몸이 무너졌다. 론이 놀라며 쓰러지는 릴리아나를 받치는 것이 보였다.

"디멘터가 경기장에 들어오다니."

"해리는 죽을 뻔 했잖아."

"그런데 그 스네이프가 릴리를 업고 병동까지 오다니. 그건 마치 스네이프가 할로윈날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과자를 나누어 주는 것만큼 말도 안 되는 일 같은데."

"글쎄……."

헤르미온느와 론이 속닥거리는 소리에 릴리아나가 눈을 천천히 떴다.

"릴리!"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괜찮아? 기분은 좀 어때?"

"……괜찮아."

릴리아나가 점점 되살아나고 있는 기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해리는 죽을 뻔 했다니?"

"옆을 봐."

릴리아나가 고개를 돌려 옆 침대를 바라보았다. 해리가 죽은 듯이 병실 침대에 누워 그리핀도르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여왕님!"

프레드가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몸은 좀 괜찮아?"

"응……."

"땅이 부드러웠길 천만다행이야."

"난 얘가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안경도 깨지지 않았잖아."

"난 그렇게 무서운 건 난생 처음 봤어."

해리가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리핀도르 선수들과 수영장에서 막 나온 것 같은 론과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더니 옆 침대에 누워있는 릴리아나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해리! 기분이 어떠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해리가 일어나 앉으며 이렇게 묻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네가 기절했었어. 아마……. 한……. 15미터쯤은 떨어졌을걸?"

"우린 네가 죽는 줄 알았어."

앨리샤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럼 시합은?"

해리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됐어? 우리 다시 경기하는 거야?"

아무도 말이 없었다.

"설마……졌어?"

"디고리가 스니치를 잡았어. 네가 떨어진 직후에. 그 애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랐대. 뒤돌아보니까 네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대. 그 앤 경기를 연기하려고 했어. 재시합을 원했지. 하지만 그 애들은 공평하게 이긴 거야……. 심지어 우드도 그걸 인정했어."

릴리아나는 일어나 앉으며 선수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심각한 것 같았다. 한없이 우울한 이야기는 해리의 충실한 빗자루가 산산조각이 났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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