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31화 (3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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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잔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의 잔-(2)

방금 전에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 사이에 위즐리 부인이 릴리아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릴리."

위즐리 부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위즐리 부인은 다시 지니를 깨우기 위해 다른 침대로 걸어갔다. 릴리아나는 엉망이 된 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 넘기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지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제 막 잠에서 깬 지니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물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그래, 지니."

지니가 묻자 위즐리 부인이 다정하게 대답을 해주고는 방을 나갔다. 헤르미온느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하품을 했다. 세 사람은 너무나 졸린 나머지 말을 주고받을 만한 기운도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옷을 갈아입으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지만 도저히 잠은 깨지 않았다. 지니가 조용하게 제안했다.

"……조금만 더 잘까?"

"……그래."

릴리아나가 침대에 얼굴을 묻으며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눕고 싶은 생각과 위즐리 부인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부딪히고 있는 것 같았지만, 지니 마저 누워버리자 두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세 여자는 금세 달콤한 꿈나라로 빠져버렸다. 하지만 그 행복은 쿵쾅되거리며 올라온 위즐리 부인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일어나라 얘들아!"

결국 그들은 졸린 얼굴을 한 채로 식당으로 내려왔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해요?"

지니는 식탁에 앉는 동안 줄곧 눈을 비볐다.

"걸어가야 하니까 그렇지."

위즐리 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걸어가요? 아니, 월드컵이 열리는 곳까지 걸어서 간단 말이에요?"

해리가 깜짝 놀라자 위즐리 씨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몇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어떻게 걸어간단 말이니? 우리는 그저 조금만 걸으면 된단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머글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한 장소에 모인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다. 그러니까 우리는 시간을 잘 골라서 여행해야만 한단다.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 퀴디치 월드컵 같은 큰 행사가 열릴 때에는……."

"아서! 늦겠어요! 이제 출발해야 해요!"

위즐리 씨의 말은 위즐리 부인에 의해 끊겼다. 위즐리 씨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아이들에게 이제 일어서자고 신호를 보냈다. 위즐리 부인은 위즐리 씨와 아이들에게 한번씩 뺨에 입을 맞춰 주었다.

"재미있게 구경하렴. 얌전하게 굴고……. 빌과 찰리와 퍼시와 시리우스는 정오 무렵에 보내겠어요."

위즐리 부인이 남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위즐리 씨는 일곱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어두운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추위를 잘 타는 릴리아나는 입고 있던 가디건 위에 팔짱을 끼었다. 하늘에는 아직도 달이 떠 있었다. 지평선을 따라 흐릿한 초록빛이 감도는 것을 보면서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릴리아나는 위즐리 씨가 해리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들으며 크게 하품했다.

사방은 아주 고요했다. 오직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오터리 성 캐치폴 마을로 들어서자 잉크 빛처럼 까맣기만 하던 하늘이 서서히 군청색으로 엷어지면서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로 릴리아나의 손발이 얼어버리자 릴리아나는 손 위로 김을 불어넣으며 손을 녹이려고 했다. 위즐리 씨는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서둘러 스토우츠헤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움푹 파인 토끼 구멍에 발부리가 걸리거나 울창한 잔디 둔덕에서 미끄러지는 일을 몇 차례 당하고 나자 그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말할 힘조차 없었다. 근육이 경련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다리가 몹시 뻐근했다. 숨을 쉴 때마다 마치 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마침내 그들은 평평한 땅에 도착했다.

"휴."

위즐리 씨가 안경을 벗더니 스웨터에다 문질렀다.

"알맞게 도착했구나. 이제 10분만 더 있으면……."

막대기를 짚고 올라오던 헤르미온느가 마지막으로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이제 포트키만 있으면 되겠구나."

위즐리 씨는 다시 안경을 끼더니 땅바닥을 둘러보았다.

"별로 크지는 않을 거야……. 어디 보자……."

그들은 따로따로 흩어져서 포트키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채 2분이 지나지 않아서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아서! 여기 있다네. 얘야, 우리가 벌써 찾았어!"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였다. 잠시 후에 훤칠하게 키가 큰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에이머스!"

위즐리 씨는 조금 전에 함성을 지른 사람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해리를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도 두 사람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위즐리 씨는 한 손에 꼬질꼬질한 부츠 한 짝을 들고 있는 마법사와 악수를 나누었다. 갈색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그 사람의 체격은 아주 건장했다.

"이분은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에서 근무하는 에이머스 디고리란다, 얘들아."

위즐리 씨가 에이머스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세드릭은 이미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

위즐리 씨가 가리키는 곳에는 열일곱 살 가량 되어 보이는 굉장히 잘 생긴 아이가 서 있었다. 세드릭 디고리는 호그와트의 후플푸프 기숙사 퀴디치 팀의 주장이자 수색꾼이었다.

"안녕."

세드릭이 그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안녕, 세드릭."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 지니는 입을 모아서 인사를 했지만 프레드와 조지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프레드와 조지는 아직까지도 작년에 열렸던 첫 번째 퀴디치 시합에서 세드릭이 그리핀도르를 물리쳤던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걸었겠군, 아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네. 우리는 저기 저 마을 너머에 살고 있는 걸……. 그런데 자네는?"

"우리는 새벽 두 시에 일어나야만 했다네. 안 그러니, 세드릭? 이 애가 순간이동 시험을 통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지만……. 불평할 일은 아니지. 퀴디치 월드컵은 갈레온 한 부대를 준다고 해도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일이지. 퀴디치 월드컵 티켓이라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어……. 이 정도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에이머스 디고리는 온후한 표정으로 위즐리네 세 형제를 비롯해서 해리와 헤르미온느와 지니와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애들 모두가 자네 아이들인가, 아서?"

"아니야. 머리카락이 빨간 아이들만 우리 아이들이네. 아, 여기 있는 녹색 눈의 아가씨는 아니지만."

위즐리 씨는 쌍둥이 형제와 론 그리고 지니를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이 아니는 론의 친구 헤르미온느라네. 이 아이는 릴리아나고. 그리고 이 아이는 해리……."

"뭐라고?"

에이머스 디고리가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말했다.

"해리라고? 해리 포터 말인가?"

"저……. 네."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세드릭은 물론 너에 대해 말했단다."

에이머스 디고리가 해리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작년에 그리핀도르 팀과 경기한 이야기를 모두 다 했단다……. 난 세드릭에게 말했지. '세드릭, 그건 네가 나중에 자손대대로 자랑해도 좋을 만한 일이구나. 그래,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지……. 네가 해리 포터를 이기다니!'라고 말이다."

해리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서 있었다. 프레드와 조지는 둘 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이머스 디고리가 세드릭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린 뒤 뒤를 돌자 세드릭이 작게 사과했다.

"미안해, 해리."

"아니야."

"이제 1분 전이야. 준비하는 게 좋겠군."

위즐리 씨가 포트키를 사용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자 에이머스 디고리가 낡은 부츠 한 짝을 불쑥 내밀었다. 그들이 낡은 부츠 주위로 둥글게 모여 섰을 때,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휙 스쳐 지나갔다.

"셋……. 둘……. 하나……."

마침내 포트키가 작동했다. 갑자기 릴리아나는 몸의 중심이 앞으로 확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릴리아나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릴리아나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릴리아나는 헤르미온느와 세드릭도 자신과 함께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낡은 부츠와 릴리아나의 집게손가락이 딱 달라붙었다. 그리고…….

릴리아나의 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균형을 잃고 쓰러지자 세드릭이 손을 내밀었다.

"내 손 잡아, 릴리아나."

그녀가 세드릭의 손을 잡자, 세드릭은 힘든 기색 없이 단번에 릴리아나를 일으켰다. 릴리아나가 입고 있던 원피스에 묻은 흙을 털며 말했다.

"릴리라고 불러도 돼. 고마워 세드릭."

"이런걸 가지고 뭐. 음……릴리."

세드릭이 얼굴을 조금 붉힌 채 싱긋 미소를 지었다.

***

불가리아가 스니치를 잡았지만 아일랜드가 승리하였다. 사람들이 기뻐하며 시끄러운 노래를 불러댔다. 릴리아나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로 퀴디치 경기 영상이 담긴 옴니큘러를 바라보며 기뻐했다.

"이거면 세바스찬도 좋아할 거야! 세바스찬도 퀴디치 경기를 보고 싶어 했으니까!"

마침내 그들은 텐트에 도착했다. 이미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캠프장이 너무나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도저히 잠을 청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코코아나 한 잔 하고 잠자리에 들도록 하자."

위즐리 씨의 말에 모두들 동의했다. 그들은 곧 퀴디치 월드컵에 대해서 즐겁게 떠들기 시작했다. 위즐리 씨는 불가리아 파수꾼의 반칙을 놓고 찰리와 한창 논쟁을 벌였다.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한 지니가 코코아를 마룻바닥에 엎지르자 위즐리 씨는 모두들 잠자리로 돌려보냈다. 릴리아나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있는 시리우스에게 인사를 한 뒤 여자들이 사용하는 텐트로 건너갔다.

원피스 같은 형식의 잠옷으로 갈아입은 릴리아나가 침대에 누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퀴디치 월드컵이 끝나고 론의 집으로 돌아가 닉스를 통해 세바스찬에게 옴니큘러를 보내면 세바스찬이 기뻐할 것이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릴리아나는 문득 스네이프도 퀴디치를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리데린이 경기를 할 때 참석하기는 하나 좋아하는 모습이었던가? 릴리아나가 옴니큘러의 영상은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 어느 순간 잠이 들고 말았다.

"일어나거라! 헤르미온느! 지니! 릴리아나! 긴급 상황이야!"

시리우스의 목소리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릴리아나가 거칠게 흔들어 깨우는 시리우스의 손길에 눈을 떴다.

"무슨 일이에요?"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다. 캠프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흥겨운 노랫소리는 멈추고 처절한 비명 소리와 몹시 당황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어! 대충 옷을 걸치고 나가라! 어서!"

시리우스가 청바지에 티를 입은 채로 소리쳤다. 릴리아나는 급하게 슬리퍼만 신고 텐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직도 꺼지지 않은 모닥불들이 캠프장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문득 릴리아나는 숲을 향해 달아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이상한 광채와 총성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판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는 무엇인가를 피해 도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야유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그리고 술 취한 고함 소리도 들렸다.

갑자기 초록색 불빛이 폭발하면서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수많은 마법사들이 요술지팡이를 똑바로 치켜들고 무리를 지어서 캠프장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마법사들이 가면을 쓴 마법사 무리에 합세하기 시작했다.

"도망쳐 릴리!"

헤르미온느가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릴리아나의 팔목을 붙잡고 뛰기 시작했다.

"아야!"

릴리아나가 울퉁불퉁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헤르미온느가 릴리아나에게 다가오려고 했지만 도망가려는 사람들로 인해 다가오지 못하고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먼저 가!"

릴리아나가 소리쳤다. 헤르미온느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숲속으로 달려갔다. 릴리아나가 아픈 무릎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행진하던 마법사 무리들은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릴리아나가 벌떡 일어나 욱신거리는 무릎을 무시한 채 숲으로 절뚝거리며 달려갔다.

"릴리! 릴리아나!"

어느순간 온 것인지 모를 세드릭이 릴리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괜찮아? 다른 애들은 어디 있어? 헤르미온느는?"

"넘어지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밀려서 먼저 가라고 했어. 어서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

"잠깐만."

세드릭이 걸치고 있던 코트를 벗어 릴리아나의 등에 덮어주었다.

"추위 많이 타잖아."

"고마워 세드릭."

안 그래도 쌀쌀했던 차라 릴리아나가 세드릭의 코트를 잡아당기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세드릭과 함께 숲으로 도망치던 릴리아나는 문득 자신이 세드릭에게 추위를 많이 탄다고 말한 적이 있나 고민했지만 말했거니 하고 재빨리 세드릭의 뒤를 따랐다.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잠옷을 입은 여러 명의 십대들이 길가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숱이 많은 곱슬머리 여자아이가 릴리아나와 세드릭을 향해 돌아서더니 입을 열었다.

"Ou est madame Maxime? Nous l'avons perdu(마담 맥심이 어디에 있죠? 우리는 그녀를 잃어버렸어요)."

"뭐라는 거야?"

세드릭이 당황해서 릴리아나와 곱슬머리 여자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릴리아나가 입을 열었다.

"Je suis désolée, On n'en sait pas non plus(미안해요, 우리도 몰라요)."

릴리아나의 말에 곱슬머리 여자아이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Merci(고마워요)."

"De rien(천만에요)."

곱슬머리 여자아이는 릴리아나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준 뒤 자신의 무리로 돌아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와……."

뒤에서 세드릭이 놀란 표정으로 릴리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릴리아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에서 살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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