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38화 (38/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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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잔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의 잔-(9)

신문을 꾸깃꾸깃 구기던 릴리아나는 때마침 세드릭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자 구겨진 신문을 아무렇게나 움켜잡은 채로 재빨리 세드릭에게로 다가갔다.

"세드릭!"

"오, 안녕 릴리."

"우리 얘기 좀 하자."

릴리아나는 등 뒤로 연회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좋아."

세드릭이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그들이 혼란스러운 연회장을 벗어나 한적한 복도에 다다르자 릴리아나가 구겨진 신문을 펴서 세드릭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그래?"

"읽어 봐."

세드릭은 눈을 가늘게 뜨며 릴리아나가 잔뜩 구기는 바람에 읽기 힘든 신문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기사를 읽어갈수록 세드릭의 얼굴은 점점 달아올라 갔다.

"이건……."

"리타 스키터, 그 두꺼비 같은 여자가!"

릴리아나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했다. 해리에 대한 기사를 쓸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렇게 사실도 아닌 이야기를 버젓이 신문에 낼 줄은 몰랐다.

"어떻게 <<예언자 일보>>는 이런 사실도 아닌 이야기를 보도할 수가 있는 거지? 아니 그 전에 그 여자는 얼마나 정신이 이상하면 이런 이야기를 지어낼 수가 있는 거야!"

"어……."

세드릭이 입을 몇 번 벙긋거리더니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세드릭은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정말 싫어!"

"그래? 그렇게 싫어?"

세드릭이 축 처진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릴리아나는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신문을 조각조각 내며 이를 갈았다.

"그래."

릴리아나의 대답에 세드릭이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며 어딘가 슬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안했어."

"……응?"

릴리아나는 갑작스러운 세드릭의 사과에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나와는 아무리 지어낸 이야기라도 이성적으로 엮이고 싶지 않다는 걸 모르고 내가……."

"오, 아니야 세드릭!"

마침내 세드릭과 어느 부분에서 엇갈리고 있는지 깨달은 릴리아나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리타 스키터가 너랑 이성적으로 엮었다고 이렇게 화를 내는 게 아니야. 그건 솔직히 상관없어. 내가 화를 내고 있는 부분은 자기 멋대로 지어낸 사실이 공식적인 신문에 나왔다는 것과 이 정신 나간 기사를 사실 확인도 해보지 않고 보도한 예언자 일보야."

"……그래?"

세드릭이 안도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더니 말을 덧붙였다.

"사람들이 너와 내가 이성적으로 엮였다고, 그러니까 사귀고 있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어?"

뭔가 릴리아나가 한 말과 세드릭이 한 말이 미묘하게 어감이 달랐지만 비슷한 말이겠거니 생각한 릴리아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이 활짝 웃었다.

"다행이다. 어……. 그럼 나는 다시 연회장으로 가볼게. 아침은 먹었니?"

세드릭의 말에 그제야 릴리아나는 아침 식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그럼 같이 연회장으로 가자."

세드릭이 홍조를 띈 얼굴로 말했다. 세드릭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성취감 같은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온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인사를 하고 자신의 기숙사 테이블에 앉았다. 헤르미온느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작게 물었다.

"역시 세드릭하고 그런 사이인……."

"아니야!"

릴리아나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후플푸프 테이블을 흘끗 쳐다본 해리가 초조한 듯 말했다.

"릴리, 헤르미온느. 너희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나가서 산책하지 않을래?"

"해리! 릴리는 지금 식사도 하지 않았다고!"

헤르미온느가 타박하듯이 말하자 릴리아나가 접시를 밀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 별로 입맛이 없어."

식사에 손도 대지 않은 해리는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를 급히 이끌었고 셋은 연회장을 나와 호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해리가 용에 관한 이야기와 시리우스가 했던 말을 모두 털어놓자 헤르미온느는 깜짝 놀란 눈치였다.

"카르카로프가?"

릴리아나가 불안한 듯이 말했다. 헤르미온느 역시 카르카로프에 대한 시리우스의 경고를 듣고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여전히 용의 문제가 훨씬 더 다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선 화요일 저녁까지 네 목숨이나 부지하고 보자꾸나. 그래야만 카르카로프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지."

헤르미온느가 절망적으로 말했다. 세 사람은 용을 진정시킬 수 있는 간단한 마법이 무엇일까 궁리하면서 호수 주위를 세 번이나 돌았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도서관을 찾아갔다. 셋은 용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는 책은 모두 꺼낸 후에 열심히 책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용발톱 자르기……. 비늘 상처 치료하기…….' 이런 건 아무런 소용이 없겠어. 이건 해그리드처럼 용을 건강하게 기르고 싶어 하는 괴짜들이나 보는 거라고……."

"'용을 죽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용의 두꺼운 가죽에는 고대 마법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강력한 마법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죽을 뚫고 들어갈 수가…….' 하지만 시리우스는 간단한 마법이라고 했다며……."

"그렇다면 간단한 마법에 관한 책을 살펴보자."

<<너무나 용을 사랑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옆으로 던지면서 해리가 말했다. 릴리아나는 마법 책이 잔뜩 쌓여 있는 테이블로 돌아가서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곁에 딱 붙어 서서 잠시도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글쎄……. 이건 바꾸기 마법이야. 하지만 바꾸기 마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네가 용의 어금니를 빨간 잇몸이나 조금 덜 위험한 것으로 바꿀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제는 바로 이거야. 용의 가죽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이 별로 없다는 거 말이야……. 나는 너에게 변신 마법을 권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렇게 큰 놈이라면 네가 성공할 희망은 거의 없어. 심지어 맥고나걸 교수라고 해도……. 차라리 너에게 마법을 걸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네가 엄청난 힘을 갖게 될 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건 단순한 마법이 아니야. 게다가 수업 시간에는 이런 마법들을 사용해 본 적도 없어. 나도 약간 알고 있을 뿐이야. O. W. L. 실습 시험을 쳤던 적이 있거든……."

"헤르미온느, 잠시 동안이라도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을래? 집중을 좀 해야겠어."

해리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헤르미온느가 떠들든 말든 책에 집중하고 있던 릴리아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책들을 휙휙 읽어가며 절망적으로 책 목록을 훑어갔다.

"오, 이런! 크룸이 다시 나타났어. 그 우스꽝스러운 자기네 배 안에서 책을 읽으면 어디가 덧나나?"

빅터 크룸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자 헤르미온느가 짜증을 냈다. 빅터 크룸은 세 사람을 힐끗 바라보더니 책이 잔뜩 쌓여 있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자. 우리는 그만 휴게실로 돌아가는 게 좋아. 조금 있으면 저 녀석의 팬클럽이 잔뜩 몰려올 거라고."

헤르미온느의 말이 맞았다. 세 사람이 도서관을 나서자마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왔다. 그 여학생들 중에 한 명은 허리에 불가리아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오자 해리는 잠시 혼자 생각할 것이 있다면서 기숙사 침실로 올라가 버렸고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는 아무도 없는 기숙사 휴게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도대체 용에게 먹힐 수 있는 마법이 뭘까?"

헤르미온느가 절망적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시리우스는 쉬운 마법이라고 했다는데……."

릴리아나가 한숨을 쉬었다. 헤르미온느는 정신없이 도서관에서 본 책 목록들을 나열하며 쉬지 않고 떠들었다. 멍하니 벽난로 안에서 불이 춤을 추는 것을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세드릭!"

"세드릭이 왜?"

헤르미온느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해리가 그랬잖아. 빅터 크룸과 플뢰르 델라쿠르는 이미 시합에 용이 나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지금 시합에 뭐가 나올지 모르는 사람은 세드릭 밖에 없어."

"그렇긴 하지만……."

"생각해봐 헤르미온느. 용이야. 우린 방금 도서관에 갔다 왔는데도 용에게 먹힐 좋은 방법은 찾지 못했어. 이대로 가다간 세드릭이 크게 다칠 거야."

릴리아나의 말에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았는지 헤르미온느도 덩달아 진지한 표정이 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릴리, 역시 너 세드릭을 좋아하는 거야?"

"뭐라고?"

뜬금없는 헤르미온느의 말에 릴리아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갑자기 그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그야……. 너나 세드릭이나 서로를 많이 챙기니까 그렇지. 방금도 용에 관해서 세드릭이 모르니 알려줘야 한다고 그랬고."

"응?"

"세드릭에게 정말 손톱만큼의 연애감정도 없는 거야? 설레는 것도 없어? 가슴이 뛰는 것도 없어?"

헤르미온느가 눈을 번뜩이며 특종을 찾은 리타 스키터처럼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고 점점 상체를 앞으로 숙이자 릴리아나가 몸을 뒤로 빼며 대답했다.

"헤르미온느, 너 그 여자가 쓴 정신 나간 기사를 믿는 거니?"

"아니, 그건 아닌데……."

헤르미온느가 멈칫하며 다시 몸을 원래대로 돌리며 속삭였다.

"세드릭을 보면 꼭 아닌 것도 아니란 말이지."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너는 세드릭을 어떻게 생각하는데?"

헤르미온느의 질문에 벽난로 속 불을 바라보고 있던 릴리아나의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퀴디치 경기장에서 곁을 지켜주던 세드릭, 꼬박꼬박 인사를 하며 말을 걸어주는 세드릭, 대신 계산해주는 세드릭, 손을 잡아오던 세드릭…….

"그냥……. 아는 오빠 같은 느낌? 세바스찬같아."

"뭐야, 그럼 전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아? 전혀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 거야?"

"응? 세드릭은 남자잖아."

"아니 그러니까."

헤르미온느가 조금 답답해하며 말했다.

"세드릭이 전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아? 두근거리지도 않고?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잘 보이고 싶다.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다. 함께 행복 하고 싶다. 이런 것도 없어?"

헤르미온느의 말을 들으며 다시 세드릭을 생각한 릴리아나는 평온하기만 한 자신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히려 네가 말한 건……."

갑자기 릴리아나의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언제나 잘 정리되어 있는 검은 머리, 터널같이 공허한 검은 눈, 조금 구부러진 매부리코, 무뚝뚝해 보이지만 사실은 다정한 그런…….

"릴리?"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러운 듯 릴리아나를 불렀다.

"어? 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드릭을 볼 때 네가 말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야."

볼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릴리아나는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헤르미온느가 볼까봐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헤르미온느는 릴리아나가 아무 말 없자 어디서 가지고 온 것인지 양피지를 꺼내 읽은 책의 목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말없이 벽난로 안 불을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지나가듯이 물었다.

"그런데 아까 네가 말한 것들 말이야. 그게 정말 좋아하는 증상이야?"

책의 목록을 내려다보던 헤르미온느가 여전히 시선을 그곳에 둔 채 눈썹을 치켜 올렸다가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도 그런 적 있어?"

릴리아나의 질문에 정신없이 깃펜을 움직이던 헤르미온느의 손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글쎄."

헤르미온느의 두 볼은 조금 붉어져 있었지만 릴리아나는 누군지 캐물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좋아한다고? ‘좋아해요’ 라고 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움직인 릴리아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놀랍게도 머리에서는 알맞은 단어를 찾게 되자 그 감정의 이름을 정의할 수 있었다. 릴리아나는 자신의 두 뺨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다리를 구부려 팔로 껴안은 다음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좋아해요, 교수님.'

완벽한 문장을 찾은 단어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퐁퐁 터지며 간질간질 하면서도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 릴리아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두 눈을 꼭 감았다. 언뜻 보인 그녀의 뺨이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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