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40화 (4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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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잔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의 잔-(11)

"미안해, 세드릭."

릴리아나가 거절의 말을 내뱉자 세드릭이 조급하게 말했다.

"왜?"

"같이 가자고 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미안해."

"왜? 함께 가기로 한 사람도 없다면서."

"리타 스키터."

세드릭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잠시 말이 없던 세드릭이 입을 열었다.

"……전에는 딱히 상관없다고 했었잖아. 사람들이 우리가 사귀고 있다고 생각해도 생관 없다고 그랬었잖아.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조금은 절박하게 말을 하던 세드릭이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인정하기 싫다는 듯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 사람 때문이니?"

"뭐?"

세드릭의 말에 릴리아나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애써 태연한 얼굴을 했다.

"……스네이프 교수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릴리아나는 일단 잡아떼기로 결정했지만 세드릭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릴리, 알고 있어."

말없이 세드릭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포기한 듯 작게 속삭였다.

"……어떻게 알았어?"

세드릭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어쩌다 보니까."

세드릭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릴리아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둘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릴리아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 헤르미온느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것을 세드릭에게 들키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른 애들도 알고 있어?"

"아니, 아마 나만 알고 있을 거야. 절대 말하지 않을게."

세드릭이 릴리아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하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잠시 세드릭의 얼굴에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감도는 것 같았지만 이내 그 표정은 사라졌다.

"……혹시 나와 비밀 동맹을 맺을 생각 없니?"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릴리아나가 어리둥절한 듯 물었다.

"사실 나도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애가 있거든."

"정말? 누군데?"

릴리아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세드릭이 미소를 지으며 릴리아나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비밀이야."

"뭐야! 치사해!"

릴리아나가 세드릭이 헝클어뜨린 머리를 정리하며 투덜거리자 세드릭이 씩 웃었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고 있는 여자애는 정말 예쁘게 생겼어. 특히 눈이 정말 예뻐. 다정해 보이면서도 반짝반짝 거리는데 그게 정말 예뻐. 조금 둔한감이 없지 않은데 그것도 귀엽고 인기가 너무 많거든. 호그와트에 다니는 남자애들은 한 번씩 그 애를 좋아했을 정도니까……. 그래서 나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아."

"세드릭이 왜? 세드릭은 호그와트 챔피언인데다가 인기도 많고 잘생기기까지 한 걸?"

릴리아나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자 세드릭이 씁쓸한 듯 릴리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야."

"힘내 세드릭. 너 같은 남자를 몰라보는 여자애가 뭘 모르는 거야."

릴리아나가 세드릭의 팔을 토닥여주며 위로해주자 세드릭이 그녀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요즘은 그 여자애가 나를 알게 됐어. 서로 인사하고 안부 묻는 정도까지 발전했으니까……. 따로 외출을 하기도 했었고 산책도 하기도 했고."

"정말 잘됐다 세드릭. 그 여자애는 네가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

"아니. 모르고 있는 것 같네."

세드릭이 애써 정리한 릴리아나의 머리를 또 헝클어뜨렸다. 릴리아나가 밉지 않게 얼굴을 찡그리며 세드릭의 손을 아프지 않게 쳐냈다.

"그래서 말인데 나와 함께 무도회에 가자. 너는 나와 함께 무도회에 가서 난 언제든지 다른 남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걸 보여줘서 질투를 유발하는 거고, 나는 너와 함께 무도회에 가서 나도 다른 여자를 파트너로 데려올 수 있는 인기 있는 남자라는 걸 표현해서 질투를 유발하는 거지. 어때?"

"음……."

릴리아나가 고민하자 세드릭이 그녀를 재촉했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해리나 론과 같이 가게 될 거잖아? 그렇게 된다면 리타 스키터가 이번에는 '호그와트의 팜므파탈 릴리아나 퀸' 이런 식으로 기사를 내지 않을까? 그럴 바에는 나와 함께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아?"

"그러려나?"

릴리아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세드릭이 믿음직한 목소리로 조금 어색한 듯 구슬리듯이 말했다.

"어차피 사람들이 나와 사귀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도 상관없다고 했었잖아."

"……알겠어."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이 기쁜 듯 활짝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비밀 동맹이 결성되었네. 같은 편끼리 잘해보자."

"그래."

릴리아나가 세드릭이 내민 손을 잡자 그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악수를 했다. 릴리아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나와 함께 무도회에 가서 네가 이렇게 인기 있는 남자다를 표현하고 나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고백해야지."

"와!"

릴리아나가 흥미로운 듯 두 눈을 반짝거리며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꼭 잘되길 바랄게, 세드릭."

"고마워 릴리."

세드릭이 어쩐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동안 호그와트의 교수님들은 엄청난 양의 숙제를 내 주었지만 당연 그 중에서 압도적인 양을 자랑하는 것은 스네이프였다. 또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호그와트 내에는 세드릭 디고리가 릴리아나 퀸과 크리스마스 무도회에 가게 되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스네이프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더욱 심술궂어졌는데, 사소한 일로 점수를 깎는 것은 물론 온갖 트집을 잡아 수업시간마다 우는 사람이 한명씩 나오도록 만들었다.

그리핀도르 탑은 연휴가 시작되기 전만큼이나 수많은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심지어 그리핀도르 탑이 약간 비좁아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기숙사의 학생들이 평상시보다 훨씬 더 야단스럽게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날이 되었다. 점심때 즈음 아무도 없는 기숙사 침실에서 일어난 릴리아나가 침대 발치에 잔뜩 쌓여 있는 상자 더미를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풀기 시작했다. 세바스찬이 보낸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딱 달라붙는 귀걸이 선물을 보고 거울에 대보며 좋아하던 릴리아나가 침실로 들어오는 헤르미온느에게 인사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헤르미온느."

"메리 크리스마스, 릴리."

"해리와 론이 눈싸움을 하자고 하던데 같이 갈래?"

"좋아!"

릴리아나는 재빨리 위즐리 부인이 보내준 에메랄드 색 스웨터와 바지를 입고 털 부츠까지 신은 후 하얀 눈이 덮여 있는 운동장으로 나갔다. 덤스트랭과 보바통 학생들이 성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깊은 굴을 파놓은 것 이외에는 전혀 손대지 않은 채 하얀 눈은 그대로 높이 쌓여 있었다. 해리와 론과 릴리아나는 눈싸움을 했지만 헤르미온느는 그냥 곁에서 구경만 했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되자, 무도회를 준비해야 한다며 헤르미온느는 릴리아나와 함께 기숙사로 올라가야겠다고 말했다.

"뭐라고? 세 시간이나 필요하단 말이야?"

"벌써 다섯 시야?"

릴리아나가 놀라며 손목시계를 보는 바람에 프레드가 던진 눈덩이에 머리를 맞고 말았다.

"세상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조금 빠듯할지도 모르겠네."

"빠듯하다고?"

해리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도대체 누구랑 가는 거야?"

론이 헤르미온느의 등 뒤에 대고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릴리아나와 함께 성으로 들어가는 돌계단 위로 사라져 버렸다.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는 기숙사로 돌아와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예상대로 네 기숙사의 여학생들로 빼곡했다.

"늦을지도 모르겠네."

헤르미온느가 초조한 듯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간단하게 씻은 그들은 다시 기숙사 침실로 올라가 마법으로 머리를 말렸다. 순식간에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머리를 만족스러운 듯이 빗어 내린 릴리아나가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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