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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잔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의 잔-(12)
"헤르미온느! 미안한데 지퍼 좀 올려줄래?"
릴리아나가 헤르미온느에게 등을 보이며 부탁했다. 헤르미온느가 릴리아나의 지퍼를 올려주고 있을 무렵, 지니가 등장했다. 연분홍색의 탑 드레스를 입고 있는 지니는 매우 아름다웠다.
"안녕 언니들."
"안녕 지니."
"안녕."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의 인사를 받으며 침대에 걸터앉은 지니는 가지고온 커다란 파우치를 열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수없이 많은 화장품들의 모습에 릴리아나가 흥미로운 듯이 지니의 옆에 앉았다. 지니는 가지고 온 손거울을 들고 얼굴에 이것저것 찍어 바르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블러셔. 언니는 화장 안 해?"
"세바스찬이 보내주긴 했는데……. 어떻게 사용하는건지 잘 모르겠어. 직접 해보긴 했는데 회색 숙녀가 새로 생긴 친구인줄 알고 찾아올 것 같더라."
릴리아나의 말에 쿡쿡 웃음을 터트린 지니가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나 화장 끝나고 나서 언니도 해줄게. 그동안 머리라든지 다른 거 하고 있어."
릴리아나는 순순히 지니의 말을 따르며 세바스찬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준 화려한 느낌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귀에 딱 달라붙는 꽃모양의 작은 귀걸이를 찼다. 헤르미온느는 머리에 손쉽게 윤기가 나는 마법 약을 상당히 많이 바르고 있었다.
장신구를 모두 하고 나자 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릴리아나는 화관을 까먹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마법으로 안개꽃들과 들꽃 같은 느낌의 작은 초록색 잎사귀들이 붙어 있는 꽃들을 만들어, 초록색 테이프를 감아둔 철사에 꽃들을 솜씨 좋게 엮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꽃들을 만지작거리던 릴리아나는 철사 끝에 새하얗고 하늘거리는 새하얀 리본을 달고 자신의 결과물을 만족스러운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헤르미온느, 꽃이 시들지 않는 마법 좀 걸어줘."
"알겠어."
부스스한 머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헤르미온느가 릴리아나가 만든 화관을 받아들고 가볍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화관을 탁 쳤다.
"이제 됐어."
"고마워, 헤르미온느."
화관을 받아들은 릴리아나는 하얀색 리본을 예쁘게 묶더니 머리에 썼다.
"어때?"
"예뻐! 언니의 조금 구불거리는 머리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정말?"
릴리아나가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화장을 모두 마쳐 평소보다 더 아름다워진 지니가 릴리아나에게 손짓했다. 릴리아나가 쪼르르 달려가 지니의 옆에 앉자 그녀는 릴리아나의 얼굴에 이것저것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형형색색의 것들을 한참동안 발라대었다. 커다란 파우치에 한가득 있던 화장품들 모두 쓰듯이 한 지니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울을 건네주었다.
"우와……."
릴리아나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이 터져나왔다. 그녀가 웃거나 눈을 깜빡거릴 때 마다 매혹적인 거울 속의 여인은 유혹을 하는 것처럼 웃거나 눈을 깜빡였다.
"정말 대단해 지니."
헤르미온느도 지니의 결과물을 보고 감탄했다. 평소의 릴리아나가 아직 봉우리진 백합 같았다면 지금은 활짝 만개한 백합 같이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대단하다 지니. 그런데 우리 8시까지 가야하지 않아? 지금 7시 40분인데?"
"어떡해!"
헤르미온느의 말에 지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짙은 분홍색의 구두를 신었다. 릴리아나 역시 단순한 하얀색의 구두를 신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한 번 바라본 뒤 헤르미온느와 지니와 함께 기숙사를 나섰다.
현관 복도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연회장의 문이 활짝 열리는 8시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서로 다른 기숙사에서 파트너를 구한 학생들은 혼잡한 사람들 틈을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상대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럼 나 먼저 가볼게."
헤르미온느가 양 볼을 조금 붉히면서 인사를 했다. 지니는 금방 네빌을 찾아 떠났고 홀로 남은 릴리아나가 세드릭을 찾으려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릴리."
누군가 릴리아나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뒤를 돌아보자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세드릭이 있었다.
"안녕 세드릭."
"오……. 안녕 릴리."
세드릭은 릴리아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며 인사했다. 세드릭의 귀가 붉어져 있었다.
"너……. 오늘 정말 예쁘다. 요정 같아."
세드릭이 조금 말을 더듬었다.
"고마워."
마침내 육중한 현관문이 열리자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덤스트랭의 학생들이 카르카로프 교수와 함께 입장하고 있었다. 빅터 크룸이 제일 앞에 서 있었는데 그 옆에는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헤르미온느가 서 있었다. 세드릭이 놀라 물었다.
"저 애 헤르미온느니?"
"맞아."
"세상에……."
세드릭은 무척이나 놀란 것 같이 보였다.
"챔피언들은 이리로 와요!"
맥고나걸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갈까?"
세드릭이 얼굴을 붉히며 릴리아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릴리아나가 세드릭의 손을 잡자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그들이 지나갈 수 있게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길을 내 주었다.
붉은 격자무늬의 드레스를 입고 보기 흉한 엉겅퀴 다발이 테에 둘러져 있는 모자를 쓴 맥고나걸 교수는 챔피언들에게 다른 학생들이 모두 연회장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문 한쪽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전부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 다음에 챔피언들이 줄을 지어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플뢰르 델라쿠르와 로저 데이비스는 바로 문 앞에 서 있었다. 플뢰르와 파트너가 되는 행운을 누린다는 사실에 반쯤 넋이 나간 데이비스는 단 한 순간도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붉어진 얼굴의 해리와 초 챙도 릴리아나와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릴리아나가 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해리, 안녕 챙."
"와……. 안녕 릴리."
해리가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인사했다. 초 챙은 세드릭과 릴리아나를 바라보더니 시선을 내리며 쌀쌀맞게 그들에게 인사했다.
학생들이 모두 다 자리에 앉자 맥고나걸 교수는 챔피언들과 그들의 파트너에게 한 쌍씩 줄을 지어서 자기 뒤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간 그들이 상석에 있는 커다란 둥근 테이블을 향해 걸어가자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제히 박수를 쳤다. 둥근 테이블에는 심판들이 앉아 있었다.
연회장의 벽은 온통 반짝거리는 은빛 성에로 뒤덮여 있었고 반짝반짝 별이 빛나는 검은 천장에는 겨우살이 가지와 아이비 덩굴로 만든 수백 개의 화환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커다란 기숙사 테이블은 어디론가 치워지고 그 대신에 열두어 명씩 앉을 수 있는 수백 개의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등잔이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챔피언들이 상석 테이블로 가까이 다가오자 덤블도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카르카로프는 크룸과 헤르미온느가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밤 커다란 노란색 별이 그려진 밝은 보라색의 옷을 입고 있던 루도 베그만은 어떤 학생들 못지않게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항상 입고 다니던 검은색 비단옷 대신 라벤더 색깔의 하늘거리는 비단옷으로 바꾸어 입은 맥심 부인은 예의 바르게 박수를 보냈다. 크라우치 대신 온 것인지 퍼시 위즐리는 새로 구입한 군청색 양복을 입고 점잔을 빼고 앉아 있었다.
챔피언들과 파트너가 테이블 앞에 도착하자 세드릭은 릴리아나에게 의자를 빼주었다. 조그맣게 감사의 인사를 한 릴리아나가 의자에 앉자 세드릭이 그 옆에 앉았다. 릴리아나는 무의식적으로 스네이프를 찾으며 연회장 안을 둘러보았지만 어디서도 스네이프는 찾을 수 없었다.
반짝거리는 황금 접시에는 아직까지 아무런 음식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테이블 위에 작은 메뉴판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릴리아나는 자기 앞에 놓인 메뉴판을 집어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중을 드는 사람의 모습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앞에 놓인 메뉴판을 신중하게 한참 내려다보더니 접시에 대고 분명하게 말했다.
"폭 찹!"
그러자 접시 위에는 순식간에 폭 찹이 나타났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머지 사람들도 덤블도어가 음식을 주문하는 광경을 보고 똑같이 자신의 접시를 향해 음식을 주문했다. 세드릭은 이것저것 음식을 잔뜩 주문하더니 모두 릴리아나 쪽으로 몰아주었다.
"나 이렇게 많이 못 먹어."
"먹고 살 좀 쪄."
"그래도 이렇게 많이는 못 먹는다니까."
세드릭이 릴리아나에 준 음식의 양은 성인 남성 둘이 먹을 만한 양이었다. 릴리아나는 음식의 반을 덜더니 세드릭의 접시에 넘겨주었다.
"고마워."
세드릭이 인사를 하더니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에서 빅터 크룸이 헤르미온느의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발음하는 것이 들렸다. 퍼시와 함께 앉아 있던 해리와 눈이 마주친 릴리아나가 생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해리의 옆에 있던 초 챙이 릴리아나를 쌀쌀맞게 외면했다.
식사가 다 끝나자 덤블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학생들에게 일어서라고 말했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요술지팡이를 흔들자 모든 테이블이 일제히 뒤에 있는 벽으로 날아가고 텅 빈 마루만이 남았다. 그러자 덤블도어는 오른쪽 벽을 따라서 무대가 솟아오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드럼과 기타, 루트, 첼로 그리고 백파이프 몇 대를 무대 위에 설치했다.
곧이어 '운명의 세 여신'이 열광적인 환호성 속에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모두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헤쳤으며 맵시 있게 뜯어지고 찢어진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운명의 세 여신이 각자 악기를 집어 들었을 때, 세드릭이 릴리아나의 손을 잡으며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릴리아나가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세드릭도 멋쩍은 듯이 씩 웃더니 그녀를 환하게 조명이 밝혀진 무대로 이끌었다. 운명의 세 여신은 느리고 애수 어린 곡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세드릭과 춤을 추던 릴리아나는 수많은 학생들 뒤에서 스네이프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검은 옷과 검은 망토, 그리고 잘 정리된 검은 머리를 보자 릴리아나는 순간 스네이프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갑자기 가슴이 콩콩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스네이프의 모습은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그르르 돌고 나자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