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42화 (4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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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잔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의 잔-(13)

백파이프가 떨리는 소리를 내며 마지막 곡조를 연주했다. 운명의 세 여신이 연주를 마치자 연회장은 다시 한 번 학생들이 지르는 환호성 소리로 가득 찼다. 멀리서 해리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초 챙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힘들지는 않아?"

발갛게 상기된 릴리아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세드릭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전혀."

"그래? 그럼 힘들어서 쓰러질 때 까지 춰볼까?"

"누가 먼저 지치나 대결하는 거야?"

"응."

세드릭이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말했다.

"좋아, 기대하라고."

릴리아나가 승부욕을 불태우며 호기롭게 외치자 운명의 세 여신이 이번에는 좀 더 빠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번 음악 좋다."

릴리아나가 빠르게 발을 움직이며 춤을 추자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빙글빙글 돌 때마다 치마가 발레리나의 것처럼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효과는 있는 것 같아?"

"뭐가?"

"네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널 좀 다르게 보는 것 같아?"

릴리아나의 말에 세드릭이 조금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응? 아, 아, 아마? 그랬으면 좋겠네."

세드릭이 릴리아나의 허리를 잡고 돌면서 말했다.

"여기 있어? 참석 했어? 우리 근처에 있어?"

릴리아나가 세드릭의 어깨 뒤로 여자 아이들을 흘끗흘끗 바라보며 물었다.

"응. 가까이에 있어."

"누구지?"

릴리아나가 주변에 있는 여자 아이들을 살피며 속삭였다.

"헤르미온느……는 아닐 것 같고……. 패르바티? 파드마? 걔네들은 예쁘니까. 맞아?"

"아니야."

"그래? 그럼……. 설마 팬시 파킨슨은 아니겠지?"

"절대 아니야."

"그래? 그럼 누구지? 초 챙?"

입을 꾹 다문 세드릭은 릴리아나를 한 바퀴 빙글 돌리며 대답을 피했다. 릴리아나가 무언가 잡았다는 듯이 씩 웃으며 세드릭의 대답을 재촉했다.

"맞아? 초 챙이야?"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그래? 그럼 도대체 누구지……."

릴리아나가 주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자아이들을 흘끗거리는 동안 음악이 끝이 났다. 그녀가 계속해서 주변 여자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부를 기세자, 세드릭이 황급히 물었다.

"좀 덥지 않니? 뭐라도 좀 마시자."

"벌써 패배를 인정하는 거야?"

"이건 휴식시간이야. 퀴디치를 할 때도 타임아웃을 신청할 수 있다고."

세드릭이 조금 억지를 부리듯 말하자 릴리아나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마실 것을 가지러 간 자리에서는 헤르미온느와 론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너……. 너는……. 적과 내통을 하고 있는 거야. 그게 바로 지금 네가 하는 짓이라고!"

헤르미온느의 입이 딱 벌어졌다. 릴리아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함부로 끼어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을 지켜보았다.

"바보같이 굴지 마! 적이라니! 솔직히 말해서 크룸이 여기 온 것을 보고 제일 흥분한 사람이 누구였지? 그의 사인을 받고 싶어 했던 사람이 누구였어? 기숙사에 크룸의 인형을 세워 놓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말해 봐!"

하지만 론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너희 둘이 도서관에 있을 때, 그 자식이 너한테 파트너가 돼 달라고 신청한 모양이지?"

"그래, 그랬어. 그게 뭐 어때서?"

헤르미온느의 붉은 두 뺨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크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한 거니?"

"아니야, 그렇지 않아. 만약 네가 정말로 알고 싶다면……. 크룸은, 크룸은 나에게 말을 걸려고 날마다 도서관에 찾아왔었다고 말했어. 하지만 그동안 용기를 내지 못했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낸 헤르미온느는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와우……."

세드릭이 작게 중얼거리자 헤르미온느와 론의 시선이 세드릭에게 쏠렸다. 세드릭은 당황해서 손을 내저으며 근처에 있던 버터 맥주잔을 집어 들어 릴리아나에게 건넸다.

"내가 적과 내통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럼 릴리에게도 똑같은 말을 해보지 그러니!"

헤르미온느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자 론은 그 말을 듣지 않은 것처럼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 녀석은 카르카로프의 학생이야. 그렇잖아? 그 녀석은 네 주위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었어…….그 녀석은 단지 해리에게 접근하려고 했던 거야. 해리에 대해서 자세한 정보를 얻으려고 말이야. 아니면 해리의 약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해서……."

헤르미온느는 마치 론으로부터 뺨이라도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크룸은 해리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어. 단 한마디도……."

"그렇다면 크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황금알의 의미를 알아내는 걸 너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속셈이었겠지! 너희 두 사람은 그 안락하고 조그마한 도서관 의자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었을 거야."

론이 번개처럼 공격의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절대로 그 황금알의 의미를 알아내는 걸 도와주지 않았어! 절대로 말이야.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나도 해리가 이 시합에서 반드시 승리하기를 바래. 해리도 그걸 알고 있어."

헤르미온느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넌 참 웃기는 방식으로 그걸 보여주고 있구나. 차라리 스네이프가 무릎 꿇고 사과했다고 하지 그러니? 난 오히려 그걸 믿을 것 같은데."

론이 또다시 빈정거렸다. 안절부절 못하며 헤르미온느와 론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릴리아나가 론이 너무 지나치게 나가자 론을 말리려고 했지만 헤르미온느의 말이 더 빨랐다.

"이 시합은 다른 나라의 마법사들을 사귀고 서로 다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열리는 거야!"

"아니, 그렇지 않아! 이건 이기기 위한 거야!"

론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제 주위 사람들이 두 사람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론!"

릴리아나가 론의 옷깃을 끌어당기며 제지했지만 론은 그녀의 손을 세게 뿌리쳤다. 그 바람에 넘어질 뻔한 릴리아나를 세드릭이 잡아주자 그녀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왜 어서 가서 빅키나 찾아보지 그러니? 그 자식은 네가 지금 어디 있는지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을 거야."

"자꾸만 빅키라고 하지 마!"

헤르미온느가 씩씩거리며 외치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스네이프 교수님은 나에게 사과했어!"

헤르미온느의 말에 론은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을 바라보며 헤르미온느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소리쳤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말이야!"

그러더니 헤르미온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폭풍처럼 무대를 가로질러서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릴리아나의 마음속에서 차가운 분노 사이로 얼떨떨함이 섞여 들어갔고, 얼떨떨함이 지나가자 왠지 모를 기쁨과 안도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지만 론을 보자 다시 그 마음은 사라졌다. 릴리아나가 쌀쌀맞게 입을 열었다.

"나에게도 적과 내통한다고 할 거니?"

"릴……."

릴리아나는 론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헤르미온느의 뒤를 쫓아가버렸다. 뒤에서 세드릭이 론에게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론은 불만스럽게 웅얼거리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헤르미온느!"

정원으로 나온 릴리아나가 헤르미온느를 불렀다. 정원은 온통 아름다운 장미꽃 덤불과 멋지게 장식된 구불구불한 오솔길과 커다란 석상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어디에서도 헤르미온느는 찾을 수 없었다. 릴리아나는 초조한 듯이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한참동안 걸어갔다. 하지만 얼마 걷지도 않아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이 소동을 피우는지 모르겠군, 이고르."

"세베루스, 너는 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굴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잔뜩 낮춘 카르카로프의 목소리는 불안에 떨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어. 나는 아주 심각하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단 말이야. 나는 그걸 부인할 수가 없어……."

"그럼 달아나도록 해."

스네이프가 단호하게 말했다.

"달아나……. 내가 그럴듯한 핑계를 댈 테니까. 하지만 나는 호그와트에 남을 거야."

스네이프와 카르카로프가 모퉁이를 돌아섰다. 갑자기 스네이프가 요술지팡이를 꺼내더니 근처에 있던 장미꽃 덤불을 힘껏 후려쳤다. 스네이프는 잔뜩 심술이 난 표정이었다. 꽃봉오리가 가득한 덤불 속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그림자들이 빠져나왔다.

"포우셋! 래번클로 10점 감점이다!"

스네이프가 재빨리 도망치고 있는 여학생에게 소리쳤다.

"스테빈스! 후플푸프도 10점 감점이다!"

여학생의 뒤를 따라서 한 남학생이 황급히 달아났다. 스네이프는 불만스러운 듯이 달아나는 검은 그림자들을 바라보다가 릴리아나와 눈이 마주쳤다.

"……너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그게……."

릴리아나의 얼굴을 본 카르카로프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새하얘지더니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헤르미온느를 찾으려고……. 그런데 못 찾겠어서……."

릴리아나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하자 스네이프가 미간을 찌푸렸다. 요정의 불빛에 비친 스네이프의 얼굴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갑자기 부끄러워진 릴리아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춥지는 않나."

스네이프가 무뚝뚝하게 물었지만 릴리아나는 그 안에 담긴 걱정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니 드레스인데다가 팔과 어깨부분이 레이스로 되어 있어서 크리스마스에 입기에는 매우 추운 드레스였다. 갑자기 추위를 깨달은 듯이 릴리아나가 몸을 부르르 떨며 손으로 팔을 비볐다. 스네이프는 자신의 망토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망토에서는 은은한 비누향이 났다. 어쩐지 볼은 더욱 붉어지고 있었다.

"이런 한겨울에 짧은 드레스를 입을 생각을 하다니 추위도 많이 타는데 왜 그런 결정을 했나."

스네이프가 못마땅한 듯이 훤히 드러난 릴리아나의 하얀 다리와 목을 바라보았다. 릴리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은은한 비누향이 나는 망토를 끌어당겼다.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겠다."

"하지만 세드릭에게 아직 간다고 얘기도 안했는걸요?"

스네이프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더니 몸을 휙 돌렸다. 그 모습이 어쩐지 자신을 떠나려는 것 같아 릴리아나는 다급하게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헤르미온느에게 사과하셨다면서요."

효과가 있었는지 스네이프의 몸이 멈칫했다. 릴리아나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수줍은 듯이 말했다.

"……고마워요, 세베루스 교수님. 역시 교수님은 좋은 분이시군요."

"……실망했다, 못된 분이시다 잘만 내뱉더니 이제는 좋은 분이라고 하는구나."

스네이프가 조금 툴툴거리듯 말했지만 릴리아나가 활짝 웃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스네이프의 귀가 붉어져 있었다. 정원에는 연회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은은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문득 릴리아나는 장미 정원이 춤추기 좋은 매우 로맨틱한 분위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춤추실래요?"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에 릴리아나가 당황하며 입을 가렸다.

"아니 아니, 잊어주세……."

"좋다."

뜻밖의 대답에 릴리아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간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스네이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지만 스네이프는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말해주었다.

"좋다고 했다."

릴리아나의 얼굴이 이젠 완전히 달아올랐다. 릴리아나가 간질간질하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자 스네이프가 손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던 릴리아나가 스네이프의 단단한 손을 잡았다.

그들은 음악에 맞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간간히 부딪히는 손목과 숨결, 그리고 체온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세드릭과 춤출 때 잠시 상상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느린 음악이었지만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버렸다. 어느새 백파이프가 아련한 음을 남기며 음악을 마치자 스네이프와 릴리아나가 멈춰 섰다.

어쩐지 떨어지기가 아쉬웠다.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의 가슴팍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흔들리는 검은 눈과 녹색 눈이 얽혔다. 잠시 동안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둘은 말없이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릴리아나의 얼굴을 홀린듯 정신없이 바라보던 스네이프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더니 천천히 릴리아나의 입술을 향해 다가갔다. 흔들리는 녹색 눈으로 다가오는 스네이프를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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