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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잔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의 잔-(15)
릴리아나는 잠시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스네이프가 기분이 나쁠 상황은 없었다. 릴리아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가정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교수님……. 화나셨어요?"
하지만 스네이프는 그녀의 물음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어보았다.
"망토를 너무 늦게 돌려드려서 그런 건가요?"
스네이프가 마침내 망토에서 시선을 떼고 서류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니 나가보아라."
"교수님, 아님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나가라 하지 않았느냐!"
릴리아나가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서러워져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이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스네이프는 서류를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다시 딱딱한 목소리로 돌아와 말했다.
"제발 그냥 나가라."
릴리아나가 주춤거리며 무어라 대답하지 몰라하자, 스네이프가 쐐기를 박듯 말을 덧붙엿다.
"부탁하마."
"……제가 뭘 잘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죄송해요. 그러니까 제발 말해주세……."
"나는 나가라고 했다."
스네이프가 차갑게 말했다. 스네이프와 망토를 번갈아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몸을 돌려 지하 감옥을 뛰어나갔다. 눈앞이 뿌옇게 변했던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는 듯 릴리아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숨이 턱 막히도록 뛰며 입술을 꽉 깨물고 손으로 눈물을 대강 닦은 릴리아나는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부딪혀 버렸다. 크게 바닥을 구른 릴리아나가 부딪힌 상대를 바라보았다.
"……세드릭?"
"아야 아파라……. 괜찮아 릴리?"
세드릭이 아픈지 잔뜩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허리를 문질렀다.
"미안해. 오는 걸 못 봤어."
"나는 괜찮아. 다친 덴 없는……많이 아파?"
세드릭이 릴리아나의 우는 얼굴을 보고 놀라 물었다. 릴리아나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많이 아팠지? 어떡하지? 폼프리 부인에게 찾아가야 하나……."
먼저 부딪힌 것은 릴리아나였는데 오히려 세드릭이 그녀를 일으켜주며 미안해하고 있었다. 릴리아나는 세드릭의 손을 잡은 채 뻐근한 꼬리뼈 부근을 문지르며 일어났다. 세드릭이 바닥에 떨어져있는 릴리아나의 가방을 주워 건네주었다.
"그럴 필요 없어. 고마워 세드릭."
릴리아나가 가방을 다시 메며 말했다.
"그래도 병동에 가 보는 게……."
세드릭이 여전히 눈물이 고여 있는 릴리아나의 눈을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정말 그럴 필요 없어. 이건 그냥……"
말을 하던 릴리아나가 입을 딱 다물었다가 잠시 후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무튼 다친 곳은 없어. 정말이야."
"정말?"
세드릭이 릴리아나를 훑어보면 다친 곳을 알 수 있다는 듯이 꼼꼼히 살펴보자 릴리아나가 가방을 고쳐 매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다음 수업 가야하지 않아?"
"맞다! 맥고나걸 교수님의 수업인데! 너는 다음 수업이 뭐야?"
"나는 끝났어."
"그리핀도르 탑까지 데려다주고 싶은데 나는 다음 수업이 있어서 말이야. 미안해, 릴리. 아프게 만들기까지 했는데."
"아니야 난 괜찮아. 게다가 데려다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걸."
"그럼 저기 복도까지만 같이 가자."
세드릭이 씩 웃으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릴리아나가 손수건을 받아 남아있는 눈물을 모두 닦아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온 거야?"
세드릭의 물음에 릴리아나가 잠시 가방끈을 꽉 쥐었다가 풀며 말했다.
"별 것 아니었어."
"그러니?"
릴리아나의 말에 세드릭은 별 의심 없이 넘어갔다.
"두 번째 시험이 다가오네."
릴리아나가 화제를 돌리자 세드릭이 가방을 고쳐 매며 말했다.
"그러게."
"두 번째 시험에는 뭐가 나올까?"
그녀가 궁금한 듯이 묻자 세드릭이 의아한 듯 물었다.
"혹시 아직도 해리가 황금 알에 대한 실마리를 못 풀었니?"
"응."
"그래?"
세드릭이 조금 실망한 듯이 말했다. 그들은 어느새 복도 끝에 도착했다. 릴리아나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여기. 고마웠어."
"이거가지고 뭘."
세드릭이 씩 웃으며 손수건을 받았다.
"잘 가. 릴리!"
"안녕."
세드릭은 손목시계를 한 번 쳐다보더니 시간이 촉박한 듯 급히 뛰어가기 시작했다. 릴리아나는 터덜터덜 걸어 그리핀도르 탑으로 올라왔다. 북적북적한 휴게실 사이에서 구석에 앉아 있는 헤르미온느를 발견한 릴리아나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돌려드리고 왔어?"
"……응."
"왜 이렇게 시무룩해?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릴리, 너 울었어?"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던 헤르미온느가 릴리아나의 빨갛게 부은 눈과 코를 발견하고 놀란 듯 입을 딱 벌렸다.
"별 일 없었……."
아무 일 없었다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녀가 말을 멈추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자 헤르미온느가 당황하여 릴리아나의 팔을 잡았다.
"올라가서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뚝뚝 흘리자 헤르미온느는 릴리아나의 어깨를 감싸 토닥이며 기숙사 침실로 올라갔다.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이야. 말해 봐."
"망토를……. 돌려주러 갔는데……."
릴리아나가 훌쩍거렸다. 미간을 찌푸린 헤르미온느는 릴리아나의 손을 꼭 잡아준 채로 걱정스러운 듯 참을성 있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교수님이……."
릴리아나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더듬더듬 방금 있었던 일은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헤르미온느는 웃는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릴리아나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스네이프가 갑자기 왜 그럴까……. 설마 양심이……. 아니 그럼 진작, 아니 처음부터……."
헤르미온느가 진지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릴리아나는 손수건에 콧물을 흥 푼 다음 물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혹시 교수님이 나를 싫어하시는 걸까?"
릴리아나가 코를 푼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설마. 오히려 교수님은 너를……."
말을 하던 헤르미온느는 입을 다물고 릴리아나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나를 뭐?"
"릴리, 내가 교수님이 다시 너를 보게 될 방법을 알려줄까?"
"응?"
릴리아나가 코를 훌쩍이며 되물었다.
"내가 도와줄게."
헤르미온느의 눈이 반짝였다. 릴리아나는 어쩐지 헤르미온느의 얼굴에서 흥미진진함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안녕 릴리."
연회장에서 만난 세드릭이 반갑게 릴리에게 인사했다.
"안녕."
평소와 똑같이 인사를 하던 릴리아나는 옆에서 헤르미온느가 옆구리를 쿡 찌르자 자기도 모르게 상석에 앉아있는 스네이프를 흘끗 바라본 뒤, 활짝 웃으며 다시 인사했다.
"안녕 세드릭!"
평소와 다르게 격한 반응에 세드릭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릴리아나는 아몬드모양의 녹색 눈을 반짝이며-세상을 구한 영웅을 보는 것 같았다- 세드릭을 만났다는 게 정말 기쁜 듯이 말했다.
"점심은 맛있게 먹었어?"
"나야 뭐……. 가리는 음식이 없으니까."
"그래?"
릴리아나는 활짝 웃으며 다음 말로 무엇을 꺼내야할지 머리를 굴렸다. 운 좋게도 세드릭의 친구가 멀리서 세드릭을 불렀기에 릴리아나는 어색하게 날씨 이야기를 꺼내려던 계획을 실천하지 않아도 되었다.
"미안해. 먼저 가볼게."
"안녕!"
릴리아나가 손을 흔들어주자 세드릭이 씩 웃으며 멀어져갔다. 근처에 앉아 있던 패르바티와 라벤더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역시 너희 그런 사이였던 거야?"
릴리아나는 대답을 피하며 그저 수줍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패르바티와 라벤더는 흥분하여 꺅꺅거렸다. 곁눈질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자 그녀는 식탁 밑으로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다.
이제 스네이프의 반응을 보기 위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꿈꾸는 소녀 같은 표정을 짓던 릴리아나가 상석을 바라보았다. 스네이프의 표정은 다른 아이들이 언제나 보던 표정과 같이 불쾌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스네이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뒤쪽에 있는 문으로 연회장을 나가버렸다.
스네이프가 나가자 표정을 싹 지운 릴리아나가 헤르미온느를 향해 속삭였다.
"잘 되고 있는 거야? 그냥 나가버리셨는데?"
"계획대로야. 아주 잘했어 릴리."
헤르미온느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마법의 약 시간이 되자 스네이프는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평소보다 더 매섭게 굴었기에 학생들은 조용히 마법 약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학생들이 조용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그리핀도르의 점수를 깎았다.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와 헤르미온느를 번갈아가며 눈치를 보았다. 이게 정말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욱 딱딱해지고 차가워지는 스네이프의 모습에 릴리아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지만 헤르미온느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 것인지 작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확실히 스네이프의 기분은 좋지 않은 것인지 슬리데린이 두 번째 시합에 대해 빈정거리는 것에도 점수를 깎아 버렸다. 나름 스네이프가 아끼던 말포이마저 감점을 당하자 교실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