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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잔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의 잔-(18)
"일단……. 미안해 릴리."
"뭐가?"
"내가 널 속였었어."
뜬금없는 세드릭의 사과에 릴리아나는 세드릭이 어떤 것을 속였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세드릭의 다음 말에 그 생각은 멈춰버렸다.
"좋아해."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릴리아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살짝 벌리자 세드릭은 예상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조금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좋아해, 릴리."
"하지만 넌……."
"널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해 왔어."
너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말을 하려던 릴리아나는 세드릭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세드릭이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지나쳐갔다.
'사람들이 너와 내가 이성적으로 엮였다고, 그러니까 사귀고 있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어?'
'사실 나도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애가 있거든.'
'아무튼, 내가 좋아하고 있는 여자애는 정말 예쁘게 생겼고 특히 눈이 예뻐. 조금 둔한감이 없지 않은데 그것도 귀엽고 인기가 너무 많거든.'
'그래도 요즘은 그 여자애가 나를 알게 됐어. 서로 인사하고 안부 묻는 정도까지 발전했으니까……. 따로 외출을 하기도 했었고 산책도 하기도 했고.'
'그 여자애는 네가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
'아니, 모르고 있는 것 같네.'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고백해야지.'
'네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널 좀 다르게 보는 것 같아?'
'응? 아……아마? 그랬으면 좋겠네.'
'여기 있어? 참석 했어? 우리 근처에 있어?'
'응. 가까이에 있어.'
"세……드릭……?"
릴리아나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세드릭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세드릭은 아무런 대답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이 상황이 정리가 되고 있었다.
"나는……."
"말하지 마, 릴리."
세드릭이 조금 슬퍼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따가. 조금 이따가 트리위저드의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나면 그때 말해줘."
세드릭은 릴리아나의 떨리는 녹색 눈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이더니 조금 머뭇거리며 다가가 릴리아나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럼 난 가볼게."
"……세드……."
세드릭은 릴리아나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재빨리 뛰어갔다. 뛰어가는 세드릭을 향해 손을 뻗었던 릴리아나는 힘없이 손을 내렸다. 멍하니 세드릭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릴리아나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관중석으로 향하였다. 복잡하고 열기로 가득한 관중석에서 헤르미온느와 론을 찾은 릴리아나는 힘없이 그들의 옆에 앉았다.
"세드릭이랑 무슨 얘기 했어?"
헤르미온느가 속삭이듯이 말했지만 릴리아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피했다. 조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하늘은 맑고 짙은 푸른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초저녁 별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그리드와 무디 교수, 맥고나걸 교수, 필리트윅 교수가 퀴디치 경기장으로 들어오더니 루도 베그만과 챔피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모자에 번쩍번쩍 빛나는 커다랗고 붉은 별을 달고 있었는데, 오직 해그리드만이 두더지 가죽조끼의 등판에 별을 달고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트리위저드 시합의 마지막 시험이 곧 시작됩니다! 먼저 현재까지의 점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1등은 호그와트의 세드릭 디고리 군과 해리 포터 군입니다. 두 사람은 85점으로 동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오자, 금지된 숲에서 새들이 어두운 밤하늘로 퍼드득 날아올랐다.
"2등은 80점을 기록하고 있는 덤스트랭의 빅터 크룸 군입니다."
또 다시 갈채가 터졌다.
"3등은 보바통의 플뢰르 델라쿠르 양입니다!"
박수갈채와 함께 보바통 학생들이 불어로 플뢰르를 향해 응원했다.
"좋습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출발합니다. 해리와 세드릭!"
루도 베그만이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드릭이 흘끗 뒤를 돌아보더니 작게 릴리아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릴리아나도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세드릭이 씩 웃어보였다.
"셋……. 둘……. 하나!"
루도 베그만이 짧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해리와 세드릭은 재빨리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흥분해서 소리를 치며 그들을 응원했다. 잠시 후, 루도 베그만이 두 번째로 호루라기를 불자 빅터 크룸이 미로 안으로 들어갔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루도 베그만이 마지막으로 호루라기를 불자 플뢰르 델라쿠르가 미로 안으로 들어갔다. 헤르미온느가 흥분해서 말했다.
"누가 이길까?"
"해리가 이겼으면 좋겠다."
론이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챔피언이 돌아올 때까지 흥분해서 누가 이길 것인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서 릴리아나만이 홀로 생각에 잠겼다.
세드릭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니! 세드릭이 직접 말해주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었다. 무언가 조금씩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어째서 세드릭이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 어째서 그런 말을 하였는지,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릴리아나는 입 안 여린살을 깨물며 세드릭이 사라진 미로를 바라보았다.
***
해리는 얼굴을 잔디밭에 묻으면서 쾅 하고 납작하게 떨어졌다. 아이들은 해리가 포트키와 세드릭과 함께 나타나자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지만,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해리랑 세드릭 좀 이상하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론에게 속삭였다. 열렬한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던 론은 해리와 세드릭의 이상함을 느끼고 박수 치던 것을 멈췄다.
"해리……? 세드릭……?"
릴리아나 역시 어리둥절하게 엎어져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해리와 세드릭이 일어나지 못하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내려가 보자."
그들은 불안한 얼굴로 경기장으로 내려갔다. 덤블도어가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불안한 눈길로 해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가 해리와 덤블도어를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오기 위해 서로의 어깨를 밀치면서 웅성거렸다.
"그 자가 돌아왔어요……. 그 자가……. 볼드모트가……."
해리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코넬리우스 퍼지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불쑥 나타났다.
"오, 세상에……. 디고리!"
코넬리우스 퍼지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덤블도어, 이 애 좀 보시오! 당장 병동으로 가야 하오!"
덤블도어가 황급히 세드릭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세드릭은 창백하게 질린 채로 거의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오, 미네르바! 디고리 군을 어서 병동으로 데리고 가요!"
덤블도어의 옆에 있던 맥고나걸 교수가 창백하게 질린 채로 피투성이가 된 세드릭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더니 둥둥 뜬 세드릭을 데리고 병동으로 갔다.
"해리는 병동으로 가야만 합니다! 해리는 부상을 당했어요. 덤블도어, 내가 해리를 데리고 가겠네. 내게 맡기게!"
"아니, 내가 직접 데리고 가는 게……."
"덤블도어, 에이머스 디고리가 달려오고 있네……. 이리로 오고 있단 말이야……. 자네가 직접 저들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해리, 거기 가만히 있거라."
헤르미온느와 론, 릴리아나는 해리의 주변으로 다가오려는 학생들 때문에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뻔한 릴리아나를 잡아준 론이 해리가 있는 쪽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해리가 사라졌어."
"병동으로 간 거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아니야, 방금 덤블도어 교수님이 해리보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단 말이야."
"뭐? 그럼 해리는 지금 어디 간 거야?"
헤르미온느가 놀라 다시 한 번 해리가 있던 자리를 살펴보았지만 그 자리에는 세드릭이 흘린 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교수님! 덤블도어 교수님!"
헤르미온느가 몰려있는 아이들을 뚫고 덤블도어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아이들은 빽빽하게 모여 있는 채로 헤르미온느에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론이 외쳤다.
"비키라고! 비켜!!"
론이 거칠게 아이들의 어깨를 밀치자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론을 노려보았다. 안절부절 못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릴리아나가 황급히 달려오는 스네이프를 발견하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교수님! 세베루스 교수님!"
"릴리아나……?"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의 성이 아닌 이름을 불렀지만 다급한 마음에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릴리아나가 빠르게 얘기를 했다.
"해리가 사라졌어요! 덤블도어 교수님이 해리에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해리가 사라졌어요! 해리는 지금 혼자 걷지도 못한 상태란 말이에요!"
다소 두서없는 릴리아나의 말을 알아들은 듯 스네이프는 쉽게 아이들 사이를 뚫고 성큼성큼 덤블도어에게 걸어갔다.
"덤블도어 교수님, 포터가 사라졌답니다."
스네이프의 말에 디고리 부부를 상대하고 있던 덤블도어가 뒤를 돌더니 해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디고리 부부에게 양해를 구한 덤블도어가 말했다.
"나와 함께 가지, 세베루스."
"저희도 가겠어요!"
헤르미온느가 외치자 덤블도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된다. 너희들은 병동으로 먼저 가 있으렴."
"하지만……."
론이 옆에서 거들었지만 덤블도어는 단호했다.
"가 있으렴. 가지,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릴리아나를 흘끗 바라본 다음 덤블도어와 함께 휘적휘적 가버렸다.
"……우선 병동에 가 있자."
릴리아나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헤르미온느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동에 도착한 그들은 피투성이가 된 앞치마를 매고 물이 가득담긴 대야를 가지고 나오던 폼프리 부인과 마주쳤다.
"부인, 세드릭은……."
"고비는 넘겼단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구나."
폼프리 부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성 뭉고 병원에 연락을 했단다. 이제 곧 사람들이 올 거야."
"세드릭은 어디 있나요?"
"디고리 군은 지금 만나면……."
말을 하던 폼프리 부인은 릴리아나와 세드릭 디고리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기사가 생각난 것인지 손가락으로 세드릭이 누워있는 침대를 가리켰다.
"저기. 맨 끝에 있는 오른쪽 침대에 있단다."
"감사해요."
릴리아나가 감사의 인사를 표한 뒤 세드릭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세드릭은 마치 피가 모두 빠져나간 창백한 시체 같았다. 릴리아나가 세드릭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곧 이어 헤르미온느와 론이 따라 들어와 그녀의 옆에 앉았다.
"괜찮겠지?"
헤르미온느가 생각보다 심각한 세드릭의 상태를 보고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말에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에 위즐리 부인과 빌이 병동 안으로 들어왔다.
"해리는 어디 있니?"
"잘 모르겠어요."
론이 힘없이 대답했다.
"세상에! 해리는 혼자 걷지도 못하는 것 같던데!"
위즐리 부인이 걱정스러운 듯 말하더니 창백하게 누워있는 세드릭을 발견하고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때 덤블도어와 해리, 시리우스가 병동 안으로 들어왔다. 위즐리 부인은 비명이라도 지를 듯이 입을 딱 벌렸지만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허둥지둥 해리에게 달려갔다.
"해리! 오, 해리!"
하지만 덤블도어가 재빨리 위즐리 부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몰리."
덤블도어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잠깐만 내 말을 들어 주시오. 해리는 오늘 밤에 아주 끔찍한 시련을 겪었소. 그리고 방금 전에 내게 이야기하느라고 또다시 그 기억을 떠올려야만 했소. 지금 이 애에게 필요한 건 조용히 안정을 취하며 잠을 푹 자는 것이오. 만약 해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면, 그건 좋소."
덤블도어는 잠시 동안 론과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 빌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해리가 대답할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해리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더구나 오늘 밤에는 절대로 안 될 일이오."
위즐리 부인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즐리 부인의 얼굴은 몹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론과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와 빌이 시끄럽게 떠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을 돌아보면서 야단을 쳤다.
"너희들도 들었지? 조용히 해야 한단다! 해리, 어서 침대에 누우렴."
"퍼지를 만나는 대로 다시 돌아오겠다, 해리."
덤블도어는 다정한 눈빛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내가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까지, 너는 내일도 여기 있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덤블도어는 서둘러 병동을 떠났다. 폼프리 부인은 해리를 세드릭의 옆 침대로 데려가더니 자주색 약이 담긴 작은 병과 잔을 갖고 돌아왔다.
"해리, 이걸 다 마셔야 한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자게 해주는 약이란다."
폼프리 부인이 다정하게 말했다. 해리는 잠자는 마법의 약을 잔에 부어서 몇 번에 걸쳐 나누어 마셨다. 그러더니 약을 다 마시기도 전에 해리는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해리가 잠에 들고 나자 그들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위즐리 부인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그들의 무거운 침묵을 뚫고 멀리서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병동 문을 열고 들어온 마법사 무리는 폼프리 부인에게 물었다.
"디고리 군은 어디 있나요?"
"제일 끝 침대에 있어요. 안내해 드릴게요."
마법사 무리는 폼프리 부인과 함께 세드릭의 침대로 가서 세드릭을 마법으로 들어 올린 후 다시 급하게 병동을 나섰다.
"저 애도 무사해야 할 텐데 말이다……. 디고리 부인이 펑펑 울고 있더구나."
위즐리 부인이 딱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언가 말을 덧붙이려던 위즐리 부인은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말의 방향을 틀었다.
"저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않으면, 해리가 잠을 깰 거야!"
"도대체 왜 고함을 지르는 거죠? 또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위즐리 부인은 벌떡 일어나더니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코넬리우스 퍼지의 목소리야."
위즐리 부인이 속삭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미네르바 맥고나걸의 목소린데…….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말다툼을 하는 걸까?"
누군가가 병동으로 다가오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릴리아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마찬가지요, 미네르바."
코넬리우스 퍼지가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절대로 그것을 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맥고나걸 교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덤블도어가 아는 날이면……."
병동의 문이 벌컥 열렸다. 코넬리우스 퍼지가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고 스네이프와 맥고나걸 교수가 그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코넬리우스 퍼지가 위즐리 부인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여긴 안 계세요, 장관님. 여기는 병동이에요. 좀 조용히 하셔야……."
위즐리 부인이 잔뜩 화가 나서 대답했다. 바로 그 순간 문이 다시 열리더니 덤블도어가 재빨리 병동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왜 여기에서 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겁니까? 미네르바, 솔직히 당신에게 놀랐소. 분명히 바티 크라우치를 지키고 있으라고 말했는데……."
덤블도어가 코넬리우스 퍼지와 맥고나걸 교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날카롭게 물었다.
"이제는 더 이상 크라우치를 지키고 있을 필요도 없어요! 덤블도어 교수님! 퍼지 장관님께서 이미 다 알아서 처리 하셨거든요!"
맥고나걸 교수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맥고나걸 교수의 뺨은 빨갛게 달아올랐으며 두 손은 불끈 주먹을 쥐고 분노로 부들부들 온몸을 떨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조근조근 설명했다.
"퍼지 장관님을 만난 자리에서 오늘 밤 사건을 주동한 죽음을 먹는 자를 우리가 붙잡았다고 보고 드렸습니다. 그러자 퍼지 장관님은 자신의 개인적인 안전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디멘터 한 명을 데리고 성으로 들어오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바티 크라우치가 잡혀 있는 사무실로 디멘터를 데리고 들어오더니……."
"덤블도어 교수님, 저는 교장 선생님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어요! 저는 퍼지 장관님에게 교장 선생님은 디멘터가 이 성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맥고나걸 교수가 씩씩거리면서 소리쳤다. 한동안 코넬리우스 퍼지와 맥고나걸 교수가 말다툼을 하는 소리만이 병동에 울려 퍼졌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볼드모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코넬리우스 퍼지가 말을 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실망감으로 릴리아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침내 코넬리우스 퍼지가 애원하듯이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 부활하다니……. 덤블도어,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갑자기 스네이프가 덤블도어 앞을 지나가 성큼성큼 코넬리우스 퍼지를 향해 다가갔다. 스네이프는 왼쪽 소맷자락을 위로 걷어 올리더니 코넬리우스 퍼지의 코앞에 바싹 들이대었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몹시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여기를 보십시오."
스네이프가 팔뚝을 내밀면서 거칠게 말했다.
"바로 여기를 말입니다. 이건 바로 어둠의 표식입니다. 지금은 비록 조금 흐려졌지만 한 시간 전에는 까맣게 타올랐을 정도로 아주 선명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표식을 확인할 수는 있을 겁니다. 어둠의 주인은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는 모두 이러한 낙인을 찍었습니다. 어둠의 표식을……. 이건 서로를 구별하기 위한 방법이자 볼드모트가 우리를 부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죠. 만약 볼드모트가 어떤 죽음을 먹는 자의 팔에 찍힌 이 표식을 만지면 우리는 즉시 순간이동을 해서 그 사람의 곁으로 가야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어둠의 표식은 점점 더 선명해졌습니다. 카르카로프의 팔뚝에 찍혀 있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밤에 카르카로프가 왜 도망을 쳤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두 사람은 어둠의 표식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을 느끼고 마침내 그 사람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카르카로프는 볼드모트의 복수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카르카로프는……. 죽음을 먹는 자들을 너무나 많이 밀고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결코 환영받을 수 없을 테니까요."
코넬리우스 퍼지는 주춤주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스네이프의 말을 단 한 마디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네이프의 팔에 찍힌 추악한 문신을 보고는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덤블도어, 당신과 당신의 교수들이 지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네. 하지만 나는 이제 충분히 들었어. 더 이상 들을 말도 없네. 내일 다시 연락하리다. 그리고 이 학교의 운영 방침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을 하겠네. 나는 지금 당장 마법부로 돌아가야만 해."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중얼거렸다. 거의 병실 문이 있는 곳까지 걸어간 코넬리우스 퍼지가 문득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다시 빙글 뒤로 돌아서더니 병실을 가로지르면서 저벅저벅 걸어갔다.
마침내 코넬리우스 퍼지는 호주머니 속에서 커다란 금화 주머니를 꺼내더니 해리의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네 상금이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호주머니 속에서 커다란 금화 주머니를 꺼내더니 해리의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트리위저드 시합의 우승자에게 주는 1000갈레온이다. 세드릭 디고리의 상금은 나중에 전달하도록 하마."
코넬리우스 퍼지는 다시 중산모를 머리에 쓰고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잠시 후에 병실 문이 쾅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코넬리우스 퍼지가 사라지자마자 덤블도어는 진지한 눈길로 해리의 침대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지금부터 두 사람에게 각자 해야 할 일을 맡기겠네. 퍼지가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짐작은 되지만 어쨌거나 퍼지의 태도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완전히 달라질 걸세. 시리우스, 자네는 즉시 길을 떠나도록 하게. 옛 동료 리무스 루핀과 이사벨라 피그, 먼더구스 플레처에게 어서 경고를 해야 해. 한동안 루핀 곁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도록 하게.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거야. 나중에 내가 다시 연락을 하겠네."
"하지만……."
"금방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야, 해리. 약속하겠어. 하지만 지금은 아주 바쁜 일이 있단다. 나는 서둘러 그 일을 처리해야만 해. 이해할 수 있겠지?"
시리우스는 따뜻한 애정이 담긴 눈길로 가만히 해리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해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알겠어요……. 물론이죠."
시리우스는 해리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다시 놓았다. 그리고 덤블도어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더니 병동을 나섰다.
"세베루스……. 내가 자네에게 어떤 부탁을 하려는지 자네는 알고 있을 거라고 믿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각오가 되었다면 말이네."
덤블도어가 천천히 스네이프를 향해 돌아섰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스네이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스네이프의 얼굴은 어쩐지 평소보다도 더욱 창백하게 보였으며 차갑고 검은 눈동자는 이상할 정도로 번뜩이고 있었다.
"행운을 비네."
덤블도어가 아무런 말도 없이 시리우스의 뒤를 따라 나가는 스네이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덤블도어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나는……."
덤블도어가 해리와 그의 근처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입을 여는 틈을 타 릴리아나는 조용히 스네이프를 따라나섰다.
"세베루스 교수님."
휘적휘적 걸어가던 스네이프의 뒤에서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스네이프가 멈춰 섰다. 막상 불러놓고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릴리아나가 잠시 말꼬리를 늘렸다.
"저기……."
우물쭈물거리던 릴리아나가 스네이프가 가던 길을 가겠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기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마음 속에서 튀어나온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안가시면 안돼요?"
"……네가 무슨 권리로?"
스네이프가 차갑게 대꾸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스네이프의 얼굴은 그 사이 더 수척해져 있었다.
"그냥……. 가시면 안 되겠다는 직감이 들었어요. 죄송해요."
스네이프는 말없이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릴리아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교수님은 죽음을 먹는 자이셨나요?"
"……그래."
스네이프가 천천히 긍정했다. 릴리아나가 고개를 들었다. 스네이프가 누군가를 향하는지 모를 경멸로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왜, 너도 내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니면……."
"……아프시지는 않으셨어요?"
"……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순간 스네이프의 얼굴은 마치 누군가에게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았다.
"그거……."
릴리아나가 스네이프의 왼쪽 팔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스네이프는 황급히 자신의 팔을 뒤로 숨겼다.
"……꼭 가셔야 하는 거죠?"
"……너는 내가 죽음을 먹는 자였다는 사실이 혐오스럽지도 않느냐."
"한 시간쯤 전에 그 사람이 죽음을 먹는 자들을 불렀다면서요. 여기 계시다는 건 가지 않으셨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제 죽음을 먹는 자도 아니시잖아요."
스네이프는 조금 충격을 받은 얼굴로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릴리아나는 어쩐지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이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조심하세요. 조심하셔야 해요."
릴리아나의 두 볼이 홍조로 물들었다. 스네이프는 알 수 없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더니 자신도 모르게 릴리아나의 붉은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교수님?"
릴리아나가 놀라서 얼굴을 조금 붉히며 묻자 스네이프는 화들짝 놀라 손을 거둬들이더니 빠르게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
마침내 학기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열리는 졸업식에 참석한 릴리아나는 그곳에서 다리에 붕대를 두르고 휠체어에 타고 있긴 했지만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세드릭을 만났다.
"세드릭!"
"릴리!"
세드릭이 활짝 웃었다.
"졸업 축하해. 또 호그와트 챔피언이 된 것도 축하하고."
"고마워."
인사가 끝나고 나자 그들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잠시 후 세드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조금 걸을까?"
"좋아."
고개를 끄덕인 릴리아나가 세드릭의 휠체어를 밀며 호수 근처를 걷기 시작했다.
"미안해, 고생시키는 것 같네."
"아니야. 괜찮아."
릴리아나는 열심히 세드릭의 휠체어를 밀었다. 한참동안 걷던 그들은 인적이 드문 호숫가의 나무 아래에 도착했다.
"우리 여기서 얘기 좀 할까?"
"……그래."
릴리아나가 조금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직감적으로 이제 세드릭의 고백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아차린 릴리아나가 세드릭의 옆에 앉았다.
"저기 세드릭……."
"……바로 그 얘기를 들어야 하는 거야?"
"미안해."
릴리아나가 머뭇거렸다. 세드릭은 호숫가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릴리아나는 머릿속으로 최대한 부드러우면서도 완곡한 단어를 찾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나는……. 물론 너는 좋은 남자고 좋은 사람이지만……. 나는 네가……."
"이제 괜찮아 릴리. 거기까지만 해도 돼."
세드릭이 싱긋 웃었지만 어딘가 그 미소는 슬퍼보였다.
"내가 친한 오빠 정도로만 느껴진다는 소리잖아."
릴리아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세드릭이 손을 뻗어 릴리아나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헝클어뜨렸다.
"이제 돌아갈까? 좀 춥다. 그렇지?"
물론 날씨는 전혀 춥지 않았으나 릴리아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세드릭의 휠체어를 밀었다. 성으로 다시 돌아가는 내내 그들 사이엔 대화는 없었다. 마침내 성 근처에 도착하자 세드릭이 입을 열었다.
"좋아했어, 릴리. 정말로."
애절한 그의 고백에 릴리아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나에게로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세드릭이 애써 밝게 말했다. 릴리아나가 미안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자 세드릭이 말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응."
슬픈 표정을 하고 있던 릴리아나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였다. 세드릭도 씩 웃었다.
"훨씬 보기 좋네."
세드릭이 릴리아나의 볼을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음……. 마지막으로 한번만 안아 봐도 될까?"
세드릭이 조금 머뭇거리며 부탁하자 릴리아나가 천천히 무릎을 굽혀 세드릭과 눈높이를 맞췄다. 세드릭은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릴리아나를 안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쉰 세드릭이 두 눈을 감았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세드릭이 품 안에 있는 온기가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릴리아나는 아무 말 없이 손을 올려 그의 등을 가볍게 껴안았다. 그때 멀리서 호그스미드로 출발한다는 종소리가 울렸다. 세드릭이 릴리아나를 세게 끌어안았다가 놓아주었다.
"잘 가. 여름방학 잘 보내고."
"응, 너도 세드릭."
무릎을 핀 릴리아나가 머뭇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성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고 세드릭을 돌아보게 되었다. 세드릭은 어서 들어가라는 듯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결국 릴리아나는 두 눈을 꼭 감고 거의 뛰듯이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던 세드릭이 천천히 손을 내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안녕."
세드릭이 작게 속삭였다. 어느새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세드릭은 거칠게 손으로 눈물을 슥 닦으며 청명한 여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참동안 세드릭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불의 잔(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