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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기사단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사조 기사단-(3)
릴리아나가 씩씩거리며 방으로 들어오자, 침대에 앉아있던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놀라 물었다.
"릴리 언니!"
"무슨 일 있어? 여기까지 네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던데……."
"별 일 없었어."
릴리아나가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심호흡을 하며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지니가 물었다.
"전혀 별 일 없어 보이지 않는데. 시리우스 때문이야?"
"아님 스네이프?"
헤르미온느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던 릴리아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둘 다."
릴리아나가 고개를 숙인채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가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애 같니?"
그녀의 말에 헤르미온느와 지니의 얼굴은 웃음을 참는 것 같이 이상하게 변했다. 무엇이라 말을 해줘야 할지 잠시 동안 단어를 고르던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애……라기보다는 소녀지."
"성인 여자처럼은 안보인다는 소리지?"
릴리아나의 물음에 헤르미온느가 입을 다물었다. 릴리아나가 근처에 있는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얼굴의 선이라던가 전체적인 느낌이라던가가 성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아니었나보다.
"그 중간에 있는 것 같아. 소녀와 여자 사이."
지니가 애써 위로하듯 말해주었다. 릴리아나는 거울 속으로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음……. 릴리 언니. 언니는 지금 좀 더 성숙해보이고 싶은 거지?"
릴리아나의 시선이 지니를 향했다. 지니가 씩 웃었다.
"내 친구들도 성숙해보이고 싶다고 화장하더라. 언니도 그러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좀 어른스러워 보일까?"
릴리아나가 간절한 얼굴로 물었다가 지난 크리스마스 무도회 때 지니의 실력을 생각해내고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일 일어나서 점심 먹고 머글 세계에 갔다 오자. 언니 화장품 없지?"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니가 환하게 웃으면서 릴리아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럼 이제 자자. 빨리 일어나야지."
"잠깐만, 나 불끄기 전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릴리아나가 한결 편해진 얼굴로 방을 나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릴리가 많이 간절했나보네."
"그러게. 정말 시리우스를 좋아하나봐."
"응? 뭐라고?"
"응?"
"응?"
하지만 다음날 점심 이후 외출하려던 계획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독시들 때문에 늦춰지게 되었다. 지니가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와 외출하기로 했다고 위즐리 부인에게 애교를 부렸지만, 위즐리 부인은 독시를 모두 잡기 전까지는 어림도 없다고 말했기에 지니는 입을 삐죽 내밀고 독시를 잡았다.
커튼 속에서 번식하는 독시들을 없애는 데 아침 시간이 거의 다 흘러갔다. 마침내 위즐리 부인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벗었을 때는 이미 정오가 지난 시간이었다. 팔걸이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던 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벌떡 일어났다. 죽은 쥐들이 들어 있는 자루를 깔고 앉았던 것이다. 집중적인 살충제의 세례를 받고 흠뻑 젖은 채 축 늘어진 커튼에서는 더 이상 붕붕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들의 발치에는 의식을 잃은 독시들이 양동이 안에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시꺼먼 알들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크룩생크는 미심쩍은 듯이 코를 킁킁거리며 독시의 냄새를 맡고 있었고 조지와 프레드는 연신 탐욕스런 눈길을 던졌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여기에 도전해야 할 것 같다."
위즐리 부인이 벽난로 맞은편에 서 있는 먼지 낀 유리가 붙은 진열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는 온갖 이상한 물건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녹슨 단검, 발톱, 돌돌 말린 뱀 껍질, 도저히 읽을 수도 없는 이상한 글자가 새겨진 변색된 은상자 등. 그 중에서도 가장 기분 나쁜 물건은 마개에 커다란 오팔이 박혀 있는 화려한 크리스털 병이었는데, 피인 것이 분명한 액체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때 현관 벨 소리가 다시 요란하게 울렸다. 모두들 일제히 위즐리 부인을 쳐다보았다.
"여기 있거라."
부인은 단호하게 말하더니 쥐가 든 자루를 집어 들었다. 아래층에서는 다시 블랙 부인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를 좀 만들어 가지고 오마."
위즐리 부인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방을 나가자마자 모두들 쏜살같이 창문으로 달려가서 현관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부스스한 빨간 머리와 위태위태하게 포개져 있는 냄비들이 보였다.
"먼더구스야! 저 냄비들을 다 뭐 하려고 가져왔지?"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아마 냄비를 보관해 둘 만한 안전한 장소를 찾고 있는 걸 거야. 내 뒤를 미행하기로 되어 있던 날 밤에 먼더구스가 했던 일이 뭐였겠어? 바로 저 불법 냄비를 주우러 갔던 거였잖아."
해리가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프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현관문이 활짝 열리더니 먼더구스가 냄비를 짊어지고 문 안으로 사라졌다.
"맙소사, 엄마가 좋아하시지 않을 텐데……."
프레드와 조지는 문 앞으로 다가가서 귀를 바싹 대고 섰다. 블랙 부인의 비명 소리는 어느덧 사라지고 들리지 않았다.
"먼더구스가 시리우스와 킹슬리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
프레드가 정신을 집중하느라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잘 안 들리는걸……. 어떻게 생각해? 좀 위험하겠지만 늘어나는 귀를 사용해 볼까?"
"한번 해보자. 내가 위층으로 살짝 올라가서 늘어나는 귀를-"
바로 그 순간 아래층에서 늘어나는 귀가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로 커다란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두들 위즐리 부인이 목청껏 지르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여기는 훔친 물건 따위나 숨기는 곳이 아니에요!"
"늘어나는 귀는 필요 없겠네."
릴리아나가 중얼거리자 프레드가 얼굴 가득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는 걸 보면 괜히 기분이 좋더라. 분위기가 싹 달라진다니까."
프레드가 위즐리 부인의 목소리를 좀 더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방문을 조금 열어 놓았다.
"정말 무책임하기 짝이 없군요. 당신이 굳이 훔친 냄비를 집 안으로 끌고 오지 않아도 걱정스런 일이 태산인데-"
"저 멍청이들이 엄마가 본색을 드러내도록 내버려 둘 생각인 모양이군."
조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너희가 서둘러 엄마를 말리지 않으면 엄마 머리에 뚜껑이 열려서 몇 시간 동안 김이 나는 꼴을 보게 될 거야. 그러지 않아도 먼더구스가 해리, 네 뒤를 따라다녀야 할 시간에 몰래 자리를 비운 이후로 엄마는 그에게 한바탕 퍼붓지 못해서 안달이었는데 말이야. 아이쿠, 시리우스의 엄마가 또 시작이군."
복도에 걸린 초상화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에 위즐리 부인의 목소리가 파묻혀 버렸다. 조지는 그 소리를 막기 위해 방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런데 미처 문을 닫기 전에 집요정이 방 안으로 쏙 뛰어 들어왔다.
몸통 한가운데에 허리띠를 두른 더러운 천 조각 이외에는 완전히 벌거벗은 몸이었다. 이 집요정은 상당히 나이가 많아 보였다. 너무 쪼글쪼글해서 요정의 피부를 쫙 펴면 자기 몸의 몇 배는 될 것처럼 보였다. 이 요정도 다른 집요정들과 마찬가지로 대머리였지만 박쥐처럼 생긴 커다란 귀 뒤로 하얀 머리카락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의 눈은 빨갛게 핏발이 서 있었고 물에 젖은 듯한 회색이었다. 그의 커다랗고 살찐 코는 흡사 돼지 코 같았다.
집요정은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듯 등을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 발을 질질 끌며 방의 제일 안쪽으로 천천히 그리고 끈질기게 걸어갔다. 그는 황소개구리같이 거칠고 굵은 목소리로 연신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저분한 인간쓰레기, 악당 같으니라고. 하지만 그 여자도 나을 건 없어. 제 새끼들을 데리고 우리 주인님의 집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 놓다니, 못된 늙은 동족의 배신자. 오, 불쌍한 우리 주인님. 주인님이 아신다면 이 악당들이 함부로 주인님 집에 들어온 걸 아신다면 이 늙은 크리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오, 수치스럽게도 머글 태생들과 늑대인간과 배신자, 도둑이 득실거리다니. 가엾은 늙은 크리처, 어찌해야 좋을지……."
"안녕, 크리처."
프레드가 문을 쾅 닫으며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집요정은 갑자기 얼어붙은 듯이 발걸음을 우뚝 멈추며 입을 딱 다물었다. 그러고는 너무나 호들갑스럽게 깜짝 놀란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크리처는 젊은 주인님을 미처 못 봤어요."
그는 몸을 돌리더니 프레드에게 꾸벅 절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양탄자를 내려다보면서 들으라는 듯이 분명하게 덧붙였다.
"못된 꼬마 배신자 녀석이군."
"뭐라고? 마지막 말을 못 들었는데."
"크리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집요정은 조지에게 꾸벅 절을 하면서 또다시 분명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쌍둥이 형제야. 비정상적인 꼬마 괴물들 같으니라고."
크리처는 허리를 쭉 펴더니 악의에 찬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아무도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자신하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저기 머글 태생도 있네. 뻔뻔스럽게 잘도 서 있군. 오, 주인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그리고 저기 처음 보는 꼬마와 계집은 크리처가 이름도 모르는 녀석인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크리처는 모르겠네……."
"여기는 해리 포터고 이쪽은 릴리아나 퀸이라고 해, 크리처."
헤르미온느가 주저하며 말했다. 크리처의 희미한 눈동자가 활짝 커지더니 더욱더 흥분한 듯이 빠르게 중얼거렸다.
"이 머글 태생이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크리처에게 말을 걸다니. 크리처의 주인님께서 크리처가 이런 녀석들과 함께 있는 걸 보신다면 오, 뭐라고 말씀하실까-"
"헤르미온느를 머글 태생이라고 부르지 마!"
론과 지니가 잔뜩 화가 나서 동시에 소리쳤다.
"상관없어. 그는 지금 온전한 상태가 아니잖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어."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헤르미온느, 엉뚱한 소리 하지 마. 저 녀석은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고."
프레드가 미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크리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크리처는 여전히 해리를 바라보며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말일까? 저 꼬마가 해리 포터란 말이야? 크리처도 흉터를 볼 수 있어. 분명히 사실인가 봐. 저 꼬마가 어둠의 주인을 막았단 말이지.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는지 크리처는 도무지-"
"그래, 크리처. 사실은 우리 모두 믿어지지 않아."
프레드가 말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조지가 추궁하자 크리처의 커다란 눈이 조지를 째려보았다.
"크리처는 지금 청소 중이에요."
크리처가 어설프게 둘러댔다.
"그거 참 그럴듯한 거짓말이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리우스가 돌아온 것이다. 그는 문가에 서서 집요정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제 현관 복도에서 들려오던 소음은 잠잠해졌다. 위즐리 부인과 먼더구스가 일단 부엌으로 자리를 옮긴 모양이었다.
시리우스를 보자 크리처는 돼지 코가 바닥에 닿도록 허리를 숙이며 우스꽝스럽게 절을 했다.
"똑바로 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시리우스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크리처는 청소 중이에요."
집요정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크리처는 고귀한 블랙 가문에 봉사하기 위해 살아요."
"날마다 더 더러워지고 새까매지는 블랙 가문이겠지."
시리우스가 쏘아붙였다.
"주인님은 언제나 농담도 잘하세요."
크리처가 다시 굽실 절을 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계속 중얼거렸다.
"어머니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배은망덕한 후레자식 주인님."
"우리 어머니에게는 마음이란 게 없어, 크리처. 어머니는 오직 미움으로만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야."
시리우스가 쏘아붙였다. 크리처가 다시 굽실하고 절을 하며 말했다.
"주인님 말씀이 무조건 옳아요."
그러고는 다시 화가 나서 중얼거렸다.
"주인님은 마님의 신발도 닦을 자격이 없어. 오, 우리 불쌍한 주인마님. 크리처가 그자를 섬기는 꼴을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얼마나 미워하셨는데 얼마나 한심한지……."
"내가 분명히 지금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지."
시리우스가 차갑게 물었다.
"항상 청소하는 척하며 나타나서는 그때마다 뭔가 슬쩍 네 방으로 가져가서 숨겨 놓잖아. 우리가 버리지 못하도록 말이야."
"크리처는 주인님 집에 놓인 물건들을 단 한 개라도 옮기고 싶지 않아요."
집요정이 이렇게 대답하더니 다시 빠르게 중얼거렸다.
"7백 년 동안이나 이 집 안에 걸려있던 벽걸이 양탄자를 내버리면 주인마님께서 절대로 크리처를 요서하지 않을 거야. 크리처는 반드시 그걸 지켜야 해. 크리처는 주인님과 반역자 꼬마 녀석들이 이 집을 파괴하도록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런 네 뜻대로 될 거야."
시리우스가 혐오스럽다는 눈초리로 맞은편 벽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저 양탄자 뒤에도 틀림없이 영구 부착 마법을 걸어 놓았을 테니까 말이야. 그래도 저걸 떼 낼 수만 있다면 반드시 떼 냈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가 버려, 크리처."
릴리아나는 그 둘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모순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시리우스는 버리길 원하고 크리처는 버리지 않길 원하면 저 집요정에게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조곤조곤한 말투였지만 거실은 워낙 조용했기에 그녀의 말은 똑똑히 울려 퍼졌다. 크리처는 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부릅뜨면서 두 손을 모았다. 시리우스가 당황한 듯 말했다.
"하지만 릴리아나……."
"어차피 버릴 거면 원하는 사람……. 아니 집요정에게 주면 되잖아요."
릴리아나의 말에 시리우스는 여러 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듯 했다. 크리처는 이제 거의 무릎을 꿇을 듯이 자세를 굽히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시리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까지 거들었다.
"그렇게 해줘요, 시리우스."
시리우스는 수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 잘생긴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시리우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고귀하고 순수한 블랙 가문의 유산이 집요정에게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반응들도 재밌겠지."
시리우스는 귀찮은 얼굴로 가지라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크리처가 무릎을 꿇고 외쳤다.
"주인님!"
크리처의 두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크리처의 반응에 당황하더니 해리를 흘끗 바라본 후 몸을 꼿꼿하게 하며 위엄이 넘치는 주인의 모습을 하였다.
"음, 그래 크리처 하지만 이걸 주는 대신에……."
시리우스는 크리처에게 쓰면 안 되는 말과 이 집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존중을 보이라는 것과 같이 지켜야 할 일을 얘기하기 시작하자 지니가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에게 속삭였다.
"뭐가 어찌됐든 쇼핑하러 갈 수 있겠다."
크리처는 불만스러운 것 같긴 했지만 시리우스의 명령을 따르기로 약속했고 그들은 곧 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지니는 기지개를 쭉 펴며 엄마에게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와 쇼핑을 가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위즐리 부인은 못마땅한 얼굴이긴 했지만 이내 그들이 외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음침하고 축축한 그리몰드 12번지에서 벗어나자 햇볕은 놀랍도록 따뜻하고 아늑했다. 릴리아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지니와 헤르미온느를 따라 근처 머글들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옷가게란 옷가게는 모두 들어가 깔깔거리며 옷을 입어보고 광장에서 파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다보니 어느새 그들이 원하는 장소가 나왔다.
점원의 인사를 받으며 화장품 가게 안으로 들어온 셋은 좋은 냄새와 눈이 돌아가도록 다양하고 독특한 외관에 눈을 떼지 못하며 이것저것 만져보았다. 릴리아나가 다양한 색상의 립스틱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을 때, 지니가 릴리아나의 팔짱을 끼고 어느 코너로 데려가 이것저것 손등에 발라보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지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그마한 바구니에 화장품을 담았고 계속해서 여러 다른 제품들의 색깔을 일일이 릴리아나의 얼굴과 비교해가며 제일 잘 어울리는 색으로만 담아주었다.
작은 산처럼 쌓여가는 바구니를 조금 질린 얼굴로 바라보던 릴리아나는 근처에 있는 짙은 빨간색의 립스틱을 발견하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게 마음에 들어? 한번 발라봐."
옆에서 옅은 분홍색의 립스틱을 발라보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릴리아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립스틱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에게 빨간 립스틱은 매력적이고, 성숙한 성인 여성들만 바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손 안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를까 말까 고민하던 릴리아나는 포장되어 있는 짙은 빨간색의 립스틱을 지니 몰래 바구니에 넣었다. 어쩐지 부끄러웠다. 릴리아나가 두 볼을 붉히며 재빨리 립스틱 코너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