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53화 (5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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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기사단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사조 기사단-(6)

저 여자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몰라 릴리아나는 딱딱하게 굳어 엄브릿지를 바라보았다. 엄브릿지는 스네이프의 책상 옆 의자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들어온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때마침 종이 쳤다. 릴리아나가 굳어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헤르미온느의 옆자리에 앉자 스네이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라."

하지만 모든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있었으므로 스네이프는 학생들을 차가운 검은 눈으로 한번 훑어본 후 월장석에 관한 보고서에 점수를 매겨 돌려주었다.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보고서를 나누어주던 스네이프는 맨 뒷자리까지 오자 헤르미온느의 보고서를 건네준 후 릴리아나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스네이프의 시선이 잠시 릴리아나의 벌게진 눈과 눈물이 아직 맺혀있는 속눈썹에 멈췄다. 릴리아나는 스네이프를 외면한 채 O라고 커다랗게 써져 있는 보고서를 받았다.

"……너희들이 O. W. L. 에서 이 과목 시험을 치렀을 때 받게 될 성적을 주었다."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숙제를 나누어 주던 스네이프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보면 앞으로 닥칠 시험에 대해서 보다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스네이프는 교실 앞으로 가더니 학생들을 향해서 돌아섰다.

"너희들이 낸 숙제의 평균 수준은 암담할 정도다. 이 숙제가 진짜 시험이었다면 대부분 떨어졌을 것이다. 다양한 해독제의 종류에 관한 이번 주 보고서에는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D를 받는 멍청이들에게 나머지 공부를 시킬 수밖에 없다."

"누가 D를 받았단 말이야? 하!"

말포이가 킬킬거리며 들으라는 듯이 떠들자 해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오늘은 마력 강화제를 만들어 보겠다. 재료는 모두 천장에 있고 조제방법은 칠판에 적혀져 있다. 그럼 시작해라."

스네이프의 말이 끝나자 릴리아나는 칠판을 한번 읽어본 후 천장에서 재료들을 꺼내와 손질하기 시작했다. 해리는 붉어진 얼굴로 지시사항을 적어도 세 번은 읽고 있는 듯 했다.

"이 수업은 수준이 아주 높은 것 같군요."

엄브릿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들을 둘러보며 불쑥 입을 열었다. 스네이프가 몸을 돌려 엄브릿지를 바라보았다.

"호그와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신지 얼마나 되었죠?"

"14년 입니다."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엄브릿지는 짙푸른 벽안을 동그랗게 뜨며 필기판 위에 깃펜으로 무엇이라 적었다.

"생각보다 오래하셨네요. 외모로만 봐서는 마법약 교수가 되신지 얼마 안 되셨을 것 같은데……."

"……과찬이십니다."

움직이는 콩을 칼로 쿡쿡 찌르던 릴리아나는 그만 콩이 도마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콩이 벽을 한번 치고 떨어지자 릴리아나는 얼굴을 붉힌 채 죄송하다고 중얼거리며 다시 콩을 주었다. 엄브릿지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럼……. 열아홉 살 그 정도부터 마법의 약 교수를 하신건가요?"

"스물 하나부터 입니다."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처음에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직에 지원하셨다고 하던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셨죠?"

스네이프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맞습니다."

엄브릿지가 필기판에 무언가를 휘갈겨 쓰며 물었다.

"이 학교에 들어온 후에도 계속해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 자리에 지원하셨죠?"

"네."

스네이프는 거의 입을 열지 않고 들릴 듯 말듯 대답했다. 엄브릿지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은근하게 물었다.

"제가……. 조금의 도움을 드릴까요? 마법부에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스네이프가 단호한 목소리로 엄브릿지의 말을 잘랐다. 엄브릿지는 그를 향해 은밀한 시선을 던지더니 필기판을 들고 교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학생들이 지시에 따라 만드는 것을 흥미로운 듯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스네이프에게로 쪼르르 달려가 마법의 약 재료가 어떠한 효과를 내어 약을 만드는지를 물었고 스네이프는 간략하게 그녀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스네이프와 엄브릿지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려 그쪽으로 신경을 기울이고 있던 릴리아나는 그만 생강 뿌리를 썰던 칼에 손끝을 살짝 베이고 말았다.

"아……."

아릿하게 아파오는 손끝을 다른 손가락으로 꾹 누르자 헤르미온느가 놀라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많이 아파?"

"괜찮아. 견딜만해."

릴리아나가 억눌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임시방편으로 약재를 싸는 거즈를 조금 찢어 손가락에 둘둘 말은 릴리아나가 다시 마법약에 집중했다. 라임 즙을 한 스푼 넣고 오소리의 담즙을 다섯 스푼 넣은 후 2분 동안 쉬지 않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저어주자 마법약은 칠판에 써져 있는 것 같은 투명하고 선명한 푸른색이 되었다.

"이젠 약이 모두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스네이프가 피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법약이 만들어진 아이들은 하나 둘씩 플라스크에 약을 담아 스네이프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릴리아나 퀸이라고 글씨를 쓴 후 마법약을 제출하러 앞으로 간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와 엄브릿지를 외면하며 마법약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때 스네이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친 것이냐."

"……신경 쓰실 것 없잖아요."

릴리아나가 얼굴을 붉은색으로 조금 물들이며 손을 뒤로 숨겼지만 스네이프가 그녀의 팔목을 덥석 잡아 올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빨간색으로 변한 거즈를 바라보던 스네이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따라와라."

"전 괜찮아요."

하지만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스네이프는 그녀를 질질 끌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천장에 있는 캐비닛에서 구급상자를 꺼낸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의 손가락에 있던 거즈를 벗겼다.

"저는 괜찮다니까요."

스네이프는 아무 말 없이 피가 송골송골 맺혀있는 손가락을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더니, 소독약을 뿌린 후 디터니 원액을 콸콸 부었다. 순식간에 새살이 돋아나자 릴리아나는 어설프게 손가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때마침 종이 울리더니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스네이프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더니 말했다.

"들어오세요."

엄브릿지가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들이밀더니 이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엄브릿지가 말했다.

"친절하시네요. 수업도 끝났는데 병동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직접 치료해 주시다니."

"……너는 이제 가 봐라, 퀸."

릴리아나는 엄브릿지와 스네이프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문을 쾅 닫고 나와 짐을 챙겼다. 신경질적으로 물건을 담던 릴리아나는 문득 그들이 나누고 있을 대화가 궁금해졌다. 주위를 한번 살펴본 후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릴리아나는 발끝으로 소리 없이 걸어가 문에 귀를 대었다.

"……교실 안에서 다쳤으면 치료해 줘야지요."

"그래도 제가 호그와트에 다닐 때는 교수님들은 병동으로 보냈는걸요. 이번 마법의 약 교수님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셨군요."

릴리아나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세베루스."

"그런 거 아닙니다, 엄브릿지 교수님."

릴리아나는 이름까지 부르는 둘의 사이에 미간을 찌푸리며 문에서 귀를 떼었다.

"돌로레스라고 불러줘요."

"죄송하지만."

스네이프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문을 뚫고 나왔다.

"'스네이프' 교수입니다. 엄브릿지 교수님."

"……아, 그래요. 좋아요. 스네이프 교수님. 그래도 교수님은 저를 돌로레스라고 부르셔도……."

엄브릿지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듣기 거북해진 릴리아나는 문에서 귀를 떼고 지하 감옥을 벗어나는 문 쪽으로 쿵쾅쿵쾅 걸어가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게 문을 열고 외쳤다.

"릴리는 가볼게요, 세베루스 교수님!!"

릴리아나는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은 후 전속력으로 뛰어 지하를 벗어났다. 사무실에 남아 있을 스네이프와 엄브릿지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아마 지금쯤 진땀을 빼며 저게 무슨 소리인지를 추궁당하고 있을 스네이프를 생각하자 어쩐지 무겁고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후련했던 기분도 얼마 가지 않았다. 바로 그 후 점술 수업에서 장학사로 참석한 엄브릿지를 봐야했을 뿐만 아니라 점술 수업 다음 수업은 엄브릿지가 가르치는-그것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다면-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브릿지는 간간히 릴리아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줬는데 그건 마치 어린애가 질투하는 모습을 귀엽게 여기는 모양새라 릴리아나는 신경질적으로 책을 넘기며 슬링크하드가 쓴 <<방어 마법 이론>>의 2장 '기본 방어술 이론과 파생'을 읽었다.

마침내 해리가 일주일의 나머지 공부 징계를 받는 것으로 수업은 끝이 났다. 머릿속에는 그녀 자신조차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온갖 복잡한 감정들로 금방이라도 펑 터져버릴 것 같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간단히 씻은 후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갈아입을 속옷과 잠옷을 챙긴 릴리아나는 여학생들의 공용 욕실에 커다란 욕조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따뜻한 물속에 숨이 막히도록 푹 잠겼다가 나오는 상상을 하자 불쾌했던 기분이 조금은 좋아지는 것 같았다.

흘끗 시계를 본 릴리아나는 목욕까지 충분히 즐기기에는 빠듯해 보이는 시간에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해리에게 투명망토를 빌려 통금시간이 넘으면 망토를 쓰고 돌아오면 되겠다며 생각을 마쳤다. 릴리아나는 엄브릿지의 징계를 받으러 가려는 해리에게 투명 망토를 빌려 미리 준비해 두었던 짐들과 함께 샤워실로 향했다.

빈 복도에는 릴리아나의 발소리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서늘한 복도를 걷고 있자니 어쩐지 조금씩 기분이 좋아졌다. 5층으로 내려온 릴리아나는 시에라 석상을 찾아 작게 암호를 속삭였다.

"요정들의 밤."

그러자 시에라 석상 뒤에 숨겨져 있던 문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문손잡이를 돌린 릴리아나가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실 안에는 몇몇 여학생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교복을 모두 벗은 릴리아나는 구석에 있는 샤워기를 찾아 뜨거운 물을 즐기기 시작했다.

온 몸에 따뜻한 물줄기가 닿자 부글부글 끓었던 불쾌한 기분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두 눈을 감고 물줄기를 즐기고 있던 릴리아나는 욕실에 남아 있던 몇몇 여학생들마저 사라지고 나자, 황급히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후 아무도 없는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이제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종이 치자 멈칫하긴 했지만 이내 따뜻한 물 안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항상 다른 여학생들과 욕조를 써야 했는데 아무도 없는 넓은 탕을 혼자 쓰고 있자 기분이 짜릿했다. 얌전히 물 속에 잠겨 발을 꼼지락거리던 릴리아나는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자 눈을 꼭 감고 코를 막은 뒤 잠수 하기를 반복했다. 물 속에서 올라올 때마다 붉은색의 조금 구불거리던 머리카락이 쭉 펴져 등과 가슴에 착 달라붙었다. 얼굴에 남아있는 물기를 손으로 슥슥 닦아내던 릴리아나가 고개를 빠르게 저어 귓속에 들어간 물방울을 털어냈다.

한참동안 따뜻한 물에서 물장구를 치니 기분은 확실히 좋아졌다. 릴리아나는 등을 욕조 난간에 기대며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인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작게 키득거리던 릴리아나의 머릿속에 불현듯 엄브릿지가 떠올랐다. 순식간에 좋았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릴리아나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투명한 물 위에 엄브릿지를 향해 F와 S로 시작하는 욕을 마구 갈겨쓰다가 점점 감정이 격해져 수면을 팡 내리치며 소리쳤다.

"바보! 바보 멍청이들!!"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욕실 벽들 타고 반사되었다. 릴리아나는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막으며 재빨리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통금시간에서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필치가 어느 시간에 순찰을 도는지 모르는 릴리아나는 해리에게서 호그와트 비밀지도도 빌려올걸 후회하며 혀를 깨물었다.

"거기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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