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 / 0142 ----------------------------------------------
불사조 기사단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사조 기사단-(7)
릴리아나가 입을 두 손으로 막으며 두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떴다. 필치였다. 필치가 불쾌한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어디냐! 어디 숨은거냐! 시에라 쪽이냐?"
필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릴리아나는 재빨리 욕조를 나와 수건으로 몸에 묻어있는 물기를 대충 닦아냈다. 하지만 잽싸게 움직이느라 났던 물소리와 발소리 덕분에 사람이 있는 쪽이 확실해졌는지 필치는 여학생 욕실 문을 쾅쾅 치며 말했다.
"1분 준다! 그때까지 옷 입고 있어라! 1분이 지나면 들어가겠다!"
그러더니 필치는 육십부터 거꾸로 수를 세기 시작했다. 릴리아나는 초조하게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짜내며 발을 이용하여 교복과 속옷을 대충 한 덩어리로 뭉쳤다.
"삼십……. 이십구……. 이십팔……."
빗물처럼 뚝뚝 물이 떨어지던 머리에서 대충 물이 흐르지는 않게 되자 릴리아나는 재빨리 속옷을 갈아입은 후 가지고 왔던 원피스 형식의 잠옷을 입었다.
"십……. 구……. 팔……. 칠……."
혀를 살짝 깨물며 잠옷에 이렇게 단추가 많았나를 생각하던 릴리아나가 대충 가슴은 가려질 정도로 단추를 채우고 나자 교복덩어리와 신발을 든 채로 투명망토를 썼다.
"……삼……. 이……. 일……. 들어간다!"
필치가 쾅 소리가 나게 문을 열었지만, 수면이 거칠게 요동치는 욕조만 있을 뿐 아무도 없자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숨는다고 못 찾을 줄 아느냐! 어서 나오지 못해! 통금시간에서 한 시간이나 지났단 말이다!"
릴리아나는 발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하며 깨금발로 살금살금 걸어가 욕실을 빠져 나왔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해리에게 투명망토를 빌려온 것은 놀라운 선견지명이었다. 릴리아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야옹."
바로 그때, 한숨 돌리고 있던 그녀의 무릎 아래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자 릴리아나는 몸을 바짝 세우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노리스 부인이 투명망토를 쓰고 있는 릴리아나가 보인다는 듯 발을 들고 그녀를 할퀴려고 들었다.
"저리가!"
릴리아나가 작게 속삭이며 투명망토를 거칠게 끌어안았다. 노리스 부인이 불쾌하게 야옹거리며 발톱으로 투명망토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어떻게 노리스 부인이 자신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던 릴리아나는 몸 가득히 남아있는 바디워시의 달콤한 향을 기억해내고 콧잔등을 찌푸리며 후회했다. 노리스 부인이 다시 한 번 릴리아나에게 달려들었다.
"저리 가라니까!"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말하며 릴리아나가 노리스 부인이 투명망토를 잡지 못하도록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노리스 부인은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것 같이 자세를 낮추자 릴리아나가 더욱 빠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
누군가와 퍽 소리가 나게 부딪혔다. 순간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릴리아나가 놀라 숨도 쉬지 못하고 굳어 있자 부딪힌 누군가가 천천히 투명망토를 벗겼다.
"……네가 지금 이 시간에 뭘 하고 있는 거냐."
스네이프가 화가 난 듯이 작게 속삭였다. 릴리아나가 침을 꿀꺽 삼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세베루스……교수님……."
스네이프는 화가 난 듯이 릴리아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반쯤 열려있는 가슴부근에 시선이 멈췄다. 어두운 곳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그의 얼굴은 붉어진 것 같았다. 스네이프가 거칠게 릴리아나의 위로 투명망토를 씌웠다.
"지금 무슨 차림으로 복도를 돌아다니는……."
스네이프가 말을 멈췄다. 왜 그러는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던 릴리아나가 잠시 후 복도 끝에서 필치가 나오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스네이프 교수님!"
"무슨 일입니까."
"학생이 밤에 침대에서 나왔습니다! 통금 시간이 지났는데도 욕실을 사용했어요!"
스네이프가 흘끗 투명망토를 쓰고 있는 릴리아나의 자리를 쳐다보았다. 투명망토를 쓰고 있어 분명히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함에도 시선이 너무나 날카로워 릴리아나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노리스 부인이 이쪽에 수상한 것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해서 왔는데 혹시 못 보셨습니까?"
"저는……"
스네이프가 말꼬리를 늘이자 릴리아나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스네이프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벌써 내려갔거나 올라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빨리 가보겠습니다."
필치가 계단이 있는 쪽으로 향하자 노리스 부인이 릴리아나가 서 있는 곳에 시선을 멈췄다. 자기도 모르게 스네이프의 등 뒤로 슬금슬금 이동을 한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의 등 뒤에 숨어 노리스 부인을 지켜보았다. 노리스 부인은 릴리아나를 향해서 불쾌한 듯이 야옹거렸지만 이내 필치가 부르자 못마땅한 듯 꼬리를 흔들며 가버렸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릴리아나는 투명망토를 벗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너는 대체……."
스네이프가 한바탕 잔소리를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아직까지 잠기지 않은 가슴 부근을 보고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그 망할 단추나 잠가라!"
그제야 아직 다 잠기지 않은 단추를 눈치 챈 릴리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단추를 잠갔다. 잠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목까지 단추를 채우고 나자 릴리아나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저…….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교수님."
"도와주려고 한 일이 아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밤늦게까지 욕실에 남아 있던 것이지? 이유를 불문하고 통금시간이 지났음에도 밖에 있다는건 징계감이야!"
릴리아나가 투명망토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스네이프는 계속해서 잔소리를 퍼부었다.
"투명망토까지 들고 오다니 아주 작정하고 왔구나!"
릴리아나가 눈썹을 내리며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기어들어갈 것 같은 축 처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스네이프가 릴리아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 사이에 향긋한 샴푸냄새와 달콤한 바디워시 냄새가 훅 퍼졌다.
“너는……. 너는…….”
스네이프가 아랫입술을 억누르듯 깨물며 몸을 돌렸다.
"기숙사까지 데려다 줄 테니 따라와라."
"저……. 교수님……."
"얌전히 따라오기나 해!"
릴리아나가 우물쭈물거리며 입을 열었지만 스네이프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릴리아나는 투명망토와 교복뭉치를 끌어안으며 스네이프의 뒤를 따랐다.
한참동안 복도를 터벅터벅 걷는 발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묵묵히 스네이프의 뒤를 따라가던 릴리아나는 스네이프가 갑자기 멈춰 서자 이마를 그의 등에 콩 하고 박고 말았다.
"교수님? 왜……."
"쉿."
스네이프가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대며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복도 멀리서 또각또각 하는 구두소리가 났다. 릴리아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불안한 듯이 그를 바라보자 스네이프가 손짓으로 투명망토를 쓰고 자신의 뒤로 오라는 시늉을 했다. 고개를 끄덕인 릴리아나가 스네이프의 뒤에서 투명망토를 쓰기가 무섭게 복도 끝에서 엄브릿지가 나타났다. 편해 보이는 원피스처럼 생긴 잠옷을 입고 하얀 가운을 걸친 엄브릿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은발머리를 쓸어 넘기며 걸어왔다.
"……스네이프 교수님!"
엄브릿지가 깜짝 놀라며 스네이프에게 아는 척을 했다. 옆에서 본 스네이프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지만 스네이프는 보일 듯 말듯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여기는 다시 무슨 일이세요? 아까 저를 데려다 주시고-릴리아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며 스네이프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지하 감옥으로 다시 가신 줄 알았는데……. 혹시 제가 또 보고 싶어서 오신 거예요?"
엄브릿지가 애교가 철철 넘기는 목소리로 말하자 스네이프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장난이에요.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엄브릿지가 환하게 웃으며 스네이프의 팔을 가볍게 툭 쳤다. 릴리아나가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은 눈길로 스네이프의 팔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밤 늦게 다시 나온 거예요?”
“연구 자료를 찾으러 갔다 오느라 그랬습니다.”
“아아, 그랬구나. 요즘 연구하고 있다는 금세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약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약의 부작용을 막는 법은 찾으셨나요? 약의 맛이 너무 쓰다고 하셨던 것 같은…….”
"밤이 늦었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네. 수고하세요."
"그럼."
스네이프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성큼성큼 걸어가 버리자 릴리아나는 최대한 발소리를 줄이며 그를 따라갔다. 엄브릿지의 시선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복도를 돌아 엄브릿지로부터 떨어지자 릴리아나가 투명망토를 내리며 지나가듯이 말했다.
"언제 그렇게 사이가 가까웠어요?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예요?"
지나가듯이 말하려고 했지만 말에서 뾰족한 가시가 느껴졌다. 하지만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의 대답에 정신이 팔린 채라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그런 사이 아니다."
"그런 사이가 아닌데 잠자기 전에 데려다주기까지 해요? 식사하러 같이 들어오고요? 서로 이름도 부르고요? 단둘이 방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말을 하던 릴리아나는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말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스네이프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사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왜……."
릴리아나가 입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렸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부탁이었다."
"부탁이요?"
의외의 대답에 릴리아나가 고개를 번쩍 들고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 여자의 연설을 들었다면 알겠지. 마법부가 본격적으로 호그와트의 일에 간섭하겠다고 선전포고 한 것 말이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마법부에서 온 그 여자에게 밉보이지 말라고 부탁하셨다. 되도록이면 성질을 건들지 말고 친절하게 대하라고 말이다."
말을 하는 스네이프는 불쾌한 듯 미간이 씰룩거렸다. 릴리아나가 씰룩거리는 입 꼬리를 내리려고 하며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그렇게 대해주었던 것이 전혀 교수님의 의지가 아니셨다는 말이군요?"
최대한 돌려 말할 말을 찾은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네이프가 보일 듯 말듯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렸다.
"아니, 내가 한 말은 다 잊……."
"어서가요 교수님!"
스네이프가 작게 중얼거리며 입을 열었지만 릴리아나는 듣지 못하고 활짝 웃으며 앞서나갔다.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릴리아나는 두볼 가득히 홍조를 띄우며 연신 밝게 재잘거렸다. 환하게 웃으며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을 반으로 접자 스네이프는 평소처럼 딱딱하지만 언뜻 후회가 보이는 얼굴로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스네이프와 릴리아나는 그리핀도르 기숙사 초상화 앞에 도착했다. 릴리아나는 아쉽다는 기색을 애써 숨기며 스네이프에게 인사했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해요, 교수님."
스네이프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아나가 손을 가볍게 흔든 후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스네이프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보고 있던 뚱보 부인이 무슨 일 있으시냐고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지만 스네이프는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다는 듯 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넘기며 가버렸다. 한동안 조용한 복도에는 뚱보 부인이 스네이프에 대해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