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57화 (5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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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기사단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사조 기사단-(10)

11월보다 더 많은 눈과 함께 12월이 찾아왔다. 5학년들에게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숙제도 함께 동반되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론과 헤르미온느가 해야 할 반장 업무도 점점 더 많아졌다. 그들에게는 성을 장식하는 일을 감독하고("피브스가 반짝이 줄의 한쪽 끝을 붙잡고 네 목을 조르려고 하는 동안, 넌 그걸 어떻게든 벽에 걸어야만 해." 론은 이렇게 투덜거렸다.) 1, 2학년들이 노는 시간에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라는 책임이 맡겨졌다. 바깥 날씨가 너무 추웠던 것이다. ("이번 하급생들은 시건방진 꼬마 불량배들이야. 우리가 1학년 때에는 절대로 그렇게 무례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론은 투덜거렸다.) 그리고 아구스 필치와 교대로 복도 순찰도 해야만 했다. 필치는 잔뜩 고조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마법사들 간의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똥만 잔뜩 들었어." 론은 화를 냈다.)

론과 헤르미온느만큼 바쁘지는 않았지만 릴리아나 역시 바쁜 축에 속했다. 엄청난 양의 숙제와 더불어 스네이프의 개인 교습까지 받으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아직 진로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스네이프에게 마법약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말한 것은 반쯤은 즉흥적인 것이었지만 수업을 하면 할수록 점점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죽음의 약을 응용한 약들과 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라는 숙제를 받은 릴리아나는 그리핀도르 휴게실에서 깃펜 끝을 쪽쪽 빨며 반쯤 쓴 숙제를 다시 살펴보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있었다.

"아니야 거기엔 카멜레온의 비늘을 넣어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엔 데미가이즈(데미가이즈의 털을 이용해 투명망토를 만든다)의 털을 넣어야 할 것 같아."

"데미가이즈의 털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둘이 무슨 얘기해?"

벽난로 앞에서 양피지에 무언가를 써내려가며 말다툼을 하고 있는 프레드와 조지를 향해 릴리아나가 물었다.

"안녕 릴리. 좋은 밤이야, 그렇지?"

프레드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프레드, 안녕 조지. 뭐하고 있는 거야?"

프레드와 조지가 장난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눈썹과 손을 이용해 알 수 없는 대화를 하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결론이 났는지 조지가 입을 열었다.

"음……. 우리가 위즐리 형제의 신기한 장난감 가게에 내놓을 새로울 상품을 만들고 있는데……. 온갖 재료를 넣어 봤는데도 그저 이상하게 변해서."

"뭘 만들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임시로 붙인 이름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서'야."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릴리아나가 쪽쪽 빨던 깃펜마저 내려놓고 어리둥절하게 묻자 조지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 훌륭한 아이디어는 우리 친애하는 엄브릿지 교수님한테서 얻었지."

"사실 그 벨라같이 생긴 얼굴 속에는 두꺼비가 숨어져 있어도 놀랍지 않을 것 같거든."

"독 두꺼비여도 말이야."

"헝가리 혼테일도."

"땅신령이나."

"바실리스크."

"폭탄 꼬리 스쿠루트도."

"애크로맨투라도 있어."

"난 트롤이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어."

"나는……."

"아니, 그래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서'가 도대체 뭔데."

대화가 점점 누가 누가 더 흉측한 생물 이름을 말하나 대회로 변질되어가자 릴리아나가 황급히 쌍둥이의 대화를 끊으며 물었다.

"아, 그 얘기 중이었지."

"아무튼 엄브릿지를 보며 사람은 얼굴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서 생각을 해 봤는데 이런 생각이 들지 뭐야. 만약 자신의 내면이 얼굴이 된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엄브릿지는 독 두꺼비가 되겠지."

"엄브릿지가 독 두꺼비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계속 실험을 해보고 있었는데 항상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하지 뭐야."

"거무죽죽하게 변하거나."

"아니면 너무 반짝거리게 변해서 눈을 뜰 수가 없거나."

"하늘색의 복슬복슬한 털이 자라난 적도 있었지."

"내건 보라색도 섞여 있더라."

"온통 무지갯빛으로 변한적도 있었어."

"어떻게 원래대로 되돌린 거야?"

릴리아나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경악한 표정으로 묻자 프레드가 씩 웃었다.

"사실 완벽하게 되돌리지는 못했어. 빗자루에 앉게 되는 그 부분과 그 근처는 아직도 무지갯빛이거든. 조지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고. 덕분에 화장실에 갈 때 안에 누구 있는지 꼭 확인하게 됐어."

"혹시나 보고 눈이 멀어버리면 안되니까."

프레드와 조지가 서로를 바라보며 킬킬거리자 릴리아나는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데 뭐 좋은 방법 없니? 넌 마법약을 잘하잖아."

"만드는 방법 좀 보여줘 봐."

조지가 새까매진 양피지를 건네주자 릴리아나가 찬찬히 만드는 방법을 읽었다.

"나머지 부분은 이론적으로 완벽하단 말이지. 그런데 왜 마지막 재료를 찾아내지 못하는 걸까."

프레드가 "무지갯빛……." 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소중한 부위 근처를 내려다보자 곰곰이 생각하던 릴리아나가 입을 열었다.

"음……. 베리타세룸은 넣어봤어?"

"베리타세룸?"

프레드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베리타세룸은 진실을 말하게 하는 약이잖아. 혹시 넣게 되면 내면의 진실이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확실히……베리타세룸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은 없어."

"지금까지 나왔던 재료 중에 가장 그럴듯한걸?"

프레드는 릴리아나에게 당장이라도 키스라도 하고 싶은 듯 했다. 조지는 릴리아나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붕붕 흔들어댔다.

"우린 지금 당장 실험해보러 갈게."

"정말 고마워 릴리!"

프레드와 조지는 릴리아나의 손을 한쪽씩 붙잡고 가볍게 손등에 입을 맞춘 뒤 기숙사 침실로 올라가 버렸다. 얼떨떨한 얼굴로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 앉아 다시 숙제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점점 다가올수록 헤르미온느는 얼마나 바빠졌던지 집요정의 모자를 뜨는 일조차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릴리아나 역시 그녀 못지않게 바빴다. 스네이프는 수업이 어떻게 시작되었든 자기의 이름을 건 개인 교습이 된 이상 절대 뒤쳐지거나 평범한 수준에 멈추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방대한 양의 지식을 릴리아나에게 넘겨주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숙제를 하던 릴리아나는 겨우 숙제를 마무리 짓고 7시 10분 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흘끗 바라본 뒤 숙제와 필기구가 든 가방을 챙겨서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밤인데다가 지하여서 그런지 상당히 추운 날씨에 추위를 잘 타는 릴리아나는 망토를 꼭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스네이프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려고 하던 릴리아나가 안에서 흘러나오는 엄브릿지의 목소리에 문으로 향하던 손을 멈췄다.

"……저는 그저 사적으로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왔던 거예요."

"곧 개인 교습이 시작되니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군요."

"어머, 그 어린 여자아이 때문에 매정하게 방금 온 사람을 그렇게 내모시는 건가요? 이렇게 추운 겨울에요? 제가 싫으신 건가요? 역시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건가요?"

엄브릿지의 마지막 말을 조금 날이 서 있었다. 릴리아나 역시 숨을 멈춘 채로 스네이프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스네이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 스네이프로써는 딱딱한 목소리긴 했지만 평소에 비하면 매우 예의바른 태도로 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가 주시죠. 곧 학생이 올 겁니다."

안의 상황을 유추해 보건데 그는 엄브릿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그의 결정은 현명하게도 엄브릿지를 싫어하는지 대답하는 것을 피해갔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질문 역시 피해갔다. 엄브릿지는 그것을 억지로 캐묻지 않기로 결정한 것인지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교수끼리 사무실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뭐 어때서 그러세요?"

"'교수'라면 학생의 미래를 위한 개인 교습을 할 시간이 되면 '사적인' 대화를 멈추고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돌아가 주시죠."

스네이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엄브릿지도 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애교 어린 체념하는 투로 말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죠. 그럼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데려다 주시면 안 되나요?"

"죄송하지만……."

"이것까지 거절하진 말아주세요. '부탁'이에요."

엄브릿지가 부탁을 세게 발음하자 잠시 말이 없던 스네이프가 의자에서 일어나는지 의자가 삐걱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향해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나자 릴리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옆 교실로 숨어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두 남녀의 발소리와 엄브릿지가 일방적으로 재잘거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만 갔다.

릴리아나가 가방 끈을 있는 힘껏 잡았다가 스르르 놓았다. 어쩐지 힘이 빠졌다. 힘없이 시선을 차가운 바닥에 두고 있던 릴리아나가 고개를 들고 교실에서 나와 스네이프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숙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멍하니 둥둥 떠다니는 약초들을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엄브릿지의 말을 듣기 전까진 그쪽으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스네이프가 엄브릿지를 그 나름대로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것이 덤블도어의 명령이라는 것만 알고 마음을 놓았었다. 설마 스네이프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스네이프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정확하게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좋아하는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릴리아나의 머릿속으로 금발머리, 검은머리, 갈색머리 별별 아름다운 얼굴의 여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모두 성숙하고 매혹적인 아름다움를 뽐내는 성인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엄브릿지가 말했던 대로 자신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성인 남성인 교수님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이성적인 감정이라고 취급하기 보다는 그저 한때의 동경으로 취급되는 어린아이. 당당하게 옆에 설 수 없는 어린아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스네이프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자신에게는 기회가 전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서 무언가가 부서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릴리아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쩐지 눈물이 울컥하고 솟구치는 것 같았지만 릴리아나는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삼켰다. 여섯 살 먹은 꼬마도 아니고 왜 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은지. 애써 피식 웃으려고 했지만 이유모를 울음기가 자꾸 북받쳐 올라왔다.

"언제 왔던 것이냐."

스네이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릴리아나가 천천히 책상에서 얼굴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 꾹꾹 눌러놓았던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릴리아나는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대답하려고 했다.

"방금요."

"그럼 바로 수업을 시작하지. 해오라는 숙제는 다 해온 것이냐?"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숙제를 스네이프에게 건넸다. 그는 검은 눈으로 천천히 숙제를 읽어 내려갔다.

"저 교수님."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의 숙제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릴리아나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질문의 대답을 듣게 되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만약’이라는 이름의 희망이 정말로 끊어져 버릴 것 같아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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