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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기사단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사조 기사단-(16)
다음날 만난 세바스찬은 울었던 것인지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눈 밑에는 퀭해 보이는 그늘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술을 마신 것이 확실해 보이는 그에게선 술 냄새가 펄펄 났다. 릴리아나에게 아침인사를 하면서도 몇 번 헛구역질을 하던 세바스찬은 결국 입을 손으로 막고 아침을 만들다 아침으로 만든 토마토 스프의 냄새를 맡고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버렸다. 릴리아나는 저 토마토 스프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며 냉동실에서 얼린 빵을 꺼내 토스트기에 굽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방으로 다시 돌아온 세바스찬은 등을 반쯤 구부린 채로 릴리아나에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좋은……욱……아침입니다, 아가씨."
한 번의 위기를 겪고 간신히 말을 마친 세바스찬은 입가를 손으로 슥 닦았다.
"그……래. 좋은 아침 세바스찬."
릴리아나가 떨떠름한 얼굴로 때마침 토스트기에서 튀어나온 빵을 집자 세바스찬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아침……우욱……만들고 있는데……."
"아니야. 괜찮은 것 같아."
릴리아나가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친절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릴리아나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는지 창백해진 얼굴로 몇 번 더 욱욱 거리는 소리를 내다 다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으으-라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이 된 릴리아나는 빵을 우물거리며 가장자리가 타고 있는 토마토 스프의 불을 껐다. 잔뜩 뭉개진 토마토 스프는 마치 누군가의 토사물처럼 보였기에 오늘은 절대로 이것을 먹지 않으리라 결심한 릴리아나는 새하얀 머그잔에 홍차를 타서 방으로 가지고 올라갔다.
세바스찬은 본론은 꺼내지도 않고 그저 가정만 말했을 뿐인데도 생각보다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은 것 같았다. 계단을 올라가던 릴리아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나중에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오면 그 자리에서 기절이라도 하는 것은 아닐까 우울하게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쉰 릴리아나는 방 안으로 들어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 카탈로그를 향해 다가갔다.
책상 위에 찻잔을 내려놓고 빵을 우물거리며 카탈로그를 한번 쭉 훑은 릴리아나는 물건들에게 동그라미를 치며 해리, 론, 헤르미온느와 여러 사람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기 시작하자 세바스찬의 반응은 점점 흐려져만 갔다.
막 헤르미온느에게 선물할 향수를 고르고 카탈로그를 뒤적거리던 릴리아나는 고급스러운 금색 바탕에 초록빛의 보석이 하나 박혀있는 넥타이핀을 발견하고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그 넥타이핀을 본 순간 단번에 선물할 사람이 떠올랐다.
"교수님……."
넥타이를 맨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하나쯤 있으면 좋지는 않을까.
릴리아나는 넥타이핀 위에 작은 동그라미를 쳤다. 자신이 그려놓은 동그라미를 보고 소리 없이 환하게 웃으며 부끄러움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고개를 마구 젓던 릴리아나는 뒤에서 소리 없이 껴안아 정수리에 턱을 대는 누군가에 화들짝 놀랐다.
"아가씨……."
"세바스찬?"
릴리아나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세바스찬은 슬픈 눈으로 릴리아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하세요?"
"응? 나?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고 있었지."
릴리아나가 어색한 미소를 흘리자 세바스찬은 그녀의 옆에 햄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이제 몸은 괜찮아?"
"아까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확실히 세바스찬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방금 전 죽을 것 같았던 모습보다는 괜찮아 보였다.
"넥타이 핀인가요? 도대체 누구한테 주기에 그렇게 동그라미를 치고 좋아합니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한테 주는 건가 보네요? 네? 그렇죠? 이젠 저를 제일 좋아하지도 않으시고 저는 이제 이렇게 쓸쓸하게 버려지겠죠. 아가씨는 다른 남자와 함께 떠나버리고 저는 늙어 죽을 때 까지 쓸쓸하게 이곳을 지키면서……."
세바스찬이 투덜거렸다. 사실, 그의 정신은 아직 온전치 못한 듯 했다.
"세바스찬."
릴리아나가 타이르는 것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세바스찬을 불렀다.
"나는 '만약'이라고 했지 내일 당장 결혼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어. 세바스찬은 내일 당장 내가 결혼하는 것 같이 말하고 있잖아. 그리고 나에게는 세바스찬이 제일 소중하다고."
릴리아나의 말에 눈을 몇 번 깜빡거리던 세바스찬의 두 눈에는 어느새 물기가 생겨 있었다.
"아가씨……."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릴리아나가 세바스찬을 꼭 안아주며 말하자 그 역시 릴리아나를 껴안고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럼 저 선물은 역시 제 것인가요?"
"……응?"
세바스찬의 품에서 떨어진 릴리아나가 얼떨떨하게 묻자 세바스찬은 눈물에 젖어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릴리아나가 동그라미를 쳐놓은 넥타이핀을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고르고서 좋아하셨지 않습니까. 제……것이 아니었나요?"
세바스찬이 어색하게 하하 웃음을 흘렸다. 그는 조금 초조해보였다.
"뭐 그럴 수도 있지요. 해리 군이나 론 군에게 선물하는 것일 수도 있고 위즐리 씨에게 선물하는 걸 수도 있지요. 그럼 제 선물은……."
세바스찬이 말끝을 흐렸다. 팽팽하게 머리를 굴리며 세바스찬의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던 릴리아나는 아직 세바스찬의 선물은 고르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망설였다.
"사실 아직……"
사실대로 말을 하려던 릴리아나는 눈썹을 불쌍하게 모으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세바스찬과 눈이 마주치자 차마 진실을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을 했다가는 괜찮다고는 하면서 '저에 대한 우선순위는 뒤로 밀려 있었던 것이군요.'라고 우울하게 중얼거리며 또 다시 밤에 한잔 할 것 같았다. 문득 릴리아나는 그동안 크리스마스 방학 때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냈을 때 세바스찬의 반응을 기억해내고 작게 몸을 떨었다. 괜찮다고 했지만 자신의 편지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세바스찬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응, 맞아. 세바스찬 선물이야. 깜짝 선물로 하려고 했는데 들켜버렸네?"
"그……렇죠?"
단번의 세바스찬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너무 마음에 듭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넥타이핀들은 다 몇 년 전에 산 것이라 조금씩 낡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고 아가씨가 저에게……."
"……그렇지? 내가 최고지? 내가 이렇게 세바스찬을 생각하고 있다니까."
릴리아나가 태연한 목소리로 평소처럼 말을 하려고 하자 세바스찬은 그녀가 본 것 중에 최고로 환하게 웃었다. 어쩐지 음유시인 비들이 쓴 '마술사의 털 난 심장'이라는 동화 제목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죽을 때까지 그 핀만 하고 다니겠습니다. 세상에……. 아가씨가 벌써 이렇게 자라다니……."
세바스찬은 다시 한 번 릴리아나를 꽉 끌어안더니 방을 나갔다. 방 밖에서 세바스찬이 제일 좋아하는 곡을 흥얼거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상당히 기분이 좋은 듯 했다.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에게 선물한 것이 또 뭐가 있나 라는 생각과 함께 세바스찬에게 하루빨리 여자를 소개시켜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에 이어 산더미 같은 진수성찬을 점심으로 차린 세바스찬은 이제 숙취가 느껴지지도 않는 것인지 하루 종일 싱글벙글한 상태로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잠시 밖에 갔다 오겠다는 말에 환하게 웃으며 다녀오라고 말하는 세바스찬의 인사를 받은 릴리아나가 저택을 나섰다.
옅은 분홍색 니트와 하얀 스커트를 입고 회색의 털 코트까지 입어 단단하게 중무장한 릴리아나는 근처에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고 번화가로 나왔다. 오랜만에 찾은 번화가는 그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었다. 릴리아나는 가방 속에 들어있는 카탈로그를 꺼내 친구들에게 줄 선물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그 물건을 파는 가게로 발걸음을 향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전날이라 그런지 가게들은 모두 반짝이는 꼬마전구들로 가득했다. 근처의 나무들 역시 꼬마전구들로 덮여 있어 크리스마스임을 표현하고 있었다. 해리의 선물과 론의 선물, 헤르미온느의 선물과 다른 사람들의 선물을 차례차례 산 릴리아나는 마지막으로 들린 양복점에서 눈물을 머금고 넥타이핀을 샀다. 정성들여 포장해달라고 강조한 릴리아나는 계산대 아래 있는 진열대에서 백합문양(플뢰르 드 리스fleur de lis)이 새겨진 은색 커프스를 발견했다.
"죄송하지만 이것 좀 보여주시겠어요?"
릴리아나가 손가락으로 커프스를 가리키자 직원은 장갑을 끼더니 조심스럽게 커프스를 꺼냈다.
백합 문양의 커프스는 꽃 모양 그대로를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상징화 시킨 것이긴 했지만 그 덕분에 여성스러운 느낌은 사라지고 고급스럽고 강인한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릴리아나가 물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인지 직원은 열심히 커프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잘 고르셨습니다. 이건 올해 신상으로 나온 커프스인데요, 변색도 되지 않고 문양도 고급스럽게 잘 나와서 인기가 많아요. 선물 받으시는 분도 많이 좋아하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럼 이것도 하나 주세요."
어차피 스네이프에게서 넥타이를 맨 모습은 본 적이 없었고 그는 항상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으니 커프스가 더 좋은 것일지도 몰랐다. 백합 문양의 커프스는 릴리아나 그녀 자신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의 옷에 그녀의 상징을 붙여놓는 것 같은 기분에 저절로 릴리아나의 두 볼이 발그레해졌다.
양복점을 나온 릴리아나는 마지막으로 문구점에 들려 예쁜 편지지를 사는 것으로 모든 쇼핑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해는 지고 희미하게 달이 보이고 있었다. 세바스찬은 그녀가 고른 선물을 보지 않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릴리아나를 목소리로만 반겨주며 주방에 숨어 있었다.
곧장 방으로 올라가 차례차례 편지를 쓰던 릴리아나는 특별히 세바스찬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정성을 담아 쓴 후 마지막으로 한 장 남은 편지지를 자신의 앞으로 가지고 왔다. 잉크 펜의 끝을 이로 우물거리던 릴리아나는 홍조가 도는 얼굴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에는 아침 내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느라 분주했다. 세바스찬은 연신 캐롤과 그가 좋아하는 곡들을 계속해서 흥얼거리며 릴리아나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어서 기쁘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오! 해피 크리스마스! 나의 사랑 릴리아나아아 아가씨이이!"
"세바스찬!"
결국 세바스찬은 만취했을 때 밖에 보여주지 않는 릴리아나 연가를 부르기까지 했다. '나의 사랑, 나의 빛, 나의 기쁨, 나의 전부' 같은 저절로 손발이 말려들어가는 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던 세바스찬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한 릴리아나가 던진 별 장식에 맞고 낄낄거리며 다시 평범하게 캐롤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저녁 여섯시쯤이 되자 미리 예약해두었던 크리스마스 배달 부엉이들이 퀸 저택에 찾아왔다. 정성스럽게 쓴 편지와 선물들을 부엉이들에게 묶어 주었다. 밤과 저녁이 섞인 것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부엉이들을 바라보던 릴리아나는 크리스마스 데이트 계획을 세우자는 흥분한 세바스찬의 말에 적당히 대답해주며 밑으로 내려갔다.
밤이 늦도록 열성적으로 어떤 코스를 준비했는지 계획을 읊어주던 세바스찬의 말을 들으며 꾸벅꾸벅 졸던 릴리아나는 결국 그대로 잠에 들어버리고 말았다. 분명 잠들었을 때는 소파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릴리아나는 침대 밑에 잔뜩 쌓여 있는 선물 꾸러미를 발견했다.
무겁던 눈에서 순식간에 졸음이 물러가자 릴리아나는 침대 밑으로 내려와 선물을 하나하나 풀어보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가 보낸 소리가 나는 일기장과 해리가 보낸 원피스와 론이 보낸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 한 상자를 풀은 릴리아나는 세바스찬이 보낸 귀걸이와 위즐리 부부가 보낸 늘 그렇듯이 손으로 짠 스웨터와 집에서 만든 간식, 시리우스가 보낸 진짜 보석인 것 같이 보이는 다이아몬드 귀걸이와 루핀이 보낸 마법약 책까지 모두 풀어보고는 허탈한 얼굴이 되었다.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