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64화 (6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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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기사단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사조 기사단-(17)

릴리아나는 자신이 방금 겪은 상황을 잠시 이해할 수가 없어 다시 선물 꾸러미를 뒤적였다. 그렇게 해도 스네이프가 보낸 선물이 보이지 않자 릴리아나는 포장지 따로 선물 따로 하나하나 정리를 해서 침대 위에 늘여놓았다. 하지만 다른 선물은 발견할 수 없었다.

"……없네."

진짜 없어. 릴리아나가 침대 위를 잔뜩 차지하고 있는 선물을 한쪽으로 아무렇게나 밀어버린 후 침대에 벌렁 누웠다.

도대체 왜 없는 걸까. 다른 여자들보다 좀 더 깊은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만의 착각이었나? 입도 맞추고 심지어 헤어질 때 인사까지 했었는데……. 설마 그때 키스했던 것은 그저 한때의 욕망에 휘둘려 했던 것이고 인사를 했던 건 그건 사실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일까? 릴리아나의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또 물었다.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함이 슬그머니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안감은 곧 릴리아나를 차지해버렸다. 불안이 쉴 새 없이 릴리아나의 머릿속에 속삭였다.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뭐가 좋다고 열여섯의 제자를 좋아할까. 진지하게 여기지도 않았을 거야. 그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타고 앞에서 그렇게 유혹을 하니 잠시 넘어갔던 것이지. 그러니까 네게 선물도 보내지 않고 편지도 보내지 않았던 거지. 솔직히 교수라는 직업과 준수한 얼굴과 벨라같이 생긴 엄브릿지마저 넘어가버린 남자가 뭐가 좋다고 성년도 되지 않은 꼬맹이를 좋아하겠어? 너 혼자 둘이 진지한 사이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야.

착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 교수가 너를 진지하게 생각했을까? 착각하고 있었던 거야. 설마 믿었던 건 아니지? 그가 네게 확신을 준 적이 있니?

……아니.

그와의 첫 번째 입맞춤 후 몇 번 정도 생각했던 문제였지만 그때마다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의 성격 상 그럴 리가 없으니까-로 넘겼었다. 하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문득 책장에 닿았다. 릴리아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책장 앞으로 다가가 특별히 아끼던 책들을 꽂아놓은 칸을 찬찬히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책등을 훑던 릴리아나의 손가락이 한 책 앞에서 멈췄다.

일학년 때 스네이프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주었던 책이었다. 일학년 때 이 책을 받고 어딜 가나 들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여름방학을 맞이했을 때 프랑스 할머니 집으로 이 책을 들고 갔다가 물에 젖어 복구가 불가능했을 정도로 망가질 뻔한 일 이후로 계속 이곳에 보관해 두었던 것 같다.

잠시 잊고 있었던 스네이프의 선물을 꺼낸 릴리아나가 책을 펼쳤다. 오년 정도의, 혹은 그보다 많은 세월이 지난 책의 내지는 살짝 바래있었지만 그곳에 쓰여 있는 글씨를 읽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독일 친구에게서 구했다고 하더군.―

빽빽하고 촘촘한 깨알 같은 글씨였다. 불사조에 광적으로 열광했을 어렸을 적이 떠올랐다. 그때는 불사조를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는데. 부엉이 닉스의 이름을 불사조를 뜻하는 '피닉스'에서 '피'를 빼고 지었던 어렸을 적이 스쳐 지나가자 릴리아나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스네이프가 불사조에 관련된 책을 보내줬을 때 그때 자신은 어떻게 느꼈더라, 참 다정하신 분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바로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 후 스네이프가 따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낸 적은 없었다. 일학년 때 보낸 이 책도 질문을 한 학생에 대답한 교수의 의무였으리라. 그 의무라고 추정되는 책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도, 심지어 진지한 관계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이번 크리스마스까지도 스네이프는 따로 릴리아나에게 보낸 것은 없었다.

내가 말했지? 착각하고 있었던 거라니까. 교수라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미성년인, 심지어 그의 학생이기까지 한 애를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 같아?

이때다 싶었는지 불안은 릴리아나에게 계속해서 속살거렸다.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관계가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속삭이는 불안은 꽤나 큰 절망을 안겨주었다.

***

어젯밤 세바스찬이 잔뜩 들떠서 계획했던 둘만의 크리스마스 데이트는 울적했던 릴리아나의 마음을 꽤나 좋아지게 만들었지만 그때뿐이었다. 대형 쇼핑센터에서 새로운 옷과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 세바스찬이 기대하던 둘만의 사진을 찍고-지갑에 둘이 찍은 사진을 넣은 세바스찬은 사진관에서 뽑을 수 있는 사이즈별로 사진을 뽑을 기세였다-박싱데이에는 위즐리 씨를 병문안 갔다 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스네이프에게 다른 연락은 없었다. 릴리아나의 기분은 바닥을 찍었다.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기 하루 전에 릴리아나는 그리몰드 광장에 들렸다. 박싱데이에 병동에서 위즐리 씨와 위즐리 부인이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기 며칠 전이라도 같이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릴리!"

"안녕하세요, 위즐리 부인. 안녕 헤르미온느."

릴리아나가 싱긋 웃으며 위즐리 부인과 헤르미온느에게 인사를 했다. 바닥을 찍었던 기분은 위즐리 부인과 헤르미온느의 얼굴을 보자 단번에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릴리아나의 양 볼에 입을 맞춰주었고, 헤르미온느는 릴리아나가 올 줄 몰랐는지 매우 놀란 듯 했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온 것을 기뻐했다.

"좀 더 같이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계단을 올라가던 헤르미온느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그러게. 해리랑 론은 어디 있어?"

새장 안에서 퍼덕이는 닉스를 진정시키려고 하며 커다란 짐을 끙끙거리고 올라가는 릴리아나가 물었다.

"위에서 마법사 체스를 하고 있어. 네가 온 걸 알면 깜짝 놀라겠다."

헤르미온느의 예상대로 마법사 체스를 하고 있던 해리와 론은 릴리아나를 보자 귀신을 본 것 마냥 깜짝 놀랐다. 옆에서 보고 있던 지니가 우스운 듯 킬킬 웃었다. 지니의 방에 짐을 풀고 다시 론의 방으로 온 릴리아나는 생각보다 치열한 마법사 체스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창밖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리."

위즐리 부인이 론과 해리의 침실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체스 게임은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었다.

"잠깐 부엌으로 내려올래? 스네이프 교수님이 너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는 구나."

릴리아나는 위즐리 부인의 말을 금방 알아듣지 못했다. 해리의 성장 중 하나가 론의 졸과 한창 격전을 벌이는 중이라 열렬히 응원을 보내던 탓도 있었지만 위즐리 부인의 말이 믿기지가 않아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납작 뭉개 버려. 뭉개 버리라고. 그 녀석은 한낱 졸에 불과하단 말이야. 이 멍청아. 아, 위즐리 아줌마, 죄송해요. 뭐라고 말씀하셨죠?"

"스네이프 교수님이 부엌에서 기다리신다. 너랑 얘기하고 싶으시단다."

릴리아나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지만 모두 해리의 얼굴을 관찰하느라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릴리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가 온 것이 진짜라는 것을 알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멈출 길이 없었다. 모두가 할 말을 잃고 해리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십오 분 동안이나 헤르미온느의 손에 억지로 붙잡혀 있던 크룩생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씨구나 체스판 위로 얼른 뛰어 올라갔다. 그러자 체스 말들은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도망쳤다.

"스네이프라고요?"

해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스네이프 교수님 말이다, 얘야."

위즐리 부인이 나무라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자, 어서 가자. 별로 시간이 없으시다는 구나."

"그 사람이 왜 널 보자는 거지?"

위즐리 부인이 방을 나가자 론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넌 아무 짓도 안 했잖아, 안 그래?"

"물론이야!"

해리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얼굴이었다. 잠시 후에 해리가 내려가자 론이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정말 해리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헤르미온느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는 그들 사이에 갑자기 뿅 하는 소리와 함께 위즐리 쌍둥이가 나타났다.

"형들! 좀 내려올 땐 예고 좀 하고 내려오라고!"

"이런! 미안, 미안."

조지가 능글맞게 웃었다. 프레드가 물었다.

"왜 이리 무거운 분위기야? 엄마가 곧 있으면 아빠가 올 거래. 내려가서 기다리지 않을래?"

"좋아."

헤르미온느가 즉각 대답을 했다. 프레드와 조지, 론은 스네이프와 마주치기 싫었는지 부엌을 통과하지 않는 계단을 통해 현관 쪽으로 내려갔다. 멀리서 시리우스가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둘은 지치지도 않는군, 안 그래?"

프레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혹시 스네이프의 목소리가 들릴까 귀를 기울이고 있던 릴리아나는 현관까지 가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리며 줄무늬 잠옷을 입고 고무 방수 망토를 걸친 위즐리 씨가 들어오자 귀 기울이던 것을 멈췄다.

"다 나았단다!"

"아빠!"

위즐리 형제들이 우르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위즐리 씨는 그들을 한 번씩 꼭 안아주었다. 뒤이어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가 위즐리 씨에게 다가오자 위즐리 씨는 그녀들도 한 번씩 안아주었다.

"이제 저녁식사를 해야지! 해리와 시리우스는 어디 있니?"

"음……. 부엌에요?"

론이 머뭇거리면서 대답하자 위즐리 씨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어서 부엌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래, 맞아."

"해리-당장-옆으로 비켜!"

"다 나았단다!"

자랑스럽게 부엌으로 걸어 들어온 위즐리 씨가 부엌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명랑하게 소리쳤다.

"완전히 나았어!"

하지만 그 순간 위즐리 씨와 다른 모든 가족들은 입구에 딱 얼어붙어 서서 그들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시리우스와 스네이프 또한 서로의 얼굴을 향해 지팡이를 겨눈 채, 동작을 멈추고 문 쪽을 돌아보았다. 한편 해리는 그들을 말리려고 두 팔을 양쪽으로 쫙 뻗은 채 두 사람 사이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이런 세상에!"

갑자기 위즐리 씨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시리우스와 스네이프는 동시에 지팡이를 내렸다. 두 사람 모두 경멸에 가득 찬 표정이었지만, 뜻밖에 이런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자 갑자기 정신이 든 것처럼 보였다. 스네이프는 지팡이를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홱 돌아서더니 부엌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리고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위즐리 가족 옆을 지나쳐 가다가 문 앞에서 다시 돌아섰다.

"월요일 저녁 여섯 시다, 포터."

그리고 그는 떠나버렸다. 잠시 얼어붙은 부엌에서 눈치를 보던 릴리아나가 뒤쪽으로 몰래 빠져나갔다.

"교수님!"

릴리아나가 성큼성큼 걸어가는 스네이프를 불렀다. 스네이프가 멈춰서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화가 난 듯 했지만 릴리아나가 이곳에 있다는 것에 놀란 듯 했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약간의 침묵 후 스네이프가 평소와 비슷한 목소리로 물었다.

"위즐리 부인이 호그와트로 돌아가기 며칠 전만이라도 그리몰드 광장에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스네이프의 앞에 서자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막상 스네이프를 불러 세우긴 했지만 여러 가지로 뒤섞인 복잡한 이유 때문에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안절부절 못하던 릴리아나의 시선이 스네이프의 손목에 닿았다.

평소와 같이 검은 망토와 검은 셔츠 차림의 그의 손목에는 릴리아나가 선물한 백합 문양의 커프스가 달려 있었다. 그것을 발견하자 릴리아나의 가슴 속에 갑자기 무언가가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릴리아나가 환하게 웃게 되는 입 꼬리를 누르려고 하며 물었다.

"그거……하셨네요? 커프스……."

릴리아나의 말에 스네이프가 머쓱한 듯 자신의 손목을 만졌다. 릴리아나가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왜 저한테는 선물 안 보내신 거예요? 제가……."

릴리아나가 말꼬리를 흐렸다. 얼마나 초조했고 꿈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에게는 별 것 아닌 상황이었던 것인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릴리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반쯤 고개를 숙였다.

"그건……."

스네이프 역시 말꼬리를 흐렸다. 반쯤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릴리아나를 바라보던 그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차갑지만 또 따뜻한 무언가가 릴리아나의 머리에 닿았다. 릴리아나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스네이프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또……."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작게 입안 여린 살을 깨물었다. 스네이프의 손이 릴리아나의 붉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었다. 멍하니 붉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릴리아나의 한쪽 머리를 귀 뒤로 넘겨준 스네이프가 몸을 돌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전히 멍한 얼굴로 스네이프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던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그의 손이 닿았던 곳에는 머리핀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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