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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기사단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불사조 기사단-(18)
릴리아나는 저녁식사를 하는 내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또 다음날 호그와트로 가는 내내 꿈꾸는 것 같은 멍한 표정이었다. 스네이프가 선물한 머리핀은 투명한 보석이 촘촘하게 박힌 단순한 디자인의 것이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릴리아나에게 잘 어울렸다.
구조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한 릴리아나는 벌써부터 헤르미온느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집요정 모자를 몇 개 더 떠야겠다는 이야기를 반쯤 흘려들으며 손을 올려 머리핀을 가볍게 만지작거렸다. 서늘한 보석의 감촉이 어쩐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다음 날 오전에 있던 마법약 수업에서 스네이프는 릴리아나에게 별 관심 없는 듯 거의 시선도 주지 않았지만 릴리아나는 그의 손목에 여전히 달려있는 백합 문양 커프스를 보고 계속해서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내리려 애를 써야만 했다.
하지만 해리의 기분은 릴리아나와 정반대인 듯 했다. 초 챙과 데이트 약속을 잡고 신이 나서 도서관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던 것과 대조되게 스네이프와 약속한 오후 여섯 시가 될 수록 해리의 안색은 점점 나빠졌다. 결국 여섯 시가 가까워지자 해리는 죽을상을 하고 스네이프의 사무실로 향했다.
***
"해리!"
스네이프와의 오클러먼시 수업이 끝난 해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서관에 들어오자 헤르미온느가 경악한 듯 작게 외쳤다.
"어땠어?"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런 얼굴로 속삭였다.
"괜찮았니?"
"음……. 괜찮아……잘 모르겠어."
해리가 얼굴을 찡그리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있잖아……방금 전에 깨달은 게 있어……."
해리는 오클러먼시 수업에서 보았던 장면과 자신의 추측을 말해주었다.
"그러니까……네 말은……."
핀스 부인이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옆으로 지나가자, 론은 더욱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사람이 찾고 있는 그 무기가……마법부 안에 있단 말이지?"
"미스터리 부서 안에 있어."
해리가 속삭였다.
"내 청문회 때 너희 아버지가 나를 법정까지 데려다 주실 때, 그 문을 본 적이 있어. 뱀이 아저씨를 물었을 때 아저씨가 지키고 있었던 문이 바로 그 문이 틀림없다니까."
해리의 말에 론과 헤르미온느가 조용한 목소리로 격렬한 토론을 벌었지만 새하얗게 질린 해리가 마치 이마의 흉터를 펴 버리려는 듯이 두 손으로 세게 문지르고 있자 릴리아나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해리, 괜찮아?"
"응……괜찮아……."
해리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내리며 말했다.
"그냥 좀 기분이……. 오클러먼시는 별로 내키지 않아."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머릿속을 자꾸 침범당하고 나면 떨리는 기분이 들 거야."
헤르미온느가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휴게실로 가자. 거기라면 좀 편할 거야."
결국 그들은 휴게실로 돌아왔고 릴리아나는 프레드와 조지가 홍보하고 있는 머리가 없어지는 모자를 잠시 흥미롭게 바라보았지만, 몹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해리는 남학생 침실로 올라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예언자 일보>>가 도착하자마자 신문을 펼쳐 들고 1면을 살펴보던 헤르미온느가 가까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로 갑자기 헉 하고 비명을 질렀다.
"왜 그래?"
해리와 론, 릴리아나가 동시에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대답 대신 그들 앞에 신문을 펼쳐 보이며 전면을 가득 채운 흑백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진 속에는 아홉 명의 마법사와 한 명의 마녀 얼굴이 실려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사진 가장자리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각 사진들 밑에는 이름과 이들이 아즈카반으로 가게 된 죄목이 적혀 있었다.
"아즈카반 집단 탈출? 옛 죽음을 먹는 자들의 핵심 세력으로 블랙을 의심하고 있다고?"
릴리아나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하자 해리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시리우스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이란 헛소리들을 모두 모아둔 것 같은 신문 기사는 터무니없게도 시리우스를 벨라트릭스 레스트렝과 연결시키며 시리우스가 범인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바로 이거였어, 해리."
론이 충격을 받아 얼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 때문에 그자가 어젯밤에 그렇게 좋아했던 거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퍼지가 이 탈출 사건의 배후로 시리우스를 지목한단 말이야?"
해리가 신음 소리를 내었다.
아즈카반에서 열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탈옥을 했다는 소식 이후로 D. A. 의 모든 아이들이, 심지어 자카리아스 스미스까지도 더욱 열심히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네빌만큼 눈에 띄게 실력이 느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을 공격한 자들이 도망쳤다는 소식은 네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네빌은 D. A. 시간 내내 한마디 말도 없이 해리가 가르쳐 주는 새로운 주문과 저주 방어법을 연습하는 데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정신을 집중하느라 그 통통한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어떤 부상이나 사고를 당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그 방 안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의 실력은 그 누구보다도 빨리 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네이프와 보충이 있는 토요일이 되었다.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의 사무실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 뒤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릴리아나에요."
잠시 방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더니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조금 흐트러진 차림의 스네이프가 나왔다.
"왜……."
"오늘 마법약 특별 수업 하는 날이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스네이프의 옷차림이나 그의 행동으로 보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스네이프가 들어오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작게 실례합니다, 라고 중얼거리며 들어온 릴리아나는 깨끗하긴 했지만 평소보다는 조금 어질러진 사무실을 보고 의외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 됐다. 스네이프가 물건을 어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번시간에 분명……"
스네이프가 말꼬리를 끌자 저번 시간의 기억이 떠오른 릴리아나의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스네이프도 잠시 말을 멈칫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어갔다.
"……유포리아를 했으니 오늘은 크리스마스 연휴 전에 만들어 두었던 살아있는 죽음의 약을 응용해 보도록 하지."
그는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더니 릴리아나가 해온 과제를 꺼내 건넸다.
"하나하나 차례대로 해보도록. 재료는 모두 캐비닛에 있다."
스네이프에게서 과제를 건네받은 릴리아나는 자신이 쓴 재료를 하나하나 체크하며 책상으로 가지고 왔다.
죽음의 약과 여러 재료들을 섞는 릴리아나와 그것을 지켜보는 스네이프 사이에는 간간히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짧게 대답해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대화 없이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가슴 속에서 간질거리면서 아프지 않게 쿡쿡 찌르는 느낌이었다. 실험한 것들은 작은 약병에 담는 것을 세 번쯤 반복하자 어느새 시간은 다른 하나를 실험하기엔 촉박하고 그만두기에는 많은 애매한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건너편에서 릴리아나를 지켜보고 있던 스네이프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스네이프에게서 옅고 은은한 비누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의 체향이 훅 끼쳐오자 얼굴이 확 붉어져 머리가 어지러웠다. 스네이프는 릴리아나가 실험한 약들이 어떤 효과가 나왔으며 어떤 것이 실패했고 성공했는지를 차근차근 알려주었지만 릴리아나의 귀에는 더 이상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더 질문 있나?"
"……네?"
순간적으로 향수 뭘 쓰는지 물어보려던 릴리아나는 자신이 하려던 질문의 후폭풍이 얼마나 엄청날지를 알아차리고 이상한 발음으로 되물었다.
"더 질문 있냐고 물었다."
"아니요. 없어요."
"……그럼 시간이 조금 남았긴 했지만 오늘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네."
"가자, 데려다 주겠다."
릴리아나가 흘끗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늘 특별 수업은 평소보다 십오 분 정도 일찍 끝나 있었다. 어쩐지 조금 아쉬웠다. 자신도 모르게 미련이 남은 얼굴을 하다 어서 오지 않고 뭐하고 있냐고 묻는 듯한 스네이프를 발견하고 릴리아나는 재빨리 그의 뒤를 따랐다.
보폭을 맞춰 걸으며 걷는 어두운 복도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초상화 외에는 다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대로 걷다가는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가는 동안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말할 거리를 생각하던 릴리아나가 입을 열었다.
"음, 저……세베루스……"
릴리아나가 망설이는 동안 스네이프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몸을 흠칫했다. 교수님을 덧붙일까 말까를 고민하던 릴리아나는 그 상황과 이 상황은 다르다고 판단을 내리고 말을 덧붙였다.
"……교수님,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내셨어요?"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대답에 다시 찾아온 침묵은 아까 전 것보다 더욱 무거웠다. 잠시 몇 번 동안 입을 작게 벙긋거리던 스네이프가 물었다.
"너는 어떻게 지냈느냐……퀸."
스네이프 역시 릴리아나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잠시 망설이며 말했다.
"저도……별 다를 건 없었어요."
또 다시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릴리아나가 입안 여린 살을 깨물었다. 미칠 것 같이 어색한 분위기였다. 스네이프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했다.
"거기 아니에요, 교수님!"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오는 갈림길이 나오자 스네이프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가기 위해서는 왼쪽으로 가야 했다.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하고 휘적휘적 걸어가 버리는 스네이프에 릴리아나가 얼떨결에 그의 팔을 잡았다.
또 다시 어색하고 긴 침묵이 흘렀지만 이번 것은 방금 전 것과는 많이 달랐다. 손으로 느껴지는 단단한 남자의 팔에 화들짝 놀란 릴리아나의 얼굴이 단번에 달아올랐다.
"……미안하다."
스네이프가 뒤늦게 사과했지만 팔을 풀지는 않았다. 얼떨결에 잡게 된 팔은 마치 팔짱을 끼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비누향이 더욱 진해졌다. 셔츠 밖으로도 느껴지는 단단하고도 따뜻한 남자의 팔은 저절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쿵쿵 뛰고 있는 심장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릴리아나는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 규칙적이면서도 빠른 박동에 입을 앙 물었다. 이런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쑥쓰러우면서도 동시에 계속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모순적인 마음 때문에 릴리아나는 어엿한 여인임을 드러내고 있는 자신의 가슴이 스네이프의 팔에 닿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길고도 짧았던, 그러면서도 둥둥 뜨고 있는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그들은 그리핀도르 기숙사 근처에 도착했다. 잠시 떨어지기 아쉬움을 느끼며 릴리아나는 천천히 팔을 풀었다.
"……들어가 볼게요, 교수님."
"……그래."
팔은 풀었지만 아쉬움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릴리아나가 머뭇거리고 있자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의 머리핀을 가리키며 지나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어울리는구나 그 핀."
"아, 감사합니다."
뜻밖의 칭찬에 릴리아나가 수줍게 웃으며 머리핀을 한 쪽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예……뻐요?"
부끄러움에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모양의 손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던 릴리아나가 양볼을 물들인채로 스네이프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쁘다."
스네이프가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보일듯 말듯 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