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75화 (7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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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왕자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혼혈 왕자-(3)

“괜찮으세요?”

릴리아나가 걱정스럽게 물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스네이프는 계속해서 입을 열려 했지만 그것은 듣는 사람이 걱정될 정도의 기침에 가로막혔다.

“괜찮아요?”

“괜찮……으……”

스네이프가 쿨럭 거리며 말을 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침내 진정이 된 스네이프가 조금은 화를 내는 것 같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무슨 말이요?”

릴리아나가 어리둥절한 듯 물었다.

“아이 싫어하세요?”

스네이프가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 릴리아나는 어쩌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스네이프가 어린 아이들에게 과자나 사탕 같은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말을 잇던 스네이프가 입을 꾹 다물었다. 고개를 갸웃한 채로 말을 기다리던 릴리아나가 물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뭐요?”

“무슨 그런 말을…….”

“그런 말이요?”

스네이프의 말에 여전히 어리둥절했던 릴리아나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렇게 부모님 잘 도와주는 아이들을 보면 나중에 저런 귀여운 아이 갖고 싶다고 한 거요? 아님 장미가 예쁘다는 걸…….”

“……이제 돌아갈 수 있는 경계는 지났어. 최후의 문턱, 이미 건너온 다리, 우리 열정 타는 것 지켜볼 뿐……”

의아한 듯이 말끝을 흐리는 릴리아나를 끝으로 잠시 그들 사이에 마이크 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노랫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완전히 입을 다물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조금 흐트러졌던 표정을 갈무리한 스네이프는 오랜 침묵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우린 이미 지났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경계선을……”

가로등의 불빛을 받고 있는 그를 바라보던 릴리아나는 입을 열 것 같지 않은 스네이프에 릴리아나는 그를 재촉할까 하다 다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말해줘요 이제 함께 하겠다고. 우리 사랑 하나 될 수 있도록 날 이끌어주고 구해주오, 내 슬픈 고독에서……당신, 나 원한다 말해주오. 지금 이곳 바로 당신 곁에. 어디로 가든 항상 당신과 함께 하겠소. 그것만이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

남자의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때마침 11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며 템스 강 위로 불꽃이 긴 꼬리를 만들며 올라가더니 펑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밤하늘을 수놓았다. 빨갛고 노란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화려하게 불탔다 사라졌다.

릴리아나가 살며시 손을 올려 스네이프의 손을 잡자 그는 깍지를 끼며 힘주어 잡았다. 맞잡은 손의 온기가 따뜻했다.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함께 있는 것은 마치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마법사들이 만든 불꽃놀이보다는 화려한 맛이나 신비스러운 맛이 떨어졌지만 지금 이 순간 릴리아나에게는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마침내 이십 여분에 걸쳐 벌어졌던 불꽃놀이는 하늘을 무지개 색으로 수놓으며 멀리 퍼져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직감적으로 이제 헤어져야함을 느낀 릴리아나가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노란 장미꽃을 꽉 잡았다. 새하얀 천에 줄기는 둘둘 말려 있었지만 울퉁불퉁한 줄기의 감촉은 그대로 느껴졌다.

"이제 가자."

"……알겠어요."

릴리아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그들의 손은 잡혀있는 채였다. 맞잡은 손의 온기는 심장을 거쳐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오랫동안 단둘이 있었음에도 아쉬웠지만 따뜻한 온기에 저절로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템스 강을 따라 다시 거슬러 올라가며 북적거리는 시내를 지나 리키 콜드런 근처의 번화가에 접어들었다.

"여기서 인사해야겠구나."

"아……네."

내심 리키 콜드런까지 같이 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릴리아나는 생각보다 먼 곳에서 헤어지게 되자 조금 실망한 듯 했다. 하지만 곧 함께 있는 모습이 마법사나 마녀가 보게 된다면 골치 아파질 것이란 것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웠어요, 교수님. 그럼 호그와트에서 봐요."

"그래."

"그리고……."

릴리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스네이프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깍지를 끼고 있는 손을 자신의 쪽으로 이끌며 까치발을 들었다. 스네이프가 허리를 굽히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릴리아나가 다른 한손으로 입가에 손을 올려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그녀가 스네이프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Je t'aime, Severus(사랑해요, 세베루스)."

홍조가 도는 얼굴로 떨어진 릴리아나가 싱긋 웃더니 손을 흔들며 뒤로 걸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싱긋 웃으며 뒤를 돌더니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 섞여 사라져 버렸다. 스네이프는 그녀의 붉은 머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 때 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

리키 콜드런으로 돌아온 릴리아나는 싱글벙글한 채로 짐을 싸서 내려왔다. 입술에 닿았던 까슬한 그의 뺨의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없어 휑하고 우울해진 리키 콜드런의 주인, 톰은 유리잔을 행주로 닦으며 릴리아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에 답해주며 벽난로 앞으로 간 릴리아나는 탁탁거리는 소리와 함께 활활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에 플루 가루를 던졌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높이 치솟은 불이 에메랄드 빛 초록색으로 변했다. 낑낑거리며 트렁크를 들고 벽난로 안으로 들어간 릴리아나가 불꽃이 훤히 드러난 다리를 따뜻하게 간질이는 것을 느끼며 외쳤다.

"버로우!"

꼭 커다란 배수로로 빨려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아주 빠르게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딱딱한 무언가가 팔꿈치를 치자 릴리아나가 팔을 오므렸다. 차가운 팔들이 얼굴을 찰싹찰싹 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끝나자 릴리아나는 론의 집 벽난로 밖으로 비틀거리며 나왔다.

"거기 누구세요!"

건너편 방에서 위즐리 부인이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경계를 품고 있었다.

"릴리아나에요."

릴리아나의 말에 위즐리 부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반갑게 외쳤다.

"세상에, 릴리! 너무 예뻐졌구나! 난 네가 너무 늦게 와서 내일 오는 줄 알았단다."

"오랜만이에요, 위즐리 부인. 잘 지내셨나요?"

릴리아나가 벽난로에서 트렁크를 빼내려고 끙끙거리며 물었다.

"나야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지냈단다."

위즐리 부인이 릴리아나의 트렁크를 단번에 빼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런 것 가지고 뭘. 아, 지금 해리가 부엌에 있단다."

"해리도 왔나요?"

위즐리 부인이 트렁크를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자 트렁크는 둥둥 뜨더니 알아서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릴리아나는 위즐리 부인을 따라 부엌으로 향했다.

"릴리?"

"해리!"

수프를 먹고 있던 해리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릴리아나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위즐리 부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릴리아나에게 물었다.

"배고프지 않니? 수프 먹을래?"

위즐리 부인의 말을 듣자마자 릴리아나의 뱃속에서 허기가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들고있던 노란 장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릴리아나가 해리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숟가락을 들고 놀란 듯 릴리아나를 바라보던 해리가 말했다.

"너……옷이……."

그러고 보니 스네이프와 만났을 때 입었던 옷을 계속 입고 있었었다. 릴리아나는 멋쩍은 미소를 씩 지었다.

"어때? 괜찮아?"

해리는 그와 그의 친구들이 성인에 거의 가까워 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어딘가에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단다, 얘야."

위즐리 부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한 양파 수프를 릴리아나에게 건네주었다.

"빵도 먹을래?"

"고맙습니다, 위즐리 부인."

위즐리 부인은 어깨 너머로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러자 빵 한 덩어리와 칼이 우아하게 허공을 지나 탁자로 둥둥 떠왔다. 빵이 저절로 잘리고 수프 냄비가 다시 화덕으로 돌아가고 나자 위즐리 부인은 식탁에 앉았다. 양파 수프를 먹던 릴리아나가 감탄했다.

"너무 맛있어요."

"고맙구나, 얘야."

위즐리 부인이 릴리아나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위즐리 씨는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신가요?"

해리가 물었다.

"그래, 그렇단다. 사실은 조금 늦고 있구나. 자정쯤에는 돌아오겠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위즐리 부인은 고개를 돌려 커다란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식탁 끝에 있는 빨래 바구니에 담긴 이불 더미 위에 기우뚱하게 놓여 있었다. 그것은 식구들 저마다의 이름이 새겨진 아홉 개의 바늘이 달려 있었다. 아홉 개의 바늘 하나하나가 지금은 '치명적인 위험'을 가리키고 있었다.

"요즘은 한동안 계속 저렇구나."

위즐리 부인이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나타낸 뒤로는 말이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치명적인 위험에 처해 있는 모양이야. 난 저게 꼭 우리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단다. 이런 시계를 가진 사람이 또 누가 있는지 몰라서 확인을 해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오!"

갑자기 탄성을 지르면서 위즐리 부인이 시계를 가리켰다. 위즐리 씨의 시곗바늘이 '이동 중'으로 째깍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이가 오고 있어!"

그리고 과연 잠시 후에 뒷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위즐리 부인은 벌떡 일어나서 황급히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채, 문짝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대고 조용히 물었다.

"아서, 당신이에요?"

"그래요."

위즐리 씨의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설령 내가 죽음을 먹는 자라도 그런 대답쯤은 할 수 있을 거요. 그 질문을 해요!"

"오, 솔직히……."

"몰리!"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당신의 가장 소중한 꿈이 뭐지요?"

"비행기가 어떻게 공중에 떠 있는지 알아내는 거요."

위즐리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잡이를 돌렸다. 하지만 위즐리 씨가 밖에서 손잡이를 꽉 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몰리, 문을 열기 전에 먼저 내가 당신에게 질문을 해야만 하오!"

"아서, 정말이지 이런 어리석은 짓을……."

"우리가 단둘이 있을 때, 내가 당신을 뭐라고 불러 주길 원하지?"

희미한 등잔불 밑이었지만 릴리아나는 위즐리 부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드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릴리아나가 흥미로운 얼굴로 위즐리 부인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해리가 숟가락을 그릇에 마구 부딪히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쁘게 수프를 떠먹었다.

"살랑살랑 몰리."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위즐리 부인이 문틈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살랑살랑 이라는 말에 릴리아나가 상체를 살랑살랑 움직였다. 그것을 본 해리가 수프가 목에 걸렸는지 작게 켁켁 거리는 소리를 냈다.

위즐리 씨의 이제 들여보내줘도 괜찮다는 말을 들은 위즐리 부인이 문을 열며 홍조를 띤 채 투덜거렸다. 스프를 한입 머금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릴리아나의 머릿속에 문득 스네이프가 위즐리 씨처럼 자신을 '살랑살랑 릴리아나' 라고 부르는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곧 그녀도 해리를 따라 수프가 목에 걸려 켁켁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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