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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왕자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혼혈 왕자-(5)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의 체향을 폐 가득히 담았다 내뱉었다. 위안을 바라는 듯, 위안이 되는 듯 힘주어 껴안으며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껴안는 힘이 더욱 커지자 릴리아나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교수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스네이프가 다시 한 번 숨이 막힐 정도로 힘주어 껴안은 후 순순히 릴리아나를 놓아주었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피곤해 보였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가 된 것 때문에 온 거겠지?"
"아!"
그제야 이곳에 왔던 이유가 생각이 난 릴리아나가 작게 탄성을 질렀다.
"축하드려요. 오랫동안 원하시던 자리였잖아요."
"고맙다."
"그런데 교수님……."
릴리아나가 우물거렸다. 단번의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안하시면 안 되겠죠?"
"그 징크스 때문이냐?"
스네이프가 덤덤하게 물었다.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런 걸 믿는 줄은 몰랐는데."
"그렇긴 하지만……그래도……."
릴리아나가 축 처져 대답했다.
"퀴렐은 목숨을 잃었고 록허트는 기억을 잃었잖아요. 루핀 교수님은 늑대 인간인 것이 밝혀졌고……무디 교수님은 폴리주스를 마신 죽음을 먹는 자였고……."
스네이프의 몸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움찔했다.
"엄브릿지는……'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서'에 당하고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했잖아요. 켄타우로스들에게 당하기도 했고……. 모두 일 년을 넘기지 못했잖아요. 교수님도 그렇게 다치시면 어떡해요."
"나는 걱정하지 말고 본인부터 올 한 해 동안 제발 위험한 짓은 하지 마라."
스네이프가 흐트러진 릴리아나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그러자 그가 주었던 핀이 다시 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걱정이 되는 걸요."
릴리아나가 시선을 떨구자 스네이프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내 걱정은 하지 마라.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그의 말은 스네이프 그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 같이 들리기도 했다.
***
N. E. W. T. 수준의 마법약 수업을 계속 듣는 사람은 겨우 열세 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O. W. L. 에서 요구하는 성적을 따내는 데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말포이를 포함해서 슬리데린 학생들이 네 명 있었다. 그리고 래번클로의 학생 네 명과 어니 맥밀란이라고 하는 후플푸프의 학생 한 명이 있었다. 어니가 점잔을 빼며 그들에게 인사를 했지만 그들이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지하 교실의 문이 스르르 열리고 슬러그혼의 배가 문밖으로 불쑥 튀어 나왔다.
학생들이 교실로 줄지어 들어가는 동안, 슬러그혼의 활짝 웃는 입술 위로 해마 같은 그의 거대한 콧수염이 높이 말려 올라갔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는 학생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던 슬러그혼은 릴리아나와 눈이 마주치고 순식간에 얼이 빠진 표정이 되었다.
"릴리……? 릴리 포터?"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반응에 잠시 얼떨떨하게 있던 릴리아나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 세상에……세상에……세상에……."
슬러그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뚫어져라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세상에나……멀린이시여!"
슬러그혼의 눈이 물기로 반짝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혹시……."
"아니에요."
릴리아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슬러그혼의 얼굴에 잠시 실망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그 자리를 그리움이 차지했다.
"그래……그럴 리가 없지. 미안하구나. 실례했다. 어서 들어가자꾸나."
릴리아나가 마지막으로 교실에 들어가자 뒤에서 손수건으로 눈가의 물기를 찍은 슬러그혼이 다시 밝은 미소를 지으며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지하 교실은 평소와는 달리 벌써부터 이상야릇한 냄새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커다란 냄비 앞을 지나가면서 호기심이 발동한 듯 코를 킁킁거렸다. 네 명의 슬리데린 학생들은 한 책상에 몰려 앉았고, 네 명의 래번클로 학생들도 그렇게 했다. 결국 남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가 어니와 함께 한 책상을 쓰게 되었다. 그들은 황금색 냄비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상을 골랐다. 냄비에서는 온갖 냄새들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포근한 이불 냄새나 햇볕냄새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은은한 비누 향 같기도 했다.
릴리아나는 문득 자신이 아주 느릿느릿 그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냄비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는 감미로운 술처럼 그녀의 뱃속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엄청난 만족감에 사로잡히는 것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짓던 릴리아나는 문득 그 향기가 스네이프에게서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식간에 얼굴이 홍조로 붉게 물들었다.
그녀가 손으로 뺨의 열기를 식히려 노력하고 있을 때, 해리와 론은 슬러그혼에게서 다 낡아 빠진 리바티우스 보레이지의 <<상급 마법약 만들기>>와 녹슬어 버린 저울 두개를 받았다.
릴리아나는 헤르미온느가 슬러그혼의 질문에 척척 대답하는 것을 바라보며 핀을 꽂고 있는 쪽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우리 학년에서 최고 우등생이라고 말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헤르미온느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론은 왠지 약간 짜증이 난 얼굴이었다.
"그럼 이제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군요."
"교수님, 이 안에 든 건 뭔지 말씀해 주지 않으셨는데요?"
어니 맥밀란이 슬러그혼의 탁자 바로 옆에 놓인 작고 검은 냄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안에 담긴 마법약은 가볍게 찰랑거리고 있었다. 마치 황금을 녹인 물 같은 색깔이었는데, 수면 위로 금붕어처럼 생긴 커다란 기포들이 퐁퐁 터져 오르고 있었지만 단 한 방울도 밖으로 튀지는 않았다.
"오호라."
슬러그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치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누군가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군. 저 약은 말이죠 여러분, 저 약은 펠릭스 펠리시스라고 불리는 가장 흥미롭고 작은 마법약이랍니다. 내 생각에 당연히……."
슬러그혼은 빙그레 웃으며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막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려던 참이었다.
"펠릭스 펠리시스가 무슨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겠죠, 그레인저 양?"
"행운의 액체입니다."
헤르미온느가 신이 나서 대답했다.
"그 약은 행운을 가져다줍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교실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갑자기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았다. 슬러그혼은 그 약을 이번 수업의 상으로 줄 것이라 말했다. 그러자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그 바람에 주변에서 들려오던 마법약들이 펄펄 끓는 소리와 부글거리는 소리가 열 배는 더 크게 들렸다.
"펠릭스 펠리시스가 담긴 이 작은 병 하나면……."
슬러그혼은 호주머니 안에서 코르크 마개로 봉해진 조그마한 유리병 하나를 꺼내서 학생들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열두 시간 동안의 행운은 충분히 보장될 거예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여러분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에 행운이 따르는 거죠. 하지만 공식적인 경쟁들, 예를 들어서 운동 시합이나 시험, 선거 등에서는 펠릭스 펠리시스가 금지된 약물임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알려 주겠어요. 그러니 이것을 상으로 받은 우승자는 그냥 평범한 날에 딱 하루만 이 약을 사용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그 평범한 날이 어떻게 전혀 평범하지 않은 날이 되는지 지켜보도록!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나의 이 놀라운 상품을 받을 수 있을까?"
갑자기 슬러그혼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자, 그럼 <<상급 마법약 만들기>> 10쪽을 펴도록 해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한 시간이 조금 넘으니까, 그 시간 동안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 '살아 있는 죽음의 약'을 만들어 보도록! 물론 나도 이 약이 여러분이 지금까지 만들어 본 그 어떤 마법약보다 훨씬 더 만들기가 까다롭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완벽한 약을 만드는 사람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든 제일 잘한 사람이 이 작은 펠릭스 펠리시스를 차지하게 될 거예요. 자, 그럼 시작!"
모두들 자기 앞으로 황급히 냄비를 끌어당기는 소리가 나고, 저마다 저울에 재료의 무게를 달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쿵쿵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실 안에는 터질 듯 팽팽한 긴장감만이 감돌았다.
'살아있는 죽음의 약'은 작년부터 스네이프와 함께 만들어오던 약이었기에 릴리아나는 느긋하게 쥐오줌풀 뿌리를 썰며 만드는 방법을 쭉 훑어보았다. 이상하게도 스네이프가 알려준 방법과 몇 가지 재료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챈 릴리아나는 잠시의 고민 끝에 스네이프의 방법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흘끗 바라본 해리의 더럽고 낡은 책은 얼핏 보면 종이 자체가 까맣게 보일 정도로 빽빽한 글씨로 가득 차 있었다.
10분도 안 돼서, 교실 전체가 푸른색 김으로 가득 찼다. 헤르미온느와 함께 릴리아나가 선두였다. 그녀들의 약은 이미 가장 이상적인 중간 단계라고 설명이 되어 있는, '은은하면서도 어두운 건포도 빛깔의 액체' 비슷한 모양을 띠기 시작했다.
은제 단검의 옆면으로 잠오는 콩을 짓이겨 즙을 낸 릴리아나는 그 액체들을 모두 떠서 냄비 안에 넣었다. 그러자 마법약은 즉시 연한 라일락 빛깔로 변했다. 릴리아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일곱 번 저은 뒤 시계 방향으로 한 번 더 젓기 시작했다. 옆에서 헤르미온느가 해리에게 깜짝 놀라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니?"
헤르미온느의 머리카락은 냄비에서 뿜어져 나온 증기 때문에 점점 더 부스스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마법약은 아직도 선명한 보라색이었다.
"시계 방향으로 한 번 더 저어……."
"아니, 아니야. 교과서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이라고 했단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해리의 말대로 해보라고 말을 하려던 릴리아나는 건들이면 그 누구라도 죽여 버릴 것 같은 사나운 헤르미온느의 기세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문득 해리가 어떻게 그 방법을 알았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우연이겠거니 생각한 릴리아나는 다시 마법약을 젓기 시작했다. 책상 너머에서는 론이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의 마법약은 감초액처럼 보였다.
"시간이……다 됐다! 휘젓는 것을 멈추어라!"
슬러그혼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천천히 책상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냄비 안을 들여다봤다. 그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그저 이따금 액체를 저어 보거나 킁킁 냄새를 맡아 볼 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릴리아나, 그리고 어니가 앉아 있는 책상 앞까지 왔다. 슬러그혼은 론의 냄비 안에 담긴 타르 같은 액체를 보고 안됐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니의 남색 혼합액을 지나쳐 헤르미온느의 마법약을 보고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해리의 마법약을 보는 순간, 슬러그혼의 얼굴에는 너무 기뻐서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 가득 떠올랐다.
"확실한 우승자가 나왔군!"
슬러그혼이 지하 교실이 다 울리도록 소리쳤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해리! 세상에! 네 어머니의 재능을 네가 고스란히 물려받은 게 분명하구나. 네 어머니는 마법약의 달인이었지. 릴리 말이다! 자, 여기 있네, 여기 있어. 약속한대로 펠릭스 펠리시스 한 병이야. 잘 쓰도록 하게나!"
슬러그혼이 황금빛 액체가 담긴 작은 약병을 해리에게 건넸다, 그는 그것을 안주머니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껄껄 웃던 슬러그혼은 릴리아나의 마법약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여기도 '살아있는 죽음의 약'을 만들었군! 훌륭해! 내 살다 살다 한 반에 우승자가 두 명이나 나오는 것은 처음 보는군! 그럼 여기 이 매력적인 아가씨……"
"릴리아나 퀸입니다."
때마침 수업이 끝나는 종이 쳤다. 슬러그혼은 맛있는 케이크를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퀸 양에게도 펠릭스 펠리시스 한 병을 주어야겠군. 따라오게나!"
학생들이 의자를 드르륵 끌며 일어났다. 릴리아나는 슬러그혼을 따라 펠릭스 펠리시스가 끓고 있는 냄비로 다가갔다.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황금빛 약물을 담아 봉한 슬러그혼이 그것을 릴리아나에게 건넸다.
"매우 뛰어난 실력이로군!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십오 년쯤 전에 퀸 양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한 아름답고 밝고 매력적인 여인이 있었다네."
"해리의 어머니 말씀하시는 거죠?"
"이미 알고 있었구먼. 릴리도 매우 마법약에 뛰어난 아이였지……."
슬러그혼이 껄껄 웃음을 터트리더니 그리움에 가득 찬 얼굴이 되었다.
"혹시 마법약 계열로 나갈 생각이 없나?"
"안 그래도 세베루스 교수님께서 특별 수업을 해주시고 있으세요."
"세베루스가?"
슬러그혼이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의외로군. 세베루스가 그럴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슬러그혼이 말끝을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뒤에 남아있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흘끗 바라본 릴리아나는 갑자기 슬러그혼이 손뼉을 치며 밝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황급히 앞을 바라보았다.
"혹시 세베루스가 아닌 나에게서 특별 수업을 받아볼 생각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