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8 / 0142 ----------------------------------------------
혼혈 왕자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혼혈 왕자-(6)
슬러그혼의 뜻밖의 제안에 당황한 릴리아나가 되물었다.
"교수님께요?"
"그래, 이렇게 재능 있고 매력적인 숙녀분이라면 내가 한 번 가르쳐 보고 싶기도 하고……또 이제 세베루스는 더 이상 마법약 교수가 아니지 않나.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릴리아나가 어떤 식으로 거절해야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동안, 슬러그혼은 어떻게든 그녀를 자신의 특별 수업을 듣게 하기 위해 열심히 입을 놀렸다.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게 아주 특별한 연줄이 몇몇 있다네."
슬러그혼이 릴리아나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마법약 계열로 진로를 정했다면 그쪽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들도 알아놓는 것이 좋지 않겠나?"
"어……저는……."
릴리아나가 말을 끌며 슬러그혼에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그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세베루스에게 수업을 받는 건 많이 힘들지 않나. 그는 엄격하고 딱딱한 선생이니까 말일세. 학생들도 그를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 아, 이 말은 잊어주게. 내 말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교수이지 않나."
슬러그혼이 잔뜩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는 바람에 릴리아나는 더욱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내가 가르치게 해 준다면……"
"말씀은 고맙지만 우선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릴리아나가 목소리를 높이며 슬러그혼의 말을 끊었다.
"물론 교수님의 제안은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세베루스 교수님이 절 가르치고 계시고……또 세베루스 교수님이 저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옮겨가면 그분께도 너무 죄송할 것 같아요."
최대한 예의 있게 거절하는 말을 생각해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릴리아나는 예의바른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에 슬러그혼이 껄껄 웃었다.
"그랬구먼. 하긴 갑자기 내 수업을 듣겠다고 하면 세베루스도 많이 당황해 하겠군."
슬러그혼의 말에 릴리아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가 세베루스와 먼저 얘기해서 내가 퀸 양의 특별 수업을 맡을 수 있게 해 보겠네."
슬러그혼이 눈앞에 달콤한 꿀을 두고 있는 곰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릴리아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릴리아나는 자신의 예의바른 미소가 굳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슬러그혼의 행동력은 릴리아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토요일 7시부터 시작한 스네이프의 특별수업이 끝나기 십 오 분쯤 전이 되었을 때 누군가의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날세, 세베루스!"
"들어오십시오."
스네이프의 허락에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한손에 와인 한 병을 들고 슬러그혼이 나타났다.
"이런, 오랜만에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려 왔는데 이미 손님이 있었군."
슬러그혼이 낭패라는 듯 말했으나 그의 얼굴에서는 흥미로움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밤일세, 퀸 양. 특별 수업인건가?"
슬러그혼이 스네이프의 사무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며 말했다.
"네."
"끝나려면 얼마나 남았는가, 세베루스?"
"거의 다 끝났습니다."
"그럼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겠네."
스네이프의 사무실 한편에 있는 일인용 소파에 자리 잡은 슬러그혼이 지팡이로 코르크마개를 톡 두드렸다. 그러자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코르크마개가 튀어나왔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것 계속 하게나."
가지고 온 와인 잔에 와인을 따른 슬러그혼이 검붉은 액체를 홀짝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거의 끝났으니 괜찮습니다."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에게 짐을 정리해서 나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고개를 끄덕인 릴리아나는 오늘 밤은 같이 못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섭섭함을 그대로 표정으로 드러내며, 냄비를 끓이고 있는 불을 껐다.
"오랜만이군, 세베루스. 자네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못 봤으니까……. 이십년 만인가? 아님 십구 년?"
"그쯤 되었을 겁니다."
스네이프가 와인을 자신의 잔에 따르며 대답했다. 냄비를 내리고 안에 있던 내용물을 빈 병에 정리하던 릴리아나는 새삼 스네이프의 나이가 실감이 났다.
"그래……. 그 세월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아니네만 많은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더욱 오랜만인 것 같군."
슬러그혼의 얼굴에 쓸쓸함이 피어났다. 와인을 마시는 스네이프의 얼굴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흘끗흘끗 그들을 살피며 만들은 약을 봉인하고 자신의 가방을 챙긴 릴리아나가 그들에게 인사했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잘 가거라."
슬러그혼이 그리움을 몰아내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 한편에서는 그 감정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네이프에게도 싱긋 웃으며 인사를 한 릴리아나는 그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후 사무실을 나왔다.
"퀸 양 말일세."
문이 닫히자마자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발걸음을 옮기려던 릴리아나가 우뚝 멈춰 섰다.
"정말 닮았어……. 순간 릴리 포터인줄 알았지 뭔가."
스네이프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지난 세월 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건만 순간적으로 다시 살아 돌아온 줄 알았지 뭔……"
"……여기에 오신 용건이 뭡니까."
스네이프가 슬러그혼의 말을 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슬러그혼은 그의 차가운 말투에 놀란 듯 잠시 말을 더듬다가 부드러운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너무 옛날이야기에 빠져 있었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인데 말이야.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옛 제자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왔네."
"그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으시지 않습니까."
스네이프의 말투에서는 감정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듣고 있는 슬러그혼 역시 그렇게 느꼈는지 문밖에서도 그가 진땀을 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 그래. 있다네, 있어. 퀸 양에 관한 걸세."
"퀸이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스네이프의 말투에 슬러그혼이 말을 몇 마디 더듬으며 말했다.
"그래. 자네가 퀸 양의 특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걸 들었다네. 이제 세베루스 자네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가 되었고……. 또 퀸 양의 진로가 마법약 계열이라 하던데 알다시피 내가 아는 연줄이 몇 있지 않은가. 내가 가르친다면 퀸 양의 미래에 더 좋을 것 같아서 혹시 특별 수업을 내가 맡을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왔네."
"……퀸은 뭐라고 하던가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자기가 결정할 일이 아닐 것 같다고 했네. 말도 어찌나 그렇게 예쁘게 하던지. 첫 번째 수업에서 '살아있는 죽음의 약'을 완벽하게 만들어내 펠릭스 펠리시스를 상품으로 타갔지 뭔가."
슬러그혼의 목소리에서 그리움과 흐뭇함이 동시에 묻어나왔다.
"외모도 그렇지만 내면이라던가, 성격이라던가 보면 볼수록 릴리 같은 아이야……. 그 아이도 참 예뻤는데. 예의바르고 성실하고 언제나 밝고……누구에게나 모범이 되는 그런 아이였지……."
슬러그혼이 말꼬리를 흐렸다. 스네이프는 아무 말 없이 슬러그혼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꼴이 된 릴리아나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몸을 흠칫 떨었다. 교수들의 대화이니 엿들으면 안 된다고 마음 한편에서 누군가 말했지만 릴리아나는 스스로에게 스네이프의 대답만 듣고 가자며 마음 한편의 누군가를 타일렀다.
"그런 아이었는데……그랬는데……. 설마 그렇게 가버릴 것이라 누가 예상했겠는가."
슬러그혼이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와인을 따르는 듯 작은 물소리가 나더니 슬러그혼이 외쳤다.
"릴리를 위하여."
"……위하여."
또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돌아가신 해리의 어머니의 살아있을 적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과 얼굴이 똑같다는 사실까지 합쳐지자 그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둘은 말없이 와인만 홀짝이는 듯 대화라고는 전혀 새어나오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 끝에 슬러그혼이 박수를 짝 치더니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밝게 말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할 건가? 내가 특별 수업을 맡아도 되겠는가?"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스네이프가 단호하게 말했다. 설마 거절할 것이라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슬러그혼이 놀란 듯 물었다.
"왜 거절하는 것이지? 솔직히 자네라면 받아들일 줄 알았네만……."
"제가 아직 마법의 약 교수일 때 맡은 일이므로 가르치는 과목이 바뀌었다고 새로운 교수님께 그것을 넘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벌인 일이니 제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요."
스네이프의 대답에 말이 없던 슬러그혼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랬구먼. 그래도 내가 맡았으면 좋을 뻔 했는데……. 민달팽이 클럽에 들어오라 권유하는 쪽으로 바꿔야겠군……."
문밖에서 이야기를 듣던 릴리아나가 미소를 지었다. 가슴 속에 따뜻한 무언가가 퐁퐁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펠릭스 펠리시스가 가슴 속에서 끓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에서 시작된 것이 온몸으로 따스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원하는 답을 들은 릴리아나는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릴리아나는 또다시 슬러그혼의 추진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특별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자 민달팽이 클럽에 가입시킬 것이라 말했던 것을 들었기에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란건 알았지만 그가 이렇게 빨리 제안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었다.
"해리, 해리, 자네를 만나기를 고대했었네!"
슬러그혼이 입이 찢어지도록 활짝 웃으며, 갈라진 콧수염 끝을 비비 꼬면서 불룩한 배를 더욱 불쑥 내밀었다.
"저녁 식사 전에 자넬 만나고 싶었지! 오늘 밤 내 방에서 조그맣게 만찬을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나? 이제 막 떠오르는 스타들을 위해서 작은 파티가 열릴 예정이라네. 그러니까 맥클라건과 자비니, 그리고 매력적인 멜린다 보빈 양이 오기로 되어 있다네. 혹시 자네가 그녀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먼. 보빈 양의 집안은 대규모 약국 체인망을 소유하고 있다네. 아, 그리고 물론 퀸 양과 그레인저 양도 함께 온다면 대단히 기쁘겠네."
슬러그혼은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말을 끝맺었다. 마치 론은 아예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그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저는 못 갑니다, 교수님."
해리가 즉시 거절했다.
"오, 이럴 수가!"
슬러그혼의 얼굴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일그러졌다.
"이런, 이런……난 자네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해리! 내가 세베루스와 잠깐 이야기를 해서 상황을 설명해야겠군. 틀림없이 내가 부탁하면 자네의 징계를 다른 날로 연기할 수 있을 거라고 믿네. 그리고 퀸 양. 자네의 특별 수업을 맡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이 만찬에 와줄 수는 있겠지? 그럴 것이라 믿네. 그럼 잠시 후에 세 사람은 다시 보도록 하지!"
슬러그혼은 분주하게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슬러그혼이 스네이프를 설득할 리가 없어."
슬러그혼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되자 해리가 말했다.
"게다가 징계가 이미 한 번 연기된 적이 있잖아. 그것도 덤블도어 교수님의 말씀이니까 그랬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
"릴리, 너는 갈거니? 제발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나 혼자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걱정을 했다.
"설사 해리나 릴리가 함께 가지 못한다고 해도 너 혼자는 아닐 거야. 틀림없이 지니도 초대를 받았을 테니까 말이야."
론이 뾰로통해서 말했다. 슬러그혼에게 무시를 당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결국 해리는 스네이프와의 징계를 미루지 못했고, 릴리아나는 헤르미온느와 지니와 함께 셋이서 만찬에 참석하게 되었다. 슬러그혼은 그녀를 최고급 다이아몬드 다루듯 했고 그 반응이 얼떨떨한 릴리아나는 연신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어떻게든 릴리아나의 존재를 다이아몬드 만큼이나 빛나게 만드려고 안달이 난 사람처럼 구는 슬러그혼에 완전히 지쳐버린 릴리아나는 슬러그혼의 다음에도 참석해 달라는 말을 듣고 질린 얼굴이 되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시 참석하는 데에는 많은 결심과 생각이 필요할 것 같았지만 특별 수업을 맡지 못했는데 이것마저 거부하지는 말아달라고 하는 슬러그혼에 결국 릴리아나는 질린 얼굴을 가리는 지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