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80화 (8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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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왕자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혼혈 왕자-(8)

"세브, 세브, 세베루쯔-"

한 손에는 에메랄드빛의 액체를 반쯤 비운 병을 든 채로 릴리아나는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듯 흥얼거렸다. 미묘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던 스네이프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그녀의 손에서 병을 뺐었다. 스네이프가 중얼거렸다.

"취한건가……."

"취해요?"

헤실헤실 웃으며 발그레한 얼굴의 릴리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반복하자 스네이프가 조용하지만 화가 나 있음을 드러내는 어조로 말했다.

"도대체 왜 술에 손을 댄 거냐."

"술?"

두 눈을 깜빡거리던 릴리아나가 스네이프의 손에 들려 있는 에메랄드빛의 액체가 담긴 병을 바라보았다.

"그거 술 아닌데에요?"

릴리아나가 말꼬리를 늘리며 손가락으로 병을 가리켰다.

"세브가 나한테 선물로 준건데요?"

어느새 스네이프를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릴리아나가 힘없이 의자에 늘어진 채로 해맑게 웃었다.

"선물?"

스네이프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선물이라면……."

탁자가 있는 쪽을 흘끗 바라본 스네이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탁자 위에는 그가 나두고 나갔던 선물이 건들인 흔적도 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홍조가 도는 얼굴로 헤헤 웃던 릴리아나가 프랑스어로 무어라 빠르게 말하기 시작하자 스네이프는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를 속사포로 말하며 웃었다 입을 내미는 릴리아나를 바라보던 스네이프가 중얼거렸다.

"해독약을 가지고 와야겠군……."

"가지마요!"

스네이프가 몸을 돌리자 릴리아나가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울상을 지었다.

"가지마요……. 내가 싫어요?"

"술 깨는 약을 만들러 가는 거다."

"안 돼요오. 가지 말아요……나랑 같이 있어 줘요……."

릴리아나가 힘없이 고개를 옆으로 내리며 중얼거렸다. 다시 한 번 한숨을 쉰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까딱이자 찬장에서 재료들이 날아왔다. 서류들로 가득한 책상 위에서 마법 약을 만드는 것은 얼핏 보면 위험해 보였지만 스네이프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순식간에 보랏빛이 도는 약을 만들어냈다.

"마셔라."

"싫어요."

"마셔."

"싫어."

문제는 릴리아나였다. 기껏 만들어준 약을 거부하는 릴리아나에 스네이프가 어설프게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마셔라."

"싫어요."

보랏빛 약을 쳐내려고 했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손가락만 까딱한 릴리아나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느냐."

"맛없을 것 같아요."

느릿느릿하게 릴리아나가 대답했다.

"아무 맛도 안 난다."

"그래도 안 마실래."

스네이프가 한숨을 내쉬자 릴리아나가 헤헤 웃었다.

"취했다."

"안 취했다."

"취했다."

"안 취했다니까아?"

떼를 쓰듯 말하던 릴리아나가 자신이 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지팡이를 꺼내들더니 가볍게 지팡이로 리듬을 타듯 까딱거렸다.

"나 정말 안 취했다니까요오? 지금은 기분이 좋은 것뿐이에요."

스네이프가 한숨을 쉬었다. 리듬을 타듯 지팡이를 까딱거리던 릴리아나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자신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익스페토-아니, 익스펙토오……이게 아니라. 익스펙토 패트로눔!"

몇 번의 시도 끝에 완벽한 주문을 내뱉으며 지팡이를 휘두르자 릴리아나의 지팡이 끝에서 은색 불사조 한마리가 나왔다. 은빛으로 밝게 빛나는 불사조는 날개를 쭉 펴고 방 안을 우아하게 날아다닌 후 창밖으로 날아갔다.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을 바탕으로 나오는 패트로누스 마법을 성공시킨 릴리아나가 이제 스네이프에게 자신이 취하지 않았으며, 그저 기분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했는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봐요, 안 취했다니까아?"

은색의 빛을 내며 불사조 패트로누스가 사라지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스네이프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 어지럽지 않나."

"어지러워요."

"몸에 힘도 안 들어가고."

"응."

"속도 화끈거리지 않나."

순순히 대답을 하던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의 말을 듣자 갑자기 몸을 채우고 있는 열기가 느껴졌다.

"그걸 취했다고 하는 거다. 이걸 마셔야……"

"……더워."

릴리아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하나 둘씩 풀기 시작했다. 하나 둘 풀어가던 단추가 굴곡진 가슴골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스네이프가 황급히 손으로 벌어진 셔츠 자락들을 잡아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했다.

"나 더운데……."

"그러니까 이걸 마셔라."

스네이프가 인내심을 발휘하며 말했다.

"맛없을……"

"……아무 맛도 안 난다!"

그가 다급한 듯 언성을 높이자 릴리아나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숙이며 야살스럽게 웃었다.

"그럼 세브가 입으로 먹여줄래요?"

릴리아나의 셔츠자락을 잡고 있던 스네이프의 손이 굳었다.

"그럼 먹을게요."

술기운에 말이 느려진 릴리아나는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흐트러져 있었다. 스네이프가 당황한 듯 그대로 굳어있자 릴리아나가 졸린 듯 하품을 하며 말했다.

"아님 말고."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릴리아나에 스네이프가 작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나 졸려요."

릴리아나가 스네이프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무너지듯 안기자 스네이프가 얼떨결에 릴리아나를 받아냈다. 축 늘어진 릴리아나를 안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스네이프가 다시 릴리아나를 의자에 앉혔다. 하지만 계속해서 릴리아나가 스네이프의 목을 끌어안고 있자 그는 어정쩡한 자세로 의자와 릴리아나를 가리듯 서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스네이프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듯 의자에 앉혔던 릴리아나의 허리와 허벅지를 팔로 감싸 들어 올렸다. 어느새 릴리아나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의미모를 한숨을 푹 쉰 스네이프의 시선이 반쯤 풀린 셔츠로 향했다. 그의 귀가 붉었다. 황급히 고개를 들어 정면만을 바라보며 릴리아나를 사무실과 붙어있는 침실로 옮긴 스네이프는 삭막한 방구석에 있는 침대에 릴리아나를 내려놓았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감았던 눈을 뜬 릴리아나가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있는 상태로 있었던지라 스네이프의 얼굴은 너무 가까웠다.

"세베루스."

여전히 몽롱한 상태인데다 그의 얼굴이 가까이 있자 기분이 좋아진 릴리아나가 은은한 미소를 띠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세브."

그의 목에 감고 있던 팔 중 하나를 풀어 스네이프의 검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릴리아나가 반쯤 감겨있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생각보다 부드럽네에?"

기분이 좋은 듯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스네이프의 머리를 만지자 그녀의 이미 풀어져 있던 앞섬이 더욱 벌어졌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손은 그의 뺨으로 내려갔다.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조금은 까칠한 감촉을 즐기던 릴리아나가 다시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예고 없이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릴리아나를 덮치는 것 같은 자세가 된 스네이프가 황급히 일어나려 했지만 릴리아나는 감고 있는 팔에 힘을 주며 풀어주지 않았다.

그의 품에서는 언제나 은은한 비누향이 났다. 릴리아나는 느릿하게 폐 깊숙이 그의 향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나른해졌던 기분이 급속도로 좋아져 그녀는 그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릴리아나?"

릴리아나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떨렸다. 맞닿아 있는 몸이 따뜻했다. 나른하던 릴리아나의 눈꺼풀이 슬슬 감기기 시작했다. 맞닿아 있는 심장에서 쿵쿵 울리는 것을 느끼며 몇 번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릴리아나는 까무룩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뻣뻣하게 굳어있던 스네이프가 슬쩍 고개를 돌려 잠들어버린 릴리아나를 발견하고는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그녀가 두르고 있던 팔을 풀었다. 팔은 가볍게 침대 위로 떨어졌다. 굳어버려 뻣뻣해졌던 몸을 일으킨 스네이프가 반쯤 풀려있는 릴리아나의 셔츠의 단추를 답답해 보일 정도로 끝까지 잠가주었다. 릴리아나가 더운 듯 작게 칭얼거렸지만 스네이프는 묵묵하게 속이 아슬아슬하게 보일 것 같은 치맛단을 내려주었다. 잘 정리되어 있던 이불을 펴 목 끝까지 꼼꼼하게 덮어준 스네이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치겠군……."

작게 중얼거린 스네이프가 새근새근 잠들어버린 릴리아나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불을 끄고 침실과 붙어있는 사무실로 나갔다.

***

다음날 눈을 뜬 릴리아나는 낯선 천장에 한 번 놀라고 순간적으로 두개로 보이는 천장에 두 번 놀랐다. 열이 나는 것처럼 깨질 것 같이 아픈 머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삭막한 방을 둘러보던 릴리아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분명 그리핀도르 기숙사를 나와서 스네이프의 사무실까지 왔던 것은 기억이 났다. 그리고 문에 붙은 메모를 보고 에메랄드빛이 나는 액체를 마시다 보니……

그 이후로 끊어져버린 기억에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겨있던 릴리아나는 달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어났나."

"……교수님?"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의아한 듯 릴리아나가 물었다.

"여긴 어디에요?"

"……내 방이다."

"교수님 방이요? 제가 왜 여기 있는……"

말을 하던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장면에 미간을 찌푸리며 그것에 집중을 하던 릴리아나는 하나 둘씩 돌아오는 기억에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걸 마셔라."

황금빛 나는 액체를 건네자 우물쭈물하며 그것을 받아든 릴리아나가 슬쩍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왜, 입으로 먹여줘야 하나."

"아니에요!"

그의 말에 붉어졌던 얼굴이 더욱 붉어진 릴리아나가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들려 단숨에 황금빛 나는 액체를 마셨다. 시큼한 레몬맛과 달콤한 꿀맛이 동시에 났다. 무언가 뭉쳐있는 것 같이 아파오던 머리가 점점 풀리는 것을 느끼며 릴리아나가 한결 편안해진 안색으로 병을 입에서 뗐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끌고 와 침대 옆에 앉은 스네이프가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할 말은?"

"……죄송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한 릴리아나가 스네이프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가 들고 있던 병을 받아들은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술에 손을 댔던 거냐."

"그거야……책상 위에 선물을 나두셨다고 써져 있었으니까……."

"책상이 아니라 탁자였다."

스네이프가 망토 속으로 손을 넣더니 원래 주려던 선물인 짙은 초록색 약이 든 병을 꺼냈다.

"금세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약이다. 전혀 쓰지 않고 아무 맛도 안 나는 것이 아니니-강조하듯이 말하는 스네이프에 릴리아나의 얼굴이 또다시 붉어졌다-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 한번 마실 때 한 방울씩이면 충분해."

"고맙습니다."

릴리아나가 홍조로 물들인 얼굴로 약을 받아들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스네이프가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손가락으로 가까이 오라는 시늉을 했다. 의아한 얼굴의 릴리아나가 순순히 스네이프에게 몸을 숙이자 붉은 머리카락이 앞으로 쏟아졌다. 그가 커튼처럼 가려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자 릴리아나가 머리카락을 붙잡아 한손으로 묶듯이 올렸다.

목에 서늘한 금속의 무언가와 그것보다 온기를 머금고 있는 사람의 손끝이 닿았다. 목 뒤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던 스네이프가 손을 떼었다. 한손으로 잡고 있던 머리카락을 풀어 내리며 목에 걸린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차가운 감촉의 무언가를 잡은 릴리아나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피어났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

흐트러진 릴리아나의 붉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해주던 스네이프가 말했다.

"고마워요, 세베루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릴리아나가 수줍게 대답했다. 가볍게 그녀의 하얀 이마에 입을 맞춘 스네이프와 릴리아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릴리아나가 싱긋 웃자 부드럽게 그녀의 목을 감싼 스네이프가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을 가볍게 지분거리던 스네이프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 입 안 여린 살을 조심스레 탐했다. 은밀하고 짜릿한 자극에 릴리아나가 몸을 흠칫 떨자 그는 달래기라도 하는 듯이 감싸고 있던 목선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간간히 얼굴이 뜨거워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따뜻하면서도 달콤한 입 안을 탐험하던 그는 가볍게 입술에 버드 키스를 하며 입을 떼었다. 비교적 격렬하지 않은 부드러운 키스였지만 눈을 뜬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온몸에 힘이 쭉 빠진 것처럼 나른했다.

힘이 빠져 나른하지만 어딘가 색기가 흐르는 얼굴로 스네이프를 바라보던 릴리아나는 교태어린 미소를 지으며 애교스럽게 몇 번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입맞춤을 받아들이던 스네이프는 결국 한숨을 쉬며 또다시 입을 맞추려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제지했다.

"왜요?"

릴리아나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하게 물어보자 스네이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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