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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왕자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혼혈 왕자-(9)
또다시 얼어붙은 유리창에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벌써 대연회장에 평소와 같이 열두 개의 크리스마스트리를 한손으로 번쩍 들어다가 가져다 놓았다. 호랑가시나무와 금박 장식을 엮은 화환들이 계단 난간 주위를 휘감고 있었고, 꺼지지 않는 촛불들이 갑옷의 투구 속에서 빛을 발하는 가운데, 복도에는 커다란 겨우살이 나뭇가지 다발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달려 있었다.
해리와 함께 복도를 지나가는 날이면 수많은 여학생들이 우르르 겨우살이 다발 밑에 모여드는 바람에 통로가 막히곤 했고 릴리아나는 자신의 친구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었음을 실감하며 새삼스러운 눈길로 해리를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해리는 종종 밤마다 나돌아 다닌 덕분에 성 안에 비밀 통로를 훤히 꿰뚫고 있는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겨우살이 다발이 걸려 있지 않은 길을 찾아 교실과 교실 사이를 다닐 수 있었다.
한때 이런 상황이 유쾌하기보다는 배가 아파 돌아가는 길을 간절히 필요로 했던 론은, 이제 이 모든 것을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분명 잘 된 일이었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았다.
론이 퀴디치 시합 당일이 되어도 자꾸만 우울하고 공격적인 최악의 모습을 보이자 해리는 그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펠릭스 펠리시스를 호박 주스에 넣는 시늉을 해 결국 그리핀도르 팀을 우승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론과 라벤더 브라운과의 교제였고, 헤르미온느는 엄청나게 분노하고 말았다. 론과 헤르미온느, 두 사람 모두와의 우정을 잃지 않기로 결심한 해리와 릴리아나는 입을 꾹 다물고 지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슬러그혼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다가올수록 남학생들은 끊임없이 릴리아나에게 파트너 신청을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요즘 새삼 호그와트에 남학생들이 이렇게 많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릴리아나의 파트너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딱히 말한 기억이 없는데도 그녀에게 파트너 신청을 한 남학생들은 스네이프에게 징계를 받았고, 교내에서 가뜩이나 좋지 않던 스네이프의 이미지는 더욱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릴리아나는 몇 번의 키스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애교 있는 미소를 지으며 스네이프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남자와도 파트너를 하고 싶지 않다고 그를 달랬다.그랬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슬러그혼의 파티에 가는 여학생에게 파트너 신청을 하면 악운이 따른다는 미신이 호그와트에 퍼졌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뒤에 스네이프의 징계는 모두 끝났고 그 이후로 릴리아나에게 파트너를 신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미신은 여학생들에게만 해당 되었기에 남학생인 해리는 여전히 여학생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헤르미온느와 함께 화장실 같은 곳을 가다보면 열두 명 정도 되는 여학생들이 해리에게 어떻게 사랑의 묘약을 먹일지 궁리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새어나왔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점점 다가왔고, 릴리아나는 이제 하루만 더 수업을 듣고 슬러그혼의 파티를 치르고 나면, 론과 헤르미온느의 눈치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집으로 떠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크리스마스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론과 헤르미온느가 서로 화해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어쩌면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이성을 되찾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희망은 부질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 날 변신술 수업을 마치고 난 두 사람은 한층 더 침울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날 수업 시간에 극히 어려운 인간 변신술 공부가 시작되었는데, 거울을 앞에 놓고 각자의 눈썹 색깔을 바꾸는 과제가 주어졌다. 론은 첫 번째 시도에서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자전거 핸들 모양의 콧수염을 만들어 내자, 헤르미온느는 그것을 보고 가차 없이 웃어 댔다.
그러자 론은 맥고나걸 교수님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앉는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잔혹할 정도로 똑같이 흉내 내는 것으로 앙갚음 해 주었다. 그것을 보고 라벤더와 패르바티가 배꼽을 잡고 즐거워하는 바람에 헤르미온느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그녀는 종이 울리자마자 자기 물건들을 반쯤 내팽겨 둔 채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릴리아나가 부랴부랴 자신의 짐을 챙기지도 못한 채 헤르미온느를 뒤따라갔다.
아래층에 있는 여학생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헤르미온느는 들어가기가 무섭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고 안아주며 온갖 방법으로 달래자 헤르미온느는 훌쩍이며 론에 대한 욕을 마구 퍼부으며 점점 진정해 가는 듯이 보였다. 길고 긴 험담 끝에 마침내 진정이 된 헤르미온느는 손수건에 콧물을 팽 풀더니 차가운 물에 세수를 했다. 여전히 훌쩍이는 헤르미온느의 등을 토닥여주며 여학생 화장실을 나온 릴리아나는 헤르미온느의 짐과 자신의 짐을 들고 있는 해리와 마주쳤다.
"여기 있었구나."
뛰어왔는지 해리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의 한쪽 눈썹은 변신술 수업 덕분에 노란색이 되어 있었다.
"여기 짐 있어."
"고마워."
릴리아나가 해리에게 가방을 넘겨받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헤르미온느 너도 물건을 놔두고 갔더라……."
해리가 그녀에게 책을 내밀었다.
"어, 그래."
헤르미온느가 목멘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소지품을 받아 들더니 필통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을 감추려고 얼른 뒤돌아섰다.
"고마워, 해리. 난 이만 가 볼게……고마워 릴리."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미처 위로의 말을 해 줄 틈도 주지 않고 횅하니 가 버렸다. 둘이 복도에 남게 되자 가방을 제대로 맨 릴리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국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화해할 일은 없어졌네."
"그러게."
두 사람은 그리핀도르 탑을 향해 나란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론은 때때로 조심해야 할 말을 내뱉는 경우가 있어."
"음……. 그런 것 같아."
해리가 론을 두둔하려는 듯 잠시 말꼬리를 끌었지만 이내 긍정했다.
"빨리 슬러그혼 교수님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났으면 좋겠어.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잖아."
"오늘 밤에 나랑 슬러그혼 교수님 파티에 가지 않을래?"
갑자기 해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릴리아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리를 바라보았다.
"슬러그혼 교수님의 파티에?"
"그래. 어차피 너도 초대받았잖아. 단지 친구로서……물론 파트너가 없다면 말이야. 하지만 혹시 네가 싫다면……."
마음속으로 해리와 함께 슬러그혼의 파티에 가는 것을 상상해보던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호그와트에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함께 다녔던 친구였고 해리는 이성의 대상이 아니었다.
"좋아. 나도 파트너가 없었거든. 그럼 여덟 시에 그리핀도르 휴게실에서 볼래?"
"좋아."
"그 전에 눈썹 색은 원래대로 되돌리고 와."
릴리아나가 싱긋 웃으며 노랗게 변해버린 해리의 한쪽 눈썹을 가리키며 말했다. 해리가 멋쩍은 듯이 씩 웃으며 눈썹을 손으로 문질렀다.
"아하!"
그들 머리 위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움찔했다. 그들은 피브스가 바로 위에 있는 샹들리에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그 밑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피브스는 두 사람을 보며 심술궂게 씩 웃었다.
"포터가 퀸에게 파티에 가자고 했대요! 포터는 퀸을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피브스는 "포터는 퀸을 좋아한대요!"라고 꽥꽥거리면서 슝 날아가 버렸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고맙겠어!"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해리 포터가 릴리아나 퀸과 슬러그혼의 파티에 데려가기로 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학교 전체에 쫙 퍼졌다.
"해리랑 간다고?"
연회장에서 만난 헤르미온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패르바티가 헤르미온느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헤르미온느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며 슬쩍 코맥 맥클라건과 파티에 함께 가게 되었다는 정보를 흘렸다.
"코맥? 코맥 맥클라건 말이니?"
패르바티가 되물었다. 릴리아나는 뜻밖의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맞아. 하마터면……."
헤르미온느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의 파수꾼이 될 뻔한 친구지."
"그럼 그 애와 사귈 거니?"
패르바티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어, 그래. 너 몰랐구나?"
헤르미온느가 전혀 헤르미온느답지 않게 킬킬거리며 말했다.
"이럴 수가!"
패르바티가 이 새로운 이야깃거리에 잔뜩 열을 올리며 탄성을 질렀다.
"우와, 너는 퀴디치 선수들을 좋아하는구나? 처음에는 크룸이더니 이번에는 맥클라건을……."
"맞아. 하지만 난 정말 뛰어난 퀴디치 선수만 좋아해."
헤르미온느가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패르바티의 말을 정정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 난 그만 가서 파티 준비를 해야겠어. 릴리 같이 갈래?"
"어……좋아."
릴리아나가 뜻밖의 소식에 당황하여 반 박자 늦게 대답하며 헤르미온느와 함께 연회장을 떠났다. 뒤에서 라벤더와 패르바티가 머리를 맞대고 자기들이 헤르미온느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사실들과 맥클라건에 대해 들은 모든 이야기를 총망라해서, 이 새로운 국면을 열심히 분석했다.
그리핀도르 탑에 도착한 릴리아나가 침실로 돌아오자마자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헤르미온느, 맥클라건이라고?"
릴리아나의 물음에 헤르미온느는 힘이 쭉 빠진 얼굴로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맞아. 걔랑 같이 가면 론이 질투할 줄 알았지."
헤르미온느가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
해리와 약속한 시간이 거의 가까워지자 릴리아나는 거울을 보며 붉은 립스틱을 바르는 것으로 모든 화장을 마쳤다. 사놓고서 한 번도 발라본 적 없어 거의 잊고 있었던 립스틱을 발견한 릴리아나는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모습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무릎 바로 위까지 오는 기장의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온 그녀의 몸매가 모두 드러나는 검은 시스루 드레스와 레드 립스틱의 조화는 그녀를 매혹적으로 또 육감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항상 하고 다니던 핀과 목걸이도 옷과 화장이 달라지니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그녀를 색다르게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높은 굽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리핀도르 휴게실로 내려가자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릴리아나는 어딘가 얼이 빠져 있는 해리에게 다가갔다.
"안녕, 해리. 그럼 가 볼까?"
릴리아나가 먼저 말을 걸자 얼이 빠져 있던 해리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어……그래 좋아."
해리는 멍한 얼굴로 릴리아나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녀에게 팔을 내밀었다. 미소를 지으며 해리의 팔에 팔짱을 낀 릴리아나는 슬러그혼의 방으로 향했다.
슬러그혼의 방에 가까워질수록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 말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슬러그혼의 방은 원래 그렇게 지어졌는지 아니면 슬러그혼이 뭔가 마법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스네이프의 방보다는 컸다. 천장과 벽에는 온통 에메랄드와 진홍색, 황금색 휘장이 드리워져 있어서 마치 거대한 천막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로 붐비는 방 안은 숨이 막힐 듯이 답답했고, 천장 가운데 매달려 있는 화려한 황금 램프는 붉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는데, 램프 안에는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진짜 요정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찬란한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멀리 한쪽 구석에서는 만돌린 같은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이야기에 열중한 예닐곱 명의 나이 든 마법사들 머리 위로는 파이프 연기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편 음식이 담긴 무거운 은 쟁반에 가려져서 마치 떠다니는 작은 식탁처럼 보이는 수많은 꼬마 집요정들이 사람들의 무릎 사이를 꽥꽥거리며 헤치고 다니고 있었다.
"오, 우리 해리! 그리고 퀸 양!"
해리와 릴리아나가 문을 비집고 들어서자마자, 슬러그혼이 큰 소리로 외쳤다.
"오오! 세상에."
팔짱을 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슬러그혼의 얼굴에서 그리움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니 마치 제임스와 릴리가 함께 있는 것 같구먼. 이리 오게, 이리 와. 자네들이 만나 봐야 할 사람들이 아주 많다네!"
슬러그혼은 엘드레드 워플이라는 그의 옛 제자와 워플의 친구, 드라큘라 샹귀니를 소개해 주었다. 해리 포터의 전기를 쓰고 싶다는 워플의 제안을 거절한 해리는 릴리아나를 이끌고 사람들 속을 파고들었다. 릴리아나 역시 방금 인기 여성 그룹 '운명의 세 여신'의 두 멤버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이로 긴 갈색 머리가 사라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기에 순순히 따라갔다.
"헤르미온느! 헤르미온느!"
"해리! 릴리!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만나서 다행이다!"
"너 무슨 일 있었니?"
릴리아나가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마치 지금 막 '악마의 덫' 덩굴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꼴이 엉망이었다.
"어, 방금 도망쳐 나오는 길이야……. 내 말은, 방금 코맥과 헤어졌다는 뜻이야."
헤르미온느가 설명했다. 해리가 그래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
"겨우살이 밑에서 도망쳤어."
"그런 녀석이랑 파티에 오다니, 당해도 싸다."
해리가 가차 없이 구박을 했다.
"걔랑 오면 론이 제일 속상해할 줄 알았지 뭐."
헤르미온느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자카리아스 스미스와 올까도 고민해 봤다는 그녀의 말에 해리가 발끈했지만 그것은 트릴로니 교수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술에 취해 계속해서 무어라 주절거리는 트릴로니 교수의 말을 듣던 그들은 그녀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곳을 향해 주절거리기 시작하자 슬쩍 그 자리에서 벗어났지만 헤르미온느는 멀리서 다가오는 맥클라건을 발견하고 순간이동을 하는 것 같이 보이는 재빠른 몸놀림을 보여주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헤르미온느 못 봤니?"
잠시 후에 맥클라건이 사람들 사이를 간신히 헤치고 다가와서 물었다.
"응, 못 봤어."
해리와 릴리아나가 동시에 대답했다. 미심쩍은 듯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고 맥클라건이 바라보자 황급히 몸을 돌린 해리와 릴리아나는 그들 바로 뒤에 서 있던 슬러그혼과 스네이프에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이런! 여기서 다시 만나는군!"
슬러그혼이 붉게 충혈 된 눈으로 몹시 사랑스럽다는 듯이 해리와 릴리아나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스네이프의 시선은 릴리아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한 쌍이야! 마치 제임스와 릴리가 다시 살아 돌아온 모습을 보는 것 같다니까……."
슬러그혼이 어느새 촉촉해진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스네이프의 시선이 해리와 팔짱을 끼고 있는 릴리아나의 손에 닿았다. 릴리아나가 황급히 손을 내렸다.
"자네는 해리와 퀸 양이 얼마나 놀라운 마법약 만들기 실력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겠지? 물론 일부는 자네의 덕분이겠지. 자네가 해리와 퀸 양을 5년이나 가르쳤으니 말일세!"
스네이프는 어깨를 감싼 슬러그혼의 팔에 꼼짝없이 붙잡힌 채, 까만 눈을 가늘게 뜨고 매부리코 아래로 해리와 릴리아나를 내려다보았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퀸에게서는 재능을 봤긴 했지만……저는 포터에게 뭔가를 가르쳤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요."
"그래? 그렇다면 이건 타고난 재능이구먼!"
슬러그혼이 감탄을 했다.
"첫 시간에 해리가 나에게 제출한 '살아있는 죽음의 약'을 자네도 보았어야만 했는데……. 첫 번째 실험에서 그렇게 완벽한 마법약을 만들어 낸 학생은 처음이었다네, 세베루스. 자네라도 그러지는 못했을걸."
"정말인가요?"
스네이프가 여전히 릴리아나를 꿰뚫을 듯이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네들은 다른 과목들을……"
"죄송하지만 슬러그혼 교수님."
스네이프가 슬러그혼의 말을 끊고 말했다.
"저는 여기 있는 퀸 양에게 전달해야할 말이 있어서 말입니다. 잠시만 실례하도록 하죠."
스네이프가 따라오라는 듯이 고갯짓을 하자 해리가 불안한 눈빛으로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괜찮다는 듯 해리를 향해 손짓을 한 릴리아나가 스네이프를 따라 나갔다. 파티장을 빠져나와 복도를 걷는 도중에도 스네이프는 아무 말이 없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던 릴리아나도 스네이프가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으니 점점 해리와 함께 파티를 온 것이 잘못한 짓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복도 끝에 멈춰 서자 빙글 몸을 틀은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분명 파트너가 없다고 했는데 포터와 함께 파티에 참석했더구나."
그의 말은 조용했지만 릴리아나는 그 속에 담겨 있는 감정들을 읽을 수 있었다.
"교수……"
"옷은 또 그게 뭐냐."
스네이프의 시선이 무릎 위 기장의 딱 달라붙은 시스루 드레스를 훑었다.
"포터 녀석에게 보여주려고 입은 거냐 아니면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주려고 입은 거냐."
스네이프가 자신의 망토를 벗더니 꽁꽁 싸매듯 릴리아나를 감싸버렸다.
"게다가 입술은 왜 그렇게……"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는 스네이프의 양손을 릴리아나가 살며시 잡았다. 일순 그의 말이 멈췄다. 릴리아나가 배시시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미안해요. 해리는 친구니까 소문이 퍼졌어도 신경쓸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세베루스 앞에서만 이렇게 입을게요."
잠시 말이 없던 스네이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그런다고……"
스네이프가 입을 열자 그의 입술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춘 릴리아나가 애교를 가득 담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넘어갈 것……"
말을 잇지 못하던 스네이프가 다시 입을 열자 또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춘 릴리아나가 배시시 웃었다.
"……이번 한 번만 넘어가도록 하지."
"알겠어요, 세브."
릴리아나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또다시 그에게 입을 맞췄다. 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스네이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 그들의 뒤에서 빈정거리는 것 같은 느릿느릿하고 거만한, 뱀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곳에서 뵙네요, 스네이프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