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84화 (8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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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왕자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혼혈 왕자-(12)

마법사 가정의 아이들은 그것을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넘기는 것 같았지만 눈앞에서 수잔의 신체가 분리되는 것을 목격했던 릴리아나는 순간이동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해리의 말로는 작은 고무튜브를 억지로 통과하는 느낌이라던데 그 느낌이 상상이 가지는 않았으나 매우 끔찍할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2월이 지나고 3월이 가까워 오고 있었지만, 비에다 바람까지 불기 시작한 것만 제외하면 날씨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결국 다음번 호그스미드 방문일이 취소되었다는 공고문이 모든 기숙사 휴게실 게시판에 나붙자, 모두들 분개했다. 특히 론은 억울해서 펄펄 뛰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란 말이야!"

론이 투덜거렸다.

"내가 그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하지만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아니잖아. 케이티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케이티는 아직도 성 뭉고 병원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예언자 일보>>는 호그와트 학생들의 친척들 대여섯 명을 포함한 실종자 소식을 계속해서 싣고 있었다.

"이제 내가 기대할 거라곤 그 한심한 순간이동 강의뿐이구나!"

론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대단한 생일 선물이로군……."

하지만 론은 그렇게 실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2월의 반이 지나가고 발렌타인데이가 찾아오자 아침부터 같은 기숙사를 쓰는 라벤더 브라운이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펑펑 하고 무언가 터지는 것 같은 커다란 소리와 라벤더와 패르바티의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수다에 평소보다 일찍 눈을 뜬 릴리아나가 졸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머, 미안 릴리아나. 깼어?"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지?"

"아니야."

릴리아나가 졸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방 안에는 보랏빛 연기로 가득했다.

"뭘 한 거야? 마법약이라도 만들었어?"

릴리아나의 질문에 패르바티와 라벤더가 키득거렸다. 라벤더의 머리에는 커다란 붉은 장미들로 이루어진 화관이 씌워져 있었다.

"아니야. 사진을 찍고 있었어."

패르바티가 손 안에 달린 카메라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카메라에서는 아직도 보랏빛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진? 사진은 왜?"

"오늘이 발렌타인데이잖아. 로~오옹에게 선물로 주려고."

라벤더가 꿈꾸는 것 같은 얼굴로 말하자 릴리아나는 반사적으로 헤르미온느의 침대를 흘끗 바라봤으나 그녀는 이미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는지 침대에는 없었다.

"한 장 찍어줄까?"

패르바티가 카메라를 들어 올려 보이며 물었다. 괜찮다고 말을 하려던 릴리아나는 스네이프에게 자신의 사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지금 바로 찍어줄까 아님 좀 씻고 나서 찍을래?"

"씻은 다음에 찍을게."

"알았어."

릴리아나가 욕실로 들어가자 뒤에서 또다시 펑 하는 사진 찍는 소리가 커다랗게 났다. 재빠르게 씻은 후 머리를 마법으로 빠르게 말린 릴리아나가 간단하게 화장을 한 후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라벤더처럼 화관이라도 쓰고 찍는 것이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 릴리아나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오르치데우스."

그러자 지팡이 끝에서 안개꽃 다발이 튀어나왔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안개꽃을 지팡이로 톡톡 두드리자 꽃들은 알아서 화관으로 변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다시 한 번 구불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을 정리한 릴리아나가 욕실에서 나왔다.

사진 속에서 까르르 웃고 있는 라벤더의 사진만 50장쯤 뽑아 침대 위에 늘어놓고 어느 것이 제일 예쁜지 고르며 론에게 오늘 어떻게 할 것인지 재잘거리고 있던 라벤더와 패르바티가 얼굴을 들었다.

"왔어? 그럼 여기 창가에 서 볼래?"

패르바티의 말에 창가에 은은한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 앞에 선 릴리아나가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화관도 만들었네? 누구 줄 사람이라도 있어?"

"어……그게……집에 보내려고."

한 박자 늦은 릴리아나의 대답이 이상하지는 않았는지 납득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인 패르바티가 카메라를 올렸다.

"그럼 찍을게. 하나, 둘……"

릴리아나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펑 하고 커다란 소리와 함께 카메라에서 보랏빛 연기가 올라왔다. 잠시 후 카메라에서 나온 사진을 잡고 팔락거리며 말리던 패르바티가 릴리아나에게 사진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이정도 가지고 뭘."

패르바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릴리아나의 눈에는 똑같이 보이는 세 장을 들고 어느 것이 제일 예쁘게 나왔는지 고민하는 라벤더에게 합류했다. 방금 나온 사진에 찍힌 릴리아나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완전히 사진이 마르고 나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간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번도 자신이 찍힌 마법사 사진을 갖은 적이 없었던 릴리아나는 신기한 듯 그 사진을 바라보다 복사 마법으로 한 장을 더 복사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닉스를 통해 세바스찬에게 사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릴리아나는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휴게실로 내려왔다. 뒤에서 라벤더가 남자들은 어떻게 해야 좋아하는지를 떠들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내려오던 릴리아나는 휴게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헤르미온느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 헤르미온느."

"안녕 릴리. 먼저 내려와서 미안해."

헤르미온느가 시선으로 그녀가 내려온 계단을 바라보며 말하자 릴리아나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장을 가기 전, 부엉이 장으로 가 닉스에게 사진을 물려주고 난 후 그들은 연회장으로 향했다. 먼저 식사를 하고 있는 해리와 론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릴리아나는 앉기가 무섭게 론과 헤르미온느 사이에 얼음이 흐르는 것 같은 냉전 상태로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결국 라벤더는 아침 식사가 끝나기 전에 제일 잘 나온 사진을 골랐는지-다시 한 번 릴리아나는 50장 모두 똑같이 보였다고 생각했다- 아침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로~오옹'거리며 론에게 자신의 사진과 초콜릿 상자를 건넸다.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아침부터 찰싹 달라붙은 그들의 모습에 릴리아나가 힐끗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얼굴로 그날의 날씨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하지만 곧 론과 라벤더가 진한 키스를 하기 시작하자 헤르미온느는 아침부터 비위가 상한다는 얼굴로 릴리아나의 식사를 재촉하듯 그녀의 접시를 바라보았다.

남아있던 소시지를 쑤셔 넣듯 입에 밀어 넣은 릴리아나가 음식을 우물거리며 헤르미온느를 향해 가자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연회장을 나와 그리핀도르 탑으로 돌아오는 내내 헤르미온느는 론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론의 바보 같은 점을 나열하던 헤르미온느의 말에 라벤더가 섞이기 시작했다.

"론은 그게 뭐가 좋다고 그러는 거야? 무릎에 앉아서 키스나 쪽쪽 거리는 거? 그런 게 정말 좋니?"

"글쎄……."

릴리아나가 볼 때는 론은 정말로 그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현명하게도 말꼬리를 흐리는 것으로 넘어갔다. 잠시 스네이프의 무릎에 앉아 입을 맞추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화들짝 놀란 릴리아나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지만 론에 대한 불평에 정신이 팔려 있던 헤르미온느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헤르미온느의 불평은 연회장 근처에 도착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발렌타인데이라 그런지 론과 라벤더의 애정행각은 평소보다 더욱 심했다. 결국 지니가 불평하듯 "혀가 서로의 목구멍에서 떠나지 않는다."라고 투덜거렸는데 릴리아나는 그들의 행동을 표현하는 말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말을 찾은 것 같았다.

기숙사 한구석에서 초콜릿을 가지고 쪽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과제를 하던 릴리아나는 결국 생각했던 시간보다 빨리 준비를 하게 되었다. 하고 있던 과제를 챙겨 한 몸이 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론과 라벤더를 지나 기숙사 침실로 올라온 릴리아나는 베이지 색의 두꺼운 털실로 짜인 니트 원피스를 입은 후 준비해 두었던 초콜릿 상자를 꺼냈다. 서랍에 넣어두었던 아침에 찍었던 사진을 꺼낸 릴리아나는 안개꽃 화관을 쓴 채로 은은한 햇빛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대로 스네이프의 사무실에 가려던 릴리아나는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좋은 생각에 침대 위에 올려놓았던 과제들 사이에서 잉크와 깃펜을 꺼냈다. 방긋방긋 웃고 있는 사진을 뒤집어 새하얀 여백 위에 어떤 문구를 쓰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던 릴리아나가 잉크에 깃펜 끝을 담갔다.

잠시 문구를 고민하던 릴리아나가 잉크에서 깃펜을 뺀 후 새하얀 여백 위에 글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해피 발렌타인, 세브.

사랑을 듬뿍 담아

릴리아나

간단한 문구였지만 어딘가 부족한 것 같은 문구에 릴리아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깃펜의 깃털을 이로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하던 릴리아나가 글자를 추가했다.

당신의 릴리아나

'당신의'라는 글자를 써놓고 어쩐지 부끄러워졌던 릴리아나는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말포이의 차가운 음성에 잠시 멈칫했다.

'……심지어 이름까지 비슷하고 퀸의 생일이 그 여자가 죽은 다음날이라면서요?'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떠오르자 릴리아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털어버리려고 애썼다. '당신의 릴리아나'라는 글자를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의 이름 안에 해리의 어머니 이름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름이나 생일 같은 것은 자신이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하려하며 눈썹을 치켜 올렸던 릴리아나는 입안 여린 살을 살짝 깨물었다가 지팡이를 들었다. 지난 6년간 마법세계에서 교육받은 효과는 그대로 드러났다. '릴리아나'라고 썼던 잉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깃펜을 들고 잠시 고민하던 릴리아나가 글자를 채워 넣었다.

당신의 아나

자신이 쓴 글자들을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사진을 뒤집었다. 사진 속의 릴리아나는 여전히 햇빛 아래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초콜릿 상자와 사진을 챙겨 그리핀도르 탑을 나온 릴리아나는 곧바로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사무실 문 앞에 멈춰선 릴리아나가 노크를 했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수님?"

똑똑 문을 두드리며 스네이프를 부르던 릴리아나는 아무런 대답이 없자 슬쩍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은 릴리아나는 스네이프를 부르다 침실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삭막한 방 안에 있는 침대를 보자 지난번의 일이 기억나 단번의 릴리아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허벅지 안쪽에서 기이한 열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무시하며 고개를 저은 릴리아나는 침실 옆에 있는 문이 벌컥 열리며 샤워 가운을 입고 나온 스네이프와 눈이 마주치고 흠칫 몸을 떨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약간의 정적 끝에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자 스네이프 역시 어색하게 대답을 했다.

"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스네이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아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몸을 돌려 그의 침실을 나갔지만 두 볼은 빨개져 있었다. 사무실 안을 돌아다니며 릴리아나는 문 건너로 들리는 옷을 입는 선연한 소리에 두 눈을 꼭 감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평소와 같은 복장을 한 스네이프가 침실에서 나왔다. 스네이프는 성큼성큼 걸어 나와 소파에 앉았다. 사무실 안을 돌아다니던 릴리아나가 다가와 반대편 소파에 앉으려다 결심한 듯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스네이프가 뭐하냐는 듯이 눈썹을 치켜 올렸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시도한 것은 릴리아나였지만 오히려 그녀가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어색한 듯 꼼지락대던 릴리아나가 스네이프에게 초콜릿 상자를 건넸다.

"……고맙다."

"드셔보실래요?"

그녀의 말에 스네이프가 상자의 포장을 뜯었다. 정갈하게 놓인 초콜릿 중 하나를 꺼내려던 스네이프는 릴리아나가 대신 초콜릿을 집자 손을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렸다. 손으로 초콜릿 아래를 받치며 건네려던 릴리아나는 잠시 망설이다 자신의 입술에 초콜릿을 물고 스네이프의 두 뺨을 손으로 고정시킨 뒤 그대로 그의 입술을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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