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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왕자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혼혈 왕자-(13)
스네이프는 손을 뻗어 릴리아나의 머리를 감싸더니 입으로 건네주는 초콜릿을 받았다. 입술 온도에 의해 녹아버린 초콜릿까지 샅샅이 핥은 스네이프가 가볍게 입술을 뗐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릴리아나의 얼굴을 바라보던 스네이프가 한쪽 입 꼬리를 보일 듯 말듯하게 올리며 피식 웃었다.
"맛있네."
스네이프의 말에 이상하게 가슴을 간질이는 부끄러움에 릴리아나가 그의 어깨에 붉어진 얼굴을 묻었다. 먼저 시작한 것은 릴리아나였지만 오히려 그녀가 더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커다란 남자의 손이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 더 먹고 싶은데."
간간히 장난기가 묻어나오는 말투에 릴리아나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먹지 말라고?"
여전히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릴리아나가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있더니 곧 고개를 저었다.
"먹으라는 거냐, 먹지 말라는 거냐."
릴리아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스네이프가 재촉하듯 손끝으로 느리게 릴리아나의 허벅지를 피아노를 치듯 움직이자 릴리아나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붉어진 얼굴로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릴리아나에 스네이프가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픽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웃지 마요."
"안 웃었다."
"놀리지 마요."
"그쪽이 먼저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덤덤한 목소리로 태연하게 대꾸하는 스네이프에 릴리아나가 밉지 않게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콱 깨물었다 놓았다. 그녀의 행동에 스네이프가 황당한 얼굴로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릴리아나도 자신의 행동에 당황한 듯 아직도 홍조가 남아있는 놀란 얼굴로 스네이프를 올려다보았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선연한 이의 감촉에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던 스네이프와 눈이 마주치자 릴리아나의 얼굴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안절부절 못하던 릴리아나가 손가락 끝으로 살짝 자신이 깨문 자리를 문질렀다.
여전히 뚫어질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스네이프의 시선에 릴리아나가 비 맞은 고양이 같은 눈으로 스네이프를 올려다보았다.
"……많이 아파요?"
"……아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릴리아나는 더욱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미안해요 세브."
"……미안하면……"
스네이프가 받치고 있던 릴리아나의 허리를 더욱 세게 안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어떻게 할 거냐."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을 동그랗게 떴던 릴리아나가 입을 살짝 내밀었다. 놀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먼저 잘못한 것이 있던 릴리아나는 눈을 작게 굴렸다가 샐쭉한 표정으로 입술에 또다시 초콜릿을 물었다. 여전히 샐쭉한 표정으로 있는 릴리아나에 짓궂은 표정이 스쳐 지나간 스네이프가 허벅지에 올려놓고 있던 손을 떼어 그녀의 어깨를 잡은 후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겼다.
초콜릿을 가져간 후 계속해서 붉은 입술을 지분거리던 스네이프가 어깨를 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풀어 그녀의 붉은 머리로 가져갔다. 따뜻한 그녀의 입 안에 침범하여 초콜릿의 달콤함을 나누던 소리가 점점 질척해졌다. 반쯤 드러난 하얀 허벅지를 손자국이 남도록 잡으며 파고들 것 같이 입을 맞춰오는 스네이프에 호흡이 딸린 릴리아나가 숨을 몰아쉬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얼굴에서 얼핏 보이는 열망은 크리스마스 때 한번 보았던 것과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침을 꿀꺽 삼킨 릴리아나가 달아오르는 것 같은 다리를 꼬았다. 그러자 스네이프의 몸이 작게 움찔했다.
"……릴리아나."
스네이프가 한숨을 쉬는 것 같은 낮은 목소리로 릴리아나를 불렀다.
"……릴리아나, 릴리아나, 릴리아나, 릴리아나, 릴리아나……"
릴리아나의 이름을 부르는 스네이프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작아졌다.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그가 한숨을 쉬더니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많이 아팠었나?"
단번에 언제 있었던 이야기인줄 알아차린 릴리아나의 얼굴에 다시 붉은 물이 들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보일 듯 말듯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스네이프가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은밀하게 느껴지는 절실해 보이는 열망에 순간 그에게는 자신뿐이라는, 자신에게 미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지만 여전히 마음 속 한구석에서 누군가가 꾸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것을 비웃듯이 릴리아나가 스네이프를 껴안듯 팔을 올렸다. 그가 그녀를 올려다보자 가볍게 볼에 입을 맞춘 릴리아나가 옅게 웃었다.
너는 틀렸어. 내가 맞아. 맞아야 해. 릴리아나가 마음 속 한구석에서 꾸준히 의문을 제기하는 누군가에게 속삭였다.
스네이프의 얼굴에서 아까보다 더욱 뚜렷한 절실한 열망이 드러났다. 마음속에서 누군가 만족스러운 듯 갸르릉 거리는 소리를 냈다. 릴리아나의 미소가 짙어졌다. 스네이프의 눈매가 소유욕으로 인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는 자신의 위에 앉아있는 릴리아나의 허리와 다리에 손을 넣어 그녀를 번쩍 들어올렸다.
***
3월의 첫날은 론의 생일이었다. 하지만 론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기도 전에 그는 병동에 입원을 했다. 술에 들어있던 독약에 당했다는 것이었다. 조용한 병동에서 론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는 것을 착잡하게 바라보며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추측하는 이야기를 듣던 릴리아나는 병동에 해그리드가 찾아오고 폼프리 부인이 허둥지둥 자기 사무실에서 달려 나오며 한 번에 여섯 명 이상의 문병객은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해리와 헤르미온느, 릴리아나와 해그리드는 병동을 나왔다.
"끔찍한 일이야."
네 사람이 대리석 계단으로 가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 해그리드가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중얼거렸다.
"새로운 보안 조치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이들이 다치고 있으니……덤블도어 교수님의 걱정이 태산 같으실 거야……. 별로 말씀은 안 하시지만 나는 척 보면 알 수 있지……."
"교수님도 무슨 뾰족한 생각이 없으시겠죠, 해그리드?"
헤르미온느가 간절하게 물었다.
"교수님처럼 머리가 좋으신 분이라면 물론 수백 가지 생각을 가지고 계시겠지."
해그리드가 말했다.
"하지만 누가 그 목걸이를 보냈고, 누가 그 꿀술에 독을 탔는지는 모르시는 것 같아. 만약 아셨다면 그놈들이 벌써 잡혔겠지, 안 그래? 내가 진짜로 걱정되는 건 말이다……."
해그리드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뒤를 힐끗 살펴보았다. 해리도 혹시 피브스가 있을까 싶은지 천장을 확인했다.
"아이들이 자꾸 공격을 당하다간 호그와트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거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싶다. 비밀의 방 때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어? 겁에 질린 부모들이 아이들을 자꾸 학교에서 데려가면 그 다음에는 뻔 하잖아. 정부의 고위층들이……."
해그리드는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자 유령이 소리 없이 스르르 지나가자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부의 고위층들이 학교를 영원히 닫아 버리자고 떠들어 댈걸."
"설마 그럴 리가요?"
헤르미온느가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거야."
해그리드가 침울하게 말했다.
"사실 아이들을 호그와트에 보내는 데에는 항상 약간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야. 안 그래? 나이 어린 마법사들 수백 명을 모두 한곳에 몰아 놓았으니, 사소한 사고가 일어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살인 미수라는 건 전혀 이야기가 다르지.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스네이프에게 화를 내시는 것도 당연한……."
해그리드가 도중에 말을 뚝 멈추었다. 헝클어진 검은 수염 위로 드러난 그의 얼굴에는 아차 실수했다는 낯익은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뭐라……"
"뭐라고요?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세베루스 교수님께 화를 내셨다고요?"
해리가 입을 열었지만 릴리아나의 말이 더 빨랐다. 세 사람 모두 놀란 표정으로 릴리아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아차 싶었는지 입을 막으며 소리를 질러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해그리드는 딱 잡아뗐지만, 잔뜩 겁먹은 그의 표정은 오히려 진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시계 좀 보렴. 벌써 자정이 다 되어 가는구나. 나는 이제……."
"해그리드, 덤블도어 교수님이 왜 스네이프에게 화를 낸 거죠?"
해리가 큰 소리로 다그쳤다.
"쉬이잇!"
해그리드가 화가 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표정으로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지 마라, 해리. 내가 학교에서 쫓겨나길 바라니? 하긴 너희들이 그걸 신경이나 쓰겠니? 아무렴,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도 그만둔 녀석들이……."
"괜히 죄책감 들게 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그래 봐야 소용없으니까!"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스네이프가 무슨 짓을 했는데요?"
"난 몰라, 해리.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었는데! 그……그러니까 지난 저녁에 내가 숲에서 나오려는데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잖니. 음, 사실은 다투고 있었어. 괜히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몰래 숨었는데, 그리고 듣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아, 글쎄 그게 말이지……너무 언성이 높아서 도무지 안 들을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요?"
해리가 해그리드를 재촉했다. 해그리드는 초조한 듯이 그 거대한 발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릴리아나 역시 입술을 깨물며 해그리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니까……내가 들은 건, 덤블도어 교수님이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스네이프가 말하는 소리뿐이었어. 그리고 아……아마 스네이프가 더 이상 그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그 일이라뇨?"
"난 몰라, 해리. 스네이프는 자기가 다소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어쨌든 덤블도어 교수님은 스네이프가 그 일을 하기로 동의했고, 그러니 그 일을 해야만 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더군. 꿈쩍도 안하시더라니까. 그러고 나서 스네이프가 그의 슬리데린 기숙사를 조사한 일에 대해서 뭔가 이야기를 하셨어. 뭐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 않니!"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서로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고, 릴리아나가 불안한 얼굴로 해그리드를 바라보고 있자 그는 황급히 덧붙여 말했다.
"모든 기숙사의 사감 선생님들이 그 목걸이 사건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거든."
"그건 그래요.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다른 기숙사 때문에 큰소리를 내시지는 않잖아요, 안 그래요?"
해리가 물었다.
"이거 봐."
해그리드가 초조한 듯이 손에 들고 있는 석궁을 비틀자, 으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석궁이 딱 하고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네가 스네이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나도 알아, 해리. 그렇지만 괜히 필요 이상으로 넘겨짚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조심해요."
헤르미온느가 짤막하게 경고했다. 뒤를 돌아보니, 때마침 아구스 필치의 그림자가 벽 위에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등이 구부정하게 굽은 필치가 턱을 바들바들 떨면서 막 모퉁이를 돌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호!"
필치가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침실 밖을 돌아다니다니……이건 징계감이야!"
"그건 아닐세, 필치."
해그리드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나와 함께 있지 않나, 안 그런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필치가 밉살스럽게 말했다.
"나도 어엿한 교수란 말이야. 알겠나? 이 염탐꾼 스큅 같으니라고!"
해그리드가 버럭 화를 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필치가 사납게 씩씩거리고 있는 동안, 어디선가 나타난 노리스 부인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필치의 발목에 몸을 비비 꼬며 비벼 대기 시작했다.
"그만 가라."
해그리드가 입을 우물거리며 슬쩍 대답했다. 그러자 해리와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는 더 들을 것도 없이 잽싸게 자리를 피했다.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나는 세 사람의 등 뒤에서 해그리드와 필치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도대체 스네이프가 하기로 했다는 일이 뭘까."
해리가 의심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글쎄. 그런데 스네이프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해그리드가 그랬잖아."
헤르미온느가 불안해 보이는 릴리아나의 어깨를 감싸며 두둔하듯 말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고 덤블도어 교수님이 말씀 하셨다며. 스네이프는 그 일을 해야만 할 걸."
해리가 여전히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의 생각은 그리핀도르 기숙사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맥클라건의 퀴디치 시합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들먹거리는 말에 의해 깨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