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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왕자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혼혈 왕자-(14)
맥클라건을 론의 대신으로 퀴디치 시합에 내보냈던 것은 엄청난 실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맥클라건은 파수꾼을 맡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퀴디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경기 내내 과시하려고 애를 썼다. 결국 맥클라건은 몰이꾼의 방망이를 빼앗아 들고 다가오는 상대편 선수를 향해 블러저를 어떻게 쳐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준다며 자기만의 비법을 전수하다가 해리의 머리에 블러저를 날려 두개골에 금이 가게 하는 것으로 그리핀도르 팀을 완벽한 패배로 이끌었다.
다행스럽게도 폼프리 부인의 간호 덕분에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해리와 론은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곧바로 병동을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블러저를 맞고 쓰러진 사람과 독살을 당할 뻔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이점을 톡톡히 누렸는데,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은 것은 헤르미온느와 론이 다시 친해졌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덤블도어의 특별 수업에 다녀왔던 해리는 혹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책의 여백에 적혀 있지는 않을까 혼혈 왕자의 마법약 책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그래 봐야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
일요일 밤 늦은 시각, 헤르미온느가 단호하게 말했다.
"헤르미온느, 그만 해."
해리가 말했다.
"왕자가 아니었다면 론은 지금쯤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걸."
"네가 1학년 때 스네이프의 수업만 잘 들었어도 론은 무사했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지지 않고 맞섰다. 해리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책장을 팔락팔락 넘겼다. 해리의 옆에 앉아있던 릴리아나가 해리의 시선이 닿고 있는 책 가장자리를 흘끗 훔쳐보았다. '섹튬셈프라, 적에게 사용'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주문에 릴리아나가 소리 없이 그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을 무렵, 해리는 당장이라도 시험해 보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 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가 풀었다. 하지만 그는 헤르미온느 앞에서 시험해 보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대신 그 페이지의 귀퉁이를 살짝 집어 놓았다.
그들은 휴게실의 벽난로 앞에 앉아 있었다. 아직도 자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6학년 학생들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게시판에 순간이동 시험 날짜를 알리는 새로운 공고문이 나붙은 걸 보고 다들 몹시 흥분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험 날짜인 4월 21일 전이나 당일에 열일곱 살이 되는 사람들은 별도의 강의를 신청할 수가 있었는데, 특별 강의는 철저한 감독 하에 호그스미드에서 실시될 예정이었다.
론은 이 공고문을 읽고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직도 순간이동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연 시험을 치를 수 있을지 두려웠던 것이다. 얼떨결에 한번 성공했던 릴리아나는 해리가 말했던 것보다 견딜만한 느낌과 분리되지 않은 신체에 두려움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지금까지 두 번 순간이동에 성공했던 헤르미온느는 조금 자신이 있었다. 반면 앞으로 넉 달은 지나야 열일곱 살이 되는 해리는 준비가 됐든 안 됐든 시험을 치를 수가 없었다.
"어쨌든 넌 순간이동을 할 수 있잖아!"
론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7월이면 아무 문제없이 시험을 치를 수 있을 거야!"
"나도 딱 한 번밖에 못 해 봤어."
해리가 론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바로 이전 강의 시간에서야 마침내 사라졌다가 고리 안에 다시 나타나는 데 성공했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순간이동 시험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보낸 론은 이제야 대단히 까다로운 스네이프의 작문 숙제를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숙제보다는 슬러그혼의 기억을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해리가 혼혈 왕자의 책을 다시 훑어보기 시작하자 헤르미온느가 더 큰 소리로 잔소리를 퍼부었다.
"해리, 내가 말했잖아. 그 멍청한 왕자는 그 문제를 푸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라고 말이야! 자기가 원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시키는 방법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그것은 바로 임페리우스 저주야. 하지만 그건 불법이니까……."
"그래, 나도 다 알아. 제발 그만 좀 해."
해리가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다.
"그래서 뭔가 다른 걸 찾고 있는 거잖아. 덤블도어 교수님 말씀으로는 베리타세룸도 소용이 없다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마법약이나 주문 같은 게 있을 텐데……."
"넌 지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거야."
헤르미온느는 물러서지 않았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오직 너만이 그 기억을 얻어 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 그 말은 바로 너라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슬러그혼 교수님을 설득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에게 몰래 약을 먹이거나 그런 건 아닐 거야.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교전 중'이라는 단어의 철자를 어떻게 쓰지?"
론이 양피지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손에 든 깃펜을 마구 흔들며 물었다.
"'B-U-M-'은 아닐 텐데?"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론의 숙제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점치는 의식'도 'O-R-G'로 시작하지 않아. 도대체 네가 쓰는 그 깃펜은 뭐니?"
"프레드와 조지의 자동 철자 수정 깃펜인데……효력이 다 떨어졌나 봐."
"그래, 분명 그런 것 같다."
헤르미온느가 론이 쓴 작문의 제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해야 할 숙제는 '디멘터 대처법'이지, '더그보그(늪지에 사는 마법 생물) 대처법'이 아니거든. 그리고 언제부터 네 이름이 '루닐 웨즐립'으로 바뀌었니? 난 미처 몰랐는걸."
"오, 안 돼!"
론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양피지를 내려다보았다.
"설마 이 숙제를 전부 다 다시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지 마. 고칠 수 있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숙제를 자기 앞으로 바싹 끌어당기더니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사랑해, 헤르미온느."
의자 뒤로 벌렁 몸을 기댄 론이 피곤한 듯이 두 눈을 비비며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얼굴이 약간 빨개져서는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런 말 하다가 라벤더한테 들키지나 마시지."
"안 그럴 거야."
론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 채 말했다.
"아니,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몰라……. 그럼 라벤더가 나랑 헤어지려고 할 텐데……."
"걔랑 그렇게 끝내고 싶으면 왜 네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지 않는 거니?"
해리가 물었다.
"너 한 번도 누군가를 차 본 적 없지?"
론이 말했다.
"너랑 초는 그냥……."
"그래, 그냥 멀어졌지."
해리가 말을 끝냈다.
"나랑 라벤더도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론이 우울하게 중얼거리면서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지팡이 끝으로 틀린 단어들을 탁탁 치자 단어들이 저절로 고쳐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내가 그만 끝내고 싶다는 기색을 보이면 보일수록 라벤더는 점점 더 착 달라붙는걸. 이건 마치 대왕 오징어랑 사귀는 기분이야."
론의 말에 거의 완성이 된 숙제를 써내려가던 릴리아나의 손이 굳었다.
"사랑하지도 않는데 사귄다는 건 정말 고역이야."
잠시 굳은 채로 론의 말을 곱씹던 릴리아나가 태연한 목소리를 가장해 물었다.
"……사랑하지도 않는데 계속해서 입 맞추고 애정행각을 할 수 있는 거야?"
릴리아나의 질문에 론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할 수야 있지. 그런데 점점 더 이상 좋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느낌이랄까……점점 상대가 음……. 거머리같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싫어진다고 해야……"
론의 뒷말은 갑자기 나타난 도비와 크리처에 의해 끊어졌다. 도비는 해리가 조사하라 명했던 '말포이가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했고 해리는 말포이가 필요의 방을 이용하고 있다는 새로운 단서를 얻고 기뻐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가 말포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또 크레이브와 고일이 어째서 요즘 따라 죽상으로 다녔는지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기 시작했지만 릴리아나는 굳은 얼굴로 묵묵하게 남은 숙제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
지난 몇달간 여러번 겪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릴리아나가 홍조가 도는 얼굴로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자, 그녀의 위에서 숨을 고르며 흐트러졌던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스네이프가 그녀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멋대로 침대위에 수놓아진 붉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스네이프가 물었다.
"순간이동 시험이 다음주라지?"
"네, 그래서 오늘 호그스미드에 가서 특별 강의를 듣고 왔어요. 아직 한번밖에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그렇군."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부드러운 손길을 즐기며 두 눈을 감았던 릴리아나가 다시 살며시 눈을 떴다. 나른하면서도 콩콩콩콩 뛰고 있는 심장의 움직임이 기분이 좋았지만 가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얼음을 품고 있는 것 같은 작은 서늘함은 여전했다.
그 서늘함을 지우듯 뜨거운 입술로 지분거리며, 손목부터 시작해 점점 위로 올라가는 가벼운 입맞춤을 받던 릴리아나가 한숨을 쉬듯 숨을 뱉었다. 그러자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복잡한 감정들이 숨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이내 빈자리는 더 큰 감정들로 채워졌다.
"……세브."
하얀 팔목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던 스네이프가 입술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살짝 입 안 여린 살을 깨물었던 릴리아나는 복잡한 감정을 뱉어내듯 조용하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물었다.
"내가 왜 좋아요?"
짧은 말이었지만 입 밖으로 말을 꺼내고 나자 후회가 스쳐 지나갔다. 물어봐서는 안 될 말을 꺼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뜻밖의 질문이었던 듯, 스네이프는 릴리아나의 손목을 가볍게 잡은 채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음……그게……. 세브는 교수고……저는 학생이잖아요? 그리고 엄브릿지같이 벨라처럼 아름다운 여자도 세베루스의 관심을 사려고 들이대던데 왜……"
변명을 하듯 말을 잇던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왜……"
왜 이런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요? 저를 해리 어머니의 대용품으로 보고 있어서 그런 건가요? 어둠의 마왕의 명령 때문에 그런 건가요? 아님 정말로 저를……
릴리아나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한숨을 쉬자 스네이프가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왜그러는 거냐."
릴리아나는 대답 없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스네이프가 목선과 어깨선을 따라 가볍게 입을 맞췄다. 릴리아나가 손을 올려 그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며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세브."
릴리아나가 작게 속삭였다.
"……세브……"
스네이프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듯 쓸어내리며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그의 이름만 부르던 릴리아나가 간신히 하고싶은말 비슷한걸 꺼냈다.
"……같이 있어줘요."
"……그래."
스네이프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릴리아나가 두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그의 살결에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가까이 있지만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스네이프에 릴리아나가 맞잡고 있던 그의 손을 꽉 잡았다.
머릿속에서 론이 했던 말이 울리는 것 같았다. 사랑하지도 않는 상대가 계속해서 매달리면……
릴리아나가 잡았던 스네이프의 손을 살며시 놓으며 감고 있는 두 눈을 더욱 꼭 감았다. 가슴 속 깊은 곳이 저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