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96화 (96/142)

0096 / 0142 ----------------------------------------------

죽음의 성물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죽음의 성물-(5)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

지니가 불안한 얼굴로 릴리아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깜짝 놀란 헤르미온느가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니! 안 자고 있었어?"

"엄마가 들어온 건줄 알고 자는 척 하고 있었어. 그런데 임신이라니? 설마 했었는데 정말이었어? 말 좀 해봐 릴리 언니!"

지니의 언성이 높아졌다. 헤르미온느는 지니에게 진정하라는 듯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당황한 릴리아나는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가 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니, 일단 목소리 좀 낮춰봐."

릴리아나가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자 헤르미온느가 지니를 달랬다. 그녀의 말에 지니가 거의 속삭이듯 빠르게 말했다.

"스네이프야?"

방 안의 공기가 냉랭하게 굳는 것 같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새하얗게 질려버린 머리를 굴리던 릴리아나의 생각 역시 굳어버렸다.

"역시 스네이프구나."

지니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스네이프를 향한 지니의 험한 욕설을 들으며 깊은 한숨을 쉰 릴리아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알게 될 텐데 지금 밝히나 나중에 밝히나 뭐가 다르겠는가 싶어서였다.

"……맞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릴리아나와 지니의 눈치를 보던 헤르미온느가 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머플리아토 주문을 외웠다. 릴리아나가 자신의 침대에 앉자 몸을 일으킨 지니가 릴리아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 얼마나 된 거야?"

"4개월 거의 다돼가."

"스네이프는 알아?"

지니의 물음에 릴리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니가 또다시 스네이프를 향해 험한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언니와 스네이프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건 알고 있었어. 우연치 않게 봤거든……. 그래서 언니가 계속 졸고 있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하고……. 버로우에서는 가끔씩 배가 조금 나와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 볼때마다 설마 아닐 거야 했는데……."

지니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끝을 흐리자 릴리아나가 입을 열었다.

"지니, 부탁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안할게. 안할 거였어."

지니가 안심을 시키듯 말했다.

"또 누가 그 사실을 알고 있어?"

"해리, 론, 헤르미온느랑 세바스찬."

"여자아이래 남자아이래?"

"그건 아직 몰라."

진지한 얼굴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는 듯, 입을 작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던 지니가 말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언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할거야. 난 언니 편이니까."

"……고마워, 지니."

"어서 자자. 내일은 결혼식이잖아."

싱긋 미소를 지은 지니가 평소와 같이 명랑하게 말했다.

다음 날이 되자 빌과 플뢰르의 결혼식 때문에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해리는 플뢰르의 주장 덕분에 프레드가 소환 마법으로 훔친 오터리 성 캐치폴에 사는 빨간 머리 머글 소년의 머리카락이 든 폴리주스 마법약을 큰 잔으로 한 잔 마시고 론의 친척 바니를 연기해야 했다. 수많은 위즐리네 친척들에게 해리의 정체를 숨기려는 계획이었다.

"안녕 릴리아나."

계란 노른자같이 샛노란 망토를 걸치고, 머리에는 커다란 해바라기 한 송이를 꽂아 포인트를 준 루나가 항상 그랬듯이 몽롱하게 인사했다.

"안녕 루나."

"머리색을 바꿔서 처음에 못 알아볼 뻔 했어. 항상 하고다니던 머리핀도 없고……."

루나가 무언가에 물린 것처럼 보이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말했다.

"금발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고마워."

루나가 빨고 있지 않은 다른 손가락으로 릴리아나의 금발을 가리키더니 고개를 옆으로 살짝 숙였다.

"네 머리위에 렉스퍼트가 있어."

몽롱한 루나의 목소리에 흘끗 눈을 위로 올린 릴리아나가 뻣뻣하게 손을 올려 머리 위를 툭툭 털었다.

"그래도 있어. 그건 손으로 사라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루나의 말에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해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은 릴리아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루나! 우리 귀염둥이!"

"아빠가 부르시네. 난 먼저 가볼게."

"잘 가 루나."

다행스럽게도 루나의 아버지가 루나를 불러준 덕분에 대답할 필요가 없어진 릴리아나가 나풀거리는 라일락 색깔의 드레스를 입고 다가오고 있는 헤르미온느에게로 향했다가 그곳에서 턱수염을 기른 빅터 크룸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빅터 크룸은 분위기와 외향이 바뀐 릴리아나를 잠시 알아보지 못했다.

잠시 후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플뢰르는 단순한 하얀색 드레스를 입었지만 눈부신 은빛 광채를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평소에 그녀가 발하는 광채가 모든 사람들의 눈을 흐릿하게 했다면, 오늘은 모든 사람들을 쓰러뜨릴 지경이었다. 한편 지니와 플뢰르의 동생, 가브리엘은 모두 황금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플뢰르가 빌이 서 있는 곳에 도착하자, 빌은 언제 펜리 그레이백을 만난 적이라도 있었냐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마치 노래라도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진실한 두 영혼의 결합을 축하하기 위해서……."

"역시, 내 티아라가 모든 걸 한결 돋보이게 하는구나."

론의 할머니, 뮤리엘이 남들 귀에 충분히 들릴 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지네브라의 드레스는 너무 깊게 파였다고밖에……."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행복한 듯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빌과 플뢰르의 모습은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지만 가슴 한편이 시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윌리엄 아서, 당신은 플뢰르 이자벨을……."

제일 앞줄에서 위즐리 부인과 델라쿠르 부인은 레이스 조각으로 입을 가린 채,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천막 뒤편에서 팽 하고 들려오는 트럼펫 비슷한 소리에, 모두 해그리드가 식탁보만한 손수건을 끄집어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자신도 이런 행복한 꿈을 꾸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매우 까마득한 옛날 일 같이 느껴졌다.

"……이로써 두 사람이 평생토록 결합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머리숱 많은 마법사가 지팡이를 빌과 플뢰르의 머리 위로 높이 휘두르자 수많은 은별이 두 사람 위로 쏟아져 내렸고, 이제 꼭 껴안은 두 사람 주위를 소용돌이쳤다. 프레드와 조지가 박수갈채를 이끌자, 머리 위의 금빛 풍선들이 일제히 터졌다. 그리고 풍선에서 낙원의 새 떼와 작은 황금 종들이 쏟아져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소란한 결혼식장에 노랫소리와 종소리를 더했다.

순조로운 결혼식에 이어 순조로운 피로연이 진행되는 듯 했다. 해리와 둘이 남아 빅터 크룸이 제노필리우스 러브굿의 가슴에 달린 그린델왈드의 상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자 뮤리엘과 엘파이스 도지가 덤블도어에 대해 피가 튀기는 것 같은 환상이 보이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마침내 길고 길었던 그들의 대화가 끝이 나자 해리는 충격을 받은 사람같이 멍하니 앞만 보고 있었다.

"해리, 해리!"

릴리아나가 손가락으로 딱딱거리는 소리를 낼 무렵, 이제 도저히 춤을 더 못 추겠다며 헤르미온느가 돌아왔다. 그녀는 신발 한 짝을 벗더니 발바닥을 문지르면서 숨을 헐떡거렸다.

"론은 버터 맥주를 좀 더 가지러 갔어. 근데 뭔가 좀 이상해. 방금 빅터가 몹시 화를 내면서 루나 아버지 곁을 떠나는 걸 봤어. 두 사람이 꼭 말다툼을 한 것처럼 보이더라고."

헤르미온느가 문득 해리를 빤히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해리, 너 괜찮니?"

그 순간 은빛 나는 커다란 무언가가 천막을 뚫고 댄스 플로어 위로 떨어졌다. 우아하게 반짝거리는 살쾡이가 기절할 듯이 놀란 춤꾼들 사이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한창 춤을 추던 자세 그대로 우스꽝스럽게 얼어붙어 버린 사람들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이윽고 패트로누스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낮고 우렁차고 느린 킹슬리 샤클볼트의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부가 무너졌다. 스크림저는 죽었다. 그들이 오고 있다."

모든 것이 뿌옇게 흐려지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해리와 헤르미온느, 릴리아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야 겨우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은색 살쾡이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살쾡이가 있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패트로누스가 내려앉았던 곳에서부터 무거운 침묵이 싸늘한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때 누군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해리와 헤르미온느, 릴리아나는 공포에 휩싸인 군중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객들은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순간 이동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버로우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 마법이 깨진 것이다.

"론!"

헤르미온느가 다급하게 외쳤다.

"론, 어디 있는 거야?"

헤르미온느와 함께 댄스 플로어를 가로질러 사람들을 비집고 다닐 때, 해리는 군중 속에서 망토를 쓰고 복면을 한 사람들이 뿅 나타나는 것을 목격했다. 곧이어 지팡이를 들고 있는 루핀과 통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프로테고!"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사방에서 되풀이되었다…….

"론! 론!"

해리와 함께 겁에 질린 하객들 틈을 헤쳐 나가면서 헤르미온느는 거의 흐느끼다시피 하면서 론을 불렀다. 그때 한 줄기 빛이 그들의 머리 위를 휙 지나갔다. 릴리아나의 손을 붙잡은 해리는, 헤르미온느와도 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녀의 손 역시 잡았다.

바로 그때 론이 나타났다. 론이 해리가 잡지 않은 헤르미온느의 나머지 한쪽 팔을 잡았고, 릴리아나는 헤르미온느가 그 자리에서 몸을 빙그르르 돌리는 것을 느꼈다. 제일 끝에 있던 릴리아나는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돌자 해리의 손을 놓치고 휘청거렸다.

"릴……!"

제자리에서 몸을 빙그르르 돌린 헤르미온느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이미 그녀와 해리, 론은 순간 이동으로 사라진 후였다.

온갖 저주 마법이 날아다니고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뿅 하는 소리와 함께 복면을 쓴 죽음을 먹는 자들이 나타났다. 혼란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