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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성물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죽음의 성물-(8)
이를 악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릴리아나가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은 후 그대로 주저앉았다. 한 번 터져 나온 눈물은 그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입 밖으로 나오려는 울음소리를 억지로 삼키며 릴리아나는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릴리아나는 자신이 통스에게 감정을 이입했음을 인정했다.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이유모를 분노에 반쯤 충동적으로 루핀의 뺨을 때리고 다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만 가지고 있던 응어리를 풀듯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화풀이하듯 루핀에게 대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은 뜨겁고 불쾌하게 일렁거리는 무언가로 가득했다. 릴리아나가 서럽게 울음을 토해냈다.
그때 아랫배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배가 고픈 것 같으면서도 물방울이 퐁 하고 올라오는 것 같은 감각에 눈 주위가 붉어지도록 펑펑 눈물을 흘리던 릴리아나가 녹색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잠해져 착각 이였던가 싶던 찰나에 또 다시 퐁퐁 하고 물방울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붉어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또다시 느껴지는 감각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하고 뜨거운 것이 치솟아 올랐다. 밤늦은 시간 몰래 서재에서 이십년은 손댄 적 없어 보이는 낡은 육아 책에서 보았던 지식으로 이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살이 빠져 몸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말라 있었지만, 조금씩 티가 나기 시작한 배 위에 릴리아나가 손을 올렸다. 벅차오르는 감정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일 처음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더한 감동이 몰려왔다. 퐁퐁퐁하고 올라오는 물방울 같은 불규칙적인 감각은 울지 말라고 무너지지 말라고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것 같았다. 릴리아나의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에서 전과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
8월이 지나면서, 피델리우스 마법으로 인해 릴리아나의 저택이 어디인지 기억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풀밭에 숨어 굉장히 흥미로운 뭔가를 발견한 듯한 방문자들이 드문드문 꼬이기 시작한 것을 보고 수상해했다. 그 사람들은 매일같이 한두 명씩 별 다른 볼일도 없이 풀밭에 숨어 아무것도 없는 반대편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잠복자들은 같은 사람이 이틀 연속 찾아오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평범한 옷차림을 싫어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 옆을 지나가는 부촌 사람들은 대부분 괴상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에 익숙해져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대체 이 더운 날에 저렇게 긴 망토를 누가 입는 걸까 의아해하면서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는 행인이 이따금 있었지만 말이다.
이 파수꾼들은 그토록 열심히 보초를 서고도 별로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끔 그들 중 한 명이 마침내 흥미로운 뭔가를 발견한 듯이 몹시 흥분해서 냅다 달려가곤 했지만, 결국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9월 1일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풀밭에 잠복하고 있었다. 긴 망토를 입은 여섯 명이 변함없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주의 깊게 응시하면서 말없이 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전히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듯했다.
한편 저택 안에서는 해리가 막 현관 복도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닫은 해리는 오래된 그림들과 현대적인 그림들이 걸려있는 복도를 재빨리 지나 응접실로 향했다. 손에는 훔친 <<예언자 일보>> 한 부를 쥐고 있었다. 응접실 문을 연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소식을 가져왔어. 하지만 별로 마음에 들진 않을 거야."
응접실은 부지런한 성격의 세바스찬이 힘쓴 덕분에 언제나 깨끗함을 유지했지만, 크리처가 청소에 손을 대기 시작한 이후로 응접실은 새로 지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걸쭉한 진흙처럼 보이는 마법약을 간간히 살피며 연분홍색의 토끼 인형을 만들고 있던 릴리아나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인데?"
론이 해리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릴리아나의 옆에서 휘갈겨 쓴 쪽지들과 손으로 그린 지도 뭉치를 긴 식탁 끝에 흩어 놓은 채 정신없이 살펴보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성큼성큼 다가와서 흩어진 양피지 위에 신문을 탁 던져 놓는 해리를 지켜보았다.
매부리코에 검은 머리의 낯익은 남자가 커다란 사진 속에서 그들 모두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예기치 않게 그의 얼굴을 보게 된 릴리아나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쿵쿵 뛰었다. 누가 보아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사진 속의 남자를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사진 밑에 붙어 있는 표제를 찬찬히 읽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호그와트 교장으로 임명
"안 돼!"
론과 헤르미온느가 동시에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동작이 빨랐다. 재빨리 신문을 낚아챈 그녀는 큰 소리로 밑에 실린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서 오랫동안 마법약 교수로 재직했던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오늘 이 유서 깊은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몇몇 교수진의 교체와 더불어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전 머글 연구 과목 교수의 사임에 따라, 알렉토 캐로우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으며, 그녀의 오빠인 아마커스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우리는 가장 훌륭한 마법 세계의 전통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쁩니다.'
살인은 저지르고 사람들의 귀를 잘라 버리는 그런 일들 말이겠지! 스네이프가 교장이라니! 스네이프가 덤블도어 교수님의 사무실에! 멀린의 팬티에 맹세코 도대체 이런 일이!"
헤르미온느는 커다랗게 꽥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넷 사이에서 금기시 된 스네이프의 이름을 그대로 꺼냈다. 식탁 앞에서 벌떡 일어난 헤르미온느가 "금방 돌아올게"하고 소리치고서 부엌을 뛰쳐나가 버렸다.
"멀린의 팬티라고?"
론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말을 따라 했다.
"단단히 화가 났나 봐."
론은 신문을 앞으로 끌어당기더니 스네이프에 관한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다른 교수님들은 여기에 찬성하지 않을 거야. 맥고나걸과 플리트윅, 그리고 스프라우트 교수님 모두 진실을 알고 있잖아. 그분들은 덤블도어 교수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있어. 그러니 그 인간을 교장으로 맞을 리가 없지. 그런데 이 캐로우 남매는 누구지?"
"죽음을 먹는 자들이야."
해리가 대답했다.
"거기에 그들의 사진도 실려 있어. 그 배신자가 덤블도어 교수님을 죽일 때, 그자들도 탑 꼭대기에 있었어. 그러니 모두 한통속인 거지."
해리는 의자 하나를 끌어당기면서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만들고 있던 토끼 인형을 꽉 움켜쥔 릴리아나가 진흙 같은 약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불을 껐다.
"게다가 내 생각엔 다른 교수님들은 학교에 그대로 남는 수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아. 만약 마법부와 볼드모트가 그 인간의 배후에 있다면, 그냥 남아서 가르치느냐 아니면 아즈카반에서 멋지게 몇 년을 보내느냐, 선택은 둘 중 하나뿐이지 뭐. 그것도 아주 운이 좋을 경우에 말이야. 아마 그분들은 학교에 남아서 학생들을 보호하려고 하실 거야."
"폴리주스 다 완성 됐어."
"오, 그래?"
해리가 진흙같이 보이는 액체를 내려다보며 놀라운 듯이 말했다.
"고마워, 릴리."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정도 뿐인걸."
루핀이 찾아왔던 날 이후, 릴리아나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하나는 호크룩스를 찾아 파괴하는 해리의 계획에 도움이 될 만한 종류의 각종 마법약들을 만드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태어날 아기를 위한 물건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취미는 병원에서 아이의 성별을 알고 난 이후에 더 박차가 붙었다.
폴리주스 마법약이 식는 동안, 릴리아나는 손에 들고 있던 반쯤 완성된 연분홍빛 토끼 인형을 다시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예언자 일보>>를 휙 덮었다.
"그래도 이제 적어도 그 배신자가 어디 있는지는 정확히 알게 되었군."
해리가 불쾌한 듯이 <<예언자 일보>>를 쭉 밀며 말했다.
"아직도 죽음을 먹는 자들 여러 병이 이 집을 감시하고 있어. 평소보다 더 많던걸. 그자들은 우리가 학교 트렁크를 들고 나와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러 가길 기다리는 모양이야."
론이 자기 시계를 힐끗 보았다.
"안 그대로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열차는 여섯 시간 전쯤에 떠났어. 거기에 타고 있지 않다니, 좀 이상하지? 안 그래?"
릴리아나는 지난 6년간 보았던 자줏빛 증기 기관차가 눈앞에 선히 보이는 듯 했다. 꾸불거리는 자줏빛 애벌레 같은 기차는 들판과 언덕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지금 쯤 지니와 네빌, 루나는 다 함께 모여 앉아서 아마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와 릴리아나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스네이프의 새로운 통치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무너뜨릴 수 있을지 한창 의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보지 않아도 선히 보이는 것 같은 풍경에 릴리아나가 반쯤 완성된 토끼 인형을 들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헤르미온느가 호그와트 교장실에 걸려 있는 피어니스 나이젤러스 초상화를 작은 구슬 백 안에 넣고 돌아왔다.
"이게 생각났어."
헤르미온느가 숨을 헉헉거렸다. 그녀는 그림이 든 커다란 액자를 작은 구슬 백에서 꺼내 보이며 설명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야."
헤르미온느가 그림을 다시 가방 안에 집어넣고, 가방을 아무렇게나 휙 던졌다. 백 안에서는 평소처럼 우당탕하고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둘려 퍼졌다.
"뭐라고?"
론이 되물었다. 하지만 릴리아나는 금방 알아들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블랙의 그림은 호그와트의 교장실에 걸려 있는 초상화와 그리몰드 광장에 걸려 있는 초상화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지금쯤 둥근 탑 꼭대기의 그 방에는 틀림없이 스네이프가 앉아 있을 것이다.
"그 인간이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를 보내서 그리몰드 광장 안을 염탐할 수도 있잖아."
헤르미온느가 자리에 다시 앉으며 론에게 설명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우리가 그리몰드 광장에서 지낼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텐데 그 인간이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를 보내서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잖아. 하지만 이제 얼마든지 시켜 보라지.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볼 수 있는 거라곤 내 핸드백의 안쪽뿐일 테니까."
"훌륭한 생각이야!"
론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시 식탁에 모인 그들은 세바스찬이 가져다 준 홍차와 간식들을 먹으며 지난 4주간 계속해서 만들어왔던 마법부 안으로 침투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론이 사소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헤르미온느가 화를 내자, 해리는 내일 당장 계획을 실행하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해리의 말에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반대했으나, 해리는 이 일을 준비하며 석 달을 더 보낸다고 해도 결국 마찬가지일 것이라 설득했다. 결국 론과 헤르미온느는 다음날 마법부에 침입하자는 계획에 동의했다.
***
그리고 릴리아나가 생각했던 대로 지니와 루나, 그리고 네빌은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고 오는 내내 스네이프의 통치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무너뜨릴 수 있을지 의논을 했다. 그들은 호그와트가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죽음을 먹는 자가 교수로 앉아 있고, 덤블도어를 죽인 죽음을 먹는 자는 교장으로 앉아 있으며, 마치 감옥같이 엄격하고, 딱딱하며 심지어 잔인하게 바뀌어버린 호그와트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연회장의 테이블들은 빈자리들로 가득했다. 학생들 몇몇이 작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아마커스 캐로우와 알렉토 캐로우가 지팡이를 위협적으로 치켜들며 그들을 협박했기에 곧 연회장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상석에 앉아있는 교수들 역시 장례식장에 온 것 같은 무거운 표정으로 꿋꿋하게 황금빛 접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앉던 의자에 앉은 스네이프는 필치가 혈통별로 줄 세운 갓 입학한 꼬마 마법사와 마녀들이 기숙사를 배정받는 것을 차가운 새까만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