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0 / 0142 ----------------------------------------------
죽음의 성물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죽음의 성물-(9)
기숙사를 배정받기 위해 서 있는 신입생들의 수는 누가 봐도 한 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캐로우 남매는 연회장을 느린 걸음으로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위협하기 위해 지팡이에서 무시무시한 불꽃들을 피워냈고, 학생들은 짧은 기숙사 배정식 내내 무겁고 따끔따끔한 침묵을 유지해야 했다. 마침내 마지막 학생이 후플푸프로 배정받고 나자, 덤블도어가 앉았던 의자에 앉은 스네이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기숙사의 적대적인 시선이 모두 스네이프를 향했다. 몇몇 학생들은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꽉 쥐어 보이거나 모욕적인 손 모양을 스네이프를 향해 보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조용히."
어느 누구도 입을 열고 있지 않았지만, 스네이프의 말에 연회장은 싸늘한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고맙습니다. 호그와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안타까운 사고로 돌아가신 덤블도어 교장선생님의 뒤를 이어 호그와트의 교장을 맡게 된 세베루스 스네이프입니다."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이를 빠득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캐로우 남매를 제외한 교수들 역시 불편한 기색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오로지 슬리데린 테이블에서만 열광적인 박수소리와 환호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이 마음껏 환호하도록 나둔 스네이프가 박수소리와 환호성 소리가 줄어들자 다시 입을 열었다.
"공석이 된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과 퇴임하신 머글 연구 수업을 맡아주실 새로운 교수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맡아주실 아마커스 캐로우 교수님과 머글 연구 수업을 맡아주실 알렉토 캐로우 교수님 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슬리데린에서만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마커스와 알렉토 캐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미소를 씩 지었다. 간단하게 전달사항을 말하고 나자 황금 접시 위에는 언제나와 같이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나타났지만, 슬리데린을 제외한 나머지 기숙사 학생들은 입맛이 없는 듯 깨작거렸다. 제일 상석에 앉아 자신의 앞에 있는 음식들을 바라보던 스네이프가 캐로우 남매에게 말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뒤를 부탁합니다."
캐로우 남매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스네이프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채 연회장을 떠났다.
***
아침 일찍부터 릴리아나가 만들어 준 마법 약들과 투명망토, 위장용 폭음탄, 구역질 사탕, 코피 누가, 늘어나는 귀 같은 물건들을 챙긴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후딱 아침식사를 끝낸 다음, 위층으로 올라갔다.
"행운을 빌어. 꼭 엄브릿지에게서 로켓을 찾아오길 바랄게."
릴리아나가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고마워."
헤르미온느가 긴장으로 딱딱해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해리와 론이 헤르미온느의 손을 잡자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도는 듯하더니,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들이 마법부로 떠나있는 동안, 저택 안에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요가 찾아왔다. 열심히 손을 움직여 토끼 인형을 마무리 짓고, 세바스찬과 느긋하게 티타임까지 가졌지만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마침내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자 불현듯 허공에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나타났다. 하지만 릴리아나는 즉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론이 낮은 신음을 흘리며 낯선 남자와 원래 자기 모습의 중간 상태로 왼쪽 몸 전체가 피에 흠뻑 젖어 있었던 것이다.
"론!"
경악한 듯 외친 릴리아나가 론에게 달려왔다.
"도대체 론이 어떻게 된 거야?"
"순간이동 중에 신체분리가 된 거야."
헤르미온느가 손으로 벌써 분주하게 론의 소매를 만지면서 대답했다. 그 부분이 검붉은 피로 가장 축축하게 물들어 있었다. 릴리아나가 공포에 질려 지켜보고 있는 동안, 헤르미온느는 론의 셔츠를 찢었다. 헤르미온느가 론의 소매를 벗겨 내자 비릿한 피 냄새가 훅 끼쳐왔다. 해리가 황급히 릴리아나의 눈을 가렸지만, 그녀는 이미 마치 칼로 도려낸 것 같이 커다란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것을 본 후였다. 욱 하고 치고 올라오는 토기에 릴리아나가 입을 막으며 헛구역질을 하자 해리가 그녀를 부축하며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뒤에서는 헤르미온느가 "아씨오 디터니!"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릴리아나의 등을 쓸어주며 해리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그의 얼굴 역시 창백했다. 릴리아나가 입을 막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바스찬이 황급히 차가운 물을 들고 릴리아나에게 다가왔다. 차가운 물을 마시고 나자 토기가 좀 가시는 것 같았기에 릴리아나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마워, 세바스찬."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하던 릴리아나는 헤르미온느가 초췌한 얼굴로 방에서 나오자 뒤를 돌아보았다.
"다 끝났어. 이제 들어와도 돼."
방 안은 헤르미온느가 마법을 쓴 것인지 역하고 비린 피 냄새는 없어져 있었다. 론은 기절한 것 같이 잠들어 있었다. 론의 상처는 벌써 며칠쯤 지난 것처럼 보였다. 방금 전까지 뻘건 살이 드러나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살이 자라 있었다.
"우와."
해리가 감탄했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았어."
헤르미온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론을 완전히 낫게 할 수 있는 주문들도 있지만, 도저히 시도해 볼 엄두가 안 났어. 혹시라도 내가 잘못해서 더 심한 부상을 입히기라도 한다면……. 론은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데……."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쩌다 론이 부상을 입었지? 로켓은 찾았어?"
릴리아나가 한결 나아진 안색으로 묻자 헤르미온느가 한숨을 쉬며 마법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폴리주스 마법약을 먹고 마법부 직원으로 위장했던 일, 엄브릿지를 기절시키고 로켓을 찾았던 일, 재판을 받고 있던 머글 태생 마법사들과 마녀들을 구했던 일을 간단하게 얘기한 헤르미온느는 거의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재빨리 순간이동을 했는데……. 악슬리가 나를 꽉 붙잡고 있었는데 힘이 너무 세서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어. 그래서 우선은 그리몰드 광장으로 방향을 바꿨어. 그래도 그 자는 여전히 붙어 있었어. 그래, 내 생각엔 그자가 분명히 그 문을 본 것 같아. 악슬리는 우리가 거기서 멈추는 줄 알고 잠깐 날 붙잡은 손의 힘을 뺐어. 그 틈을 타서 나는 간신히 그자를 떨쳐버리고 해리와 론을 데리고 온 거야!"
"그렇다면 그자는 어디 있어? 잠깐만……설마 그자가 그리몰드 광장에 있다는 뜻은 아니겠지? 그자는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잖아?"
해리의 다급한 물음에 헤르미온느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해리, 아마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반동 주문으로 그자가 강제로 튕겨 나가도록 했어. 하지만 내가 이미 그자를 피델리우스 마법의 보호막 안쪽으로 넣어 주었던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가 바로 비밀 파수꾼이잖아. 그런데 내가 그에게 그 비밀을 알려 준 거지, 안 그래?"
말을 마친 헤르미온느가 흐느꼈다. 세바스찬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부드럽게 달래주기 시작했다.
"미안해, 릴리! 정말 미안해!"
헤르미온느가 세바스찬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그리몰드 광장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한 거야! 그러면 이제 죽음을 먹는 자들은 이제 이곳을 더욱 집중적으로 감시하겠지!"
"네 잘못이 아니야, 헤르미온느. 너희가 무사히 돌아온 게 다행인거지. 그리몰드 광장이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탄로 나긴 했지만, 아직 이곳은 피델리우스 마법이 걸려 있잖아. 안전한 피신처가 있는 게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너희들은 바깥을 전전하면서 도망 다녔어야 할지도 몰라."
릴리아나가 헤르미온느의 손을 꼭 잡아주며 달래자 해리도 거들었다.
"그건 정말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어. 잘못이 있다면 나에게 있어……."
해리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매드아이의 눈을 꺼냈다가, 세바스찬의 매서운 눈길을 받고 다시 그것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멋쩍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브릿지가 이걸 자기 사무실 문에 붙여 두고 있었어. 사람들을 감시하려고 말이야. 난 도저히 이걸 거기에 두고 올 수가 없었어……. 그런데 이것 때문에 그자들이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았던 거야."
헤르미온느가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론이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아직도 잿빛인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좀 어때?"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불쾌해."
론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부상당한 팔의 통증을 느낀 듯 얼굴을 찡그렸다.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전에 상처를 완전히 낫게 하는 마법약을 만들어 놨을 거야……."
릴리아나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아씨오 회복약!"이라고 외치자 그녀의 손에 보랏빛 약물이 잡혔다. 론의 상처 위에 그것을 몇 방울 떨어뜨리자, 상처에서 김이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아물었다.
***
한편 호그와트에서는 다음날부터 시작된 수업에서 머글들의 미개함과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를 배우기 시작하자, 이보다 더 최악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은 그들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자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저학년 학생들 중 마음약한 몇몇은 울음을 터트리며 집으로 가고 싶다고 칭얼거렸다. 하지만 암흑과도 호그와트에 살아남은 아이와 그의 절친한 마법사와 마녀가 마법부에 침투했다라는 빛과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학생들은 조금씩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슬리데린을 제외한 나머지 기숙사 학생들은 아마커스와 알렉토 캐로우를 피해 그 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웅의 영웅적인 이야기는 학생들을 들뜨게 만들기 충분했고, 곧 그들도 호그와트에 머물고 있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타격을 줄 방법에 대해 토론하며 통쾌함을 느꼈다. 몇몇은 죽음을 먹는 자들을 타도하겠다며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선두에 있는 것은 지니와 루나, 그리고 네빌이었다. 방금 전, 머글들의 미개함과 역겨움에 대해 열을 내며 설명한 알렉토 캐로우는 그러므로 우수한 순수혈통의 마법사가 그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하는 머글 수업을 듣고 나온 지니가 연회장으로 가던 길에 만난 루나와 네빌에게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로 속삭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네빌이 동의한다는 듯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그와트가 많이 변할 것이라 생각했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몰랐어."
그들은 아마커스와 알렉토의 눈과 귀를 피해 속삭이며 그들을 타도할 방법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당장은 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실천 가능해 보이는 것도 있었고, 절대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있었고,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것도 있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네빌이 아마커스의 엉덩이에 밧줄을 영구 부착시켜 알렉토 캐로우의 입에 넣어버리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세 사람 모두 키득거렸다.
"조용히 해!"
알렉토 캐로우가 지팡이에서 위협적인 붉은 불꽃을 내뿜으며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에 절친한 친구의 장례식장에서나 지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지니와 네빌은 알렉토 캐로우가 으쓱거리며 반대편 테이블로 가버리자 얼굴을 있는 힘껏 일그러트렸다. 조용히 식사에 열중하는 척 하던 지니가 진지하게 속삭였다.
"멀린의 팬티에 맹세컨대, 진심으로 저 얼굴에 똥폭탄을 던지고 싶어. 프레드와 조지였다면 당장에 그렇게 해줬을 텐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그러니까 정말로 말이야.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
네빌이 토스트를 집는 척 하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조용히 식사에 열중하는 것 같았던 루나가 고개를 들더니 꿈꾸는 것 같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핀도르의 칼을 훔치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