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104화 (10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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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성물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죽음의 성물-(13)

11월이 지나가고, 12월이 지나가는 동안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의 호크룩스와 호크룩스를 파괴할 수 있는 물건을 찾는 계획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아기가 태어날 날은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택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방은 새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 나날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작고 작은 침대와, 갖가지 인형들이 달린 모빌들과, 릴리아나가 틈틈이 만들던 아기들의 물건들로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차가운 방은 햇살처럼 따스한 기운으로 채워져 나가고 있었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다. 론은 호크룩스와 그것을 파괴할 수 있는 물건을 찾는 데 진전이 없는 것에 대해 짜증을 부리긴 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눈보라와 휭휭 거리는 소리를 내며 매섭게 창문을 때리는 바람을 보면 불만을 집어넣고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제때 할 수 있는 것을 다행히 여기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까지 3주정도 남았지만, 세바스찬은 벌써부터 집 안을 크리스마스트리와 반짝거리는 전구들로 장식했다. 임신 초기 때는 입덧 때문에 잘 먹지 못하고, 입덧이 끝나고 난 후에도 입맛이 없어 세바스찬이 먹이는 것만 아기를 위해 억지로 꾸역꾸역 먹었던 릴리아나였지만, 조용하지만 흥겨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전염이 됐는지 조금씩 꾸준히 식욕이 늘어가고 있었다. 세바스찬은 릴리아나의 변화에 기뻐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언제나처럼 벽난로 근처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던 헤르미온느가 <<방랑시인 비들의 이야기>>와 <<주술사의 문자표>>를 함께 펼쳐놓고 무언가를 해독하고 있었다. 해리는 목청을 가다듬으며 그런 헤르미온느를 불렀다.

"헤르미온느, 생각해 봤는데……."

"얘들아, 나 좀 도와줄래?"

헤르미온느는 그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방랑시인 비들의 이야기>>를 내밀었다. 책을 읽고 있던 릴리아나도 책을 덮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 상징을 봐."

그녀가 어느 페이지의 윗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야기의 제목으로 짐작되는 것(해리와 론, 그리고 릴리아나는 룬 문자를 읽을 줄 몰랐으므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위에 삼각형 모양의 눈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었다. 그 눈의 눈동자에는 세로로 선이 그어져 있었다. 해리가 말했다.

"난 고대 룬 문자 수업을 한 번도 들은 적 없어, 헤르미온느."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것은 룬 문자가 아니야. 문자표에도 없어. 난 줄곧 눈을 그린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아닌 것 같아! 이건 잉크로 그려져 있어. 봐, 누군가 거기에 그려 넣은 거야. 이건 원래 책에 인쇄된 게 아니라고. 잘 생각해 봐. 너 예전에 이거 본 적 있지 않니?"

헤르미온느의 말대로 릴리아나 역시 그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어디서 봤는지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동안 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혹시 루나의 아버지가 목에 걸고 있던 것과 똑같은 상징 아니니?"

"맞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어!"

해리의 말 덕분에 릴리아나의 기억 역시 되살아났다. 빅터 크룸이 루나의 아버지가 목에 걸고 있던 상징을 보고 화를 냈었다.

"이거 그린델왈드의 상징이야."

릴리아나의 말에 헤르미온느는 입을 딱 벌린 채,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뭐?"

"맞아, 크룸이 얘기해 줬어."

해리가 말을 받으며 빅터 크룸이 결혼식장에서 해 준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헤르미온느와 론은 경악한 듯 했다.

"그린델왈드의 상징이라고?"

그녀는 해리와 괴상한 상징을 번갈아 가면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린델왈드가 상징 같은 걸 갖고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 내가 그에 대해 읽었던 어느 책에도 그런 언급은 없었는데."

"그러니까, 크룸은 그 상징이 덤스트랭 벽에 새겨져 있었고, 그린델왈드가 거기에 그것을 새긴 거라고 생각했어."

헤르미온느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 참 이상하네. 만약 그게 어둠의 마법의 상징이라면, 동화책에 그게 왜 있지?"

"그러게, 이상하네."

론이 맞장구쳤다. 해리가 거들었다.

"게다가 스크림저도 그걸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는 장관이었고, 분명 어둠의 마법 쪽으로 전문가였을 텐데 말이야."

"그래……. 아마도 그는 나처럼 그게 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책에 있는 다른 이야기들도 제목 위에 작은 그림이 그려져 있거든."

헤르미온느는 말없이 괴상한 상징에 대한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었다. 이윽고 해리가 다시 말을 꺼냈다.

"헤르미온느?"

"어?"

"줄곧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난……난 고드릭 골짜기에 가고 싶어."

헤르미온느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초점이 없이 흐릿했다. 릴리아나는 아직도 책에 나온 그 수수께끼 같은 상징에 대해서 골몰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나도 계속 그런 생각을 해 왔어. 정말로 그래야 할 것 같아."

"너, 내말 제대로 알아들은 거니?"

해리가 물었다.

"물론이야. 고드릭 골짜기에 가고 싶다는 거잖아. 나도 동의해. 사실 꼭 가 봐야 할 것 같아. 내말은, 거기 이외에는 달리 우리가 갈 곳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 위험하긴 하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거기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

"어……뭐가 거기에 있다는 거지?"

해리가 물었다. 그러자 헤르미온느는 그만큼이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칼 말이야, 해리! 덤블도어 교수님은 네가 그곳에 가 보고 싶어 할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셨을 거야. 게다가 고드릭 골짜기는 고드릭 그리핀도르가 태어난 곳이잖아……."

"정말이야? 그리핀도르가 고드릭 골짜기 출신이라고?"

"론, 넌 도대체 <<마법의 역사>>를 펼쳐 보기는 한 거니?"

"흠."

해리가 헤르미온느의 시선을 피했다. 론이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그 책을 처음 샀을 때 아마 펼쳐 보기는 했던 것 같은데……딱 한 번……."

"해리 너는?"

헤르미온느가 해리에게 물었다가 그의 표정을 보고 한숨을 쉬며 땍땍거렸다.

"그 마을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거라서, 나는 네가 그 연관성을 알았나 보다 생각했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근래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예전 그녀의 말투에 가까웠다. 릴리아나는 지금이라도 헤르미온느의 입에서 당장 도서관에 가 보겠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헤르미온느는 구슬 백을 열고 잠시 동안 뒤적거리더니 바틸다 백셧이 쓴 <<마법의 역사>>라는 예전 교과서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책을 다급히 훑어보더니 마침내 원하던 대목을 찾아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너와 너의 부모님 이야기는 언급돼 있지 않아."

책을 덮으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백셧은 19세기 말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알겠니? 고드릭 골짜기, 고드릭 그리핀도르, 그리핀도르의 칼. 덤블도어 교수님은 네가 그 연관성을 발견할 거라 기대하지 않으셨을까?"

"오, 그래……."

해리의 대답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같이 들렸다. 결국 헤르미온느는 덤블도어가 그리핀도르의 칼을 바틸다 백셧에게 맡기지 않았을까라는 결론을 내렸다. 해리는 그다지 수긍하지 않는 것 같이 보였지만, 고드릭 골짜기에 가기 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척 했다. 론도 그것을 알았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해리가 원했던 대로 바로 고드릭 골짜기로 떠나지는 않았다. 헤르미온느가 볼드모트는 분명 해리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현장으로 돌아오리라고 예상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그녀는 반드시 최대한 철저하게 변장을 한 후에 출발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바스찬이 장을 보러 갈 때, 투명망토를 쓰고 뒤따라가 크리스마스 장을 보고 있는 무고한 머글들의 머리카락을 몰래 뽑았고, 투명 망토를 함께 쓰고 순간 이동하는 법을 연습했다. 마침내 헤르미온느가 여행을 떠나자고 동의한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야!"

릴리아나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론 역시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론, 우리는 지금까지 전혀 진전이 없었어. 그런데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까지 따지게?"

헤르미온느가 똑 부러지는 투로 답했다. 해리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기에 결국 그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고드릭 골짜기로 떠나게 되었다.

"최대한 오늘 안으로 돌아오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혹시 몰라서 텐트도 챙겼어. 돌아오지 않는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폴리주스를 마셔 왜소하고 생쥐를 닮은 머글 여자로 변신한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머글 남자로 변신한 해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가 한참 뒤 내려왔다.

"이거 받아."

해리가 거울을 건넸다. 릴리아나가 그 거울의 정체를 알아보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시리우스의 유품은 아니니까 그렇게 보지 마."

해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슬픔이 간간이 드러났다.

"저번에 네 생일 선물을 사러 갔을 때, 프레드와 조지에게 부탁해서 받아 놓은 거야. 그게 있다면 우리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더라도 연락을 계속 취할 수 있을 거야."

해리가 자신의 거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갔다 올게."

숱 많은 갈색머리의 풍채 좋은 머글 남성으로 변한 론이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심해서 무사히 다녀와."

릴리아나가 행운을 빌어주었다. 해리는 자신과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의 머리 위로 투명 망토를 덮었다. 이윽고 그들은 사라졌다.

세 사람이 사라지고 나자, 꽉 차있던 것 같던 저택이 텅텅 빈 것 같았다. 응접실로 돌아간 릴리아나는 양면 거울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소파에 앉았다. 혼자 있으니 상념들이 마구 몰려오는 것 같았다. 고개를 저은 릴리아나가 책을 펼쳐들었다.

"아가씨?"

세바스찬이 은쟁반 위에 티 세트와 스콘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읽으려던 책을 덮은 릴리아나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세바스찬은 그녀의 앞자리에 앉으며 두개의 찻잔에 검붉은 빛의 홍차를 따랐다.

홍차의 향이 응접실 안을 감돌았다. 릴리아나의 홍차가 반 정도 사라지는 동안, 들고 있는 찻잔에 입도 대지 않은 세바스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아가씨."

"응?"

"방금 짐을 쌌어요.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이제 몇 주 남지 않았으니 언제든지 병원에 갈 수 있게요."

"내가 하려고 했었는데……고마워, 세바스찬."

릴리아나가 식은 찻잔을 쥔 채로 대답했다. 세바스찬은 아까보다 더욱 머뭇거리는 태도로 있다가 식어버린 홍차를 꿀꺽꿀꺽 마신 다음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가씨."

"왜?"

잠시 찻잔의 태두리만 바라보던 세바스찬이 말을 이었다.

"어렸을 적 기억나세요? 아가씨는 제 다리까지밖에 안 왔었고……."

"세바스찬은 지금보다 훨씬 젊었지."

"지금도 젊습니다."

릴리아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세바스찬이 투덜거렸다.

"그런 아가씨가 이제 이렇게나 커서……."

세바스찬은 기쁨과 슬픔과 원망과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섞인 얼굴로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무거워지는 분위기에 릴리아나가 헛기침을 하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가 이렇게나 컸지. 그런데 갑자기 왜 그 얘기는 꺼낸 거야?"

"아, 그러니까……."

세바스찬은 조금 더 듣기 좋은 쪽의 말을 찾는지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주인님과 마님과 제 아버지까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죄송합니다."

"아니야. 어릴 때라서 기억도 안 나."

릴리아나가 덤덤하게 말했으나 그녀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사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폭발하던 건물, 사람들의 비명소리, 세바스찬의 절박한 목소리까지.

릴리아나가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감추려 남아있는 홍차를 모두 마셨다.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빠르게 뛰었다. 루핀이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로 있었을 때 보았던 보가트. 지금보다도 어렸던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힘든 기억에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도망쳤었다. 그리고…….

릴리아나는 잊으려 노력했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따뜻한 품과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커다랗고 다정한 손길의 생생함을 지우기 위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세바스찬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할머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 후에 우리는 프랑스에 있는 할머님 댁에 갔었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한적하고……사람들도 순박하고……경치도 좋고……잔잔한 시골마을에 영국보다 날씨도 좋고……"

세바스찬이 다시 찻잔의 테두리를 바라보았다.

"……위험도 없고……."

"……세바스찬."

무언가를 짐작한 릴리아나가 조용한 목소리로 세바스찬의 이름을 불렀다.

"아가씨."

세바스찬이 찻잔의 테두리에서 눈을 떼고 릴리아나의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을 바라보았다.

"프랑스로 가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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