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105화 (10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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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성물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죽음의 성물-(14)

세바스찬의 간절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릴리아나의 입은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프랑스에 있는 할머니 댁은 릴리아나도 매우 좋아하는 곳이었다.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새파란 하늘과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는 새하얀 구름들, 바람이 불면 산들산들 움직이는 언덕의 풀과 이름 모를 하얀 들꽃들, 저택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물건들과 비밀 통로들, 햇빛에 잘 마른 이불 냄새,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화원…….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던 릴리아나로써는 지난 몇 년간 가지 못했기에 더욱더 그리운 곳이었다. 하지만 세바스찬의 물음에 대한 허락은 주저하게 되었다. 그리고 릴리아나 스스로도 너무도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 때문에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해리 군과 론 군, 헤르미온느 양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아니면……."

세바스찬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졌다.

"그 남자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릴리아나가 하얗게 뼈마디가 드러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온갖 감정들로 소용돌이치는 폭풍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릴리아나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때문에 그래. 내 친구들이 위험한데 나 혼자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지난 몇 개월 동안 쳐다보지 않고 죽여 왔던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들려고 하자 릴리아나는 그것의 싹을 잘근잘근 밟아버렸다.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쿵쿵 뛰었다. 세바스찬이 말했다.

"지금 당장 떠나자는 것이 아닙니다. 1월 달이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텐데 지금 옮기는 건 위험하겠죠. 제 말은 좀 안정이 되고 나서 프랑스로 가자는 겁니다. 한 3월 달쯤에요. 아가씨의 친구 분들께는 피리우스?"

"피델리우스."

"네, 그거요. 그 마법은 비밀 파수꾼이 정보를 알려준 사람만 피델리우스 마법을 건 공간에 출입할 수 있잖아요. 아가씨의 친구 분들은 이미 그 마법을 알고 있으니 우리가 프랑스로 떠난 이후에도 계속 저희 저택에서 머물게 하실 수 있잖아요."

릴리아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세바스찬은 답답한 듯 그녀에게 말했다.

"아가씨, 지금 아가씨가 어떤 생각 때문에 영국을 떠나기 꺼려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아가씨밖에 없습니다. 지난 몇 달간 혹시 나쁜 일을 당하시지는 않을까 저택 밖에 있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언제라도 당장 이곳에 쳐들어오지는 않을까 아가씨가 목숨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룹니다. 제발 제 생각도 해주세요, 아가씨."

세바스찬은 마른세수를 하더니 쐐기를 박듯 말했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태어날 아기도 생각하셔야죠."

폭풍같이 휘몰아치던 세바스찬의 말이 끝나자 응접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만이 꾸준히 응접실을 매우고 있었다. 입 안 여린 살을 깨문 릴리아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알겠어. 3월이 되면 프랑스로 가자는 거지?"

세바스찬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세바스찬이 릴리아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세바스찬은 빈 티세트를 정리해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응접실을 나갔지만 릴리아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감정에 깊고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망설였을까? 반년 동안 쳐다보지도, 알아보려고도,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과 갑자기 맞이하자 너무나 혼란스러워 오히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 것 같기도 했다. 증오, 분노, 실망, 허탈함, 그리고…….

"……잡종, 대용품, 아무것도 아닌 여자."

릴리아나가 일부러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그녀가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묻으면 될 것이었다. 지난 일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다시 묻으면 될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

크리스마스이브 날, 양면 거울을 통해 얼마간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전했던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새해가 시작되기 며칠 전에야 돌아왔다. 일주일가량 퀸 저택에서 생활하지 못했을 뿐인데 그들의 몰골은 눈 뜨고 못 봐줄 것 같았다.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나온 론이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세바스찬이 만든 샌드위치를 와구와구 씹어 먹었다.

"역시 집이 최고야. 며칠간 야영을 했는데 밖은 춥고 등은 베기고 거디루트 차는 코딱지맛 젤리를 녹인 것 같은 맛이 나고 헤르미온느의 음식은 최악이고……."

"해리와 너는 물고기를 잡았고 난 그걸 가지고 최선을 다한 거야! 언제나 결국에 음식을 차리는 사람은 바로 나란 사실을 진작부터 난 알고 있었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겠지!"

"아니야. 그건 네가 마법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론, 네가 직접 요리를 해보던가! 어디 네가 직접 재료를 구해서 뭔가 먹을 만한 음식이 되도록 마술을 부려 보라고. 그럼 난 인상을 쓰고 가만히 앉아서 징징거리기나 할 테니까. 너도 알게 될 거야. 그게 얼마나……."

"그만 해!"

해리가 벌떡 일어나면서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잖아. 그만 하라고."

헤르미온느와 론은 콧방귀를 뀌었으나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곧 잠잠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세 사람이 음식을 입 안에 쑤셔 넣는 것을 바라보며 릴리아나가 물었다. 론이 입 안 가득 샌드위치를 우겨넣으며 네가 설명하라는 듯이 해리에게 눈짓을 했다. 해리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고드릭 골짜기로 향했어. 그곳에서 바틸다와 만났는데……. 그녀에게 공격을 받았어. 정확히는 뱀에게. 그녀가 뱀이었어. 아니면 뱀이 그녀였던가. 바틸다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던 게 분명해. 그 뱀은……그녀의 몸속에 있었어. 그 사람이 그 뱀을 고드릭 골짜기에 두었던 거야. 기다리도록 한 거지."

"뭐? 뱀이 바틸다의 몸속에 있었다고?"

릴리아나가 역겹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루핀은 우리가 결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마법이 존재할 거라고 했잖아. 다행히 헤르미온느가 나를 데리고 탈출해 주었어. 그 바람에 내 지팡이가 부러지긴 했지만……."

해리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샌드위치 하나를 해치운 헤르미온느가 그의 말을 받았다.

"해리가 뱀에게 공격을 당했던 것 때문에 우리는 하룻밤 야영을 해야 했어. 해리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신음하고……. 뭐 그랬거든.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게다가 호크룩스가 해리의 가슴에 딱 달라붙어 버리는 바람에 잘라내기 주문을 써야 했고."

"그 사람은 우리가 고드릭 골짜기에 왔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그 뱀에게 나를 잡고 있으라고 했던 거야. 내가 정신을 차린 후에도 혹시 모를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위해서 곧바로 퀸 저택으로 돌아오지 않고 우리는 딘의 숲(영국 서부에 있는 왕실 소유 국유림)으로 갔어."

샌드위치를 두 개째 해치운 해리가 설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리핀도르의 칼을 발견했어."

"뭐?"

예상치도 못했던 뜻밖의 소식에 릴리아나가 입을 딱 벌렸다.

"어디 있는데?"

"헤르미온느의 백 속에."

"어떻게?"

"그러니까 그게……."

해리가 코를 긁적였다.

"불사조를 따라갔어."

"퍽스? 퍽스는 여기에 계속 있었는데……."

릴리아나가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퍽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니, 퍽스가 아니야. 달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은백색의 불사조 패트로누스였어. 불사조가 갑자기 뒤를 돌아 날아갔기 때문에 나는 그걸 따라갔어."

"경솔했었어, 해리."

헤르미온느가 못마땅한 듯 중얼거렸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말을 무시했다.

"은빛의 불사조 패트로누스는 점점 더 깊은 숲 속으로 나를 인도했어.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지. 그곳에 있는 얼어붙은 작은 연못에 그리핀도르의 칼이 묻혀 있었어! 하마터면 호크룩스 때문에 익사당할……아니야, 이건 잊어줘."

릴리아나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자 해리가 말을 얼버무렸다. 론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렇게 그리핀도르의 칼을 찾아서 로켓을 파괴했어! 이제 우리에게 그리핀도르의 칼이 있으니 호크룩스를 찾아도 얼마든지 파괴할 수 있다고!"

론이 얼굴을 홍조로 물들이며 외쳤지만 릴리아나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들었던 의심스러운 부분을 물었다.

"은색 불사조 패트로누스가 너희를 찾아왔다고? 그럼 그 불사조는 누가 보낸 건데?"

"처음엔 너를 생각했었어. 네 패트로누스는 불사조잖아. 하지만 '도대체 릴리가 그리핀도르의 칼이 있는 곳을 어텋게 알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 뭐야.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해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덤블도어 교수님인 것 같아."

"뭐?"

릴리아나는 세 번째로 놀라며 되물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은……그러니까……."

"돌아가셨지. 나도 알아. 하지만 릴리, 생각해 봐. D. A. 에서 패트로누스 마법을 배울 때 너 외에 불사조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는 사람이 있었니?"

"D. A. 회원이 그리핀도르의 칼이 그곳에 있는 걸 알 것 같지는 않은데."

헤르미온느가 냉소적으로 말하자 해리가 반색했다.

"그래, 맞아 헤르미온느. 그렇다면 불사조 기사단 단원들일까? 내 기억에는 없어.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은 퍽스를 갖고 계셨고, '불사조'라는 건 덤블도어 교수님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그러니까……네 말은……."

릴리아나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죽음을 위장했지만, 사실 살아 계시며 네가 그리핀도르의 칼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했다는 거야? 아니면 그분의 영혼이 위로 가지 못하고 호그와트의 유령들처럼 이곳에 남아 너를 그곳으로 인도했다는 거야?"

넷 사이에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정적 끝에 마침내 해리가 입을 열었다.

"나도 알아, 교수님은 돌아가셨지. 그 일이 벌어지는 걸 보았고, 그분의 시신이 무덤에 묻히는 것도 보았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덤블도어 교수님이 우리를 지켜보시면서 적당한 때에 그리핀도르의 칼을 찾을 수 있게 해주셨다는 느낌이 말이야."

해리가 덥수룩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해리를 제외한 세 사람은 도무지 어떤 말을 그에게 건네야 할 지 몰라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해리는 무겁게 변해버린 분위기를 바꾸려고 한 것인지 약간의 침묵 후 입을 열었다.

"그거 말고도 다른 수확이 있어."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그 다음 말이 무엇인지 예상한 듯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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