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107화 (10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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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성물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죽음의 성물-(16)

"아, 아가씨……괜찮으세요? 지금 이게……아니 괜찮을 리가 없으시지……그러니까……나는 지금……뭘 어떻게……."

세바스찬이 당황했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허둥거렸다.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창백해졌던 릴리아나는 오히려 허둥대는 그의 모습 때문에 자신이 침착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난 괜찮아, 세바스찬. 해리가 볼 수 있게 연락을 남기고 병원으로 가자."

"괜찮으세요? 많이 아파요?"

"괜찮아. 지금은 아프지 않아. 조금 놀랐을 뿐이야."

세바스찬은 릴리아나가 마치 조금만 손대도 깨질 것 같은 유리인것 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세바스찬이 릴리아나의 지시를 따라 미리 싸 두었던 짐을 가지러 간 사이, 새하얀 메모지에다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한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차를 가지러 밖으로 나가려는 세바스찬을 제지한 후, 퍽스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런던으로 향했다.

해리가 그 쪽지를 본 것은 해가 완전히 져버린 몇 시간 후였다. 론의 성화를 못이긴 해리가 결국 마법사 마을인 어퍼 플래즐리에 갔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순간이동으로 퀸 저택의 응접실로 돌아온 해리가 불만 가득한 얼굴이자 론이 말했다.

"그래도 아주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어. 적어도 우린 호크룩스가 그곳에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잖아."

"그래. 아주 큰 소득이네."

해리가 투덜거렸다. 구슬 백을 소파 위에 던지듯이 내려놓은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릴리는 어디 있지?"

"자기 방에 있는 거 아니야? 아님 아기 방에 있거나."

해리가 여전히 투덜거리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집이 평소와 다르게 좀 썰렁하잖아. 세바스찬 씨도 없고."

"이 집은 엄청 넓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 이름부터가 무려 저택이잖아."

헤르미온느의 말에 소파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론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설마 죽음을 먹는 자들이 릴리와 세바스찬 씨를……."

헤르미온느가 겁먹은 얼굴로 말하자 해리가 그녀를 안심시키듯 입을 열었다.

"그러기엔 결투를 한 흔적도 없잖아. 릴리가 바보같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가 붙잡혔을 리도 없고 말이야. 위층에 있겠지."

해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다 전화기 옆에 있는 새하얀 메모를 발견했다. 그것을 펼쳐본 해리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뭔데 그래?"

소파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론이 물었다.

"병원으로 갔대."

론과 헤르미온느 모두 되묻지 않았다. 그들 모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소파에 누워있듯 앉아있던 론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헤르미온느는 두 눈을 부릅뜨며 해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병원은 어디 있어?"

헤르미온느의 물음에 해리가 메모지에 적힌 병원 이름과 주소를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여기가 어디 있는지 알아?"

마법사 가정 출신인 론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헤르미온느는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듯 했다.

"나 거기 알아. 런던에 있는 곳인데 부모님과 함께 쇼핑하다가 몇 번씩 지나쳐 가면서 봤었거든."

"그럼 지금 당장 가자!"

론이 외쳤다.

"하지만 우선 폴리주스부터 마셔야 해. 그곳은 런던이라고."

해리가 비교적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 해리의 말이 맞아."

헤르미온느가 소파 위로 던져놓았던 구슬 백을 다시 들며 그 안에서 폴리주스와 크리스마스 장을 볼 때 뽑아두었던 머글들의 머리카락을 꺼냈다. 한 사람씩 커다란 병으로 폴리주스를 마시자, 그들은 순식간에 중년의 부부와 그들의 젊은 아들로 변했다.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의 여성으로 변한 헤르미온느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성으로 변한 해리와 거의 벗겨진 회색 머리를 갖고 있는 중년 남성으로 변한 론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그들이 그녀의 팔을 잡자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은 헤르미온느는 병원 근처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으로 순간 이동했다.

헤르미온느는 잠시 헷갈려 하는 것 같았으나, 이내 해리와 론을 이끌며 병원으로 들어갔다. 접수대에 앉아 있는 간호사에게 릴리아나가 있는 병실 호수를 알아낸 후 거의 뛰다시피 그곳으로 올라간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생각보다 멀쩡하게 있는 릴리아나의 모습이 얼떨떨한 듯 했다.

"끝났어?"

"아기는 어디 있어?"

해리와 론이 침대로 다가가며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릴리아나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단번에 그들이 폴리주스를 마신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아직 안 끝났어."

"안 아파?"

헤르미온느가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엄청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

"사실 문을 열기 전까지 비명을 지르면서 세바스찬 씨 머리카락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었어."

론의 말에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지만 몇 분 후에 창백한 얼굴로 고통스러워하며 배를 부여잡는 릴리아나의 모습에 세 사람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침대 난간을 부여잡고 고통을 참아내는 그녀의 등을 세바스찬이 초조한 기세로 쓸어주었다. 식은땀을 흘리긴 했지만 릴리아나의 안색이 다시 좋아지자 헤르미온느가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고통을 줄여주는 약 같은 건 없어?"

"있긴 한데 아직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진행되지는 않았대.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맞지 않는 쪽을 바라더라고.―영국은 에피듀럴(무통주사)을 발명한 국가이지만 산모에게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너무 아프면 다른 약을 주겠다고는 하더라고."

여전히 조금 새하얗게 질린 기운이 남아있는 얼굴을 한 릴리아나가 앞으로 넘어온 금발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아기는 언제쯤 나온대?"

론 역시 충격을 받은 얼굴로 물었다. 그는 위로 5명의 형제와 여동생까지 있기에 그 충격은 더한 것 같았다.

"상태를 봐서는 내일쯤이라고 하더군요."

릴리아나의 등을 쓸어주며 세바스찬이 대신 대답했다. 세바스찬이 건네주는 물을 거절한 릴리아나가 심호흡을 하듯 긴 한숨을 내뱉었다.

"내일까지?"

론의 얼굴은 더욱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엄마에게 잘해야겠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릴리아나는 멀쩡한 안색으로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고통스러워하는 간격이 조금씩 짧아졌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흘리며 점점 더 정도가 심해지자 간호사(미드와이프)가 그녀에게 진통제 몇 알을 건네주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결국 밤 10시가 되고,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와 세바스찬이 떠나야 하는 시간이 될 쯤에는-영국의 병원은 보호자라도 면회시간이 지나면 나가야 한다―호흡기로 가스를 들이마셔야 했다.

그들은 떠나며 면회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어쩐지 서러워졌다. 반년 전에 홀로 병동에 남아 느꼈던 감정이 배가 되어 찾아온 것 같았다.

창끝에 걸려 있던 달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위로 떠올랐지만 아픔과 눈물과 서러움 때문에 릴리아나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가스를 마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 때문에 그녀는 신음을 흘리며 몇 번 기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정신을 잃었다가 차리기를 반복하자 현실인지 꿈인지 깨어있는 것인지 잠들어 있는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마시고 있는 가스로 인해 정신은 몽롱했다. 누군가의 커다랗고 약간은 서늘한 손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얼굴을 닦아주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 손길에 살며시 눈을 뜬 릴리아나의 뿌옇고 몽롱하게 흐려진 어두운 시야에 한 인영이 잡혔다. 어두컴컴한 어둠 사이에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은 낯익었다. 뭐가 뭔지 구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그 얼굴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욱 하고 치고 올라오는 서러움에 릴리아나의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식은땀을 연신 닦아주던 손이 멈칫하더니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릴리아나가 입을 열고 무어라 말을 했으나 그녀 자신에게는 들리지도, 또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의식이 다시 몽롱해지며 저편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다시 잡으며 또렷하게 만들려는 시야에 잡힌 것은 그녀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는 구불구불한 갈색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묶은 젊은 간호사였다.

"괜찮아요? 많이 아파요?"

선해 보이는 인상의 간호사가 눈물을 흘리며 창백해진 얼굴의 릴리아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잠시 진행 상황을 살피던 간호사가 말했다.

"아직도 멀었어요. 내일 아침은 돼야 할 것 같아요. 모르핀 주사라도 놔 줄까요?"

릴리아나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간호사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릴리아나의 흐트러진 금발머리를 정리해 주며 다시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괜찮아요? 많이 아파요? 모르핀 주사 놔 드려요?"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잠시 병실을 나가더니 주사기를 가지고 왔다. 몽롱함 속에서도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여전했기에 그 고통에 가려져 주사를 맞는 감각도 없었지만, 고통은 한결 가시는 듯 했다.

"많이 아팠어요?"

간호사가 '나이도 어린데…….'라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로 릴리아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묻자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사를 놨으니까 고통은 많이 줄어들었을 거예요. 많이 아프면 또 호출해 주세요."

간호사는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병동을 나섰다. 다시 병동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고통은 한결 가셨지만 눈물은 계속해서 흘렀다.

꿈속에서 보게 된 스네이프의 모습 때문에 괴로웠다. 애써 가슴 한편에 눌러 두었던 감정이 스멀스멀 다시 올라와 사실은 아직도 그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

사람들은 많이 지나다니지만 놀랍도록 조용한 병동에서는 그 어떠한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세바스찬은 초조한 듯 앉아있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그 앞을 서성거렸고, 어제에 이어 건장한 체격의 해리는 그 덩치에 맞지 않게 자리에 앉아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중년 부부로 변한 론과 헤르미온느는 누가 더 하얗게 질렸는지 모를 얼굴로 정면만을 바라보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들리면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간은 정오를 넘겼지만 새벽부터 깨어 있었던 그들 중 그 누구도 졸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갖 괴롭고 불안한 상상으로 가득 채워졌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난 그들은 병동 안에서 나오는 간호사에게 달려갔다.

"릴리는 괜찮나요?"

"아이는 어때요?"

"건강해요?"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모습이 익숙한 듯, 간호사는 그들의 질문에 하나씩 답해주었다.

"나이가 어린데다 초산이라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산모와 아이는 모두 건강해요. 안으로 들어가도 됩니다."

간호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들은 우르르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금발머리가 물기어린 얼굴에 붙어 있긴 했지만 릴리아나의 따스한 미소를 읽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네 사람은 모두 굳은 채로 조심스럽게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품 안에는 겉싸개에 싸인 새로운 생명이 안겨 있었다. 가까이서 본 아기는 아직 붉은 기운과 붓기가 빠지지도 않았지만 릴리아나는 정신을 놓을 것 같이 졸린 상황에서도 아이에게서 연신 눈을 떼지 못했다. 아기는 너무 작아서 조금이라도 세게 잡았다가는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바스찬은 황급히 병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릴리아나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세바스찬은 나간 지 오래였다. 헤르미온느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더니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눈을 꼭 감고 있는 붉은 기운의 아기를 바라보았다.

"수고했어, 릴리. 예쁘게 생겼다. 앞으로 남자 여럿 울릴 미녀로 자라나겠어."

헤르미온느의 말에 릴리아나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해리와 론 역시 릴리아나의 근처로 다가왔다.

"벌써 머리카락이 있네?"

론이 신기하다는 듯이 아이의 검은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해리가 헤르미온느의 옆에 자리를 잡으며 물었다.

"아기 이름은 생각해 봤어?"

해리의 질문에 릴리아나의 미소가 잠시 굳었다. 사실 어젯밤 꿈을 꾸고 난 뒤로 계속해서 떠오르고, 아이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정해져버린 이름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이름을 내뱉기에 망설여졌다. 입안 여린 살을 깨물었던 릴리아나가 조금 망설이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세비나(Sevina)는 어떨까 싶어. 애칭으로 이브(Eve)라고 부르고."

그 이름에서 릴리아나와 똑같이 느낀 것이 있었는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의 미소가 굳었다. 론이 입을 열려고 하자 헤르미온느가 황급히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정말 예쁜 이름인 것 같아, 릴리. 애칭이 이브라고?"

뒤에서 론과 해리가 금방이라도 어떤 말을 쏟아내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헤르미온느의 날카로운 시선에 그들은 침묵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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