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108화 (108/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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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성물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죽음의 성물-(17)

"안녕, 이브."

헤르미온느가 작은 아기에게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뻗어 부드럽고 말캉한 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세비나는 헤르미온느의 손가락의 감촉을 느낀 것인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웃는다, 웃는다."

아기의 배냇짓에 헤르미온느가 환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해리와 론 역시 신기한 듯 아기의 이름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던 얼굴을 풀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때마침 병실을 뛰쳐나갔던 세바스찬이 조금은 붉어진 눈을 한 채로 다시 돌아왔다.

"어서와, 세바스찬."

릴리아나가 그의 눈가를 못 본 척 해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갔다. 세바스찬은 조금 머뭇거리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한참동안 아기를 내려다보던 세바스찬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말 작네요."

그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느껴졌다. 세바스찬은 아기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가씨가 아기였을 적과 똑같이 생겼어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세바스찬이 물었다.

"생각해 두신 이름은 있나요?"

"……세비나. 세비나 릴리아나 퀸."

릴리아나가 빠르게 대답하면 세바스찬이 들을 수 없다는 듯 속삭이는 것 같은 빠른 말투로 재빨리 아이의 이름을 말했다. 하지만 세바스찬의 얼굴은 누가 봐도 굳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둘 사이를 감도는 싸늘하고 어색한 공기 사이로 헤르미온느의 구슬 백이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병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헤르미온느에게 쏠리자, 그녀는 작게 미안하다고 속삭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양새로 구슬 백을 다시 주워들었다.

"애칭은 이브야."

릴리아나가 황급히 덧붙였다. 잠시 할 말을 찾는 듯 세비나와 릴리아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세바스찬이 조금은 딱딱해 보이지만 여느 때처럼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브, 이브라. 예쁘네요. 백설 공주가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이브처럼 설렘으로 가득한 것 같기도 하고……. 좋네요."

세바스찬이 릴리아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이브가 애칭이 아닌 이름이라는 듯이 말했다. 릴리아나 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손가락으로 아직 붉은 기가 남아있는 세비나의 얼굴선을 따라 쓸어내리며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손끝에 아기 피부 특유의 부드러운 감촉이 가슴을 설렘으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아기를 낳는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지만 품 안에 안긴 아기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또래보다 훨씬 작고 가볍게 태어난 아기의 모습은 자신이 아이를 품고 있는 동안에 신경을 많이 못써줘서 그런 것 같았기에 릴리아나는 가슴 한편이 무거웠다. 양수에 부어 있었지만 그래도 작은 세비나의 얼굴을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병실 안에 흐르는 기묘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저기……세바스찬, 헤르미온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요?"

"뭔데?"

두 사람 모두 곤히 자고 있는 아기가 깨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브의 대부와 대모가 되어줄 수 있을까?"

"제가요?

세바스찬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고 헤르미온느는 의외라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바스찬은 놀란 듯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이내 활짝 미소를 지었다. 릴리아나는 최근 들어 가장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내심 놀라고 말았다.

"물론입니다. 영광이에요."

세바스찬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작지만 활기차게 말했다.

"물론이지."

헤르미온느 역시 기쁜 기색이 가득한 벅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던 세비나도 자신의 대부와 대모가 생겼다는 것을 안 것인지 감고 있던 두 눈을 살며시 떴다.

"눈을 떴어!"

론이 놀란 듯 작게 소리쳤다.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과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이 마주쳤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릴리아나와 눈이 마주친 세비나가 생긋 웃어보였다. 신생아이 시력이 또렷할 리가 없겠지만 릴리아나는 자신을 보고 눈을 맞추고 웃어주는 아기의 모습에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애정이 한층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아기는 곧 눈을 다시 감아버렸지만 가슴 속 한가운데에서 따뜻한 것이 쿵쿵 뛰는 것 같은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

차갑던 겨울이 지나가고 새싹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하는 3월이 되었다. 세비나는 초보엄마의 입장에서는 고맙게도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었다. 임신 초기에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할 정도로 입덧이 심했던 것을 빼면 임신기간 내내 무언가 먹고 싶은 것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던 것이 아기의 성격이었던 듯, 순하고 방긋방긋 잘 웃었다.

여느 때 저녁과 다를 것 없이,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호크룩스가 있을 법한 장소를 탐색했고, 론은 라디오를 지팡이로 톡톡 두드리며 온갖 단어를 연달아 중얼중얼 외웠다. 덤블도어가 남겨준 검은 노트를 읽으며 휴식을 취하던 릴리아나는 위층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황급히 세비나의 방으로 올라갔다.

"이브, 세비나. 깼니?"

릴리아나가 칭얼거리고 있는 세비나를 품에 안자, 아기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칭얼거리던 것을 멈추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런 아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릴리아나가 세비나의 기저귀를 확인한 후 등을 토닥이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배고프지? 엄마가 금방 맘마 만들어 줄게."

세비나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며 주방으로 들어가 능숙하게 분유를 타서 온도까지 확인한 그녀는 다시 응접실로 돌아왔다.

"이브 왔어?"

헤르미온느의 집중하라는 잔소리를 지루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해리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해리 삼촌이 이브에게 인사하네?"

소파에 앉으며 세비나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 릴리아나가 자리를 잡고 젖병을 물리자 세비나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힘차게 빨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가 릴리아나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두 달 정도밖에 안됐는데 처음보다 엄청 큰 것 같아."

양수에 팅팅 불어 붉은 기가 남아 있던 피부는 첫눈처럼 새하얗게 변했고, 이목구비는 점점 또렷해져 살아있는 인형처럼 탈바꿈한 것이 신기한 듯 헤르미온느는 세비나의 코를 가볍게 톡톡 쳤다. 아기가 미간을 찡긋거리자 헤르미온느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관심이 세비나에게 쏠리자 이때다 싶었는지 소파에 축 늘어졌고, 론은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동시에 온갖 다양한 리듬에 맞춰 지팡이로 라디오 위를 두들겼다. 불사조 기사단과 관련된 단어를 중얼거리는 론의 목소리가 재밌었는지, 릴리아나의 품에 안겨 분유를 먹고 있던 세비나는 분유를 먹는 도중에도 웃음소리를 내며 생긋생긋 웃었다. 세비나의 반응에 론은 점점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온갖 이상한 단어를 내뱉었다. 세비나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자 보다 못한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론, 너 분명히 암호들은 대개 기사단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하지 않았었니?"

"그랬지."

"까꿍이나 푸푸, 부부바바같은 말이 기사단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헤르미온느의 말에 론은 머쓱한 얼굴로 다시 기사단과 관련이 된 단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소파에 늘어져 있던 해리가 기지개를 쭉 피며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보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아직도 있네. 설마 우리가 태평하게 문으로 걸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에 다시없을……"

론이 입모양으로 '멍청이들'라고 말한 다음 말을 이었다.

"……이겠지."

세비나가 분유를 다 먹자 그녀의 등을 두드리던 릴리아나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3월이 되어 겨울보다 기온이 많이 풀리긴 했지만 여전히 쌀쌀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창밖에 있는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릴리아나가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세바스찬과 프랑스로 떠나기로 약속한 3월인데다, 세바스찬은 이틀 후에 프랑스로 가는 티켓을 예매했기에 내일 모레면 이곳을 떠나야 했다. 위험한 여정을 해야 할 친구들을 이곳에 버려두고 도망가는 것 같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아기가 트림을 하자 등을 토닥이던 것을 멈춘 릴리아나가 하얗고 말랑한 아기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생글생글 잘 웃는 세비나의 모습에 무겁던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가슴 안쪽 어딘가가 딸에 대한 사랑스러움으로 간질간질했다. 세비나를 재우기 위해 자세를 고치며 가슴팍을 토닥여주기 시작하자 헤르미온느가 재밌다는 듯이 속삭였다.

"이브가 자려나봐. 눈이 반쯤 감겼어."

헤르미온느가 작게 웃으며 하얀 세비나의 볼을 가볍게 쿡 찔렀다. 릴리아나도 잠들듯 말듯 하고 있는 세비나를 바라보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응접실 안에는 론이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밖에 남지 않았다. 마침내 아기가 잠이 들고 나자 릴리아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작고 아기자기한 물건들로만 채워진 방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세비나를 침대에 눕힌 릴리아나는 아기가 작게 뒤척이자 흠칫 놀랐다가 이내 잠에 빠져들자 낮게 한숨을 쉬며 살금살금 방에서 나왔다.

발소리를 죽이며 아래층으로 내려온 릴리아나가 응접실 소파에 풀썩 앉았다. <<포터워치>>를 듣는데 실패한 론은 라디오를 끄고 지팡이를 뒷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헤르미온느의 옆에 앉았다.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해리가 몸을 바로 했다.

"오늘도 별 다른 성과는 없었어."

해리가 말했다.

"내일은 아마도 서쪽으로 멀리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래서 그런데, 아무래도 네가 프랑스로 떠나는 날에 배웅하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해, 릴리."

해리가 아몬드 모양의 초록색 눈에 다정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담으며 릴리아나에게 말했다. 론과 헤르미온느 역시 미안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계속해서 홀로 떠나는 것을 미안해하는 릴리아나가 떠나는 당일까지도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 질 것을 알기에 그녀를 배려해서 그런 말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마워."

릴리아나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헤르미온느는 그녀의 손을 꼭 잡더니 다정한 미소를 얼굴에 띠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프랑스로 가. 이브도 있는데 위험한 상황으로 가득 차 있는 영국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어."

"……고마워. 모두들 정말 고마워."

헤르미온느가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고개를 들어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해리와 론도 씩 웃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세바스찬이 차려준 푸짐한 아침식사를 모두 해치운 해리와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구슬 백 안에 빠진 물건들은 없는지를 확인하며 새로운 물건들을 채워 넣었다. 구슬 백 안을 세 번 정도 정리하고 나자 더 이상 머무를 구실이 없어진 그들은 옷차림을 몇 번이고 다시 점검했다. 이정도 쯤에서 헤어져야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몰랐기에 떠나는 것이 망설여지게 되는 듯 했다.

"그럼……우린 이제 가볼게."

해리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떼며 말했다. 세비나를 품에 안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릴리아나가 내일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인사를 건넸다.

"잘 갔다 와. 몸조심하고. 그리고……."

릴리아나가 금빛의 천주머니를 헤르미온느에게 내밀었다. 의아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은 헤르미온느가 천주머니 안을 열어보더니 입을 딱 벌렸다.

"어젯밤에 계속 생각해 봤는데……내가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건 그 정도 밖에 없더라고. 폴리주스 마법약이랑 디터니……그동안 만들었던 마법약들 중에서 유용해 보이는 것들은 모두 넣었어. 그리고 혹시 몰라 퍽스에게 부탁해서 불사조의 눈물도 넣었어. 거기 있는 작은 병에 담긴 투명한 액체 말이야. 한 사람당 한 병씩 넣긴 했는데……부디 쓸 일이 없기를 바랄게."

"네가 쓸 것은 어쩌고?"

"내가 쓸 용도로도 몇 병 남겨놨으니까 괜찮아."

"오, 릴리……."

헤르미온느가 릴리아나를 와락 껴안으려다가 품에 안긴 세비나를 보고 옆으로 살짝 틀어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그녀가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꼭 무사해야 해. 몸 건강하고."

"너도, 헤르미온느."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힌 헤르미온느가 몸을 떼더니 싱긋 웃어보였다.

"잘 있어, 릴리. 이브도 안녕!"

"안녕, 릴리! 안녕, 이브!"

해리와 론이 인사를 건네자 릴리아나도 아무런 걱정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마지막으로 릴리아나를 향해 눈인사를 한 그들은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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