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109화 (109/142)

0109 / 0142 ----------------------------------------------

죽음의 성물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죽음의 성물-(18)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저택 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썰렁하고 고요한 것 같았다. 친구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던 릴리아나는 옹알거리는 세비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에는 그들의 물건이 담긴 열쇠구멍이 가득한 트렁크가 문가에 놓여 있었다. 마법에 걸린 트렁크는 열쇠 구멍에 알맞은 열쇠를 넣으면 세바스찬의 옷가지들과 물건들이 든 칸과 릴리아나의 칸, 책, 마법약, 아기 용품들로 가득 찬 칸들이 나타날 것이었다.

릴리아나는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을 깜빡거리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세비나를 침대에 내려놓고 연분홍색의 토끼 인형을 안겨주었다.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자 릴리아나를 향해 팔을 뻗었던 세비나는 토끼 인형이 주어지자 이내 인형을 쭙쭙 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릴리아나는 헤르미온느의 구슬 백처럼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작은 핸드백을 찾아, 그곳에 여벌의 아기 옷과 손수건, 딸랑이, 기저귀, 물티슈 같은 것을 넉넉하게 넣었다. 내일 저녁 무렵에 퀸 저택을 떠나기 전에 잊지 말고 분유를 타서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문고리에 핸드백을 걸어놓았다.

"이브, 내일 저녁이면 프랑스로 가겠구나."

릴리아나가 세비나의 침대 옆에 앉으며 속삭였다. 토끼 인형의 귀를 쭙쭙 빨던 세비나가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맞췄다.

"그곳은 엄마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야. 매우 아름다운 곳이지. 한적하고 공기도 좋고 날씨도 화창하고……. 평화로운 동네야."

세비나는 릴리아나의 말을 모두 알아듣는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생글생글 웃으며 옹알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피식 웃음을 터트린 릴리아나가 부드러운 아기의 코를 살짝 눌렀다.

"그곳이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을 거야, 이브."

릴리아나가 그녀의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조그맣고 어리다. 세비나가 그녀를 향해 안아달라는 듯이 손을 뻗었다. 작지만 묵직하고 뜨거운 체온의 아기를 안아든 릴리아나가 세비나의 등을 토닥거리며 아기의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가 꼭 지켜줄게."

처음엔 어색했던 '엄마'라는 호칭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품 안에 안긴 세비나가 밝고 해맑은 웃음소리를 냈다. 릴리아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기의 뺨에 입을 맞췄다.

세비나가 낮잠에 빠져들자 릴리아나는 조용히 방을 나와 저택 안을 둘러보았다. 늘 보던 것도 내일이면 떠난다는 사실에 모든 게 새삼스러워 보였다.

벽에는 엄숙한 느낌의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그림과 현대의 그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곳곳에 놓여있는 화병에는 한때 세바스찬이 꺾어오던 싱싱한 꽃들이 꽂혀 있었지만, 지금은 빈 화병으로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깨끗함을 유지하는 하얀 문들과, 우아한 곡선의 가구들, 언제나 밝고 정갈한 저택. 릴리아나는 저택의 모습을 눈에 새기듯 찬찬히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릴리아나는 세바스찬과, 혹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와 오랜 시간을 보냈던 응접실을 둘러보았다. 응접실은 꽤나 많은 추억을 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호크룩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과, 방학이 되면 그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던 세바스찬과, 처음으로 호그와트 입학 편지를 받고, 호그와트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입학 용품을 사러 다이애건 앨리로 함께 가 주었던…….

릴리아나가 고개를 저었다.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쿵쿵 뛰었다. 두 눈을 감았다가 길고 긴 한숨을 내뱉은 릴리아나가 천천히 눈을 뜨며 자신의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어쩌면, 어쩌면 프랑스로 간 후에 다시는 영국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릴리아나의 저택을 떠난 후, 다음 날 저녁이 되도록 호크룩스에 대한 성과는 전혀 없었지만 그들은 <<포터워치>>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포터워치>>를 들었다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인간 사냥꾼들에게 잡혀 버렸다. 해리가 추적마법에 걸린 볼드모트의 이름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말포이 저택 안으로 그들을 끌고 들어온 늑대인간 그레이백이 포로들을 강제로 돌려서 해리를 샹들리에 바로 밑에 세워 놓았다. 나시사 말포이는 드레이코 말포이에게 해리와 그의 친구들이 맞는지를 확인하게 했다.

"자, 드레이코?"

루시우스 말포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탐욕스러웠다.

"맞니? 이놈이 해리 포터니?"

"저……저는 장담은 못하겠어요."

드레이코가 대답했다. 그는 그레이백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잘 들여다보렴, 봐! 가까이 오너라!"

루시우스 말포이는 무척이나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레이코, 만약 우리가 어둠의 마왕님께 포터를 넘겨주게 된다면, 모든 것이 용서……."

"실제로 그를 잡은 게 누구인지 잊진 않으셨겠지, 말포이 씨?"

그레이백이 위협적인 말투로 쏘아붙였다.

"물론 잊지 않았지! 물론이야!"

루시우스 말포이가 성마르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직접 해리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루시우스가 그레이백에게 물었다.

"어쩌다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우리가 그런 게 아니오."

"내 눈에는 아무래도 쏘기 주문에 맞은 것처럼 보이는데."

루시우스가 말했다. 순간 그의 회색 눈동자가 해리의 이마 위를 꼼꼼하게 살폈다.

"여기 뭔가 있군."

루시우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흉터일지도 몰라. 팽팽히 펴져서 그렇지……. 드레이코, 이리 오렴. 제대로 봐! 네 생각은 어떠냐?"

루시우스 말포이는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지만 드레이코 말포이는 내키지 않아 할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는 기색까지 보이고 있었다.

"전 모르겠어요."

드레이코는 재빨리 대답하고는, 어머니가 서서 지켜보고 있는 벽난로 쪽으로 가 버렸다.

"확실히 하는 편이 좋겠어요, 루시우스."

나시사가 냉정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어둠의 마왕님을 부르기 전에, 저놈이 포터라는 것을 확실히 확인해야 해요……. 그들은 이 지팡이가 그의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블랙손 지팡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건 올리밴더의 설명과는 다른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착각한 거라면……만약 아무 일도 아닐 걸로 어둠의 마왕님을 이곳으로 부른다면……그분이 라울과 돌로호브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기억하시죠?"

"그러면 이 잡종은 어떻소?"

그레이백이 으르렁거렸다. 인간 사냥꾼들이 다시 포로들을 강제로 빙빙 돌리자, 해리는 거의 발이 붕 떠서 던져지다시피 했다. 이제는 불빛이 헤르미온느를 비추고 있었다.

"잠깐."

나시사가 매섭게 말했다.

"그래……그래, 이 애는 말킨 부인의 망토 가게에서 포터와 함께 있었어! 나는 이 계집의 사진을 <<예언자 일보>>에서 봤어! 자, 보렴, 드레이코. 그레인저란 여자 애가 아니니?"

"아마……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애는 위즐리네 아들이군!"

포박된 포로들 주위를 돌고 있던 루시우스가 론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놈들이 맞아, 포터의 친구들 말이야……. 드레이코, 저놈을 봐라. 아서 위즐리의 아들 맞지? 이름이 뭐였더라……?"

"예, 그런 것 같아요."

드레이코가 포로들에게서 등을 돌리며 다시 대답했다. 나시사가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잠깐……한 계집이……"

바로 그때 응접실 문이 열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있어, 씨시?"

왼쪽 얼굴에 난 기다란 흉터를 씰룩이며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 포로들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그리고 해리의 오른편에서 걸음을 딱 멈추더니 두꺼운 눈꺼풀 아래로 헤르미온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확실한 거야? 이 애가 그 잡종 계집이란 말이지? 그레인저라고?"

벨라트릭스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그렇소. 이 애가 그레인저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놈은 포터인 것 같소! 포터와 그의 친구 녀석들이 결국엔 잡힌 거요!"

루시우스가 외쳤다.

"포터라고요?"

벨라트릭스가 날카롭게 소리치더니, 해리를 더 잘 살펴보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확실한가요? 좋아, 그렇다면 즉시 어둠의 마왕님께 알려 드려야지!"

벨라트릭스가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내가 그분을 부르려던 참이었소!"

루시우스가 외쳤다. 실제로 그의 손은 벨라트릭스의 손목을 단단히 쥐고서 그녀가 표식을 만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내가 그분을 불러야 하오, 벨라. 포터는 내 집에 끌려온 거라고. 그러니까 그건 내 권한……."

"당신 권한이라고!"

벨라트릭스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쓰며 빈정거렸다.

"당신은 지팡이를 잃어버리는 순간 권한을 잃었어, 루시우스! 어디 감히! 내 몸에서 손 떼!"

"이건 당신이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오. 당신이 그 아이를 잡은 것도 아니잖소……."

"방금 뭐라고 했소, 말포이 씨?"

그레이백이 끼어들었다.

"포터를 잡은 건 바로 우리요. 그리고 금화를 가질 사람도 바로 우리……."

"금화라!"

벨라트릭스가 비웃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여전히 루시우스를 뿌리치려고 애쓰는 한편,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는 주머니에서 지팡이를 더듬어 찾고 있었다.

"네 금화를 가져가라, 이 더러운 버러지 같은 놈. 내가 금화 따위를 바랄 성싶으냐? 난 오직 그분의 영예만을……."

그때 벨라트릭스가 용쓰던 것을 멈추었다.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는 무언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편 루시우스는 마침내 그녀가 항복한 것을 기뻐하며 그녀의 손을 얼른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멈춰!"

벨라트릭스가 악을 썼다.

"만지지 마! 어둠의 마왕님께서 지금 오시면, 우리 모두 끝장난단 말이야!"

루시우스는 집게손가락을 자신의 표식 위로 향한 채, 행동을 멈췄다.

"그게 뭐지?"

"칼이오."

인간 사냥꾼이 불평스레 대답했다.

"이리 줘."

"이건 댁의 것이 아니지. 내거라고. 내가 찾았어."

쾅 소리와 함께 붉은 광선이 뿜어 나왔다. 벨라트릭스가 기절 마법을 날린 것이었다. 그의 동료들로부터 분노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스캐비어가 자신의 지팡이를 뽑아 들었다.

"무슨 장난을 치고 있는 줄 아나, 이 여자가?"

"스투페파이!"

벨라트릭스가 소리쳤다.

"스투페파이!"

혼자서 네 명을 상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녀의 맞수가 되지 못했다. 그레이백을 제외한 인간 사냥꾼 모두가 서 있던 자리에 쓰러졌다. 그레이백은 양팔을 쭉 뻗은 채, 억지로 무릎을 꿇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벨라트릭스가 늑대인간 쪽으로 몸을 숙였다. 그리핀도르의 칼은 그녀의 손에 단단히 쥐어져 있었고, 그녀의 얼굴은 밀랍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칼을 어디서 찾았지?"

벨라트릭스가 저항할 수 없는 그레이백의 손에서 지팡이를 빼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감히 네가 이런 짓을?"

그레이백이 마법의 힘에 의해 강제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으르렁거렸다. 이제 그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입뿐이었다. 그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당장 풀어 줘, 이 여자야!"

"어디서 이 칼을 찾았느냐니까?"

벨라트릭스는 칼을 그의 면전에 대고 휘두르며 다시 물었다.

"스네이프가 이 칼을 그린고트에 있는 내 금고로 보냈는데!"

"그들의 텐트 속에 있었다!"

그레이백이 소리쳤다.

"분명히 말하는데, 당장 풀어 줘!"

벨라트릭스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늑대인간은 펄쩍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몹시 경계를 한 나머지 그녀에게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듯했다. 그레이백은 안락의자 뒤로 어슬렁거리며 물러나더니 구부러진 더러운 손톱으로 의자의 등받이를 꽉 움켜쥐었다.

"드레이코, 이 더러운 놈들을 밖으로 옮겨라."

벨라트릭스가 의식을 잃은 인간 사냥꾼들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네가 이놈들을 끝장낼 배짱이 없다면, 내가 할 테니 마당에 그냥 내버려 둬."

"드레이코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나시사가 미친 듯이 노하여 쏘아붙이자 벨라트릭스가 버럭 악을 썼다.

"조용히 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상황이라고, 씨시!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단 말이야!"

벨라트릭스는 숨을 헐떡거리며 칼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칼자루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돌아서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포로들을 바라보았다.

"만약 이놈이 진짜 포터라면, 상처를 입혀서는 안 돼."

벨라트릭스는 딱히 누구에게 라고 할 것 없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어둠의 마왕님께서는 손수 포터를 처리하고 싶어 하시니까……. 하지만 만약 그분이 발견하신다면……나는 반드시……나는 반드시 알아야……."

벨라트릭스는 다시 동생 쪽을 돌아봤다.

"내가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동안, 포로들을 지하실에 가둬야겠어!"

"여긴 우리 집이야, 벨라. 언니는 우리 집에서 명령을 내릴 수……."

"어서 해! 너는 우리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

벨라트릭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이 마치 미친 사람처럼 너무나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녀의 지팡이에서 가느다란 불꽃이 발사되어 카펫에 구멍을 냈다. 나시사는 잠시 망설이더니, 늑대인간에게 말했다.

"이 포로들을 지하실로 끌고 가시오, 그레이백."

"잠깐만."

벨라트릭스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잡종 계집은 어디 있지?"

"누굴 말하는 거요?"

그레이백이 짜증스럽게 되물었다.

"그 잡종 계집 있잖아! 죽은 포터의 어미와 꼭 닮은 그 계집!"

벨라트릭스가 신경질적으로 화를 냈다. 그 바람에 그녀의 왼쪽 얼굴에 있는 기다란 흉터가 신경질적으로 경련했다.

"그 계집은 없었소! 이게 다란 말이오!"

"도대체 그 년은 어디로 간 거냐? 어?"

벨라트릭스가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포로들을 쏘아보며 외쳤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입을 꾹 다물며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전부 데려가……이 잡종만 빼고. 말하지 않겠다면 털어놓게 만들겠어."

벨라트릭스의 지팡이 끝에서 위협적인 빨간 불꽃이 터져 나왔다. 그레이백이 기뻐서 그르렁댔다.

***

볼드모트는 차가운 눈으로 완전히 망가져버린 말포이 저택의 응접실을 바라보았다. 벨라트릭스는 포로들을 데리고 도망쳐버린 집요정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그녀의 주인에게서 받을 벌에 대한 공포로 덜덜 떨고 있었다. 이미 옆에서 반쯤 정신을 잃고 끙끙거리며 쓰러져 있는 루시우스와 그레이백과 인간 사냥꾼들 때문에 그녀는 더욱 겁에 질린 듯 했다.

"주인님, 저는 잘못한 것이 없어요. 모두 그 망할 집요정 때문이에요. 제발……제발 자비를……."

"크루시오."

볼드모트가 싸늘한 목소리로 저주를 외웠다. 벨라트릭스가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사지를 비틀었다. 나시사 말포이와 드레이코 말포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구석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주인님……제발……제발……부디 자비를……."

벨라트릭스가 엉엉 울며 애원했지만 볼드모트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 없는 얼굴로 지팡이를 위로 올렸다.

"스네이프!"

벨라트릭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볼드모트의 지팡이가 잠시 멈췄다. 그것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아님 이것만이 살길이라고 느낀 것인지 벨라트릭스가 빠르게 말했다.

"주인님! 포터는 놓쳤지만 다른 소식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무자비하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벨라트릭스가 더욱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가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거두어들이자 벨라트릭스는 훌쩍이며 몸을 덜덜 떨었다.

"일어나라, 벨라. 만약 별것 아닌 것이라면 볼드모트 경의 더 큰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볼드모트가 입을 열었다. 벨라트릭스는 제멋대로 경련하는 팔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벨라트릭스가 비틀거리며 주인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아직도 제멋대로 경련하는 몸을 억지로 꼿꼿하게 세우려 하며 입을 열었다.

"죽은 포터의 잡종 어미와 똑같이 생긴 그 계집이 스네이프의 아이를 낳았답니다."

볼드모트는 조금 흥미롭다는 얼굴로 벨라트릭스를 바라보았다.

"계속 해 보아라."

"포터와 함께 잡혀 온 그레인저 계집의 머릿속을 보았습니다. 그 계집이 포터와 함께 다니지 않았던 이유가 스네이프의 아이를 배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두 시간 후 그년의 새끼와 집사 놈과 함께 프랑스로 떠난답니다!"

벨라트릭스가 간절한 얼굴로 헐떡이며 외쳤다. 볼드모트는 입을 열었다.

"확실한 건가?"

"확실합니다!"

왕좌에 앉는 것 같은 우아한 모양새로 의자에 앉은 볼드모트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는 벨라트릭스를 향해 말했다.

"볼드모트 경은 매우 실망했었다, 벨라. 그래……매우 실망했었지……. 하지만 볼드모트 경은 매우 자비롭다. 네가 전해준 그 소식은……"

볼드모트가 입술이 없는 입을 쭉 찢어 미소 비슷한 것을 지어 보였다.

"……매우 놀랍구나."

벨라트릭스의 얼굴에 작은 희망이 비췄다. 그녀가 작지만 빠른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계속해서 주장했지 않았습니까, 주인님. 그 계집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요. 포터의 친구라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니, 그 전에 스네이프가 그년의 얼굴에 흔들렸지 않습니까! 역시 그 계집은 죽였어야 했습니다!"

"그만, 벨라."

벨라트릭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볼드모트는 다시 한 번 말포이 저택의 풍경을 눈에 담더니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운이 좋구나."

벨라트릭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볼드모트는 여전히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네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주겠다, 벨라. 그 계집과 아이를 잡아 오거라."

벨라트릭스의 두 눈이 불쾌하게 반짝거렸다. 그녀의 왼 얼굴에 난 기다란 흉터가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 말씀은……."

"그래."

볼드모트가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네 흉터의 복수를 해도 좋다는 말이다."

그의 말에 벨라트릭스가 입이 찢어질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잔뜩 흥분한 그녀가 빠른 목소리로 되물었다.

"살려서 데려와야 하나요?"

"상관없다."

볼드모트의 말에 벨라트릭스가 거의 울먹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녀가 희희낙락하며 말포이 저택을 떠나자 볼드모트가 나시사 말포이와 함께 구석에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드레이코 말포이에게 말했다.

"세베루스를 데려 오거라, 드레이코."

***

"도비, 이게 조개껍데기 오두막집이니?"

해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와 동시에 말포이에게 빼앗은 지팡이 두 개를 움켜쥐며,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싸울 준비를 했다.

"우리가 제대로 도착한 거야, 도비?"

해리가 돌아보았다. 조그만 집요정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도비!"

집요정이 휘청거렸다. 별들이 그의 커다랗고 빛나는 눈 속에 비쳤다. 도비는 고통을 참으려 숨을 헐떡거리며 벨라트릭스의 단검이 베고 지나간 그의 팔을 작은 손으로 꽉 눌렀다.

"도비! 도비!"

해리는 오두막집을 향해 그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도와줘요!"

도비의 상태를 본 헤르미온느가 벨라트릭스의 고문을 당해 흙바닥에 누워 덜덜 떨면서도 구슬 백 안에서 디터니를 소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힘없이 계속 손이 떨어지자 론이 대신 그녀의 구슬 백 안에서 디터니를 꺼내 도비의 팔에 그것을 콸콸 부었다. 상당히 아팠는지 도비는 끙끙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론이 디터니를 모두 붓고 나자 상처에서는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몇 주 지난 상처처럼 붉은 새살이 올라와 있었다. 도비는 작게 감사의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도비? 도비?"

"괜찮아, 기절한 거야."

루나가 도비의 코끝에 손가락을 대보며 말했다. 해리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해……리……해리……."

론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헤르미온느가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해리를 불렀다. 그녀는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릴리에게……릴리에게 연락을 해야 해……."

"헤르미온느, 넌 지금 쉬어야 해."

론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며 헤르미온느를 빌과 플뢰르의 조개껍데기 오두막집 안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헤르미온느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아까보다 더욱 눈물을 쏟아냈다.

"벨라트릭스가……그 여자가 알아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도비의 옆에서 일어난 해리가 물었다.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릴리가……오늘 프랑스로 가는 걸 벨라트릭스가 알아냈다고……내 기억을……."

그 말을 끝으로 말을 마친 헤르미온느는 기절해 버렸다. 잠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던 해리와 론은 헤르미온느의 말이 어떤 뜻인지 알아차리자 황급히 그녀의 구슬 백 안에서 양면 거울을 꺼냈다.

"릴리! 릴리! 릴리!!"

하지만 거울은 응답이 없었다.

***

말포이 저택은 여전히 난장판이었다. 방 안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스네이프는 의자에 앉아있는 볼드모트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볼드모트가 입을 열었다.

"세베루스. 내가 어째서 불렀는지 짐작이 가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스네이프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볼드모트는 뚫어져라 그의 까만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다 말을 이었다.

"그 잡종 계집이 기억나느냐. 네가 살려달라고 빌었던 죽은 포터의 잡종 어미와 똑같이 생긴 그 대용품 계집 말이다."

스네이프가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볼드모트는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계집이 아이를 낳았다는구나. 알고 있었느냐?"

"……몰랐습니다."

"그래?"

볼드모트가 미소 비슷한 것을 지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볼드모트 경이 묻겠다. 세베루스, 너는 그 계집이 대용품이고 정보를 알아낼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했었지. 잡종과 네가 아이를 낳을 만한 일을 했느냐? 그 아이의 아버지가 바로 너인가?"

"아닙니다."

스네이프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제 아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들어라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을 들자 볼드모트는 뚫어질 듯 그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볼드모트의 붉은 눈에 이채가 서렸다.

"네 아이가 아니라면 그럼 그 아이는 누구의 아이인 것이냐."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단호한 스네이프의 말에 볼드모트의 미소 비슷한 것이 더욱 진해졌다.

"역시 잡종이란 말인가? 아무 남자와 붙어먹는 더러운 잡종 계집?"

볼드모트의 말을 듣고 있던 스캐비어가 작게 킬킬거렸다.

"네 아이가 아닌 것이 확실한가, 세베루스?"

"그렇습니다."

"그래……그랬군……."

볼드모트가 느긋하게 말했다. 스네이프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대용품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다니……. 죽어버린 포터의 어미가 생각이 나지 않느냐. 화가 나겠구나."

볼드모트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조금은 조롱하는 투로 말을 이었다.

"그 계집이 얼마나 많은 남자들과 잤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구나. 수십 명? 수백 명?"

스네이프는 아무런 말없이 계속해서 바닥만을 바라보았다. 볼드모트가 기다랗고 새하얀 손으로 턱을 괴더니 짐짓 자비로운 말투로 말했다.

"네가 했던 말이 기억나느냐 세베루스. 내가 그 잡종 계집을 어떻게 처리하던 너는 상관없다고 했었지……."

볼드모트가 조곤조곤한 투로 속삭였다. 스네이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주인님!"

응접실의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벨라트릭스가 한 손으로는 여인의 금빛 머리채를 쥐고 엄청난 힘으로 미동도 없는 여인을 질질 끌며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계집의 시체를 가지고 왔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