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110화 (11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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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성물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죽음의 성물-(19)

벨라트릭스는 비열한 미소를 입이 찢어져라 지어보이며 응접실 안으로 어느 여인의 금발머리를 잡아 질질 끌며 들어왔다. 그녀의 주인 앞에 자랑스럽게 금발머리 여자를 던진 벨라트릭스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머리색을 바꿔버리는 바람에 인상이 완전히 달라져버려서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 그레인저 계집의 머릿속에서 본 모습은 잊지 않았습니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죠!"

벨라트릭스가 흥분된다는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눈을 부릅떴다. 스네이프의 시선이 금발머리 여자에 닿아 있다는 것을 알아챈 볼드모트가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확인해 보거라, 세베루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너만큼 이 잡종 계집을 잘 아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벨라트릭스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킬킬거렸다. 계속해서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바라보던 스네이프는 느린 무릎걸음으로 금발머리 여자에게 다가갔다. 벨라트릭스가 아무렇게나 다루는 바람에 잔뜩 헝클어지고 더러워져버린 폭포처럼 얼굴을 가리는 구불구불한 금빛의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던 스네이프가 천천히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러자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에 숨어 있던 큐빅이 일자로 촘촘하게 박힌 핀이 드러났다. 그가 릴리아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던 것이었다.

"자, 드레이코. 너도 이리 와서 확인해 보거라. 잡종이긴 하지만 호그와트에서 몇 번 보았을 것 아니냐."

나시사 말포이의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드레이코 말포이가 화들짝 놀라며 불안한 얼굴로 그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가 정말 싫다는 듯이 우물쭈물 거리며 다가왔다.

"어떠냐, 드레이코. 그 계집이 맞느냐?"

"맞……맞는 것 같습니다."

드레이코 말포이가 말을 살짝 더듬으며 말했다. 의기양양하게 서 있던 벨라트릭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은 감겨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고, 얼굴에 묻어있는 까만 재들과 기묘하게 꺾인 팔다리만 아니었다면 여자의 모습은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세베루스? 드레이코는 그 잡종 계집이라고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계집이 맞느냐?"

볼드모트가 나긋한 투로 물었다. 금발머리 여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스네이프가 여자의 목에 걸려 옷 밖으로 흘러나온 목걸이로 시선을 옮겼다. 그것 역시 그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세베루스?"

볼드모트가 스네이프의 대답을 재촉했다. 마침내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벨라트릭스가 입이 찢어져라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주인이 없었더라면 커다랗게 웃음까지 터트렸을 모양새였다. 그녀는 신이 나서 묻지 않았는데도 떠벌떠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잡종 계집이 지팡이를 들고 반항했으나 그 잡종은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년이 꼼짝없이 당하는 동안 온갖 주문들과 저주들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집사 놈이 아기를 데리고 도망쳤지만 거기서 저주에 맞은 가스관이 폭발하는 바람에 형체도 없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벨라트릭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스네이프를 바라보며 깔깔거렸다. 뒤에 있던 인간 사냥꾼들 중 하나가 휘파람으로 무언가 날아가는 소리를 표현하자 그녀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녀는 흥분을 참지 못하는 듯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뒤에 서 있는 인간 사냥꾼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어느 인간 사냥꾼이 스네이프의 앞에 넝마처럼 너덜너덜하고 시꺼먼 재들이 달라붙어 까맣게 변해버린 새하얬을 것이 분명한 아기 옷과 형체를 겨우 짐작할 수 있는 딸랑이로 보이는 플라스틱 조각을 던졌다.

"집사 놈과 애새끼의 시체는 형체도 없이 완전히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건지지 못했지만 인간 사냥꾼들이 그걸 주워왔습니다. 그리고 그 잡종 계집의 지팡이도 확실하게 빼앗았습니다."

벨라트릭스는 너덜너덜한 작고 작은 아기 옷과 딸랑이라고 형체를 겨우 짐작할 수 있는 녹아내린 플라스틱 조각 옆에 지팡이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스네이프의 지팡이 심과 똑같은 심이 든 릴리아나의 지팡이였다.

벨라트릭스가 이를 훤히 드러내 웃으며 그녀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칭찬을 바라는 모양새였다. 볼드모트가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잘했다, 벨라. 볼드모트 경은 네가 저질렀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겠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벨라트릭스가 고개를 연신 숙이며 말했다.

"자, 그럼……. 세베루스."

볼드모트가 몸을 스네이프를 향해 틀었다.

"볼드모트 경의 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둠의 마왕은 잠시 스네이프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말을 잇지 않고 기다렸으나 스네이프가 대답이 없자 다시 입을 열었다.

"볼드모트 경은 네가 덤블도어가 항상 운운하던 '사랑'이라는 멍청한 감정에 휩쓸려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볼드모트가 나긋하고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넌 그 계집은 아무런 존재가 아니라고 했지만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은 네가 그 대용품 잡종 계집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볼드모트가 스네이프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는 그 잡종 계집을 볼드모트 경이 어떻게 처리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었지."

금발머리 여자의 시체 옆에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스네이프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볼드모트가 멈춰 섰다.

"그래서 볼드모트 경은 그 잡종 계집을 처리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말이다. 덤으로 죽어버린 포터의 어미가 생각나게 만드는 대용품 잡종 계집의 새끼까지 처리했다, 세베루스."

볼드모트가 스네이프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자비로운 투로 말했다.

"자, 세베루스. 이제 볼드모트 경의 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보거라."

스네이프가 한참동안 볼드모트의 발끝에서 시선을 떼지 않자 그가 재촉하는 듯이 스네이프를 불렀다.

"세베루스?"

침을 꿀꺽 삼킨 스네이프가 여전히 볼드모트의 발끝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주인님의 자비로우신 처사에 감사드립니다."

흥미롭다는 듯이 그들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벨라트릭스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볼드모트는 미소 비슷한 것을 지어보였다.

"자, 그럼 이제……이 계집의 시체는……."

그레이백이 구석에서 그르렁거렸다. 몹시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볼드모트가 늑대인간을 향해 미소 비슷한 것을 더욱 크게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알아서 처리해라."

그레이백이 이빨을 드러내며 기뻐했다.

"일어나 거라, 세베루스."

볼드모트가 스네이프를 내려다보며 명령했다. 어둠의 마왕의 발끝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스네이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어 다리에 쥐가 나 비틀거릴 법도 한데도 스네이프는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와라."

스네이프는 볼드모트의 펄럭이는 망토자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어둠의 마왕을 따라 나갔다. 그들은 곧 호그와트로 순간이동을 했다. 이제 사방이 어둡고 쌀쌀해졌다.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보일락 말락 했다. 볼드모트는 스네이프와 나란히 호수를 향해서 운동장을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있었다.

"곧 성 안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그가 높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그만 가거라."

스네이프는 꾸벅 절을 하고 호그와트를 향해 걸어갔다. 검은 망토가 그의 등 뒤에서 펄럭거렸다. 볼드모트는 스네이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걸었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 스네이프도 다른 어느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되었다. 성의 창문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어서 그는 쉽게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자신에게 투영 마법을 걸었고, 스스로의 눈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호그와트 성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호수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 호수 옆에서 원하던 것을 찾고 말았다. 검은 수면에 모습을 비춘 채 이 낯익은 풍경에 자리하고 있는 하얀 대리석 무덤.

어둠의 마왕은 억누르고 있던 환희가, 그리고 파괴를 향한 짜릿한 목적의식이 또다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오래된 주목나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무덤이 위에서부터 끝까지 쩍 갈라졌다. 수의에 감싸인 형상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길고 홀쭉했다. 그는 또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시체를 감싸고 있던 천이 활짝 열렸다. 그 얼굴은 비록 약간 투명해지고 창백하고 움푹 꺼져 있었지만,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구부러진 그의 코 위에는 여전히 안경이 남아 있었다. 덤블도어의 두 손은 가슴 위에 놓여 있었고, 그와 함께 묻힌 그것은 움켜쥔 두 손 아래에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을 조롱하듯 바라보던 볼드모트는 거미 같은 손을 뻗어 덤블도어의 손아귀에서 지팡이를 잡아챘다. 그가 지팡이를 움켜쥐는 순간, 지팡이 끝에서 불꽃이 소나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불꽃은 이전 주인의 시체 위로 반짝이며 떨어졌고, 마침내 지팡이는 새로운 주인을 섬길 태세를 갖추었다.

***

볼드모트와 스네이프가 사라지고 난 응접실에는 그레이백이 기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입맛을 다시며 응접실 바닥에 기묘한 자세로 쓰러져 있는 금발머리 여자의 시체를 바라보던 그레이백이 흥분된다는 표정으로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였다.

"감히 도비의 여주인님의 몸에 더러운 손대지 말아요!"

응접실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의 난간에 나타난 도비가 꽥꽥거리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꼬마 집요정의 출연에 응접실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도비에게로 쏠렸다.

"저 망할 원숭이 새끼!"

벨라트릭스가 분노로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도비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집요정에 대한 분노가 떠오른 듯 했다.

"감히, 감히 네 옛 주인에게 그런 짓을 해?"

"도비는 자유로운 집요정이에요! 도비는 주인님으로 섬기고 싶은 마법사만 섬겨요!"

도비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당당하게 외쳤다. 벨라트릭스가 분노에 가득 차 그에게 저주를 날렸지만 도비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바로 그 순간, 완전히 망가져버린 응접실을 모두 채우는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 불길은 응접실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태워버릴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타올랐다. 응접실에 있던 죽음을 먹는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벨라트릭스가 분노한 얼굴로 지팡이를 휘둘렀지만, 무시무시한 불길이 꺼져버리고 남은 것은 시꺼먼 재로 변해버린 응접실의 부서진 가구들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무죽죽하게 녹아버린 한때 딸랑이었을 플라스틱 조각뿐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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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아나 금발로 염색했습니다.ㅠㅠ죽음의 성물 파트에서 부터 계속 염색했다고 묘사해 놨어요.ㅠㅠ

*한참동안 세수를 하던 그녀는 새하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거울에 비친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금발머리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 몇 달 사이에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대부분의 음식을 잘 먹지 못해 저절로 빠진 살과 배신과 상실로 인해 전체적으로 밝고 부드러웠던 인상이 차갑고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그런데다 장례식이 끝난 후 저택으로 돌아온 릴리아나는 간단한 염색 마법으로 머리색까지 바꿔버렸기에 지금 그녀의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94화

*"머리색을 바꿔서 처음에 못 알아볼 뻔 했어. 항상 하고 다니던 머리핀도 없고……."

루나가 무언가에 물린 것처럼 보이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말했다.

"금발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고마워."

루나가 빨고 있지 않은 다른 손가락으로 릴리아나의 금발을 가리키더니 고개를 옆으로 살짝 숙였다.

-97화

*지금은 머리색을 금발로 바꾸고 분위기 역시 많이 달라져서 서로 다른 사람 같았지만, 릴리아나의 예전 모습과 사진 속 릴리 포터의 모습은 동일 인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99화

*여전히 조금 새하얗게 질린 기운이 남아있는 얼굴을 한 릴리아나가 앞으로 넘어온 금발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금발머리가 물기어린 얼굴에 붙어 있긴 했지만 릴리아나의 따스한 미소를 읽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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