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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성물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죽음의 성물-(23)
호그스미드에 순간이동으로 도착하자마자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들킬 뻔 했지만, 애버포스의 도움으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무사히 호그와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래번클로 기숙사에서 캐로우 남매를 포박하고 투명망토를 쓴 채 계단을 내려가며 호그와트의 학생들을 탈출시킬 방법을 맥고나걸과 의논하던 해리의 발소리 이외에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맥고나걸이 인기척을 느낀 듯, 그녀는 걸음을 멈추더니 지팡이를 들어 결투할 태세를 취한 채 말했다.
"거기 누구냐?"
"접니다."
어떤 낮은 목소리가 답했다. 갑옷 뒤에서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걸어 나왔다. 그의 검음 머리칼은 얼굴 주위에 커튼처럼 늘어져 있었고, 그의 검은 눈은 생기 없이 차가운 눈빛을 띄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평상시와 같은 검은 망토를 입고 있었는데, 망토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그가 예전과 비교해 상당히 야위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캐로우 남매는 어디 있지요?"
지팡이를 치켜든 채 싸울 자세를 취하며 스네이프가 조용히 물었다.
"어디가 됐든 당신이 그들에게 있으라고 한 곳에 있겠지요, 세베루스."
맥고나걸이 대답했다. 스네이프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저는 알렉토가 침입자를 잡은 줄 알았는데요."
스네이프가 말문을 열었다.
"정말인가요? 무엇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셨나요?"
맥고나걸이 물었다. 스네이프가 왼쪽 팔을 살짝 구부렸고, 거기에는 피부 깊숙이 어둠의 표식이 찍혀 있었다.
"오오, 당연히 당신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비밀 소통 수단을 갖고 있지요. 제가 깜빡했습니다."
스네이프는 맥고나걸의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그러나 눈으로는 여전히 그녀 주위의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척하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 밤 복도 순찰 당번이 당신인 줄 몰랐습니다, 미네르바."
"이의 있으신가요?"
"무슨 일로 이 늦은 시각에 잠자리에서 나오셨는지 궁금하군요."
"무슨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것 같았어요."
"정말인가요? 사방이 고요한 것 같은데요."
스네이프가 그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해리 포터를 보셨나요, 미네르바? 만약 당신이 그러셨다면, 저는 반드시……."
맥고나걸의 지팡이가 재빠르게 허공을 휙 갈랐고, 스네이프의 방패 마법 역시 대단히 신속해서, 맥고나걸은 균형을 잃고 나뒹굴었다. 그녀는 벽에 걸린 횃불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고, 횃불은 받침대에서 빠져나와 붕 날아갔다. 불꽃들은 불의 고리가 되어 복도를 가득 채웠고, 스네이프를 향해 올가미처럼 날아갔다.
곧이어 그것은 더 이상 불이 아니라, 거대한 검은 뱀이 되었다. 맥고나걸은 그것을 폭파해 연기로 만들어 버렸다. 연기는 다시 형상을 갖추더니 순식간에 단단하게 굳어서 뒤를 쫓는 무수한 단검들이 되었다. 스네이프는 자기 앞으로 갑옷을 불러와서 겨우 그것들을 피했다. 단검들은 철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차례로 갑옷의 가슴에 박혔다.
"미네르바!"
어디선가 끽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플리트윅과 스프라우트가 잠옷 바람으로 복도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뚱뚱한 슬러그혼은 헐떡거리며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안 돼!"
플리트윅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꽥 소리쳤다.
"넌 호그와트에서 더 이상 살인을 저지를 수 없어!"
플리트윅의 주문이 스네이프가 몸을 가리고 있는 갑옷에 맞았다. 그러자 덜거덕하는 소리와 함께 갑옷이 살아 움직였다. 스네이프는 자신을 짓누르는 갑옷의 두 팔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갑옷을 공격자들 쪽으로 날려 보냈다. 갑옷은 벽에 부딪혀 산산 조각나 버렸다.
스네이프가 전력을 다해 달아났다. 맥고나걸과 플리트윅, 스프라우트는 일제히 쿵쾅거리며 그를 쫓아갔다. 스네이프는 어느 교실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 가더니 창문을 깨고 박쥐같은 형상으로 변해 그 밑으로 뛰어내렸다.
***
"주인님."
절망에 찬, 쉰 목소리가 들렸다. 볼드모트가 몸을 돌렸다. 제일 어두컴컴한 한쪽 구석에 루시우스 말포이가 앉아 있었다. 기진맥진한 그의 모습은 지난번 해리를 놓친 이후로 그가 받은 징벌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의 한쪽 눈은 퉁퉁 부어서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주인님……제발 부탁입니다……저의 아들을……."
"네 아들이 죽는다 해도 그건 내 탓이 아니다, 루시우스. 그는 다른 슬리데린 학생들처럼 이리 와서 나와 합세하지 않았다. 혹시 해리 포터와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 건 아니냐?"
"아닙니다……절대로 그런 일은."
말포이가 속삭였다.
"물론 아니길 바라야겠지."
"혹시……혹시 염려되지는 않으십니까, 주인님? 포터가 주인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에 죽게 될지도……."
말포이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 전투를 중지시키고 모……몸소 성으로 들어가셔서 그를 찾아보시는 편이 더 신중한 처사가 아닐까요?"
"루시우스, 괜한 핑계 대지 마라. 너는 이 전투를 중지시켜서 네 아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보고 싶은게지. 난 굳이 포터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이 밤이 새기 전에 포터는 날 찾아올 것이다."
볼드모트는 손에 든 지팡이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것이 말썽이었다……. 그리고 볼드모트 경을 골치 아프게 하는 것들은 반드시 다시 손을 봐야만 했다…….
"가서 스네이프를 데려와라."
"스네이프 말입니까, 주……주인님?"
"스네이프. 당장. 그가 필요하다. 내가 그에게 시킬 일이 있다. 가라."
잔뜩 겁에 질린 루시우스는 어둠 속에서 약간 비틀거리며 그 방을 떠났다. 볼드모트는 손가락 사이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그 지팡이를 응시한 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길밖에 없다, 내기니."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제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굵고 거대한 뱀은 볼드모트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준 마법의 보호 공간 안에서 우아하게 몸을 꼬고 있었다. 별처럼 빛나고 투명한 공 모양의 그 공간은 광채 나는 동물 우리와 수족관의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해리는 헉하고 숨을 들이쉬더니, 주춤 물러서면서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에 있어. 그 뱀도 함께 있는데, 일종의 마법 보호막에 감싸여 있어. 그가 방금 루시우스 말포이를 보내서 스네이프를 불러 오라고 했어."
해리의 말에 그들은 서로 자신이 그 뱀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랑이를 벌였고, 그 결과 세 사람 모두 투명망토를 쓰고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으로 가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비록 망토에 비해 그들의 덩치가 너무 크긴 했지만, 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돌 조각이 비처럼 쏟아지고 사방에서 주문들이 번쩍번쩍 터지는 이런 와중에, 밑으로 드러난 그들의 발을 발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나무뿌리 밑에 감추어진 지하 통로 속으로 몸을 비틀며 들어갔다. 그들이 지난번에 들어갈 때보다 통로는 훨씬 더 비좁아졌다. 통로의 천장이 낮았기 때문에 4년 전에도 그들은 몸을 완전히 숙인 채 지나가야만 했다. 그러니 이제는 납작 엎드려 기어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마침내 위로 비스듬한 경사가 시작되었다. 제일 앞에서 기어가던 해리가 은색 불빛을 발견하자, 헤르미온느가 그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투명 망토! 투명 망토를 써!"
그녀가 속삭였다. 해리가 뒤쪽을 더듬었다. 그러자 헤르미온느는 매끄러운 천 뭉치를 그의 빈손에 쥐여 주었다. 해리는 힘들게 망토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녹스"라고 중얼거려서 지팡이 불빛을 끈 다음,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계속해서 기어갔다.
이윽고 그들은 바로 저 앞에 있는 방에서 두런두런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통로 끝의 입구가 낡은 상자 같은 것으로 막혀 있었기 때문에 그 목소리를 희미하게 들렸다. 그들은 감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입구 바로 앞까지 조금씩 다가갔다. 그리고 상자와 벽 사이로 난 가느다란 틈새를 통해 안쪽을 엿보았다.
방 안의 불빛이 희미하긴 했지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반짝이는 마법의 구체 속에 안전하게 들어앉아서 마치 물속에서처럼 몸을 비비 꼬며 소용돌이치고 있는 내기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식탁의 가장자리와, 지팡이를 갖고 장난을 치고 있는 길고 하얀 손가락도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 스네이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스네이프는 그들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는 곳에서부터 불과 10여 센티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주인님, 저들의 저항이 약해지고 있……."
"그래, 네 도움 없이도 그렇게 되고 있지."
볼드모트가 높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베루스, 네가 비록 솜씨 좋은 마법사이긴 하지만, 이제 와서 크게 상황을 바꿔 놓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 거의 도달했다……거의."
스네이프는 아무 말이 없었다. 볼드모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해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새빨간 눈과 납작하고 뱀 같은 얼굴도 보였다. 그의 얼굴이 어찌나 창백했던지 어두침침한 가운데서도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 세베루스."
볼드모트가 조용히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인님?"
스네이프가 반문했다. 볼드모트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는 마치 지휘봉을 잡듯이 정확하고 섬세하게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어째서 이 지팡이가 나를 위해 움직이지 않느냐, 세베루스?"
"주……주인님?"
스네이프가 망연히 되물었다.
"저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주인님께서는 그 지팡이로 비범한 마법을 부리지 않으셨습니까?"
"아니다."
볼드모트가 말했다.
"그저 평범한 마법을 행했을 뿐이다. 물론 나는 비범한 마법사이다. 하지만 이 지팡이는……그렇지 않아. 기대했던 그 어떤 경이로운 힘도 보여 주지 못했다. 나는 오래전에 올리밴더에게서 구한 지팡이와 이 지팡이 간의 차이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볼드모트의 말투는 생각에 잠긴 듯 평온하기만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 점점 쌓여 가는 분노가 간신히 통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차이가 없어."
볼드모트가 또다시 말했다. 스네이프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볼드모트는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변함없이 신중한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하며 배회할 때, 잠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는 오랫동안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세베루스……. 너는 내가 왜 너를 전투에서 불렀는지 아느냐?"
스네이프의 눈은 마법의 우리 안에서 몸을 돌돌 말고 있는 뱀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모릅니다, 주인님."
볼드모트는 방 안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섰을 때, 그의 눈에서는 빨간 불빛이 번뜩였다. 그의 망토자락은 마치 구불거리는 뱀처럼 휘날렸다.
"세베루스, 지금 나의 관심사는 내가 마침내 그 아이를 만났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볼드모트가 걸음을 멈추고 하얀 손가락 사이로 딱총나무 지팡이를 미끄러뜨리며 스네이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서 내가 사용했던 지팡이 두 개가 모두 해리 포터를 겨냥했을 때 실패하고 말았을까?"
"저……저는 그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
"그러냐?"
볼드모트가 스네이프의 파리하고 초췌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주목나무 지팡이는 내가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했다, 세베루스. 해리 포터를 죽이는 것만 빼놓고 말이다. 그 지팡이는 두 번이나 그 일에 실패했지. 올리밴더는 고문에 못 이겨서 똑같은 지팡이 심에 대해서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팡이를 사용하라고 충고했지.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루시우스의 지팡이는 포터의 지팡이와 맞부딪히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저……저는 아무런 설명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
스네이프는 이제 볼드모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공허하고 새까만 눈동자는 여전히 보호막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세 번째 지팡이를 찾았다, 세베루스. 딱총나무 지팡이, 운명의 지팡이, 죽음의 지팡이를 말이다. 나는 예전 주인으로부터 그것을 빼앗았지. 바로 알버스 덤블도어의 무덤에서 이 지팡이를 가져왔다."
이제야 스네이프는 볼드모트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의 얼굴은 마치 죽은 것 같이 대리석처럼 하얗고 고요했다.
"이 기나긴 밤 내내, 승리를 바로 눈앞에 둔 이때에 나는 이곳에 앉아 있었다."
볼드모트가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이는 듯 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어째서 이 딱총나무 지팡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전설이 전하는 대로 지팡이의 정당한 주인을 위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인지……. 그리고 마침내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
스네이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느냐? 어쨌든 너는 대단히 영리한 자니까, 세베루스. 그동안 너는 착하고 충실한 종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감스럽구나."
볼드모트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는 스네이프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딱총나무 지팡이는 나를 제대로 섬길 수가 없었다, 세베루스. 왜냐하면 나는 이 지팡이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딱총나무 지팡이는 이전 주인을 죽인 마법사의 소유가 된다. 그런데 네가 알버스 덤블도어를 죽였다. 세베루스, 네가 살아 있는 한 딱총나무 지팡이는 진정한 나의 소유가 되지 못한단 말이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침묵을 유지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구나."
볼드모트가 말했다.
"나는 반드시 이 지팡이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세베루스. 이 지팡이를 지배해야 결국에는 포터를 지배할 수 있다."
볼드모트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허공에 대고 휙 휘둘렀다. 스네이프에게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곧 볼드모트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뱀의 우리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더니 스네이프의 머리와 어깨를 덮어 버렸다. 볼드모트는 파셀통그로 명령을 내렸다.
"죽여."
외마디 신음소리와 함께 스네이프의 얼굴에서 얼마 남아 있지 않던 핏기마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의 얼굴은 밀랍처럼 하얬다. 스네이프가 무릎을 꺾으며 그대로 마루에 쓰러졌다.
"유감스럽구나."
볼드모트가 싸늘하게 말하고는 휙 돌아섰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슬픈 기색도, 후회하는 기색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볼드모트가 반짝이는 뱀 우리를 겨누자 스네이프는 옆으로 힘없이 쓰러져 버렸고, 그의 목에 난 상처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볼드모트는 단 한 번 눈길도 주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가 버렸다.
해리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상자를 향해 지팡이를 겨눠 상자를 치워버린 다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스네이프는 새하얀 얼굴로 허공을 공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가 투명 망토를 벗었다. 부릅뜬 까만 눈이 해리를 발견하자, 그는 뭔가 말하려고 했다. 해리는 그의 몸 위로 허리를 숙였다. 스네이프는 그의 망토 앞자락을 움켜잡더니 바싹 끌어당겼다.
스네이프의 목구멍에서는 꼴딱꼴딱 숨이 넘어가는 끔찍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걸……받아……. 이걸……받아……."
그의 눈에서 눈물대신 푸르스름하고 은빛 광택이 감도는 액체와 기체의 중간 정도에 있는 물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리는 당황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해리는 다급하게 손짓발짓을 하며 설명하려고 했다.
"헤르미온느! 그걸……그걸……빨리!"
"받아……이걸……어서……."
스네이프는 해리의 망토 앞자락을 움켜잡은 채로 재촉했다. 바로 그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플라스크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덜덜 떨고 있는 해리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해리는 그것을 들고 스네이프의 눈물을 받았다. 플라스크가 가장자리까지 가득 찼을 때는, 스네이프에게는 더 이상 한 방울의 피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뒤에서는 계속해서 헤르미온느가 황급하게 가방을 뒤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녀 역시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인지 동작이 느렸다.
"나를……보아라……."
그가 속삭였다. 초록색 눈동자와 까만 눈동자가 서로 마주쳤다. 한참동안 해리의 초록색 눈동자를 바라보던 스네이프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낮고 깊은 탄식소리를 내며 해리의 눈에서 낡은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마침내 헤르미온느가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다급히 해리를 밀치고 스네이프의 목에 불사조의 눈물을 부었다. 상처에서 새까만 독이 흘러나오더니 김이 나기 시작했지만 헤르미온느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불사조의 눈물을 모두 그의 목에 부어버렸다.
천장을 바라보던 스네이프가 덜덜 떨리는 고개를 돌려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그의 까만 눈에서는 투명한 눈물이 피와 뒤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왜……!"
스네이프가 상처 입은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덜덜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왜!"
스네이프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울부짖었다. 헤르미온느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신 차려요, 세베루스 스네이프."
하지만 스네이프에게는 헤르미온느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던 헤르미온느는 표정을 굳히더니 차갑게 말했다.
"……릴리는 살아 있어요."
고통스러운 얼굴로 피가 섞인 눈물을 줄줄 흘리던 스네이프의 헐떡이던 숨이 멈췄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자,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릴리아나가 프랑스에서 머물고 있는 주소를 말해주었다.
"헤르미온느! 도대체 왜……."
론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헤르미온느는 론의 물음을 무시했다.
"난 여전히 당신을 용서할 수 없지만 내 결정을 후회하게 만들지 말아요, 세베루스 스네이프."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스네이프에게 말을 마친 헤르미온느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해리. 가자, 론."
론과 해리가 온갖 감정이 뒤섞인 얼굴로 스네이프와 헤르미온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스네이프에게서 기묘한 끅끅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는 것 같으면서도 웃는 것 같은, 얼핏 들으면 미친 것 같이 들리는 소리였다. 스네이프가 바닥으로 떨어졌던 팔을 올려 두 눈을 가렸다.
"……무사한 건가?"
"그건……."
힘없는 스네이프의 물음에 문을 닫으려던 헤르미온느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직접 가서 확인하세요."